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25화)
10. 뜨거운 여름(2)
두현은 잔뜩 짐을 싸서 봉고차에 옮겼다. 맥주 두 박스와 소주 한 박스, 갖가지 고기 종류를 챙겼다. 라면, 각종 야채, 쌀, 과자, 주전부리 등 먹거리를 세 번이나 옮겨야 했다.
엄청난 양이었다.
두현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음식을 사본 적이 처음이었다.
미스터 킴이 단합대회 준비를 하라며 법인카드를 맡겼고 두현은 오직 먹을거리로만 50만 원어치를 샀다.
미스터 킴은 배달 온 음식을 보며 기절초풍했다.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도 이렇게 많이 싸가지는 못하겠다.
두현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일단 이것만 샀습니다. 모자란 것은 현지에서 조달하죠.”
도대체 이걸 누가 다 먹으라는 것인지.
법인카드를 맡긴 본인의 잘못이니 두현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알았습니다. 일단 차에 실으세요.”
두현은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날랐다. 날씨가 너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동백꽃 처녀’를 오랜만에 흥얼거려 봤다.
“휴, 동무는 기운도 좋구만. 아침부터 나와서 로래를 흥얼거리는 것 보니까.”
이강철이 한숨을 푹 쉬며 다가왔다. 뒤를 이어 페르민과 하현도 도착했다.
그들 모두 잠을 자지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눈 밑을 가득 채웠다.
얼마나 힘이 들기에 팀장급들이 저럴까.
사실 두현은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힘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목숨을 내놓고 원령들과 싸우는 것보다 백 번은 나을 터인데.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에 가질 수 있는 두현의 생각이었다.
“두현 씨, 운전할 줄 압니까?”
미스터 킴이 물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석에 앉으려고 했다.
“자, 잠깐만요.”
페르민이 급하게 그를 운전석에서 내리게 했다. 모두가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두현 씨는 미성년자라고요.”
쿵.
모두의 얼굴에는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두현은 공식적으로 18세.
운전면허가 없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가 학교에 갔다 와서 출근을 하는데도 학생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세상 어느 곳에 내놔도 그를 18살로 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 그렇군요. 제 불찰입니다. 자꾸 깜빡깜빡하네요. 두현 씨가 미성년자라는 것을.”
미스터 킴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강철을 바라봤다.
“제가 하갔습네다. 걱정하지 마시라요.”
그렇게 그들의 단합대회를 위한 험난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동북아안전보장사무소의 직원을 태운 봉고차는 영동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나들이를 가는 차량이 꽤 보였다. 차량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창밖을 바라보는 두현의 기분도 좋아졌다.
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는 않지만 나쁜 것도 없었다.
언젠가 젊어진 이유는 밝혀질 것이다.
그때까지 실력을 갈고닦아 일본의 원령들을 막아내면 된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앉고 싶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예전에는 흑백 TV를 보기 위해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렇게 친목을 다지고 행복을 찾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흑백 TV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세상은 무섭게 발전하여 그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발전했다.
핸드폰만 해도 그렇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필수품 중 하나다. 그것도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핸드폰이 없으면 모든 일과가 올 스톱이 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과연 그것이 행복할까.
모든 것을 가진다고 해도 진정 행복할까.
행복이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문명의 혜택이 적은 아마존의 부족 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과 같은 것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을 하면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욕망이란 괴물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일본의 원령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왜 아직도 한국을 못 잡아먹어 원령이 되어서까지 한국의 신들을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모두가 욕망이라는 괴물에 먹혀 버렸기 때문이다.
두현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짓밟는다.
절대로 그것만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끼기끼긱!
갑자기 이강철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직원들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저 간나새끼래.”
이강철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클랙슨을 ‘빵빵’거리며 눌렀다.
화가 난 모양이었다.
“뭐, 뭐예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하현이 놀라서 물었다.
“저기.”
이강철이 턱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네 명의 젊은 청년들이 몰고 있는 오픈카가 있었다. 그들은 이강철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오픈카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무실 직원이 탄 봉고차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뒤에서 박을 수도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뒤에서 차를 박으면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뒤차의 잘못이다. 더군다나 저들은 외제차였다.
뒤차의 입장에서는 독박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저들이 약을 올렸다고 해명을 해도 모든 것은 뒤차의 잘못이었다.
“저 간나새끼들!”
이강철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서울에서도 간혹 저런 놈들이 있었다. 그들은 외제차라는 것을 이용해 도시의 도로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거리를 둬야 했다.
쏴 죽이고 싶은 놈들이었다.
오픈카는 두현이 찬 봉고차에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차선을 옮겨가며 위험천만하게 위협을 한다.
그러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얌전해졌다. 카메라가 사라지면 다시 차량들 사이로 곡예를 펼쳤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을 위협하던 오픈카는 속도를 높여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원령보다 못한 새끼들.”
하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살다보면 인간의 탈을 쓴 종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예전에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근래 들어 그런 자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한국을 지키는 신이 소멸되는 일과 연관이 없지 않았다. 원령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니 말이다.
“안 돼. 하현아. 너는 신을 모시는 사람이야. 그런 말을 쓰면 영기가 흐려져.”
미스터 킴은 하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라고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참아야 했다. 그까지 화를 내면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된다.
소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 중에 하나였다. 언제 어디서든 냉정을 유지해야 했다.
“알아요. 하지만 저놈들이 먼저 잘못을 했는데요.”
“그래. 그렇지만 참는 것도 하나의 복이란다.”
“무조건 참아요?”
“아니지. 참을 수 있을 만큼만 참으면 된다. 너무 참아도 화기가 몸에 퍼져 좋지 않다. 그러니까 ‘에이, 더러워서. 잘 먹고 잘살아라.’ 할 정도가 되면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음…….”
하현은 잠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소장님.”
“그래. 착하다.”
미스터 킴은 다시 한 번 하현의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직원들을 태운 봉고차는 휴게소에 들렀다. 그들을 차에서 내려 허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굳은 몸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화장실을 먼저 들렀다.
미스터 킴과 이강철은 화장실에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차에서는 하현과 페르민이 있어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평상시에 피는 양으로 봐서 꽤나 골초인 듯싶었다.
“출출한데 핫도그라도 몇 개 사오겠습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두현은 매점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휴게소에 오게 되면 뭐라도 사먹고 싶어진다.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시설도 깨끗했고 종업원들의 서비스도 친절했다. 당연히 먹을거리를 파는 매점도 깔끔하게 해놓고 있었다.
두현은 핫도그 5개를 산 후 봉고차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손이 모자랐다. 이럴 때는 인턴이라는 것이 조금 서럽다.
팀장이라고 한 명도 심부름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턱.
누군가 그의 등을 치고 지나쳤다.
두현은 가지고 있던 핫도그를 모두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의 등을 치고 간 여자는 힐끗 뒤를 돌아본 후 가던 길을 갔다.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솟았다.
“여봐요!”
두현은 그 여자를 불렀다. 핫팬츠에 가슴이 반쯤 드러난 민소매 티를 입고 있는 젊은 여자였다. 가슴에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화장은 진했다.
낯이 익는다.
생각났다.
아까 무법천지로 달리던 오픈카에서 뒷자리에 타고 있던 여자였다.
그녀는 두현을 보고 잠시 흠칫했지만 이내 쌀쌀맞게 되물었다.
“왜요?”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사과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무슨 피해요?”
“당신이 저를 쳐서 음식을 모두 땅에 떨어트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런 기억 없는데요. 그럼.”
그녀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는가.
“이봐요!”
두현은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봤다.
“왜 자꾸 불러요. 그런 적 없다니까.”
“장난칩니까?”
“미친 새끼네. 왜 길 가던 사람을 잡고 시비야.”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이다.
그때 칠부 바지를 걸치고 박스티를 입은 두 사내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사내 새끼들이 약간의 화장도 했다. 요즘 남성들도 화장을 한다지만 저들이 화장한 모습을 보니 왠지 역겨웠다.
나이도 겨우 20살이나 되었을까.
집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도 자식들을 저런 식으로 키우면 안 된다.
“왜?”
그 둘은 여자에게 가서 물었다.
“몰라. 저 돼지가 나한테 음식 값을 물어내라고 하잖아.”
“너한테 왜?”
“그러니까 모른데두!”
두현은 기가 막혔다.
사내들은 건들거리며 두현에게 다가왔다. 그의 모습을 보고도 그다지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저씨. 가던 길 가. 왜 얌전한 우리 애기한테 시비를 걸어. 너무 예뻐서 어떻게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은 알겠는데 주제를 알아야지.”
더 이상 이들과 말을 섞기가 싫었다. 그래도 사과는 확실하게 받아야 했다.
“사과해라.”
사내들의 말이 곱지 않으니 두현의 말도 곱지 않았다.
“이 아저씨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뭘 사과해. 완전 또라이네.”
“좋은 말할 때 사과해.”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음식을 우리 애기 때문에 떨어트렸다고? 그럼 이걸로 대신해.”
오른편에 있던 사내가 들고 있던 우동을 두현의 면상에 던졌다. 왼편에 있던 사내도 들고 있던 뜨거운 커피를 두현의 면상에 부었다.
잘못하면 화상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하하! 아저씨 됐지? 우리는 물어줬다.”
그들은 여자를 데리고 자신들이 타고 왔던 오픈카로 향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두현을 보며 계속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뚝뚝뚝.
두현의 얼굴에서 우동 국물이 떨어졌다.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주위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두현을 지켜볼 뿐이었다.
미스터 킴은 참을 때 참아야 할 줄 안다고 말을 했었다. 그럼 이 상황은 참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참지 말아야 할 것인가.
우드득.
두현은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이건 참지 못한다.
그의 분노한 눈빛이 장난을 치며 걸어가고 있는 남녀들의 등에 꽂혔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