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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 1권
도래 1권(1화)
1. 도래(渡來)(1)
타다다당!
“쏴! 갈겨! 갈겨!”
타당! 탕!
문무혁 대위는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정신을 차린 동굴 안은 온통 고막을 찢어발기듯 사방에 메아리 치는 총성과 총알이 발사되면서 발생한 초연에 혼돈 그 자체였다.
문 대위는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옆머리를 바늘로 콕콕 쑤시는 듯한 격렬한 편두통이 몰려 왔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어제 자신의 분대가 구한 간호사였다. 그녀의 손에는 자신을 깨우려 사용했음직한 깨진 암모니아 앰플이 들려 있었다.
‘내가 왜 기절했지?’
문 대위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동굴을 메아리치는 총성과 코끝을 맴도는 화약 냄새는 그가 쉽사리 현실로 돌아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동굴 입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굴 입구에서는 자신의 분대원들이 K2 소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 대위는 자신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따뜻한 봄날, 깜박 잠이 들어 단잠을 자고 일어나 지금이 새벽인지 저녁인지 헷갈리는, 마치 하루를 손해 본 것 같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제삼자가 되어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문무혁 대위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도 쿡쿡 쑤시는 편두통을 달래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는 사이에도 분대원들은 끊임없이 K2 소총을 동굴 밖으로 난사하고 있었다.
“김 중사! 김 중사!!”
문 대위는 부분대장인 김준성 중사를 찾았다.
분대원들이 사격을 하고 있는 뒤에서 탄창에 총알을 삽탄하고 있던 이준혁 상병은 동굴을 메아리치는 총성 속에서도 용케 문무혁 대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자신의 앞쪽에서 동굴 밖을 살피고 있던 김준성 중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중사님! 중사님! 대위님, 깨어나셨습니다.”
김준성 중사는 뒤를 한 번 흘깃 바라보고 나서 다시 전방을 주시하다 외쳤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그만!”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분대원들이 김준성 중사의 명령을 복창하며 사격을 중지했다.
비로소 문무혁 대위는 동굴 입구에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분대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위장 크림으로 인해 시커먼 얼굴들이라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헉헉대며 숨을 들여 쉬는 폼이 좀 전의 교전이 보통 상황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문무혁 대위의 곁으로 온 김준성 중사가 전투모를 벗으며 가볍게 머리를 긁었다.
“네, 괜찮습니다. 것보다 탈레반입니까?”
“탈레반은 아닙니다. 직접 상황을 보시는 편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는 상황이라서요.”
김준성 중사가 문무혁 대위의 질문에 다시 머리를 벅벅 긁더니 손에 들고 있던 전투모로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문 대위는 일어나서 동굴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분대원들이 서로 수군대며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굴 입구는 사람 3명이서 겨우 어깨를 맞대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그가 입구로 다가가자 분대원들이 벽으로 붙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동굴 밖으로 나가자 문 대위는 일단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직도 동굴 속에는 발사된 총탄의 초연이 자욱하게 남아 있어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문 대위는 망연자실했다.
평소 돌부처란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김준성 중사가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모습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굴 밖은 대략 학교 운동장 절반 정도 크기의 공터였다. 공터 중앙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그것처럼 보이는 뾰쪽한 천막들과 몇 채의 통나무집들이 있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과 동굴 입구 사이에는 녹색 피부를 가진 인간을 닮은 괴물의 벌거벗은 시체가 100여 구 이상 쓰러져 있었다.
문 대위는 처음에는 그 시체가 녹색 인간이 아니라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에서 볼 수 있는 아마존 밀림의 원주민들처럼 허리춤에만 가죽을 둘러 국부만 가린 녹색의 인간이 맞았다. 다만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커다란 입의 아래턱에서 멧돼지처럼 위쪽으로 커다란 송곳니가 튀어 나온 것만이 인간과 다른 점이었다.
문무혁 대위는 위화감에 빠졌다.
녹색 인간들, 총탄에 의한 학살, 넓은 공터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들, 낭자한 유혈. 하지만 문 대위는 유혈을 증명할 피의 빨간색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 저런 녹색의 피부 색깔을 가진 인간이 살고 있는지 않는지는 지금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몸에 핏자국이 없다니.
그들이 사용한 K2 소총은 6조 우선의 강선을 가지고 있었고 5.56mm 구경의 K100탄을 사용한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총탄이 팔 같은 곳에 맞으면 총알의 파괴력과 회전으로 인하여 팔 자체가 거의 뜯어져 나간다는 걸 의미했다.
복부에 맞더라도 총탄이 들어가는 곳은 볼펜 두께의 구멍이 뚫릴 뿐이지만 총탄이 빠져나오는 등쪽은 총알의 회전에 의해서 주먹보다 큰 크기의 구멍이 뚫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서 1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집중적으로 쌓여 있는 저 녹색 인간들의 시체는 엉망이었지만 어떤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 대위가 느끼는 위화감의 원인이었다.
“헐! 오크네!”
문무혁 대위의 뒤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들렸다.
교전 당시 동굴 입구의 뒤쪽에서 고참들의 탄창을 공급해 주던 분대의 막내 이준혁 상병이 밖으로 나오면서 가볍게 던진 한마디가 문무혁 대위의 위화감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그랬다. 지금 문 대위가 보고 있는 시체 더미들은 오크였다.
영화에서 보고, 소설에서 읽었던 바로 그 오크.
“그러게? 얼굴도 꼭 돼지를 닮은 것이 오크 맞네.”
소문난 영화광인 송채민 상병도 이준혁 상병의 말을 거들었다.
“근데 아프가니스탄에 오크가 삽니까, 송 상병님?”
“사니까 여기 있겠지. 네 눈에는 여기 죽어 있는 것들이 사람처럼 보이냐?”
문무혁 대위는 두 사람의 문답에 잠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사그라졌던 편두통이 다시 몰려옴을 느꼈다.
“대대 본부와 통신이 안 됩니다. 대위님.”
분대원들과 3명의 민간인은 모두 동굴 밖으로 나왔다.
나름 정예의 해병대 수색대원이라 그런지 전방에 펼쳐진 이해하기 힘든 광경에도 벌써 몇몇은 사주 경계를 하고 있었고, 김준성 중사는 그새 위성 전화기를 조작하여 대대 본부와의 연락을 시도한 모양이다.
“전 대역의 주파수가 먹통입니다. 그리고 위성전화도 시그널이 제로입니다.”
무전기를 조작하던 정진영 상병도 김 중사의 말을 거들었다.
그는 당혹스런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GPS 수신기를 문무혁 대위에게 건넸다.
“GPS도 먹통입니다.”
위성을 찾지 못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선명한 GPS 수신기를 받아든 문 대위는 멍하게 GPS 수신기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분대 전원 사주 경계 철저히 하고 K3 거치해라. 채 하사가 수고 좀 해야겠다. 그리고 김 중사님, 저하고 이야기 좀 하시죠.”
문무혁 대위는 채명훈 하사에게 대충 지시를 내리고는 동굴이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돌산으로 김준성 중사를 이끌었다.
“어제 대대 본부와 연락할 때 분명 우리 좌표를 불러 줬죠?”
문무혁 대위의 나이는 이제 27세, 김준성 중사는 30세였다. 문무혁 대위는 김준성 중사의 오랜 군대 경험과 나이를 존중해서 반존대를 하고 있었다.
“네. 저희가 고립된 것을 알리고 구조 헬기를 요청을 했었죠.”
“그런데 우리가 동굴에 고립되고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요.”
“네. 어젯밤에 저희가 구한 민간인 일행 중 선교사가 패닉하는 바람에 제압을 해서 플라스틱 수갑을 채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습니다.”
김준성 중사는 군복의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저도 대위님보다 겨우 10여 분 먼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때 분대원들도 대다수는 정신을 차렸고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채 하사를 데리고 일단 밖으로 나갔는데 눈앞에 저 마을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분명 어젯밤에 저희가 동굴로 피할 때만 해도 저런 마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려고 채 하사하고 저하고 마을 쪽으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저 녹색 인간들이 무작정 칼을 들고 덤비지 않겠습니까?”
김준성 중사는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담배를 깊숙이 빨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냥 자동으로 갈기고 동굴로 뛰어들어 갔죠. 마침 애들도 동굴에서 나오던 참이라 그때부터 교전이 벌어졌고요. 사실 교전이라 할 것도 없었죠. 그냥 학살이었으니까요. 그놈들 얼마나 독하던지 앞에 달려오던 놈들이 죽어 나자빠져도 무시하고 달려들더라고요. 탄창 3개 정도씩 비우고 나니 그제야 살아남은 몇몇 놈들이 숲으로 도망을 치더군요. 그 마지막 찰나에 대위님이 정신을 차리신 거구요.”
김준성 중사는 다 피운 담배를 전투화로 밟아 껐다.
“하여튼 아프가니스탄에, 아! 뭐라더라… 오크가 사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렇다고 녹색 인간들이 가죽 쪼가리만 두르고 칼질하는 것은 더 말이 안 되니 당황스럽습니다.”
문무혁 대위는 동굴 입구에 K3 분대기관총을 거치하고 있는 분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을을 바라보았다. 다시 시선을 돌려 마을을 빙 둘러 빽빽이 들어서 있는 나무들을 보았다.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어제 저희가 저 3명 민간인을 구해서 퇴출할 때 쫓아오던 탈레반들이 거의 대대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탈레반들은 어디로 가고 녹색 괴물이라니요. 그리고 김 중사님도 봤겠지만 저 울창한 숲은 뭐랍니까? 아프가니스탄 고원에 울창한 숲이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문무혁 대위는 김준성 중사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사실 동의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맞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어제 저희가 이 동굴로 올 때의 루트에는 분명 숲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제는 분명 동굴 입구가 돌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평지잖습니까?”
* * *
문무혁 대위의 분대가 수색정찰을 나선 것은 어제 아침 무렵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해병대 1개 대대가 파견된 것이 벌써 일 년 전의 일이었다.
파병 초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맡은 공병대와 주민 치료를 맡은 의료단이 상주하는 캠프의 경비만 맡았었지만 탈레반의 공세가 심해지고 국지적으로 평화유지군이 밀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다급해진 미군의 요청으로 대대가 탈레반 점령 지역 가까이 주둔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문무혁 대위의 수색대가 기지 주위의 정찰 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네 달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정찰 도중 험악한 산악도로에서 전복되어 있는 자동차를 발견하고 그 자동차에서 한국 민간인 일행 3명을 구한 것이 어제 밤이었고 민간인들을 구해서 부대로 복귀하던 중 민간인들을 뒤쫓던 탈레반 대대 병력에 쫓기게 되었다.
평화유지군 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이곳까지 탈레반이 그것도 대대 병력이 나타난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기는 했지만, 문 대위의 분대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우연히 조그만 돌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인명 손실 없이 다다를 수 있었다.
일단 동굴의 입구가 상당히 은폐되어 있었고,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어서 이곳에서 버티기로 하고 대대 본부에 무선으로 지원 요청을 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던지 그들이 피해서 들어간 동굴은 탈레반의 보급 비트였는지 탄약과 총기들이 꽤 많이 저장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