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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질주 1권(25화)
8장 이 녀석의 혀 놀림은 왕을 움직인다(3)


국왕은 이렇게 주니의 마지막 속성 교육을 생각하고는 왕비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우리 애기 어땠어요? 나 잘했어요?”
왕비는 국왕이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거기다 애기란 호칭까지 하면서 자신을 부르니 국왕을 아주 깨물어 주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이때, 다시 국왕의 말이 왕비의 왼쪽 귓볼을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내 얘기 하나만 들어봐요. 난 쎄르 왕자를 왕으로 만들 거요.”
왕비는 갑자기 국왕이 쎄르 왕자를 국왕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지금까지의 모든 황홀했던 기분이 순간 짜증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한데 다음 말에는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으로 낳은 알도르는 황제로 만들 것이오. 마지막으로 난 애들보다는 당신이 더 좋소.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국왕의 이 마지막 발언에 왕비는 국왕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고, 주니의 가장 큰 지지자로도 돌변하게 되었다.

제국이 왕국에서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든 잊혀진 전쟁이 있다.
바로 쏘라 영지전. 이 전쟁이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국 자체 내에서 이 전쟁에 관한 기록을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단지 피에르 왕국의 패망록에만 쏘라 영지전에 참여한 용병의 말을 인용하여 적혀 있다.

내 무수히 많은 전쟁에 참여해 보았지만, 살다살다 이런 전쟁은 처음 겪어 본다.
―연대기 편찬자 앤드류



9장 스스로 만든 명분으로 인한 출정


카리우스 왕성 내 근위 기사단 집합소.
“빨리빨리들 쌓아 놓아라.”
“거기 두지 말고 이리로.”
“수레들은 이쪽에 차근차근 배치해라.”
“곧 출발한다니 빨리 출발 준비 끝내.”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부터 기사단 집합소에는 훈련 소리가 아닌 주니가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들을 이행하고 있는 기사들과 인부들의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따그닥따그닥. 이힝∼
삐익∼
“단장님, 단장님!”
“왜 그래?”
“전하께서 지금 대전으로 오시라고 합니다.”
“전하께서?”
“네.”
‘전하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
근위대 기사 단장은 국왕의 전갈을 받고는 서둘러 왕성 내 대전으로 향했다.

카리우스 왕성 내 대전.
“대체 갑자기 국왕께서 우리를 왜 다 모이라고 한 것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갑자기 연통을 받은지라…….”
대전에는 갑작스런 국왕의 연락을 받고 온 많은 대신들이 국왕이 갑자기 자신들을 소집한 이유를 모른 채 서로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이때 근위 기사 단장이 대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단장, 국왕께서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아시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저에게 따로 명하신 것이 있기는 한데…….”
“그래요? 그것이 무엇이오, 따로 명했다는 것이?”
“그게…….”
단장이 다른 대신들에게 국왕의 지시 사항에 대해 말하려 할 때 시종장의 외침이 대전에 울려 퍼졌다.
“현명하고 인자하신 국왕 폐하와 왕비 마마 납시오!”
시종장의 외침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아니…….”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다정하게 손에 땀띠가 날 정도로 손을 꼬옥∼ 붙잡고 등장하는 국왕과 왕비의 모습에 다들 놀라고 있었다.
“전하와 마마를 뵈옵니다!”
“전하와 마마를 뵈옵니다!”
“자, 다들 자리에 편히 앉으시오”
많은 대신들은 지금 국왕과 왕비의 행동에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자리에 앉으면서도 저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 다들 본인이 그대들을 모이라 한 이유를 궁금해하실 것이오.”
“네, 전하. 사실 소신들도 그 점이 가장 궁금하옵니다. 이 새벽부터 갑자기 저희를 왜 찾으시는지…….”
피식∼
현 왕비의 동생이자 후작인 제뉴 후작은 지금 피식거리며 웃는 국왕의 웃음에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누님이자 왕비인 스텔라에게서도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다시금 국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들라하라.”
“네, 전하!”
또박또박. 또박또박.
“아니, 이자들이 어찌?”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국왕의 명에 들어서는 주니와 꼴통 5인방을 보고는 많은 대신들은 지금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전하, 어찌 이자들이 대전으로 들어오는지 알려 주실 수 없으십니까? 전하!”
“이들은 추가 보급 물자와 20명의 근위 기사대를 이끌고 피에르 영지의 엘가 공주를 도우러 갈 것이오!”
국왕의 이 선언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전 안이 침묵하여 조용해지자 국왕은 다시 말을 이었다.
“공노 주니와 5형제는 내 앞으로 오라.”
국왕의 말을 듣고는 주니와 5꼴통은 국왕의 앞에 다가가 바짝 엎드려 예를 차렸다.
“나 대카리우스국의 국왕인 매션이 명하느니 하늘이 나에게 주신 권한으로 공노 주니와 다섯 형제들에게 임시 백작직과 남작직을 수여하노라.”
띵!
국왕의 말도 안 되는 선언에 대신들은 순간 당황하였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후 일제히 입을 열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저들의 목을 쳐도 모자란 판국에 임시 백작과 남작이라니요?”
“전하! 아니 되옵니다! 그냥 목숨만 살려 주면 될 듯한데 작위라니요? 아니 되옵니다!”
“그놈의 아니 되옵니다! 이제 지겹지도 않소? 작위를 내리는 것은 하늘이 내게 주신 고유의 권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전하!”
“전하!”
국왕이 주니와 5꼴통에게 임시지만 귀족의 작위를 내리겠다는 돌발성 발언에 대신들은 다시 전하만을 외치며 결사반대 의사를 밝혔다.
“형님!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리 작위 받았다. 임시지만 킥킥킥!”
지금 바짝 엎드려 있는 꼴통 5인방은 어리벙벙할 뿐이다.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작위라니 이들은 지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때 국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단, 이들이 가서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바로 목을 칠 것이고, 이들이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어 피에르 영지를 지키면 다시 공노의 신분으로 원상 복귀시킬 것이며, 이들이 더 큰 공을 세워 돌아온다면 이들에게 수여된 작위는 임시가 아니라 계승 작위가 될 것이오.”
국왕의 이어진 선언에 대전은 술렁이며 지금 국왕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 짱돌들을 열심히 굴렸다.
“전하! 더 큰 공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쏘라 영지를 얻으면 될 듯한데.”
쿵!
“아니, 쏘라 영지라니?”
“아니, 쏘라 영지라니!”
그렇다 쏘라 영지. 피에르 영지 옆에 있는 피에르 왕국의 식량 창고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피에르 왕국 식량 공급의 상당 부분을 쏘라 영지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피에르 왕국은 쏘라 영지성을 웬만한 왕궁성만큼 튼튼하게 재건축하였고 상주 병력도 2만 정도를 항시 유지시키고 있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경들은 아시겠소?”
“자, 다들 물러들 가시오. 새벽부터 와서 피곤들 하실 테니.”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을 끝낸 국왕은 왕비와 함께 대전을 나갔다.
“아니, 이게 무슨?”
“전하의 의중을 모르겠으니…….”
다들 웅성거리며 술렁이고 있을 때 제뉴 후작은 자신의 누님인 왕비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리우스 왕궁 내 왕비전.
“마마, 제뉴 후작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오! 안으로 모시도록 하세요.”
시종의 말을 들은 왕비는 제뉴 후작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후작 제뉴, 왕비 마마를 뵈옵니다.”
“어서 오너라, 동생아.”
후작은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왕비의 동생이란 표현에 잠시 왕비를 쳐다보고는 왕비의 얼굴빛이 하루아침에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저, 마마… 전하의 의중이 무엇인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호호호. 말씀하신 그대로 전하께서는 쏘라 영지를 얻을려고 하시는 것이지.”
“정말이신지요?”
“그렇다. 동생아. 호호호.”
“근데 어찌…….”
“일단은 내가 오늘 많이 피곤하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해라. 동생아.”
“알겠습니다, 마마.”
왕비는 제뉴 후작에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축객령 아닌 축객령을 내렸다. 사실 왕비는 피곤하긴 피곤하였다. 그리고는 창가쪽으로 걸어가서 지금 막 보급품을 싣고 수레들과 함께 성문 밖을 나서는 주니 일행을 쳐다보며 어제 주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카리우스 왕궁 내 국왕의 식당.
“전하, 어찌 이런 천것을 들이셨는지요.”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함이오.”
“전하, 저는 아직도 이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왕비는 아직도 주니의 사지를 찢어 발라 성문 밖에 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국왕이 같이 식사까지 하라 하니 지금 꼭지가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국왕이 한술 더 떠 자리까지 살짝 비우는 것이다.
“참, 내 서재에 중요한 서류를 결재를 안 해서… 잠시만 이자와 대화를 나누고 계시오. 나의 사랑스런 애기∼”
국왕이 사라지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침묵을 깨고 주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마,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뭐라? 네놈이 정녕 죽…….”
“쯧쯧쯧. 아직 멀었군!”
갑작스런 주니의 발칙한 혀 차는 소리와 반말에 왕비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마마, 마마는 고작 후작 가문밖에 안 되는 친정 가문의 영광을 위해 나라와 남편, 자식까지 팔아먹은 요부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뭣이라?! 네놈이 정녕 목을 내놓았구나!”
주니의 이 도발에 가까운 말에 왕비는 다시 언성을 높였으나, 이어진 주니의 혀놀림에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지혜로운 아내이자 어미로써 지아비를 제대로 섬기고, 자식들을 훌륭히 가르쳐 다시 황가를 일으키게 한 가장 위대한 황제의 어머니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허허허.”
“제가 이 나라를 영토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 마마의 아드님인 알도르 세자께 바치죠! 그럼 저의 이런 오만 방자한 행동도 다 용납이 되지 않으실는지요?”
“니놈이 지금 실성을 했느냐? 내가 너와 농을 주고받고 싶은 줄 아느냐?”
주니의 발언이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혀 왕비는 언성을 높여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한데 주니는 겁을 먹기는커녕 꼼지락거리며 코를 후벼 파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놈이!”
“황가에는 허언이 없습니다. 선 황비 마마.”
왕가도 아닌 황가를 들먹이며 말을 하자 왕비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주니를 쳐다보았다.
“단, 잃어 버린 황가를 일으켜 세운 위대한 황제의 어미가 되고 싶으시면, 왕비 마마께서는 무조건적으로 한 가지를 해 주셔야 합니다.”
꿀꺽.
주니는 왕비마저 자신의 말발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말을 꺼냈다.
“절대 왕정! 마마께서는 전하께서 절대 왕정을 만드실 수 있도록 도우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알도르 세자께서는 절대 황정을 펴실 수 있습니다.”
“호호호호호!”
왕비는 주니의 마지막 발언을 듣고 난 후 무엇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느끼고는 계속해서 앙칼지게 웃기만 하였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