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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2화)
프롤로그(2)
다시 TV를 향해 고개를 돌린 두현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뭐, 뭐야! 저게?”
두현은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TV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제목은 ‘지하철의 폭력 할아버지’였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앞뒤 과정은 쏙 빠진 채 두현이 학생의 머리채를 잡는 장면만 반복되어 나왔다.
뉴스 앵커는 ‘죄 없는 학생들이 할 일 없는 노인들에게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얼굴을 모자이크 했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두현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현을 알아본 아파트 사람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누구도 그와 말을 나누지 않으니 해명할 기회도 없었다.
마트에서는 그에게 반찬을 팔지도 않았다.
어딜 가나 적의와 무시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낙인이 찍혔다. 온통 적뿐이지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힘이 없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두현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깔아뭉갰다.
최소한의 인권도 발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발에 힘이 풀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모든 일의 시초는 그 학생들인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들은 장난으로 동영상을 올렸을지 모른다. 그것도 제멋대로 편집을 해서 말이다.
학생들은 지금쯤 희희낙락하며 웃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놈들이 웃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비웃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두현에게는 작은 삶의 희망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두현은 천천히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어제 눈이 와서 세상은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더러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더러운 꼴을 보지 않아서 좋군.”
두현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아내가 죽고 나서 끊은 담배였다.
아내의 유언이 ‘여보. 잘 사세요.’가 아니라 ‘여보, 담배 좀 끊어요.’였으니 아무리 후안무치한 자라고 하더라도 들어줄 것이다.
“콜록콜록.”
오랜만에 피는 담배라 기침이 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여보. 당산한테 이제 갈 테니까 딱 한 개피만 용서해 주구려.”
두현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깊게 들이마셨다. 설사 이것에 독이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맛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두현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뻐근한 것이 제대로 허리를 펴기 힘들었다.
허리를 몇 번 두드린 두현은 난간으로 다가갔다. 밑을 슬쩍 보자 까마득한 높이에 지상이 보였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꾸물꾸물 기어 다녔다.
정말로 개미 같았다.
문득 발을 들어 저자들을 밟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을 이렇게 몰아넣은 그들을 지근지근 밟고서 물어보고 싶었다.
‘재밌냐?’라고.
물론 그럴 기회는 없다.
두현은 난간에 올라 눈을 감았다. 흰 세상이 눈 안에서 잠겨간다.
다시 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더러운 꼴 안 봐도 돼서 좋구만.
‘여보. 당신한테 가오.’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맑은 공기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아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콰쾅!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친 것은.
1. 청소년 갱생 선도 위원회(1)
아침 햇살에 두현은 눈을 떴다. 눈동자를 향해 따가운 햇살이 비쳤다.
그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후다닥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허리의 고통으로 인해 뼈가 비명을 지를 테니까.
하지만 고질적인 고통인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손가락 뼈마디와 무릎도 아프지 않았다.
이상하다.
꿈인가.
아침이면 온몸의 근육과 뼈가 굳어 ‘끙끙’대며 일어나야 정상이었다.
상체를 일으킨 두현은 손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손등이 깔끔하고 새하얗다. 마치 젊은 청년 혹은 소년들의 피부 같았다.
“이건 또 무슨 냄새지?”
두현은 코를 킁킁거렸다.
사방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맴돌고 있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방에서 이런 냄새가 날 줄이야 생각도 못했었다.
왠지 더러운 기분이 들어서 두현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지만 온통 잡동사니 더미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쓸데없는 것까지 집 안으로 들고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만 이상하다.
쓸데없는 것이라니?
이제껏 저 물건들을 주웠을 때 산삼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기뻐하며 집으로 들여놓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집은 그대로인데 본인의 모든 생각이 바뀐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건강한 몸과 깨끗해진 피부.
엄청나게 크게 보였던 세상이 이제는 작아 보였다. 모든 것이 그의 눈 아래 있는 것만 같았다.
미친 거다.
아니면 어디서 주워 먹었던 것이 탈이 나던지.
그는 화장실로 갔다. 청소를 안 해서인지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바닥으로 냄새를 휘휘 저은 두현은 뿌연 거울을 보았다.
두근.
심장이 놀라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거울이 지저분해서 그런가.
두현은 손바닥에 물을 적시고 거울을 닦아냈다. 다시 거울을 쳐다본다.
“어허! 놀랐구만.”
누구지?
분명 그곳에는 늙고 추한 두현이 아닌 다른 사내가 서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빛에 훨씬 더 건장한 사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턱에 각이 지고 스포츠형 머리다. 누가 보더라도 남성미가 물씬 풍길 정도였다.
족히 50년 전의 본인 얼굴과 너무도 흡사했다. 아니, 그 시절에도 큰 덩치였지만 지금은 훨씬 더 커 보였다. 족히 190cm는 되는 것 같았다.
꿈인가.
두현은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머리가 갑자기 아파왔다.
꿈이 아니라기엔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혹시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두현은 급히 TV를 켜보았다. 만약 과거로 돌아갔다면 그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마침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날짜는 201X년.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였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몸만 젊어졌다.
두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분명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여느 때와 같이 집이었다.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난 시절의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정말로 젊어진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해괴한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두현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어쩌면 신께서는 그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 것일지도 몰랐다.
새롭게 살게 된 인생이라면 하나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리셋이다.
두현은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갖다 버렸다. 상당히 양이 많아 버리는 것만 해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리수거는 물론이고 동사무소에서 폐기물 신고를 한 후 스티커를 받아와 붙이고는 대용량의 물건들을 밖에 내놓았다.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집이 꽤나 넓어 보였다.
그는 낡아 빠진 소파에 풀썩 앉았다. 다른 물건을 모두 버려도 이것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면서 월급을 모아 선물한 물건이었다.
별로 한 것도 없어 보였지만 정오가 지났다. 배에서는 ‘꼬로록’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쳤다.
노인이었을 때는 배가 고픈지도 잘 몰랐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리작용도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두현은 전단지를 찾아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과 짬뽕, 탕수육이 함께 있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보통 때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젊어진 몸은 먹을 수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소파 밑을 뒤지자 차곡차곡 쌓아놓은 2천만 원의 돈다발이 나왔다.
그중 2만 원을 음식 값으로 건네기 위해 호주머니에 넣었다.
딩동.
벨이 울렸다.
두현은 문을 열어 반갑게 배달원을 맞이했다.
그러나 배달원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을 쳐서 벽에 부딪쳤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 유리문을 닫아놓지 않았다면 1층 화단으로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 아니요. 그냥…….”
배달원은 철가방에 넣어둔 음식들을 재빠르게 꺼냈다. 음식을 꺼내는 손이 덜덜 떨려왔다. 상대는 조직 폭력배다. 그것도 지금껏 상대해 보지 못했던 거물급이 틀림없었다.
사채업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 집에 사는 가족은 백만 원을 갚지 않아 볼모로 잡혔을 것이다.
심장은 서울로, 콩팥은 강원도로, 눈알은 제주도로 보내고 시장하여 음식을 시켰을 것 같다.
배달원은 신고를 한다는 생각 따윈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감, 감사히 가겠습니다.”
말이 잘못 나왔다.
그것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었다.
그는 두현을 향해 고개를 90도로 숙이고는 악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반면 두현은 배달원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식은땀을 줄줄 흘리더니 횡설수설한다.
이렇게 몸이 아픈데도 열심히 일을 하다니.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두현은 열심히 살아가는 배달원의 삶의 자세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이랄까.
“아, 잠깐!”
두현은 배달원을 불러 세웠다. 그가 흠칫 놀라 돌처럼 굳어졌다.
천천히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웠다. 얼굴에서 너무 많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말로 많이 아픈 것 같았다.
“단무지를 안 주셨습니다.”
“아. 네. 단무지요.”
두현의 말에 배달원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평생 이곳의 위치를 모른다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맹세합니다.’라고 외치려고 했었다.
저 난폭한 살인자는 자신의 목숨을 한 번 살려줬다. 갑자기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와 부처님처럼도 느껴졌다.
배달원은 철가방에 들어 있던 모든 단무지를 꺼내 두현에게 건넸다.
아직 다른 곳에 배달을 가야 했지만 그 사람들의 단무지는 배달원의 머릿속에서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두현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두현에게 감사의 의사를 전달하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서비스 좋구만. 종종 시켜 먹어야겠군.”
그의 말을 들었다면 배달원은 직장을 그만뒀을 것이다.
다시 이곳으로 배달을 오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두현은 신문지를 깔아놓고 자장면과 짬뽕을 한 입에 먹어 치웠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았다. 탕수육을 혼자서 다 먹었음에도 아직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양이 차지 않는군.”
두현은 10만 원을 쥐고 밖으로 나가 삼겹살 5인분과 소주 세 병을 먹은 후에야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 아줌마는 무엇에 놀랐는지 벌벌 떨며 소주를 가져다주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것이 몸이 어딘가 아픈 것 같았다.
말을 시킬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더니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심장이 약한 아주머니 같았다.
아주머니는 119에 실려 가고 말았다. 주인 아저씨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두현을 바라봤지만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