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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24화)
第七章 세상으로(3)


묵창 신도청은 패천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게다가 정예 무인 오십이라면 웬만큼 고수가 아니라면 덤비는 것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유가량은 철대악의 배려로 인해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신도청의 무공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소문으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목격했었다.
명색이 패천문 문주의 제자였다. 당연히 신뢰와 믿음이 가는 것이리라.
유가량은 마차 안에서 눈을 감았다.
패천문으로 오는 이틀간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두통과 눈의 피로가 상당했다. 독마궁에 도착하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피로를 풀어야 했다.
덜커덩.
이제 막 잠을 청하려는데 마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유가량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단지 마차가 급정거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린다. 마차가 바로 움직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적입니다.”
신도청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증폭되었다.
적이라니!
설마 아버지를 죽인 자들이라는 말인가? 유가량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생각에 잠겼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얽히고설켰다.
하지만 그는 독마궁을 앞으로 이끌어 갈 사람이었다. 그것을 상기하니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을 가지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패천문 무인들이 마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
마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유가량은 전신을 찌르는 엄청난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차를, 아니 유가량을 호위하는 오십 인의 무인들과 신도청마저도 그 기운에 압도되어 있었다.
신도청은 세상에 태어나 이처럼 지독한 기운은 느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이 무인으로서의 마지막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 뽑았는지도 모를 자신의 병기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적들이 자신들의 기운을 내보낸 것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손에 땀이 흥건하다.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사부님.’
신도청의 시선이 어딘가로 꽂혀 정지했다.
어둠을 입은 듯 새까만 복장을 한 세 명의 무리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마치 그것이 악귀의 형상과도 흡사하다고 느꼈다.
그들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신도청은 수하들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누구냐. 누군데 길을 막아서는 것이냐!”
당당하게 소리를 쳤지만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려 왔다.
돌아오는 대답 따위는 없었다. 세 명 중 하나의 손에는 철궁이 들려 있었는데 들고 있는 손이 올라가면서 철궁도 딸려 올라왔다.
신도청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신의 묵창을 가슴 앞에 세웠다.
“모두 목숨을 걸고 유 공자를 지킨다.”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명령을 내린 신도청은 땅을 박차고 세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오십 인 중 삼십 명가량의 패천문 무인들이 따랐다.
나머지는 유가량의 곁에서 그를 호위했다.
피잉!
철궁에 끼워져 있던 화살이 시위를 떠나 공기를 찢어발기며 신도청에게로 날아들었다.
‘이런 미친!’
화살이 날아오는데 이처럼 엄청난 압박을 가해 올 줄은 몰랐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일반 화살이 아니라 철궁과 더불어 쇳덩어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력까지 실려 있으니 절대로 맞상대할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덕분에 그의 뒤를 바짝 쫓던 무인에게로 그 물건이 꽂혔다.
퍼억!
화살이 몸에 박혔다고는 믿기 힘든 소음이 울렸다.
살집을 비집고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육체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는지 화살을 맞은 무인은 그대로 명이 끊겼다.
“대가리부터 잡으라고, 멍청한 새꺄!”
철궁으로 공격을 가한 사내 귓가로 거친 전음이 들려왔다. 가면 속 그의 얼굴은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아! 저놈이 피한 걸 어쩌란 말이냐.”
담천은 사군악의 구박에 가만히 있지 않고 반박했다.
“삼 년 동안 변한 게 없구나. 아이고!”
“주둥이 그만 나불거리고 저 유가량이라는 놈부터 사로잡아라.”
그 순간, 담천의 좌측에 있던 사군악의 신형이 땅으로 꺼지는 듯하면서 유가량이 있는 곳을 향해 쏘아져 갔다.

시산혈해!
피를 흘리는 인간의 시체가 정확하게 오십일 구!
그렇다면 분명 시산혈해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상황을 표현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리라.
인간의 피로 얼룩진 땅에서 피어오르는 혈향은 주변을 온통 가득 메웠다. 그 근처에는 웬만한 비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면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부르르!
그런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는 일단의 무리.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철대악은 자신의 우악스러운 주먹을 떨었다.
“깔끔한 흔적입니다. 도저히 어떤 무공을 썼는지 알아내기가 힘이 듭니다, 문주.”
외당주 신도용이 조용히 상황을 보고했다.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누가 감히 패천문을 이리 농락하는 것이야!”
철대악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 위력은 가장 옆에 있던 신도용과 그 뒤로 있던 외당의 무인들에게 전해졌다.
몇몇은 그의 기운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그나마 버티는 무인들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무기는 모두 세 종류입니다. 검, 도, 그리고 궁입니다.”
신도용이 한마디 한마디를 끊어서 내뱉었다. 아무리 그가 외당을 맡고 있다지만 철대악의 기운을 제대로 맞받아칠 정도의 힘은 없었다.
“그 외의 것은 발견하기 힘이 듭니다. 헌데…….”
“헌데?”
“궁이라 추정되는 물건이 이상합니다.”
“…….”
“흔히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궁을 쓰는 자들은 화살을 이용하기 마련인데 시체들을 확인한 결과 날카로운 것이 아닌 뭉툭한 것이 몸에 박힌 듯합니다.”
“일반 화살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힘을 동반하였는지 도저히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철대악은 다시 한 번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훑어봤다.
“몇 명으로 추정되느냐.”
“궁이라 추정되는 것 말고는 사용된 병기는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검이고 하나는 도입니다.”
“몇 명이라 물었느니라.”
“파악이 불가합니다.”
쿵!
철대악의 오른 발바닥이 땅을 한번 찼을 뿐인데 지천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신도용은 그런 철대악의 반응에 고개를 들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 파악만으로 그는 패천문의 외당주 몫을 톡톡하게 해낸 셈이다.
그만큼 패천문 무인들을 살해한 흉수들의 실력은 가늠하기가 힘이 들 뿐 아니라 자신들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철궁…… 철궁이라.”
철대악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중원 무림에서 철궁을 사용하는 자가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철궁이라 단정 지은 것은 신도용이 일반 화살이 아닐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든 화살이 아니라면 쇠로 만든 것이리라. 그렇다면 당연히 화살을 날리는 데 철궁이 사용되었으리라.
“유가량은 납치를 당한 것 같으냐.”
“예. 주변을 샅샅이 뒤져 봐도 찾지 못했습니다.”
“독천자를 살해한 놈들이겠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가 막혀 더 이상 화도 낼 수가 없었다. 감히 패천문의 무인을 이토록 도륙하다니. 무림의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까무러치고 놀랐을 일이다. 이것은 패천문에 대한 선전포고였고, 전면전을 하겠다는 행동이었다.
‘도대체 누구냐!’
지금은 당장 알아낼 수 없지만 기필코 찾아내야만 한다.
“천기원주에게 전해라. 오늘 하루의 시작을 기점으로 아니, 며칠 전부터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사천성에서 수상한 무리가 있으면 즉시 나에게 전하라고.”
“명을 받듭니다.”
신도용이 고개를 숙였다.
“…….”
이후 아무런 말이 없자 신도용은 즉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도용.”
“예, 문주.”
“미안하구나. 동생을 잃은 너에게 슬퍼할 시간마저 주지 못해서 말이다.”
“…….”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마.”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 두 형제 패천문의 제자로 받아들여질 때부터 이미 목숨은 저희들 것이 아니었습니다. 패천문을 위해 죽은 동생도 기꺼워하고 있을 겁니다.”
신도용의 손에는 동생의 애병인 묵창이 들려 있었다. 들고 있는 손에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두 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는 철대악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무공을 전수받은 제자였지만 신도용에게는 마지막 남은 혈육이었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리라.
“반드시 찾아내어 네 동생과 패천문이 흘린 핏값을 받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