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히어로 1(25화)
제10장 스캔들(3)
종로경찰서의 심문실에는 이례적으로 서장을 비롯하여 과학수사대에서도 참석해 있었으며, 의사와 간호사도 보였다.
한 반장과 형사들도 심문실 한쪽에 배치되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운전사와 안전모의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팔과 다리에는 각각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용의자에 대한 심문을 잘한다고 소문난 오영구 형사가 나서게 되었다.
안전모의 남자는 마취제를 맞아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안전모는 이미 벗겨져 얼굴이 들어나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평범한 인상이었다.
지갑에 10만 원이 들어 있었지만 신분증이나 운전면허증도 없어서 신분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형사들은 지문 조회를 하였고 곧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다.
심문을 맡은 오 형사가 오토바이 운전사에게 질문을 했다.
“이름은?”
“저는 죄가 없습니다.”
“내가 그걸 물어봤어? 이름?”
겁에 질린 그는 오 형사의 눈치를 보다가 대답했다.
“이름은 한동규이고, 나이는 27살입니다. 종로의 고시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좋아, 하는 일은?”
“오토바이 택배를 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택배는 언제부터 했어?”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옆의 놈과는 어떻게 같이 일한 거야?”
“2주 전에 이 사람이 나에게 오더니 자신과 일해 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루 일당으로 10만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봐.”
“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받는 제의라서 선뜻 응하지 않았더니 이 사람이 저에게 선급금으로 백만 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일당은 잘 줬어?”
“예, 10일 동안은 선급금으로 받은 걸 먼저 제하였고, 그 뒤부터는 하루에 10만 원씩 받았습니다.”
“이놈이 주로 하는 일이 뭐였어?”
“주로 귀금속 상가로 들어갔는데 금방 나왔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치를 보니 금괴를 상점 주인에게 주고 돈을 받는 거 같았습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일을 했어?”
“하루에 적게는 5번이고 많게는 10번까지도 했었습니다.”
“그럼 너는 이자를 오토바이에 실고 가자는 대로 데려다 주었나?”
“예, 그게 저의 할 일이었습니다.”
“그밖에 개인적인 말은 나누지 않았어?”
“예, 목적지만 주로 말하였고 개인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 형사가 심문해 본 결과 오토바이 운전사는 기절해 있는 자의 개인 기사 노릇만 한 거 같았다.
그리고 이 자는 귀금속 상가에 밀수한 금괴를 거래하며 돈을 버는 거 같았다.
문제는 이자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심문을 해 봐야 알겠지만 잘하면 밀수 조직을 알아낼 수 있고, 또한 이자가 어떻게 초능력을 쓰는지도 궁금했다. 어쨌든 자세한 심문은 이자가 깨어나 봐야 알 수 있었다.
“으으음…….”
기절해 있는 자가 깨어나는 모양이었다.
한 반장과 형사들도 긴장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던 남자가 이제야 눈이 제대로 보이는지 나직하게 말했다.
“으음…여긴 어디지?”
“이제 깨어났나?”
“당신들은? 그렇군. 형사들이구만?”
“넌 밀수한 금괴를 거래하다가 현행범으로 우리에게 붙잡혔다.”
“킥킥… 그래서 어쩌라고?”
“이제부터 널 심문하겠다는 말이다.”
“미란다 원칙도 말하지 않고서 체포해도 되는 건가?”
“흥, 미란다 원칙을 말했지만 네가 기절해 있어서 듣지 못한 거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묵비권을 행사해도 되겠지?”
“으… 이놈이?”
제법 머리가 똑똑한 자였기에 오 형사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폭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좋다. 네가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그 권리를 존중해 주겠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적사항 정도는 말해 줄 수 있겠지?”
“이름이나 나이, 살고 있는 곳 정도 말인가?”
“그렇다. 말해봐 라.”
“흐흐흐… 그러고 싶지만 나의 동료들이 그걸 원하지 않아서 말이야.”
“뭐…뭐라고?”
콰쾅!
느닷없이 심문실의 한쪽 벽이 박살나면서 3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건장한 근육질의 몸이었으며, 얼굴에는 레슬링 할 때나 쓰는 그런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두 명의 타이거 마스크들이 남자를 양쪽에서 붙잡고 먼저 박살난 벽으로 도망쳤다.
심문실 안에 있던 한 반장과 형사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권총을 뽑았다.
나머지 한 명의 타이거 마스크는 어느새 형사들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퍼퍼퍽!
“으악!”
“아악, 내팔!”
“커억!”
쇠파이프에 맞은 형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권총을 겨누려던 동료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심문실 밖에서 지켜보던 서장과 간부들은 황당한 상황에 아직도 멍한 표정이었다.
타이거 마스크는 바닥을 박차고 박살난 벽 속으로 도망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장이 소리쳤다.
“뭐해? 어서 놈들을 잡아!”
“잡아라, 잡아!”
형사들이 박살난 벽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 초 만에 도망칠 수는 없는데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반장은 안전모가 기절할 때 입수한 작은 가방이 떠올라 그걸 살펴보았다.
가방 속에는 검은 비닐이 여러 개 들어 있었는데 하나에는 만 원권 뭉치가 들어 있었다. 척보니 천만 원인 거 같았다. 나머지 검은 비닐 속에는 일 킬로그램짜리 금괴가 각각 하나씩 모두 5개가 들어 있었다. 시가로 5천만 원이었다.
그리고 메모지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종로 귀금속 거리에 있는 상점들의 상호가 10개나 적혀 있었다. 금괴를 거래하는 거래처인 모양이었다.
이것을 보면 이들은 제법 조직적인 자들이었다.
종로 경찰서장은 처음에는 한 반장과 형사들이 한 놈에게 당하였다는 걸 알고는 황당해했었지만 오늘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해 보니 보통 놈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서장이 한 반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한 반장, 그건 뭐야?”
“놈을 체포했을 때 입수한 가방입니다. 이 속에 현금과 금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로 귀금속 거리에 있는 상점 10곳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놈들은 제법 조직적인 거 같습니다.”
“으음… 보통 놈들은 아니었어. 특히 경찰서의 심문실 벽을 부수고 들어와 동료를 구출해 가다니 지금도 난 믿어지지 않아.”
“예, 제가 생각하기에도 보통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간이 큰 놈들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서를 습격하지는 못하는데 말입니다.”
서장은 한 반장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이 사실이 밖으로 흘러나가면 파장이 클 거 같아서 서장이 직접 사람들에게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다.
느닷없이 철호의 스캔들이 터졌다.
스포츠 신문에 철호의 스캔들이 특종 기사로 나오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 보았다.
“어머, 철호의 스캔들이야.”
“흥, 여우 같은 게 꼬리를 쳤군?”
“그래도 날씬하고 제법 예쁜데?”
철호의 스캔들 상대는 놀랍게도 개나리 빌라의 앞집에 살고 있는 보라였다.
철호는 거실에서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하다가 핸드폰 진동음에 그걸 중지하고는 핸드폰을 보았다.
“어? 정아 씨!”
―오빠, 그게 사실이에요?
“예? 무슨 말입니까?”
―이럴 줄 알았어. 오빠 스캔들 났어요.
“예? 뭐라고요?”
황당한 정아의 말에 철호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선뜻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오늘 스포츠 신문에 오빠의 스캔들 기사가 났다고요.
“으음… 어떻게 당사자가 모르는 스캔들이 날 수 있습니까?”
―오빠, 보라라는 여대생을 알아요?
“보라요? 누구지? 설마 앞집의 그 보라는 아니겠죠?”
―맞아요. 오빠!
“허엇, 보라와 내가 왜 스캔들이 난 것이죠?”
―스포츠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오빠가 보라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 기사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지금 난리라고요.
“으음… 너무 황당해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단 인터넷으로 확인 좀 해 볼게요.”
철호는 노트북을 펼치고는 인터넷 기사를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온통 철호의 스캔들로 난리였다.
스캔들 사진과 기사를 읽어 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사진은 철호가 며칠 전에 보라와 함께 개나리 빌라 주위를 조깅하는 장면이었다. 누군가 몰래 이걸 찍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신문에 기사를 내보내려고 하면 확인 절차는 거쳐야 하는데 기자는 그걸 하지 않았다.
기자는 교묘하게 기사를 썼는데 이 기사를 읽으면 마치 철호가 보라와 사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철호는 화가 치밀었지만 인기가 있다 보니 치르는 유명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사가 절대 나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철호가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기사대로 보라라는 여자와 사귀는 게 사실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보라는 앞집에 사는 여대생인데 며칠 전에 조깅하다가 서로 만나게 되어 몇 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입니다. 그걸 누가 보고 찍은 거 같습니다.”
―오빠, 정말 그게 전부예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진은 너무 다정해 보이고, 기사는 사실 같아 보이는데요?
“으음… 정아 씨는 내가 아무리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는군요? 설사 기사대로 진짜라고 하더라도 정아 씨는 날 믿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저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오빠, 난 그저…….
“되었습니다. 우리 당분간 서로 연락하지 맙시다. 그게 서로에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오…오빠,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합니다. 정아 씨, 그만 끊겠습니다.”
철호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 버렸다.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스캔들 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겠지만 그동안 기자나 사람들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대로는 화보 촬영 같은 일이 들어와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으음… 이렇게 된 바에야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마법수련이나 하는 게 좋겠어. 어디가 좋을까?”
너무 멀리 가는 건 내키지 않았기에 그리 멀지 않은 구룡 터널 교차로를 조금 지나면 울창한 숲이기에 그곳으로 결정했다.
구룡 터널 위쪽은 울창한 숲이지만 등산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은 아니었기에 마법수련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을 챙긴 철호는 투명화 마법을 펼쳐 모습을 감추고 플라이 마법으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새처럼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자 목적지에 금방 도착했다.
공중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도 울창하여 철호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경사진 곳에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밑을 약간 염력으로 팠더니 딱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약간의 비와 바람을 막아 주는 것만으로도 철호는 좋아 보였다.
“이제 이곳에서 당분간 머물면서 마법수련이나 하는 거야.”
그그긍!
두꺼운 철문이 열리면서 실험실 안으로 두 명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왼쪽 뺨에 칼자국이 있는 단장이라는 자와 외소한 체격에 콧수염을 기른 군사였다.
“박사!”
“예, 단장님!”
흰 가운을 입은 박사라는 자가 기기를 점검하다가 모습을 보였다.
“멍청한 경비병들이 놈에게 당했어.”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 파워가 배나 높다고 했는데 어떻게 허무하게 모두 당할 수가 있나?”
“그…그럴 리가요?”
“그럼 내가 박사에게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으음…죄송합니다. 단장님께서 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3명이 탈출한 놈에게 당했는데 그놈도 누군가에게 살해 되었어.”
“예? 탈출한 놈도 죽었다고요?”
“그렇다니까.”
박사는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장의 눈짓을 받은 군사가 신문을 박사에게 내밀었다.
박사는 신문 기사를 읽어 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으음…믿어지지 않지만 모두 죽은 게 분명하군요.”
“경비병들이나 탈출한 놈이 모두 죽었으니 되었지만 뭔가 찝찝해! 마치 뒤를 보고 휴지로 닦지 않은 거 같단 말이야.”
“그러시다면 조사를 위해 몇 명 파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야.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좋아. 자칫 경찰들에게 우리가 드러나면 곤란해.”
“으음…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박사, 어찌 되어 가나?”
“현재 83%가 되어 안정권입니다.”
“하하하…좋아. 박사, 정말 수고했어.”
“하지만 단장님, 현재의 수준으로는 10일에 한 명 정도만 능력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능력자를 대량으로 만들려면 92%는 되어야 합니다.”
“박사,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지금의 83%라면 안정권이니 실패 없이 능력자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는 것도 성공이잖아.”
“그…그건 그렇습니다.”
“좋아, 일단 나의 친위대부터 능력자를 만들어야겠어.”
“단장님,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됩니다.”
“좋아, 아주 좋아.”
단장은 자신의 친위대원 중에 한 명을 손짓으로 불러 기기에 앉도록 했다. 박사는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몸을 고정시켰다.
파지직!
“끄아아…….”
지독한 통증에 친위대원은 비명을 질렀다.
로봇 팔이 움직이더니 노란색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를 친위대원의 뒷목에 찔렀다. 노란색 액체가 몸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하자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두 눈동자가 커지고 핏발이 곤두섰다.
바르르 떨던 그는 축 늘어졌다.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었다.
박사는 씨익 웃으며 친위대원을 그렇게 능력자로 만들고 있었다.
<『히어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