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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4화)
2. 연산의 대가(1)


“자네가 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어찌 믿어!”
“아니, 안 믿으셔도 되니까 해설이나 해 주십시오.”
“안 되네! 내가 촌장, 이 녀석이 어떤 사악한 술수를 부렸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패배를 시인할 수는 없어! 자네가 한 것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푼 사람이 누구인지를 데리고 와 보게!
스칼은 꽤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촌장과의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믿지 못한 프라임이 문제를 푼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의 퀘스트창이 떠오른다.
―부가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증명
등급:없음
내용:마탑 지부장 프라임은 페일 마을의 촌장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가 인정할 수 있게 증명해야 합니다. 만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법 해설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귀찮게 하는 프라임의 행동에 짜증이 솟구치고 있던 스칼이 천천히 분노를 삼키며 프라임에게 말했다.
“그렇게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시험을 해 보시지요.”
상대방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빠르고 효과가 좋은 것이 바로 시험이다.
그렇기에 스칼은 머뭇거리지 않고 프라임에게 시험을 요구했고, 프라임은 그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만약 자네가 풀지 못한다면 촌장과의 내기는 내가 승리한 것으로 하겠네.”
“그러시든지요.”
“자신감이 넘치는군. 어디, 자네의 말이 허풍인지 아닌지 알아볼까?”
프라임은 얼굴에 사악함을 잔뜩 띠운 채로 서재로 다가가서 책 한 권을 뽑아냈는데, 그 책의 표지에는 ‘연산의 기술’이라는 제목이 써져 있었다.
아무래도 연산력을 기르기 위한 책인 것 같은데, 스칼에게는 오히려 저런 종류의 책이 더 쉬웠다.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고 단순히 연산 능력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종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프라임은 스칼이 문제를 못 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촌장과의 내기에서 지다니?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라임은 해설을 받으러 온 젊은이가 마법서를 풀었다는 것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더욱 큰 충격으로 빠트릴 것이다.
프라임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은 스칼은 곧장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첫 장부터 시작되는 방정식의 향연. 문제를 풀 수 있는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모두 다 암산으로 풀라는 것 같았다.
연산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암산의 기술이 더욱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하고 스칼은 생각해 보았다.
‘여기 와서도 수학 문제를 풀다니? 내가 수학 복은 타고났어.’
아마도 수학은 그에게 있어서 인연이 깊은 학문인 것 같다.
스스슥.
빠르게 책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스칼은 엄청난 속도로 문제를 풀어 갔다. 이까짓 문제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하루 한정 접속 시간은 총 16시간. 현실과의 시간 비율은 1:3이라서, 현실의 하루는 언리미티드 월드의 이틀이다. 그런 만큼 이런 허접한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이럴 수가…….”
기계적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스칼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프라임. 그렇게 그는 한동안 스칼의 경이로운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 * *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산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3/100)
내용:연산책에 나와 있는 문제들을 풀면 풀수록 좋아지는 머리는 당신의 마법을 강하게 만든다. 연산 스킬을 올리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니, 이 점 유의하자.
효과:스킬 레벨에 따라 마법 공격력이 상승한다.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독서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3/100)
내용:마법사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스킬이다. 마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줌으로써 마법 숙련도를 상승시킨다. 마법을 획득 시, 독서를 습득하지 않은 마법사들보다 더욱 높은 숙련도를 가지게 된다. 마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숙련도가 올라간다.
효과:마법 숙련도가 증가한다.

―연산력이 1 상승했습니다.
“다 풀었습니다.”
연산의 기술에 나온 모든 문제를 끝내 버린 스칼이 활짝 웃으며 프라임에게 말했고, 프라임은 혼이 빠진 것만 같은 얼굴로 말까지 더듬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정도면 그 마법책에 써져 있는 문제를 제가 풀었다는 것을 믿으시겠지요? 그렇다면 어서 빨리 마법 해설을…….”
덥석!
프라임이 갑자기 스칼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접근에 놀란 스칼은 손을 내빼려고 했지만, 프라임의 손은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자네, 정말로 이방인이 맞는가?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미약한데, 이런 연산 능력이라니? 도대체 자네 정체가 무엇인가! 이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버리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평범한 이방인일 뿐입니다.”
“평범한 이방인이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빨리 말하게! 자네의 정체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스칼을 궁지에 몰아넣는 프라임. 아마도 그가 많이 놀란 듯싶었다. 고작 레벨 1밖에 안 되는 초보자가 연산책을 3분 만에 풀어 버렸으니, 안 놀라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 자네의 정체는 필요 없네. 자네, 직업이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마법사가 되게!”
“예에? 전 아직 레벨 10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언리미티드 월드에서는 레벨 10에 전직하는 것이 당연했다. 레벨 10이 되기도 전에 전직을 시켜 달라고 하더라도 교관들은 전직을 시켜 주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전직을 해 주는 사람이 레벨 1인 그에게 전직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스칼의 말에 프라임은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으며 부정을 표시했다.
“레벨 10을 돌파한 사람만 전직을 시켜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왜냐하면 레벨 10을 돌파했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검증되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자네는 다르네. 지금 내 눈앞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그러면 됐어!”
―마법사 전직 관련 NPC, 프라임이 당신에게 ‘마법사’로의 전직을 권유했습니다. 권유를 받아들일 시 유저님은 곧바로 마법사가 되며, 마법사만의 특수 능력치를 부여 받습니다. 단, 전직을 한 번 하면 다른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니 유의 바랍니다.
그야말로 복이 굴러 들어왔다. 남들은 레벨 10에나 하는 전직을 레벨 1일 때 하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스칼은 아쉬움을 느꼈다. 저쪽에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말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마법사가 되라고 권유를 하다니? 이쯤에서 한 번 튕겨 주면 더 좋은 조건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한 스칼은 한 번 튕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부탁부터 완료해 주시지요? 마법사가 되는 것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그래. 자네가 원한다면야.”
―퀘스트 ‘촌장의 궁금증2’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굉장한 속도로 퀘스트를 완료시키는 스칼. 그는 문제 몇 개를 풀었을 뿐인데, 무려 2개에 달하는 퀘스트를 깼다.
남들은 힘들게 퀘스트를 깨는데, 자신은 가만히 앉아 문제를 풂으로써 퀘스트를 깨는 것.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이미 주도권이 넘어온 대화를 이끌어 갔다.
“일단은 촌장님께 드릴 마법서에 대한 해설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마법사 전직에 관한 내용은 그다음에 언급하도록 하지요.”
“자네의 능력은 마법사에 최적화되어 있네! 그러니 빨리 마법사가 되어야…….”
“어째서 그리 제게 집착하시는지요? 만난 지 1시간도 안 지났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스칼이 마법사가 되기에 딱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달라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칼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탑 지부장 식이나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달라붙을 이유가 없었다.
이유는 천천히 묻도록 하자. 촌장의 퀘스트부터 완료해야겠지.
스칼의 말에 프라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법서 해설을 작성한다. 숙련된 마법사답게 아주 빠른 속도로 마법서에 대한 해설을 적어 나갔다.
그는 빈 종이에다가 마법의 시전 방법과 수식 사용 방법에 대해서 정리했다. 초보자들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프라임은 순식간에 프리즈 마법에 대한 해설서를 만들어 냈다.
“촌장 녀석에게 축하한다고 전해 주게. 쳇, 촌장 따위에게 지다니…… 아! 이것을 촌장에게 전해 준 다음, 꼭 마탑 지부에 들리게. 꼭이야!”
“프라임 님께서 그렇게 원하신다면 한 번 들리는 것이 예의겠지요. 알겠습니다.”

<마법 해설서>
내용:1서클 마법인 프리즈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는 책이다. 프라임이 특별히 촌장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쓴 것이다. 몰래 훔쳐봐도 티가 안 날 것 같다.

상당히 이상해 보이는 아이템 정보였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스칼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지부 밖으로 나왔다.
퀘스트가 정말 쉽다. 그냥 문제 풀어 주고 퀘스트 아이템 받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스킬을 무려 2개씩이나 습득했다. 그것도 연산과 독서!
인터넷 공략법에 나와 있는데, 연산 스킬과 독서 스킬은 마법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스킬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연산 스킬이 가장 습득하기 힘든 스킬.
마법 숙련도를 높여 주는 ‘독서’ 스킬은 숙련도에 의해 마법 데미지가 바뀌는 마법사에게 필수적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스킬 레벨을 올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독서 스킬을 올리기 위해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다.
하지만 연산 스킬은 그렇지 않다.
빠른 시간 안에 연산책을 풀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어서 실제로 연산 스킬을 습득하는 자들의 수가 매우 소수다.
마탑 지부 바깥으로 나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 스칼은 새롭게 얻은 포인트들을 분배하기 위해서 스텟창을 소환해 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2 ―직업:무직 ―종족:인간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1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
연산:2
―보너스 포인트:10
―체력/마력:125/125
―장착하고 있는 장비:정보 없음

이전과는 달리 특수 능력치에 연산이 생성되어 있고, 보너스 포인트 10이 지급되어 있다. 레벨 1이 올라갈 때마다 보너스 포인트가 5씩 주어지므로,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10이 맞았다.
‘마법사로 키워야겠어. 아버지가 말한 시스템이 바로 마법서 시스템인 것 같으니.’
수학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배우거나 숙련도를 높이는 시스템이 바로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만들어 둔 시스템인 것 같다.
기왕 만들어진 시스템을 잘 이용하려면, 그 시스템의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 좋으리라.
어차피 프라임에게 능력을 보여 줬으니, 마법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싶었다.
마법사가 될 요량으로 지능에 보너스 포인트 10을 몰아준 스칼. 지능이 올라감에 따라 마법 공격력도 증가했다. 지혜에 적당히 배분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스칼은 지혜엔 단 1의 포인트도 주지 않았다.
스텟창 확인 작업을 끝낸 스칼이 곧바로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프라임으로부터 받은 해설서를 가져다주기만 하면 퀘스트가 완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