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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3화)
1. 청소년 갱생 선도 위원회(2)


두현은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아이들의 학비와 생계의 보탬이 되려고 했을 것인데 가족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큰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
“커어억!”
어쨌든 정말로 잘 먹었다.
약간의 취기도 오르는 것이 아내가 죽고 나서 가장 나른한 오후인 것 같았다.
두현은 집으로 돌아가 잠시 낮잠을 잔 후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졌다.
떨어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하루가 간다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다.
그는 낡은 옷을 분류해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때 마침 유치원생들을 태운 소형 버스가 섰다. 버스 문이 열리며 20대 중반의 여선생이 내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들어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들은 참으로 귀엽다. 모든 생물들이 그런 것 같았다. 백수의 왕 사자도, 호랑이도, 코끼리도 새끼들은 하나같이 귀여웠다.
두현은 아이들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 아이가 두현의 눈과 마주쳤다. 약간 커 보이는 후드 티에 눈망울이 얼굴에 반을 차지할 것 같은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다가가서 한 번이라도 품에 안아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두현을 바라본 여자아이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난 소리로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아아앙!”
놀란 여선생이 다가와 그 아이를 품에 안았다.
“왜 그러니? 우리 아기. 뚝뚝.”
항상 밝고 잘 울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목청껏 울어대자 여선생은 당황했다.
아이는 천천히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두현을 가리켰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주변에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두현에게로 돌아갔다.
“으아아아아앙!”
“어머나! 간첩이에요! 신고해요!”
“저런 저런! 아무리 봐도 살인마 김영철과 같은 종자 같은데요.”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울음소리 덕분에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두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두현이었다. 그는 급히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두현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왠지 모르지만 저 사내는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다.
두현이 들었다면 환장하고 팔짝 뛰었을 소리였다.
재활용 수거함에 낡은 옷을 넣고 나니 막상 입을 옷이 없었다.
190cm이 넘는 거구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귀찮아.”
두현은 다시 현금을 쥐고 밖으로 나가 점퍼 두 개랑 바지 몇 벌, 티, 운동화를 샀다.
신발은 사이즈를 재기 위해 신어봤지만 옷은 입어 보지 않았다. 평생 멋이라고는 부려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아내가 사오는 옷만 불평 없이 입었다. 혼자서 옷을 사러간 것 자체가 그에게는 상당히 쑥스러운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본 네온사인이 눈부셨다. 항상 모든 것을 피해 다녔던 그는 세상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이방인이 아니다.
이들과 함께 섞여 살 것이다.
두현은 집으로 돌아온 후 솥뚜껑 같은 손으로 걸레를 빨아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이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두현은 점퍼를 덥고 소파에 누웠다. 오늘은 기분 좋게 잠이 들 것 같았다.
어쩌면 아내가 꿈에 나올지도 몰랐다.
두현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현의 집이 불이 꺼지자 한 사내도 눈을 돌렸다. 그의 일과도 끝이 난 셈이었다.
24시간 감시를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지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디 찜질방이라도 가서 사우나라도 하고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당에서 까라고 하면 된다.
“저 동무 간이 크구만. 하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텐데. 우리 보스는 무슨 생각인기야. 그나저나 겁나 두렵게 생긴 쌍판이야. 얼굴만으로 살인을 할 수 있을 것 같구만기래.”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한 집을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두현 혼자서 살고 있었다. 그 말은 두현만 감시하면 된다는 것과 같았다.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가 북조선에서 해온 일이 그것이었고 남조선으로 넘어와 하는 일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두현을 보고 허리에 숨겨놓았던 군용검을 꺼낼 뻔했다.
거리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운만으로도 그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을 정도였다.
일찌감치 느껴보지 못했던 강자의 기운이었다.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 동무. 살아남으면 한 번 어울려보자구. 내 작살을 내주갔어.”
그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어서 말투를 바꾸라고 종용했지만 25년을 써온 말이 쉽게 바뀔 리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조선족이 한국에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간첩으로 신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불 꺼진 창문을 잠시 바라본 후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 * *

쿵쿵쿵쿵.
천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단잠에 빠져 있던 두현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또 시작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재개발구역이라 벌써 많은 주민들이 이사를 하고 몇 집밖에 남지 않았다.
두현은 아직 남아 있는 쪽이었다. 그는 아내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이곳에서 최대한 늦게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불량청소년들이 문제였다.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을 안 청소년들이 밤이면 밤마다 찾아와 소란스럽게 굴기 때문이었다.
두현은 이제껏 참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한마디를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밤새 ‘쿵쾅’거려 한숨도 자지 못할 때가 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신고한 본인이 직접 가야 한다기에 거절했다.
혼자 사는 그로서는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두현은 벌떡 일어났다.
외모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 호승심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무리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현은 현관문을 열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의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니 열려 있었다. 문을 열자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음악 소리도 들린다.
앳된 목소리지만 아이들의 욕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듣고 있자니 귀가 거북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남자아이 세 명과 여자아이 두 명.
모두가 반쯤 눈이 풀린 것이 술에 취해 있었다. 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소주 일곱 병이 나뒹굴었다. 한쪽에는 본드까지 보인다.
대략 17∼19세 사이로 보였다.
“크흠.”
두현은 헛기침을 했다.
한참 떠들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두현을 바라봤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니, 화들짝 놀라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여자아이들은 울려는 표정도 지었다.
“씨발, 뭐야! 너!”
너?
너라니.
다짜고짜 반말이다.
“자네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아나. 그러지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점점 눈빛이 이상해졌다. 두현에 대한 적개심이 보였다.
“누가 보냈어? 강산이냐? 아니면 광형이냐?”
강산? 광형?
혹시 이 소년은 조직에 몸담은 것이 아닐까.
두현은 소년이 외친 소리가 고등학교를 뜻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자아이들 앞에서 주먹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말했다.
“야, 저 씹새끼! 아작을 내줄게! 싸움은 말이야! UFC처럼 되지 않는다고! 깡이야, 깡! 아무리 힘이 세도 다구빨이면 끝나! 보여줄까?”
“진짜? 우리 오빠 멋지네. 한번 해봐.”
남자아이가 어깨를 움직이며 풀었다. 그는 주변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불량 학생이었다.
여자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가 강단 있게 나서자 여자아이들의 긴장도 풀렸다.
그녀들은 담배를 입에 물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남자아이를 바라봤다.
소년은 여자아이들이 눈빛을 빛내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이제껏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 무기를 들면 된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주머니에 있는 나이프를 꺼내면 됐다.
저자의 얼굴로 보아 한 주먹 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여자아이들 앞에서 꼬리를 마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런 쪽팔린 일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
그리고 칼 앞에서 우쭐대는 놈은 보지 못했다.
소년은 긴장하며 두현에게 다가왔다.
“야, 씹쌔야 좋은 말할 때 꺼질 것이지. 자네들? 돌아가게? 어디서 이상한 노인네 같은 말투를 날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두현의 움직임은 없었다.
기회는 이때였다.
저 사내는 자신을 얕보고 있음이 확실했다. 단번에 끝장을 내야 한다.
소년은 두현의 하복부를 향해 발등을 차올렸다.
퍽!
“컥!”
갑자기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도 낫다.
엄청난 고통에 두현은 아랫배를 잡고 웅크렸다.
소년의 긴장이 풀렸다.
설마 이토록 쉽게 끝이 나리라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봤지?”
소년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브이 자를 해 보였다. 꽤나 싸움에 이골이 난 듯했다. 그는 두현의 머리채를 잡고 무릎을 올려쳤다.
턱.
그러나 소년의 무릎은 두현의 이마에 닿지 않았다. 그 사이를 두현의 손바닥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던 소년은 급히 두현에게서 떨어졌다.
두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상당히 아프다.
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린아이와 싸움질이라니.
두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상하게 생긴 새끼가.”
소년은 흥분했다.
그다지 흥분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덩치 큰 놈을 멋지게 때려눕혀 아이들 앞에서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소년이 다시 덤벼드는 것을 본 두현은 짜증이 밀려왔다. 요즘 들어서 개나 소나 반말지거리다.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 걸까.
교권이 무너졌다고 한다.
선생들도 아이들에 대한 선도를 소홀히 했다. 괜히 건드려 봤자 동영상에 찍히거나 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뒤집어 놓으면 본인이 손해였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들의 과보호 아래 막무가내로 커갔다. 자신들의 아이만 최고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선의의 말은 귀로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러니 이런 애새끼가 생겨나는 거겠지.
이런 애새끼들은 맞아야 한다.
“노인 공경!”
두현은 소년을 향해 따귀를 날렸다.
빡!
두현의 손바닥이 소년의 뺨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컥!”
소년의 몸이 다섯 바퀴 이상을 구르더니 벽면에 처박히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딸꾹.
놀란 여자아이들은 먹던 소주잔을 놓치고 딸꾹질을 일으켰다.
놀란 것은 두현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 정도까지 힘이 세질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는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통증은 없었다.
조금 자신이 생겼다.
덩치는 커졌지만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사람들의 눈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숨을 죽이며 사람들과 교류가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몸과 힘이라면?
굳이 억누르면서 살 필요가 없었다.
두현에게 맞은 소년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팔과 다리가 조금씩 꿈틀대는 것으로 보아 고통으로 입을 벌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야, 일몽아. 괜찮아? 야!”
다른 두 소년이 쓰러진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두현을 바라봤다.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