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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3화)
1. 힘찬 날갯짓(3)


스스슥.
그의 손이 빠른 속도로 마법서의 여백에다가 문제의 풀이 과정을 써넣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촌장은 감탄한다.
“자네 마법산가?”
“아닙니다. 그저 여행자일 뿐입니다. 아직 제게는 직업이 없지요. 오늘부터 여행을 시작했거든요.”
마법사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레벨 10을 만든 다음, 마탑에 가서 마법사로 전직하면 끝! 처음 전직하면 기본적으로 1서클 마법사가 되고, 꾸준히 레벨을 올리면 2서클 마법사가 될 수 있다.
아직 전직을 하지 못한 스칼이 마법사라고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허어. 이 마법서는 일반 1서클 마법서랑 다른 거라서, 1서클 마법사들조차 풀기 힘들어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법사도 아닌 이방인이 푼다고? 이방인들은 마법서 푸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들었네만, 잘못되었던 것이군.”
촌장의 말을 들으면서 스칼은 마법서에 나온 문제의 풀이 과정을 모조리 써넣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자, 끝났습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촌장에게 말했고, 촌장은 밝은 얼굴로 책을 받아들더니 깊게 감탄했다. 그러자 요란하게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퀘스트 ‘촌장의 궁금증’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굉장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204명의 유저가 실패했던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업적 보너스로 경험치 100이 지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벌써 레벨 1업?’
접속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1업이다. 그렇게 해서 그의 레벨은 0에서 1이 되었다. 퀘스트를 잘 만난 덕분이랄까? 어차피 그의 수학 실력이 아니었다면 퀘스트 완료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이렇게나 빨리 답을 도출해 내다니…… 그래, 이것이 바로 1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해결된 수식이로군.”
그와 함께 스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서클 마법 ‘프리즈’의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프리즈는 1서클 마법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으로서, 상대방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마법입니다. 마력 소모는 75이지만 유저님은 정식 마법사가 아니시기에 150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마법 정보창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스텟, ‘연산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산력: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증가하는 스텟.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능력치 상승의 폭이 증가한다. 연산력은 마법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스텟인데, 연산력이 높을수록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대폭 증가한다.

―심화 문제를 해결하셨으므로 연산력이 1 증가합니다.
아쉽게도 프리즈 마법은 마력이 부족하기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연산력!
이런 스텟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게다가 연산력이 높을수록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상승한다니?
마법사들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마법을 날리는 속도다.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다른 직업들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연산력 스텟이 높아질수록 캐스팅 속도가 상승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법사의 문제점인 캐스팅 속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스텟이라면 유저들도 알고 있을 만한 스텟인데…… 설마 수학 문제를 푼 유저가 한 명도 없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왜 이 스텟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공유되지 않은 걸까?’
그는 모른다. 연산력 스텟의 생성 조건이 무엇인지.
연산력 스텟의 생성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풀어서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풀이 조건에 합당해야 하며, 그 풀이를 1분 안에 도출해 내야만 연산력 스텟이 생성된다.
그야말로 극악의 생성 조건!
연산력은 천재가 아니고서는 획득할 수 없는 스텟임이 분명하다. 마법서에 나오는 문제는 각각 달라서 해답을 미리 알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순수한 개인의 능력만으로 문제를 1분 안에 풀어야 획득 가능한 스텟이다.
물론 세상에 천재가 그뿐일 리 없다.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유저가 스칼 하나뿐일 리 없으니, 이 스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워야 한다.
‘어쨌든 좋아. 이 스텟이라면 마법사가 되는 것이 좋겠지?’
마법의 캐스팅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스텟을 가졌다면, 그가 선택해야 할 직업은 마법사였다. 속으로 씨익 웃은 스칼은 촌장의 말을 기다렸다.
“마법을 시전하는 데에 필요한 수식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워.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인가? 어찌 되었든, 자네가 문제를 풀어 줘서 참 다행이야. 지금까지 한 200명 정도에게 부탁했던 것 같은데…….”
‘200명에게 부탁했으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하지.’
“미안한데, 부탁을 하나 더 들어줘야겠어. 보상은 넉넉히 주도록 하지!”
이제 연계 퀘스트를 줄 모양이다. 퀘스트 하나를 완료함으로써 레벨을 1을 올렸는데, 그다음의 연계 퀘스트의 보상은 어느 정도일까? 꽤 대단할 것 같았다.
촌장은 밝은 얼굴로 스칼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마법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니 자네가 이 마을에 있는 마탑 지부로 가서 프라임이라는 녀석한테 자세한 해설을 써 달라고 하게. 아마 그 녀석이라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이야.”
“아니, 그러면 애초에 그 프라임이라는 분에게 가서 마법서를 풀어 달라고 하셨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스칼의 말대로 이방인에게 문제를 풀게 하는 것보다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한테 직접 가서 문제를 풀어 달라고 했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을 것이다.
그에 대한 촌장의 해명은 어이가 없었다.
“크흠! 프라임과 내기를 했어. 문제를 반드시 풀어 가겠다고! 그 늙은이가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 줄 아는가? 마법을 평생 사용하지 못할 돌머리라고 놀린다네! 나도 공부를 했으면 분명 훌륭한 마법사가 됐을 거야! 끙! 난 그 녀석의 얼굴을 보기 싫으니, 자네가 대신 다녀와 주게. 녀석이 마법을 종이에다 해설해 줄 것이야.”
고작 노인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던 것 같다. 촌장의 외침과 함께 그의 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연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2
등급:D
내용:당신은 마법서에 적혀 있던 문제를 훌륭하게 풀었습니다. 덕분에 촌장은 마법사와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내기의 조건이었던 마법 해설을 프라임이라는 마법사로부터 받아 오십시오.
보상:소량의 경험치, ‘촌장의 궁금증3’ 퀘스트 부여

이번 퀘스트를 완료하면 또 다른 연계 퀘스트가 있다는 말에 스칼의 얼굴에 기쁨이 감돌았다. 한 번에 퀘스트 3개가 연계되다니! 이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이던가?
연계가 거듭되어 갈수록 보상은 증가할 것이니,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스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퀘스트 수락을 표시했다.
“알겠습니다. 마법 해설을 받아 가지고 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마법 해설을 가지고 오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오히려 퀘스트를 날로 먹는 것만 같아 약간은 마음이 찔린다.
고작 배달 퀘스트인 것 같은데 연계 퀘스트가 계속 이어지니…….
그러나 아무리 날로 먹는 것 같다고 해도 이 퀘스트는 그가 받아 낸 것이다. 남들이 다 포기해 버린 퀘스트를 완료함으로써 얻어 낸 퀘스트이니, 합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스칼이었다.
촌장으로부터 마법서를 건네받은 스칼은 곧바로 페일 마을의 마탑 지부를 향해 걸어갔다.

* * *

마탑 지부. 그곳은 어디인가? 대륙의 3대 세력 중 하나인 마탑이 대륙 곳곳에 설치해 놓은 지부다.
마탑이란 일종의 마법사 단체인데,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은 마탑으로부터 심사를 받아야만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물론 유저들이라면 10레벨만 돌파하더라도 마법사로 전직할 수는 있지만…….
스칼은 마탑 지부 앞에 서서 혼잣말을 한다.
“오! 페일 마을의 랜드 마크인가? 무려 4층이나 되네?”
다른 시설과는 달리 무려 4층에 달하는 마탑 지부는 페일 마을의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한 스칼은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실내가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나타난 한 안내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마탑 지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성의를 다해서 고객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상업적인 느낌이 팍팍 묻어나는 멘트에 잠시 당황한 스칼이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봤다.
“혹시 이곳에 프라임이라는 마법사님이 계십니까?”
“프라임 지부장님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지부장 식이나 되는 사람이 촌장이랑 자존심 대결이나 하고 있어? 쯔쯔.’
지부장 식이나 되는 마법사가 촌장이랑 내기를 한 것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스칼. 그는 안내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촌장님의 부탁으로 왔다고 말씀드리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원은 곧장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낸 다음, 그 수정구에 대고 말한다. 아마도 프라임에게 연락을 취하는 듯싶었다.
그것도 잠시, 엄청난 속도로 연락을 끝낸 안내원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부장님께서 고객님을 모시라고 하십니다. 프라임 지부장님께서는 2층 사무실에 계시니 그곳으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안내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스칼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내심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논스톱으로 지부장의 방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
촌구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의 마법 지부라서 그런 것일까? 고급화된 시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 뿐.
2층으로 올라가서, ‘지부장 사무실’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손님이면 들어오시고, 구경하러 왔으면 물러가시오.”
안에서 괴팍한 대사가 들려온다. 손님이면 들어오고, 구경꾼이면 나가라는 짤막한 대사. 그 대사에 스칼은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저렇게 무뚝뚝한 말투로 그런 대사를 읊으니 상당히 웃겼다.
“촌장님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손님이로군. 그럼 빨리 들어오시오.”
역시나 무뚝뚝한 말투. 헌데 목소리가 꽤 늙은 듯했다. 하긴, 촌장과 비슷한 나이라고 했으니. 촌장이 노인이었기에 그와 내기를 하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 또한 노인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부장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 정도 연로한 사람일 것이라고 스칼이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보았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스칼의 예상대로 한 노인이 마법사들의 전유물인 로브를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말한다.
“당신이 찾는 프라임이라는 마법사가 바로 날세. 아마 당신은 그 멍청한 촌장의 부탁을 받고 왔을 테지? 클클. 그래, 그 멍청한 촌장이 뭐라고 하던가? 분명히 못 풀겠다고 하지?”
초면부터 반말을 쓰는 프라임의 태도가 꽤 거슬리는 스칼이었지만, 곧 그의 신분을 생각하고는 납득한다.
시골 마을의 마법 지부장이라고 할지라도 귀족에 준하는 신분. 따라서 아직 평민인 자신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충분했다.
스칼은 프라임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촌장님께서는 프라임 님께 마법을 해설해 주실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미 마법서에 적혀 있는 문제를 풂으로써 수식을 얻으셨거든요.”
“뭐,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겁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그 촌장이 문제를 풀었을 리가 없어!”
처음 내기를 걸었을 때, 그는 촌장이 문제를 못 풀 것이라고 확신하며 1서클 마법서를 줬었다!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촌장이 문제를 풀 가능성은 제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라임은 더더욱 스칼의 말을 믿지 못했다.
“저기, 프라임 님. 프라임 님께서는 촌장님께 문제를 풀어 오라고 말씀하셨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렇다면 혹시 그 녀석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풀었다는 건가? 그 문제를 풀 이방인은 거의 없을 텐데?”
프라임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초보 마을에 불과한 페일 마을에 1서클 마법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사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유저 마법사들은 마법서의 문제를 풀지는 않는다. 마법서를 습득한 다음, 마법서를 사용하기만 하면 그 마법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문제를 풀지 않아도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유저들이 문제를 풀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믿지 못하는 프라임에게 스칼은 묵묵히 마법서를 건네줬고, 프라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법서를 살펴본다. 그러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럴 수가…… 이렇게 완벽한 풀이라니? 이 정도의 풀이를 도출해 낼 정도라면 상당히 강한 마법사일 텐데. 혹시 자네는 이 풀이를 누가 썼는지 알고 있는가?”
“으음. 그 풀이는 제가 했습니다만.”
“……뭐라고?”
스칼이 환하게 웃으며 프라임에게 말했다.
“그 문제 풀이, 제가 한 것이란 말입니다.”
“…….”
프라임은 스칼의 말을 듣자마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딱 보니 힘도 미약한 이방인임이 분명한데, 그가 이 문제를 풀었을 리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말게.”
“거짓말이 아닙니다. 뭐, 믿기 싫으시다면 안 믿으셔도 되지요. 마법 해설만 주시면 됩니다.”
스칼의 말에서는 여유로움이 넘쳐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