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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25화)
第七章 세상으로(4)


천기원에 비상이 걸렸다.
총관 전종은 천기원의 모든 정보망을 사천성 일대에 집중시켰다. 패천문 문주로부터 강압적인 의뢰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패천문 문도 오십일 인을 도륙한 흉수를 잡아내라는 그의 의뢰는 전종으로서도 꽤나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한 실력자가 쉽게 모습을 드러낼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주인의 허락이 떨어졌고 패천문은 사마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현재 천라단(天羅團) 일급 소속 아이들 사십여 명이 사천성 일대에 포진해 있으며, 중경과 귀주, 그리고 운남성으로 천라단 총원의 절반이 침투해 있습니다.”
천기원이 탄생된 이래 전후무후한 일이었다.
천라단은 천기원의 총관인 전종 휘하 직속 부대이다. 천기원주 하제량의 귀로 들어가는 보고들 대부분이 천라단 소속 정보원들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만큼 지리에 익숙하고 정보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한 시진 간격으로 나에게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전종은 자신이 우두머리로 있는 천라단의 부관인 막운(莫雲)에게 명령을 하달한 뒤 잠시 몸을 의자에 묻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패천문 문도들이 사망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그리고 철대악에게 의뢰가 들어온 시각은 그날 늦은 밤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그 시간에 천라단은 비상체제로 돌입하여 사천성 일대는 물론 주변 세 개의 성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흉수에 대해 아는 건 최소 삼 인이라는 것과 철궁을 사용했으리라는 것. 그리고 유가량을 납치했다는 것.
그나마 그들을 추적하는 데 용의한 점이 하나 있다면 자신들에게 신상이 알려진 유가량을 납치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이미 시체로 변해 있을지 모른다.
“후우.”
그들을 어찌 찾아낸단 말인가.
작심하고 숨어 버린 그들을 찾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하루에도 유동인구가 수백 수천씩 왔다 갔다 하는 사천성과 그 일대 지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수의 인원을 찾는 일은 너무나 버거웠다.
하지만 찾아내야만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천기원의 힘을, 천라단의 위력을 저들에게 여실히 드러내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 원하는 일이다.
전종은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해 그들을 잡아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의무였으니까 말이다.

***

툭.
사군악은 자신이 쓰고 있던 투박한 가면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얼굴을 구겼다.
삼 년 전과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굳이 뽑으라면 머리색이었다. 새까만 검은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염병, 얼굴에 땀띠 나겠다.”
“대체 이따위 거추장스러운 건 왜 쓰라는 건지.”
옆에 있던 담천도 사군악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이 집어 던진 가면은 화려했다. 얼룩덜룩 짙은 색감이 가득 칠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의자를 세운 뒤에 앉았다. 몇 시진 만에 앉아 보는지 몰랐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뭐 하냐.”
자신들의 은신처에 도착하여 쉬고 있는데 구석에서 대찰영이 뭔가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이 왔음에도 쳐다보지 않는 그의 태도가 불만인 사군악이 물었다.
대찰영의 손에는 녹색 빛깔을 띠는 원형 물체가 있었다. 너무나 조그마한 것이어서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사우가 이것의 이름을 멸신독(滅神毒)이라 지었더군요.”
“이름 한번 거창하군.”
“그럴 만도 하지. 천하의 독천자를 죽인 물건이니까.”
사군악의 투덜거림에 담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신마저 멸할 수 있다는 멸신독.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정확하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만독불침의 육체를 지녔다 하는 독천자를 한 번에 독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봤음에도 아직도 믿기 힘들었다.
멸신독은 초록색 원구의 형태였다. 날카로운 물체로 그것을 째면 그 안에서는 녹색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평범한 인물의 피부에 그것이 닿게 되면 화상을 입게 된다.
독천자를 죽일 때는 그것을 사군악의 검 끝과 대찰영의 도 끝에 묻혔다. 소량이었지만 독천자를 암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멸신독이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없었다면 지금 세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독천자를 죽이기 한 달 전부터 그곳 근처에서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사우에게는 아직도 연락이 없었냐.”
“예.”
대찰영은 짧게 대답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독천자를 죽인 이후부터였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든 걸 바치며 지켰던 환도문의 멸문. 그것을 주도한 이들이 현재의 사마련이라는 단체라는 사실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 안에 속해 있는 문파들은 바로 환도문과는 교류가 두터운, 한때나마 남북천맹이라는 거대한 연맹에 속해 있던 자들이 아닌가.
동료들의 손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찰영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왜…… 유가량을 죽이지 말라고 했을까요.”
무미건조한 대찰영의 말에 담천이 얼굴 표정을 굳혔다.
“글쎄다. 뭔가 이용할 목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명령을 내린 거겠지.”
“명령은 무슨.”
명령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거슬리는지 사군악이 인상을 썼다.
“죽이면 안 될까요.”
“……!”
갑자기 지독한 살기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사군악과 담천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죽이지 않으면 제가 미쳐 돌아 버릴 것 같습니다.”
담천은 대찰영이 갑작스러운 분노로 인해 또다시 폭주를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자신과 사군악의 힘만으로는 그를 저지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인곡에 사우가 들어온 이후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강해져서 나온 아이가 바로 대찰영이었다.
투살기를 대성으로 익혔고 독문도법인 혈우멸절도(血雨滅絶刀)의 다섯 가지 초식 모두를 극성까지 익힌 상태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천하에서 일류라 칭함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면 마성에 젖어들지 몰라 담천은 대찰영의 살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라.”
“유가량을 죽이려면 죽여라. 하지만 당장 네놈 혼자서 사마련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복수를 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리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
“감정에 휘둘려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다.”
담천은 평상시와 너무나 다른 말투와 눈빛으로 대찰영을 설득했다. 아무리 대찰영이 삼 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단신으로 단체를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나 사마련이라 하는 엄청난 조직을 상대로는 말이다.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할 게 뻔했다. 그저 분노한 감정에 휘둘려서 생각 없이 뱉은 말일 것이다.
“패천문주 철대악이 어떤 인물인 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사군악은 젊은 시절 천하를 떠돌아다닌 경험이 있으며 상단에 몸을 담은 적도 있었다. 세 사람 가운데에서 그나마 무림이라는 곳에 잘 아는 이가 바로 사군악이었다.
“철혈대제 철대악은 무림에서 최강자로 꼽으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인물이지. 네놈 따위가 아무리 강해졌다 하더라도 그를 이길 수는 없어. 우리가 패천문 문도 오십일 인을 도륙했다 하더라도 그건 패천문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지. 그 안에 철대악이 아끼는 제자가 있었다. 전면전은 우리에게 불리해.”
괜히 사천성의 강자라 불리는 패천문이 아니다. 사천성은 중원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었지만 예전부터 어떤 문파도 감히 무시하지 못하는 강자들을 배출해 내었고 단결력과 날카로움이 있는 단체들이 넘치는 지역이다.
그런 곳을 혼자의 몸으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망상을 품는 대찰영이 한심해 보였다. 아무리 감정에 휘말려서 내뱉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 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담천이 대찰영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니 서두르자.”
지금 이들은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해 하고 있었다.
꽤나 멀리 도망쳐 왔다고는 하지만 패천문이 눈에 불을 켜고 흉수를 잡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괜히 꼬리를 길게 늘어트려 봐야 이득 될 것은 없었다.
세 사람은 그날 밤 창가를 통해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잔 주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역시 이 녀석들이었나.”
그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곤 새장에서 잘 훈련된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하늘 위를 맴돌던 전서구가 사내의 어깨로 내려와 안착했다.
철대악은 전서구를 통해진 소식을 접하자마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영악한 놈들.”
그는 서찰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어깨는 분노로 인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섬서성으로 향한다 하는구나.”
철대악의 뒤에는 세 사람이 시립해 있었다.
한 명은 외당주 신도용이었다.
“제가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검은 방립을 쓴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풍도(黑風刀) 신철(伸哲).
그는 패천문 문도이긴 했지만 언제나 어둠 속에서 철대악을 보필하는 사내다. 중원에서는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고 패천문 내에서도 그의 존재를 아는 자는 극소수였다.
오로지 철대악의 명령만을 들으며 그의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존재였다.
“쉽게 내리실 결정이 아닌 듯합니다. 련에 속한 다른 문파들이 이번 일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학사풍의 중년인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백면군자(白面君子) 심천악(沈天岳).
현재 패천문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실질적인 인물인 그의 발언은 신철의 의견을 묵살하는 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다. 아무리 신철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고는 하더라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특히나 목표물들이 이동하는 곳은 섬서성이다. 바로 남북천맹의 총타가 있음은 물론 그곳은 어떤 장소라도 남북천맹의 시선을 피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들이 남북천맹의 소속일 경우 패천문과 남북천맹은 서로 피를 봐야 할 것입니다.”
“시기상조로군.”
철대악이 침중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본문의 입장만을 내세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도용.”
“예, 문주.”
“본문의 일을 다른 문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더냐.”
“련주께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언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혈천문 문주께서도 거사를 치름에 있어 작은 희생은 묻어 두는 것이 좋겠다 하셨습니다.”
“문주…… 제가 나서겠습니다.”
신철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음살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더냐.”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놈들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철대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살문은 본련의 가장 비밀스러워야 하는 조직이다. 절대로 세상 밖으로 먼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곳이지.”
철대악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정답이 나오질 않았다. 자신의 제자가 죽었다. 그리고 오십여 명의 문도가 도륙당했다. 중요한 건 그 흉수의 꽁무니를 잡았다는 것인데 검을 들지는 못한다는 게 답답했다.
섬서성에서 피를 보게 되면 남북천맹에서 조사를 나오게 될 터이고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게 된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만에 하나라도 흉수가 남북천맹에서 보낸 자들이라면 전쟁은 불가피해진다.
준비를 해 가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필패였다.
“하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도용.”
“예.”
“천기원주에게 전해라. 그놈들의 행적을 쫓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하루 간격으로 나에게 보고하라고.”
“알겠습니다.”
철대악은 흑풍도 신철을 바라봤다.
“그들을 준비시켜라.”
“……!”
신철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하오나, 문주. 그들은…….”
“패천문 문도 오십이 죽어 자빠졌다. 내 수족들의 죽음을 묵인할 정도로 매정한 인간은 못 되지. 나란 놈은.”
철대악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이라면 반드시 흉수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음살문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었으니 남북천맹과의 관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심이……!”
“그만!”
심천악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철대악이 음성을 높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심천악의 혈색이 새하얘졌다.
“더 이상의 반발은 패천문의 수장으로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난 그들의 어버이다. 어찌 내가 자식의 죽음을 그냥 넘어간단 말이냐.”
철대악은 잠시 말을 멈추곤 흥분을 가라앉혔다.
“오랜만에 딸아이를 보고 싶기도 하구나. 신철, 어서 가거라. 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하고 함께 하산하여 섬서성으로 함께 가거라.”
“존명.”
신철의 신형이 스르륵 사라졌다.
‘뭔가 불길하구나.’
심천악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철대악의 등을 바라봤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