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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안전보장 사무소 1(24화)
10. 뜨거운 여름(1)
재범은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이 아픈 것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코에서는 향 냄새와 약품 냄새가 동시에 맡아졌다. 사람을 살릴 때의 냄새와 죽었을 때의 냄새가 동시에 맡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척추의 뼈가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당연히 상체를 일으키지 못했다.
팔과 다리를 흔들어 본다.
철컹철컹.
‘응?’
무엇엔가 속박이 되어 있었다. 재범은 목만 간신히 들어 팔을 살폈다.
팔목과 팔목이 철삭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빠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재범은 어제 있었던 일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강남에서 친구들과 술을 한잔한 후 홍대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미코토라고 하는 일본 여자였다. 키가 약간 작고 상당히 귀여웠다.
그리고 애교가 많았다. 한국에는 유학을 왔다고 했다. 재범은 22살이고 고대에 다닌다고 하였다. 미코토는 한국말을 곧잘 해서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재범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좀 더 술을 마신 후 2차를 가서 자빠트릴 생각을 했다. 친구들은 다른 파트너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가 술에 취했다.
예상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재범은 미코토를 데리고 클럽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 모텔을 찾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녀가 재범에게 속삭였다.
“너는 신들의 냄새가 나. 하지만 그들이 아니야. 그들과 접촉을 했거나 가까운 사이겠지.”
그것이 기억의 끝이었다.
깨어나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일어났군.”
안경을 쓰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의료용 고무장갑을 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이 꼭 수술실 같았다.
“누, 누구야?”
겁이 덜컥 난다.
재범은 사내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재범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음, 나는 이시이 시로라고 하네. 세계 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있는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상관없어! 대체 여기는 어디야?”
“보면 모르겠는가. 여기는 수술실이네.”
“그러니까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히 수술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지.”
“나는 아픈 곳이 없어!”
“그래. 아픈 곳은 없어. 난 자네를 업그레이드할 거야. 그러니까 조금 아프더라도 참으라고.”
“무슨 개소리야!”
이시이 시로는 재범에 입에 호수를 가지고 와 수면 마취를 시켰다.
더 이상 실험체와 말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시이 시로는 재범의 몸을 조각조각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발명한 기계장치를 설치했다. 엄청난 양의 피가 튀었지만 신기하게도 피는 한곳으로 모아져 다시 재범의 몸으로 재주입이 되었다.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야. 하지만 요즘 의학도 이것은 못하지.”
그는 철상자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열자 녹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곧 사람의 형태를 하였다. 모두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150cm도 안 되어 보였다. 그는 나무를 엮어 만든 나무 갑옷을 입고 일본도를 들고는 녹색 안광을 흘렸다.
이시이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다시 녹색 안개로 변하더니 재범의 몸으로 들어갔다.
다른 자는 180cm가 넘는 거구였다. 그는 제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일본도를 손에는 권총을 들었다. 그 역시 이시이의 명령에 따라 재범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각이 났던 재범의 몸이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자, 처음으로 해보는 실험이다. 세 명의 영혼이 한 육체의 머물렀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흥미롭군. 살아난다면 너는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얻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의 충실한 개가 되어 조선의 신들을 찾아내겠지.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이시이 시로는 미소를 지으며 실험실을 나갔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실험실에서는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그 괴성은 너무 처절해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귀를 막게 만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재범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전에 그가 지니고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기이한 녹색 기운이 눈동자 속을 맴돌고 있었다.
* * *
“단합대회 말입니까?”
두현이 물었다.
“그래요. 회사 특성상 위험한 일이 너무 많으니 단합대회라도 가끔 해야지요.”
미스터 킴이 담배를 재떨이에 끄며 말했다.
단합대회라.
특이한 회사라는 말에는 동감한다. 한국 곳곳에 이런 회사가 성행한다고 했지만 평생 본 적이 없으니 긴가민가하다. 한국의 신을 보호하는 회사라니.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회사이니 더욱 직원들의 사기를 위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팀장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알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상처를 입고 들어온다. 그냥 까진 상처가 아니었다.
어떤 날을 자상을 입었고 심지어 총상을 입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을 자랑한다던 한국에서 이렇게나 많이 총격전이 일어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멀리는 못 갑니다. 비상이라도 떨어지면 바로 복귀를 해야 하니까. 강원도 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강원도.
아들이 태어나고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세 가족이서 단란하게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내는 건강했고 아이도 예뻤는데.
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고 하더라도 잊어야 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마음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두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의 몸과 노인의 정신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페르민의 말대로 자신은 고등학생이라고 자기최면을 걸라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좋네요.”
“그래요. 아주 기가 막힐 것이에요.”
미스터 킴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두현은 한 번도 그가 선글라스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저 선글라스 너머의 눈동자는 왠지 웃고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페르민과 하현이 들어왔다.
“아우, 덥다. 더워. 아직 여름방학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리 덥냐. 소장님. 여기 하드 하나 드세요.”
하현은 검은 비닐 봉지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미스터 킴과 두현에게 내밀었다.
“아, 역시 사무실이 가장 좋아. 너무 시원해.”
그리고는 에어콘으로 가서 바짝 붙었다. 땀이 식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두현 씨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페르민은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찢으며 물었다.
“이번 주에 단합대회를 간다고 하네요.”
두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뭐? 다, 단합대회?”
하지만 페르민과 하현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굳어졌다. 그들의 고개가 미스터 킴에게 돌려졌다. 이제껏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페르민과 하현의 두 눈동자에서 두려운 빛이 떠올랐다.
“정말입니까. 소장님?”
“그럼요. 인턴도 들어왔는데 단합대회 한 번 해야죠.”
“저는 그날 데이트 약속이 있는데요.”
페르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는요. 고등학교 입시 때문에 공부해야 해요. 벌써부터 대학에 갈 준비하라고 난리라고요.”
하현도 질세라 말했다.
그러나 미스터 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미안하지만 취소하세요.”
“싫다면요.”
“해고예요.”
“노동법 위반이에요.”
“그럼 정직 발령이라도 내죠.”
“이이익! 내년에 가면 안 돼요? 벌써부터 무슨 단합대회에요?”
“할 때가 됐어요. 단합대회란 저희처럼 영기를 다루는 자들에게는 아주 좋아요. 대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영기를 맑게 순환하고 같은 직장 동료끼리 친목도 다지고. 생각만 해도 즐겁겠네요.”
“소장님만 즐거운 것이겠죠.”
“어쨌든 이번 주 토요일 오전 9시까지 회사 앞으로 집합하세요. 제가 펜션은 예약해 놓겠습니다.”
“으으윽!”
소장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아무래도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였다.
소장의 말대로 영기는 높아지고 정순하게 변한다. 또한 내공과 마나도 높아지는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합대회를 가서 영기가 높아진다면 세상의 모든 동종 직종 종사자들은 신선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천계에 올라 풍악을 울리고 춤바람이 났겠지.
즉, 엄청난 고난과 고통이 뒤따른다.
말이 단합대회지 지옥 훈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제아무리 특수 훈련을 받은 이강철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두현은 페르민과 하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합대회란 좋은 것이 아닌가.
그동안 힘들게 실력을 쌓고 일만 해왔는데 한 번쯤은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덜컹.
문이 열리며 이강철이 들어왔다. 그는 이 더운 날씨에도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가죽 코트를 입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를 숨기기 좋기 때문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답게 온몸이 흉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니고 있는 무기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을 감추기에는 코트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름에 가죽 코트는 심했다. 제아무리 단련이 된 이강철도 더위에는 이기지 못했다.
33도 이상 올라가는 땡볕 여름에 건물 옥상에서 잠복을 한 적이 있었다.
무려 4일간을 약간의 물과 음식으로 버텨야 했다. 그때도 이강철은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작전 시에 그가 가죽 코트를 벗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끝내 이강철은 쓰러지고 말았다.
일사병과 탈수증이 겹친 결과였다.
그런데도 가죽 코트를 벗지 않았다. 가죽 코트에 얽힌 비화가 있는 듯했다.
그런 단련을 해서인지 더위에는 강했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이강철이 하현을 바라봤다.
“단합대회 간데요.”
“단합대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어졌다. 두 번의 단합대회를 겪은 그였지만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험한 세상을 살아왔지만 단합대회에서 죽을 뻔한 횟수가 더 많았다.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저승 문턱에 갔다 왔다. 몸서리쳐지는 기억이 아닐 수 없었다.
“윽!”
이강철이 갑자기 배를 부여잡았다.
“왜요?”
미스터 킴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말을 하려고 했습네다. 자꾸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맹장이람네다.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복막염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네다. 아무래도 내일 입원해야 할 것 같습네다.”
이 더운 날씨에 가죽 코트를 입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이강철의 이마에서 갑자기 땀이 흘러내렸다. 고통을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름 저것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럼 수술하고 오세요. 하현아. 네가 상처를 치료하는 부적을 사용해 주렴.”
“치료용 부적은 비싼데요.”
“괜찮아. 직원을 위한 건데. 내가 내주마.”
이강철은 똥을 한 바가지나 먹은 표정을 지었다. 또 꼼짝 없이 끌려가게 생겼다.
미스터 킴과 두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안색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