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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5화)
2. 연산의 대가(2)


인벤토리에서 마법 해설서를 꺼내면서 촌장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지부로부터 촌장의 집까지는 겨우 10분 거리!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촌장의 집과 마탑 지부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그런데 이런 거리를 심부름을 보내는 것을 보니, 프라임 지부장이나 촌장이나 둘 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 생활 방식일수록 유저들이 얻어먹을 것이 많기는 하다. 잡 심부름조차도 퀘스트로 인정받아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
촌장의 집 앞에 서서 해설서를 한 번 펴 봤다. 어차피 종이니 몰래 본 흔적이 남지 않으리라.
“에이, 이게 뭐야? 그냥 내가 한 풀이 방법에다가 설명을 덧붙인 것뿐이잖아? 이런 게 마법 해설서…….”
―6서클 마법사가 기록한 1서클 마법, 프리즈에 대한 설명서를 보셨습니다. 따라서 프리즈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60%로 상승합니다. 보다 강화된 프리즈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해설서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도가 60%씩이나 상승했다. 많이 반복함으로써 이해도를 올리는 일반 유저와는 달리 해설서 한 번 봤을 뿐인데 60%나 올랐다.
앞으로 이런 정보들은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반복 사용보다는 이렇게 해설서를 보는 것이 더욱 빠르게 먹힌다는 정보는 모아 두면 모아 둘수록 좋았다.
마법의 이해도가 상승했다는 소리를 듣자 왠지 모르게 스칼의 기분이 좋아진다.
“촌장님, 돌아왔습니다.”
“그래! 자네 돌아왔는가? 끌끌. 프라임 녀석의 얼굴이 어떻게 구겨지던가? 아주 미쳐 날뛸 것만 같은 얼굴이었지?”
“예. 제가 문제를 풀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경악을 하시더군요. 내기에서 이기신 것을 축하드리겠습니다. 여기, 마법 해설서입니다.”
손에 들고 있던 마법서를 촌장에게 건네주자, 다시 한 번 퀘스트가 완료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레벨이 올라갔다.
이제 스칼의 레벨은 3! 다른 이들은 돈을 벌면서 천천히 올리고 있는 마당에 그는 무려 3업이나 했다. 상당히 빠른 레벨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촌장은 스칼로부터 건네받은 마법 해설서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자네 덕분에 그 녀석과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이 모든 것이 자네 덕분이네. 사례금으로 30실버밖에 주지 못하네만, 정말 고마워. 스칼이라고 했었지? 자네가 보여 준 연산 실력은 정말 대단해! 프라임 녀석이 해설서에다가 자네에 대한 극찬을 썼더군? 연산책을 3분 만에 다 풀어 버렸다면서?”
“아, 예. 그분께서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 내가 자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도록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또 자신의 서재로 걸어갔다. 서재에서 뭘 꺼내려고 하는 것일까?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던 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니, 대기로 먼지가 날아다닌다.
“콜록!”
촌장이 기침을 하면서 꺼낸 책은 무려 6권! 어디에 쓰는 책인지 당최 예측이 가지는 않았지만, 6권 모두 꽤 두꺼웠다.
약한 신음 소리를 내며 그것들을 탁자 위로 옮긴 촌장이 웃으면서 스칼에게 말했다.
“이것들은 내가 옛날에 사 놓았던 연산책들이야. 마법 공부를 하려고 구입했던 것이었지만, 마법사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어. 자네가 연산을 아주 잘한다고 하니 이 책들을 공부해서 더욱 뛰어난 연산 실력을 가졌으면 하는군. 으하하! 프라임, 고 녀석! 건방진 행동을 하더니, 꼴좋구나!”
도대체 이 책은 언제 인쇄된 것일까? 표지에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는 오랜 시간 동안 손을 대지 않았음을 뜻했다.
책이 가장 아까운 순간. 그것은 돈 주고 샀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때다. 공부하겠다고 산 책을 시간이 지난 후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책 산 것을 후회할 때다.
아마 이 연산책들 또한 그와 같은 종류일 것 같았다.
촌장이 책들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아마 30년 전이네. 마법을 공부하겠다고 이 책들을 샀었을 때가. 후후! 아주 오래전 책이라서 새로운 문제들이 많이 보일 거야.”
‘30, 30년 전 문제들이었던 것인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니, 30년 동안 이 상태로 책이 유지되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3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 낸 책을 보니 사뭇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엄청난 자원 소비를 한 촌장에게 어이없음을 표시했다.
세상에나 30년 동안 책을 한 번도 건드리지 않다니? 그야말로 작심삼일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을 3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던 노하우라도 있으십니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스칼. 그런 스칼의 물음에 30년 동안 책을 멀쩡하게 보관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촌장은 가슴을 쭉 피며 말했다.
“손 한 번도 안 대면 된다네.”
“…….”
정말로…… 순수한 의미의 정적이 실내에 감돌았다.
촌장의 말에 스칼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읽지도 않는 책, 왜 사 뒀는지.”
“응? 자네 뭐라고 했나?”
“아닙니다.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퀘스트 추가 보상, ‘연산의 대가’를 받으셨습니다.

<연산의 대가>
분류:일반 책
내용:총 6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를 다 풀 경우, 연산력 스텟이 상당히 올라간다. 그리고 일정 시간 내에 6권 모두를 풀게 되면 특정 칭호를 얻게 되니, 이 점 유의하기를.
효과:6권 모두 풀 경우, ‘연산의 대가’ 칭호 습득.

‘칭호!’
칭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이템처럼 팔고 살 수도 없는 것이라서, 퀘스트를 깨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푸는 것을 통해 칭호를 얻을 수 있다니?
아버지의 정보에도 나와 있지 않은 것이었는데 운 좋게 알 수가 있었다.
스칼은 미소를 띠우며 책들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고, 그러자 다시 한 번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프라임이 자네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한 번 가 줬으면 좋겠어. 왜 자네를 부르는 것이지? 끄응. 일단 가 보게.”
‘마법사 전직 관련 퀘스트이려나? 후후.’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촌장의 궁금증3
등급:F
내용:프라임이 부른다. 속히 가도록 하자. 촌장이 준 ‘연산의 대가’를 꼭 챙겨서 가야 한다.
보상:새로운 퀘스트로의 연계―‘진정한 마법사1’

등급은 F등급. 그저 프라임에게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퀘스트라서 그런지 최하 등급 F다. 하지만 보상에 있는 새로운 퀘스트로의 연계라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의 예상대로 마법사 전직 퀘스트인 듯했기 때문이다.
게임 시작 1일 만에 전직 퀘스트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운이 아주 좋아서 히든 클래스를 얻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그가 유일할 것이다.
조기 전직 퀘스트는 드물다. 레벨 10이 되기 전에 궁수나 전사로 전직한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전직 교관과 극도의 친밀감을 쌓아야 가능한 것이었고.
“문제 몇 개 풀었을 뿐인데.”
……그의 말대로 문제 몇 개 풀었을 뿐이지만, 그 능력이 다른 사람과 비교가 불가능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자네가 보여 준 능력은 고작 문제 몇 개 풀었는데, 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 솔직히 말해서 그 누가 이런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 버리겠는가? 내가 이 방면으로는 약간 무지한데, 그렇다고 해도 자네의 능력은 엄청난 것이야. 여태껏 이방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런가요?”
촌장의 말대로 스칼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각이 느리다. 분명 자신의 재능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너무 문제를 쉽게 풀어 버려서 남들도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는 것.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촌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인사를 끝낸 스칼은 다시 마탑 지부로 향했다.

* * *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연산의 대가]
내용:아! 당신의 능력은 이미 하늘에 닿았다! 연산의 대가 시리즈 6권을 1일 만에 해결하다니? 그대가 진정 인간인가? 사람들은 이제부터 당신을 연산의 대가라고 부르리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대의 재능에 감탄할 것이다.
효과:스텟 ‘연산력’ +10%

스칼이 언리미티드 월드를 시작한 지 게임 시간으로 9일이 흘렀다. 그동안 스칼은 레벨 7이 되었고, 마탑 지부장 프라임과의 엄청난 친밀도를 쌓을 수 있었다.
위에 나와 있는 칭호는 ‘진정한 마법사2’의 퀘스트 내용이었던 ‘연산의 대가’ 시리즈 6권 모두를 풀고 얻은 칭호.
연산력 스텟을 10%만 올려 준다는 것이 가소로울지는 모르겠지만, 연산력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능력치도 높다. 초반에는 스텟 10을 올려 주는 것보다 못하더라도 스텟이 100 단위를 넘겼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장형 칭호! 열심히 키우면 키울수록 강해지는 맛이 있는 칭호다.
스칼은 1주일 동안 프라임의 퀘스트를 계속 완수하면서 연산력 스텟을 30까지 올릴 수 있었다. 프라임이 내준 퀘스트가 죄다 문제를 푸는 것이어서, 그 덕분에 30까지 올린 것이다.
이제 1주일 만 흐르면 초보자 마을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전에 전직을 해야 하리라.
현재 스칼이 받은 퀘스트는 마법사 전직 퀘스트. 전직 조건을 간단했다. 초보자 사냥터에서 토끼 5마리를 사냥하고 돌아오라는 것.
프라임과의 엄청난 친밀도 덕분에 무기 하나도 지급 받을 수 있었다.

<초보 마법사의 지팡이>
내용:마탑에서 초보 마법사를 위해 제작한 지팡이다.
레벨 제한:5
마법 공격력:3∼5

상점에서 사려면 꽤 높은 가격을 줘야 할 지팡이. 적어도 90실버는 나갈 지팡이다. 90실버라면 한화 9천 원이랑 비슷한 가격인데, 초보자들에게 있어서 90실버는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벌 수 있는 돈이다.
저소득 아르바이트로는 쉬지 않고 일해야만 구매할 수 있는 지팡이다.
그런데 그것을 고작 친밀도만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란 말인가? 물론 지팡이를 준 것이 아니라 대여해 줬을 뿐이지만, 프라임과 친밀도를 계속 쌓으면 얼마 안 가 완전한 그의 소유가 될 듯싶었다.
현재 스칼의 능력치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포인트를 지능에 올인했다.
연산력 스텟에 능력치를 투자할 수 있었다면 균형 있게 투자했겠지만, 연산력은 오로지 책을 풀어야만 올라가는 스텟.
때문에 마음먹으면 언제라도 올릴 수 있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마법사들은 체력과 마력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체질, 지혜에 포인트를 투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칼은 극 공격력 마법사가 되기로 한 것인지 오로지 지능에만 투자했다.
레벨업을 할수록 체력, 마력이 늘어나기는 한다. 다만 증가의 폭이 매우 적을 뿐이지.
극 공격력 마법사를 택하는 유저도 적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한 자금이 존재해서 체력과 마력을 커버해 줄 아이템을 구매한다. 그렇지만 스칼에게는 그런 아이템을 살 만한 돈이 당장에는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현질’을 한다면 그럴 만한 돈이 충분히 생기겠지만…….
‘이렇게 키워 보자. 정 캐릭터 키우는 것이 힘들면 그때 아이템을 구매하면 되니까.’
7대 수학 난제를 해결한데다가 필즈 메달까지 수상한 스칼이 금전적 어려움을 걱정할 리는 없다. 난제를 풀기만 해도 일반인이 평생을 구경 못할 돈이 생긴다.
게다가 필즈 메달까지 수상했으니까, 그가 마음만 먹으면 최고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배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이다.
아버지가 만든 게임 속에서 돈지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순수한 자신의 실력으로만 캐릭터를 키우고 싶었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세계는 노력한 만큼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 노력을 돈으로 메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지금까지 언리미티드 월드가 주는 재미를 느끼지 않았던가? 현실에서는 아버지 앞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 수학 공부를 했었다. 그 덕분에 수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고. 그런데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수학 문제를 풀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강해진다는 재미.
연산력이 상승할수록 마법 공격력이 상승한다. 후에 그가 마법사가 된다면 요긴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단 말이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 사람들이 RPG게임에 중독되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장한다는 재미 때문이었다. 게임 캐릭터에 쏟는 열정만큼, 캐릭터는 성장했다. 새로운 아이템을 끼고 더더욱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 쏠쏠한 재미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RPG게임에 중독된 이유다.
그리고 언리미티드 월드는 그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인류를 매혹시켰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현질로써 강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합당한 노력을 해서 캐릭터를 키운 이들에게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스칼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현질은 한계가 있고, 노력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그 때문에 그는 순수한 노력으로만 강해지고자 다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