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네메시스 1(6화)
2. 연산의 대가(3)


“그렇다면 토끼 5마리를 사냥하러 가 볼까!”
비록 방어구는 없을지라도 토끼를 사냥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안 맞으면 되니까. 게다가 지금 그에게는 마법이 무려 2가지나 존재한다. 촌장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프리즈, 프라임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버닝.
이 둘 모두는 파괴력이 상당한 기본 마법이라서 사냥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리라.
지팡이를 꽉 쥔 채로 마을 앞에 있는 초보자 사냥 필드로 나섰다.
“토끼, 한번 빠르네!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젠장! 몽둥이로 잡으려면 평생이 걸리겠네!”
사냥 필드 안에는 퀘스트 때문인지 토끼를 잡으려는 유저가 꽤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식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었는데, 상당한 속도를 보여 주는 토끼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이 꽤 웃겨서 스칼은 속으로 웃는다.
자신은 저런 모습으로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니까.
“후웁.”
사냥에 나서기 전, 숨을 한 번 내쉬면서 사냥감을 탐색한다. 처음 쓸 마법은 프리즈.

마법명:프리즈―1서클 마법
효과:상대방을 순식간에 얼려 버리며 데미지와 함께 구속 상태에 빠트린다. 지속 시간은 마법 숙련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지속 시간은 5초(몬스터의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
소모 마력:65(마법사가 아닐 경우 130)
캐스팅 소요 시간:14초
숙련도(22/100―하급)

이것이 프리즈에 대한 간략한 정보. 대부분의 1서클 마법사들은 마법의 숙련도가 10 이하다. 왜냐하면 마법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 유저들에게 숙련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무조건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스칼은 문제를 풂으로써 숙련도를 상승시켰다. 그러니 다른 유저와 다를 수밖에.
‘연산’ 스킬의 도움으로 실질적인 데미지가 더욱 상승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마법사로 전직하지 않은 까닭에 소모 마력이 150. 원래는 75이지만 1서클 마법인 경우엔 숙련도가 10 높아질 때마다 소모 마력은 5씩 줄어든다.
때문에 스칼은 무리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마법을 점검한 스칼은 곧장 눈앞에 보이는 토끼를 포착했고, 그것을 타겟으로 설정하면서 프리즈를 사용했다.
아직까지 연산력 스텟과 연산 스킬의 레벨이 낮았기에 캐스팅 시간이 눈에 띄게 단축되지는 않았다.
스텟과 스킬 레벨이 높아져야 효과가 나타날 것 같았다.
“프리즈!”
캐스팅 시간 14초가 지나고, 지팡이에서 프리즈가 시전되었다.
순식간에 목표로 삼은 토끼를 감싸는 차가운 대기. 빈 공간에 얼음덩어리가 생성되어 토끼의 몸에 달라붙은 것 같다.
토끼 주위의 수증기를 극한으로 얼린 것뿐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얼음이 토끼를 감쌌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쩌저적.
토끼의 몸에 달라붙은 얼음 조각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고, 마법에 당한 토끼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며 몸을 떨어 댄다.
―토끼에게 21의 데미지를 주셨습니다. 남은 HP:13.
“한 방에 죽지는 않아? 내 계산은 정확했는데!”
지능 수치와 토끼의 체력, 지팡이의 마법 공격력을 계산한 결과, 토끼를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그랬기에 그가 편하게 마법을 날렸던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것은 바로 토끼의 항마력이다. 토끼 같은 하급 몬스터라도 항마력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데미지가 줄어들었다.
‘침착함을 되찾자. 후우.’
프리즈의 지속 시간은 5초. 캐스팅 시간이 14초니까 다시 한 번 마법을 시전할 사이, 토끼는 그에게 공격을 시도해 오리라.
‘저렇게 작은 토끼가 공격해도 별다른 이상은 없을 거야. 그냥 무시하고 캐스팅하자.’
토끼의 몸집을 보며 그것의 공격력을 무시한 스칼이 다시 한 번 프리즈를 캐스팅했다.
쨍!
끼이익!
“뭐, 뭐야!”
그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 실수는 토끼를 한 방에 보내지 못한 것,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토끼를 무시한 것.
프리즈 마법에서 벗어난 토끼는 눈이 충혈됨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스칼을 향해 달려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순식간에 스칼에게 접근한 토끼는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날린다.
“으악!”
토끼의 몸통 박치기에 적중당하자마자 캐스팅이 취소되며 체력이 빠져나갔다. 그의 예상대로 그리 많은 체력이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캐스팅이 취소되었다는 것이 가장 위험했다.
어느새 그의 몸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토끼의 몸통 박치기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저리도 작은 몸집에서 인간을 넘어트릴 정도로 강한 힘이 나오다니? 이대로라면 캐스팅을 못할 것이 뻔했고, 결국은 자신의 패배로 끝날지도 모른다.
끼이익!
쓰러진 그를 향해 달려오는 토끼를 보자마자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또다시 토끼에게 몸통 박치기를 허용할 수 없다.
인간의 체면이 있지, 고작 토끼 따위에게 죽을 수는 없다!
“에라이, 마법을 못 쓸 바에야 차라리 지팡이로 때려야지!”
……그의 생각은 거기까지가 한계. 첫 전투에다가 토끼 같은 하찮은 미물에게 공격을 허용한 스칼의 정신은 매우 혼란스러워져서 합당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중이다.
아니, 지팡이가 얼마나 강하다고 토끼를 때려잡는단 말인가? 물리 공격력이라곤 제로에 가까운데다가 모든 포인트를 지능에다 투자한 그가 지팡이로 때려 봤자 토끼 가죽에 흠집도 안 나리라.
그저 지팡이의 리치만 보고 분명 타격이 있으리라고 판단한 스칼이었다.
부우웅.
달려오는 토끼를 향해 휘둘러지는 지팡이! 그래도 리치가 길었기에 토끼가 그의 몸에 도달하기 전에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끼익?!
“……뭐냐.”
―타격 무기가 아닌 것으로 적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적은 명백한 도발 행위로 생각하여 더욱 흥분합니다. 데미지가 4가 들어갔습니다만, 다시 한 번 이런 공격을 한다면 지팡이가 부서질 것입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그랬다. 지팡이는 타격 무기가 아니다. 오로지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무기일 뿐이지. 지팡이도 엄연히 나무로 만들어진 일종의 무기인데 어째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느냐,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운영자들은 ‘게임이니까’라는 단어로 일축시킬 것이다.
현재 스칼의 힘 스텟은 10. 즉, 보잘것없는 상태다.
지팡이를 강하게 휘둘러도 게임 내의 스텟은 10이니, 힘 스텟 10일 때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게다가 지팡이의 물리 공격력은 제로나 다름없다. 아무리 휘둘러 봤자 데미지는 없다.
스칼의 ‘명백한!’ 도발 행위에 더더욱 흥분한 토끼는 안 그래도 붉은 눈을 더더욱 붉히면서 전력을 다해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고,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스칼의 눈앞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일격으로 어느새 스칼의 체력은 절반뿐.
고작 토끼 따위에게 절반의 체력을 빼앗기다니? 그것도 레벨 7짜리가!
사실을 말하자면 올 지능 마법사들은 반드시 파티가 필요하다. 체력이 부실해서 캐스팅이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즉시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 있어야 하지만, 즉시 시전을 위해서는 연산력 스텟을 극도로 올리든지, 아니면 3서클 아래의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1서클 마법을 즉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4서클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연산력 스텟을 노가다 작업을 해서 많이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토끼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불상사만은 피하자!
“토끼 5마리 죽이는 건 결코 쉬운 퀘스트가 아니었다!”
볼썽사납게 소리를 지르는 스칼. 수학자로서의 품위 따위는 저 멀리로 던져 버리고 그가 선택한 길은…….
도망이었다.
끼익. 끼이익!
뒤에서 계속 ‘끼익’거리며 쫓아오는 토끼를 피해 무작정 마을 안으로 달려가는 스칼! 마을 안에는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니, 일단 마을 안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파티를 맺어서 다시 돌아와야겠어. 탱커 역할을 할 수 있는 파티원이 있으면 되니까.’
아무래도 혼자서 토끼를 잡으려고 했던 생각은 무모했던 것 같았다. 이렇게 토끼가 빠르고 위력적일 줄은 몰랐다.
아까 유저들이 토끼를 상대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가 그를 살려 줄 리가 없다. 열심히 자책을 하면서 마을 쪽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는 스칼.
그는 속으로 다짐한다.
반드시 토끼를 사냥하겠다고.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파티를 맺어서 토끼에게 받은 수모를 갚아주겠다고.
한 청년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마을로 뛰어갔다.
과연, 그는 알까? 고작 토끼를 못 죽여 도망가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는지. 그것은 아마 그의 사냥을 지켜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스칼의 첫 사냥은 뼈아픈 경험만을 남긴 채로 종료되었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이다.



3. 시작(1)


“좋아요! 프레이 님! 계속 버텨 주세요!”
“알겠습니다, 스칼 님.”
아쉽게도 토끼에 의해 굴욕을 당한 뒤, 게임 사용 제한 시간이 다해서 곧바로 복수를 하지 못한 스칼. 그렇지만 그는 다음 날 접속하자마자 파티원 한 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름은 프레이, 레벨은 6이며 스칼과는 다르게 모든 포인트를 힘으로 투자한 전사 지망생이다.
무기가 없어서 맨손으로 토끼를 때려잡으려 했지만 솔로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고, 그 역시 데미지 딜러를 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칼의 등장이란 그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곧바로 파티를 결성한 그들은 각자 토끼에게 쌓인 원한을 풀기 위해서 사냥 필드로 나섰다.
현재 그들은 힘을 합쳐 토끼를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제공격으로 프리즈를 날리고, 스칼을 향해 달려오는 토끼를 가로막는 프레이.
모든 스텟을 힘으로 투자한 덕분에 방어력이 상당했기에 토끼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을 수 있다.
“프리즈!”
쩌저적.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프리즈가 다시 한 번 토끼를 공격함과 함께 퀘스트로 인해 쌓여 있던 경험치가 오르면서 그를 8레벨로 만들어 줬다. 초보자 마을에서 올 지능 마법사의 프리즈 마법은 꽤 강력한 공격에 속했고, 그 위력을 본 프레이가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아니, 어떻게 그 레벨에 마법을 배우셨습니까? 프리즈 마법은 레벨이 10이 되어야만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던가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랍니다.”
“신기하네요. 10레벨 이전에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거든요.”
프레이에게 성심성의를 다해서 대답해 준 스칼은 곧바로 스텟창을 소환해서 포인트를 분배했다.

―캐릭터 이름:스칼 ―성향:중(中)
―레벨:8 ―직업:무직 ―종족:인간
―칭호:연산의 대가
―능력치
힘:10, 민첩:10, 지능:50, 지혜:10, 체질:10, 매력:10
―특수 능력치
연산:33(30+3)
―보너스 포인트:0
―체력/마력:300/300
―장착하고 있는 장비
초보 마법사의 지팡이(마법 공격력 3∼5)

이번에도 역시나 지능에 올인을 주었다. 앞으로 사냥할 때마다 탱커를 구해서 사냥하면 되니까, 체력 걱정은 안 하는 스칼. 물론 파티 사냥을 하면 번거롭기야 하겠지만 솔로 플레이보다 빠르게 사냥할 수 있다.
탱커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스칼이 파티 없이 사냥할 수는 없을 터였다.
“바로 다음 녀석을 잡아 보도록 할까요?”
“그러죠! 저도 푸줏간 퀘스트 때문에 토끼 5마리의 시체를 도축해야 해서.”
다행스럽게도 프레이 또한 5마리의 토끼를 사냥해야 하는 것 같다.
스텟 분배를 끝내고 곧바로 다음 사냥감을 탐색했다.
무난한 사냥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