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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
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1화)
프롤로그(1)
지하철 5호선.
정오가 지나 제법 한산한 시간이다. 피곤한지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 역은 신길, 신길입니다.’라는 방송이 연이어서 나왔다. 잠을 깬 사람이 벌떡 일어나 ‘후다닥’ 지하철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문을 들고 있던 사람과 아기를 안은 젊은 새댁이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로가 관심이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지하철은 탄다. 그리고 몇 번쯤은 마주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현은 반쯤 구부러진 허리로 폐지를 줍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젊었을 적에는 키도 크고 바람둥이라는 소리도 제법 들었지만 나이가 드니 그런 것은 모두 물거품처럼 가라앉았다. 어느새 나이를 먹고 허리가 이렇게 구부러져 버렸다. 펴고 싶어도 심한 통증 때문에 펼 수가 없었다.
오십 줄이 되었을 때 자동차 사고로 인해 아내를 잃고 두현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로 인해 두현은 젊었을 적에 넘치던 힘과 체력을 잃었다. 지금은 서 있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멀쩡한 노인들도 일자리가 없는데 허리가 이런 자신을 써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폐지를 줍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었다. 1kg당 60원 정도밖에 안 하지만 열심히 발품을 살면 밥값 정도는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두현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초기에는 제법 쏠쏠했지만 근래에 들어 같은 일을 하는 노인네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구역 다툼을 하기도 했다. 보기에 안 좋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서 아닌가.
살기가 너무 퍽퍽해서인가.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집에 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전화번호라도 알면 좋을 텐데 그것도 없었다.
두현은 하염없이 아들 내외를 기다려야 했다.
가끔 오다가다 만난 옆집 할머니는 자식에게 하늘나라로 먼저 간 배우자 산소 좀 가자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해가 간다.
자식의 눈치가 보이고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야 요즘 세상에 다반사로 있는 일이었다.
두현은 허리를 툭툭 치고는 계속해서 폐지를 찾았다.
언젠가 올 손자들의 손에 무엇이라도 쥐어주려면 이렇게 발품이라도 팔아야 했다.
늙은 두현에게 남은 작은 희망이었다.
그래 봤자 한 달에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15∼30만 원 안팎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인가.
자신과 같은 노인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두현은 미소와 한숨을 동시에 내뱉었다.
지금은 버틸 만하지만 그것조차 점점 벌기 어려워졌다. 지하철에 폐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선반 위에 올려놓던 것이 이제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젠장, 이럴 때만 준법정신이 뛰어나더라.
두현은 한숨을 쉬며 지하철을 돌았다. 손에 쥔 폐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눈이 밝아졌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의 머리 위 선반에 꽤나 많은 양의 폐지들이 보였다. 망망대해에서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두현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학생들, 조금만 비켜줄 수 없겠나?”
남학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두현을 바라봤다.
“왜요?”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두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웃는 얼굴은 죽은 사람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많지만 되도록 좋게 해결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았다.
성격대로 하면 세상은 너무 살기 힘들었다.
“그러지 말고 잠깐만 비켜주지 않겠나?”
“싫은데요.”
대장으로 보이는 남학생은 아예 다리를 꼬아 버렸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는 ‘어쩔 테냐.’라는 듯한 얼굴로 두현을 바라봤다.
두현의 얼굴이 벌게졌다.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들에게 괜한 말을 시킨 것일까.
차라리 그냥 지나쳤으면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아우. 이 할아버지 냄새나. 저리 좀 가요.”
두현은 모욕적인 언사에 두 다리가 굳어졌다. 크게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나는 저것만 가지고 가면 되네. 잠깐만 비켜주게.”
이미 늙은 몸.
자존심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잠깐만 눈을 감고, 귀를 닫아 이 상황을 지나치면 된다.
학생들과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해결 방법 중에 하나였다.
“싫다고요.”
이 아이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확실했다.
아이들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치욕스러웠다.
여기서 그대로 등을 돌린다면 치욕스러움을 참기 어려울 것 같았다.
또한 등 뒤에서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릴 이 어린 학생들의 조롱을 참아내기도 힘들었다.
두현은 거칠고 작아진 두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름 학생들에게 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화가 났으니 건드리지 말아 달라.
사내로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두현의 작은 바람을 무참히 짓밟는다.
“아, 씨발. 좀 꺼지라고!”
잘못 들은 것인가.
예전같이 노인 공경이라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 학생들은 인성 교육을 받지 않았나?”
“니미, 인성 교육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좀 가라고요. 냄새난다고!”
한 학생이 두현의 어깨에 손을 대고 밀었다. 이미 일흔을 넘은 두현이 학생의 힘에 버틸 수는 없었다.
그는 뒤로 밀려났다.
사람이 왜 사람을 죽이는지 알 것 같다. 만약 그의 손에 칼이 있었다면 저 학생들 찔렀을 것 같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것도 이제 알 것 같았다.
너무 화가 났다.
저들에게 제대로 된 한마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야, 이 자식들아! 네놈들은 애비 애미도 없냐!”
자신이 말을 하고도 창피했다.
정말 이것밖에 할 말이 없던 것인가. 겨우 그 말은 하게 되면 속이 후련할까?
아니다.
더욱 모욕감만이 생겨났다.
“미친 새끼. 아, 간만에 땡땡이 치는데 재수 없게 지랄이야, 지랄은. 야, 가자. 가!”
대장으로 보이는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현의 어깨를 치고는 지나쳤다.
두현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뼈가 성하지 않아 작은 충격에도 꽤나 큰 고통이 뒤따랐다.
다른 학생들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퉤!
학생이 지나가며 침을 뱉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두현의 머리에 엉겨 붙었다. 냄새나고 끈적끈적한 그 무엇이 두현의 머리에서 이마로 줄줄 흘러내렸다.
두현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야, 이 새끼들아!”
그는 가장 뒤에 있던 학생의 뒷덜미를 잡았다.
“아, 아. 놔! 좋은 말할 때 이거 놔!”
“사과하고 가! 어서!”
“이거 안 놔!”
“못 놓는다, 이놈들아! 사과해라! 사과를 하고 가란 말이다!”
“이런 씨발! 별 미친 노인네가!”
남학생은 두현의 팔목을 꺾은 후 밀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발을 들어 두현의 얼굴을 가격할 자세를 취했다. 두현은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그를 둘러싼 학생들을 보자 문득 두려움이 커져 갔다.
왜 화를 참지 못하고 이런 일을 벌였는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하하! 쫄기는.”
남학생은 몇 번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두현은 정신이 없었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구원을 요청했다. 지하철 안에는 적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모른 체를 한다.
두현과 눈이 마주칠까 봐 아예 자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봐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조금만 봐주세요. 119에 신고라도 해달라고요.
아무리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에 두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며칠 후.
두현은 몸이 좋지 않았다.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학생들에게 당한 근육통과 감기가 겹친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비병을 질렀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지만 사치였다. 생각만 하고 접어야 했다.
그는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이고 자리에 앉았다. 어깨에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라면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으로 손을 녹였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모금 떠서 먹었다. 후끈한 기운이 배 속으로 들어가자 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추위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보일러가 있지만 가동시키지는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그로서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 외에는 삶의 의미도, 재미도 없었다.
전기장판이면 된다.
이것만 있으면 겨울을 충분히 날 수가 있었다.
두현은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채널을 돌려 뉴스가 나오는 방송에 고정시켰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치도 없이 두현은 라면 면발을 입에 가져갔다. 입맛이 없지만 뭐라도 먹어야 했다.
이런 추운 날씨에 배 속이라도 든든하지 않으면 더 큰 병이 올 것이다.
그는 이미 영정 사진도 찍어놨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임종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것을 알지만 두현은 그리 슬프지 않았다.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어차피 아들이 이곳을 찾은 지는 20년도 훌쩍 넘었고 아내도 죽은 지 오래였다.
솔직히 말하면 서운하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많이 어렵나? 많이 힘드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 죽어가는 아비도 찾아오지 못할 만큼 힘들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래도 두현은 조금씩 모은 돈을 품속에 간직했다. 2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그의 품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언젠가 아들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함이었다.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주고 싶어서.
“여보. 우리 아들이 보고 싶소, 당신도.”
두현은 아내와 같이 찍은 빛바랜 예전 사진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흑백 사진이지만 아내는 아름다웠다. 그녀는 지금도 두현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듯했다.
보고 싶다. 너무도.
어서 사랑했던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현의 유일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