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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
전생의 문을 열다



헬 블레이드 1권(1화)
프롤로그(1)


당신은 배고픔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이어트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이건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배고픔의 고통.
음식이라고 하는 건 원한다면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음식을 양껏 먹는다는 것은 살이 찐다는 얘기이지 않은가.
살을 뺀다는 것은 정말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나에게는 그게 더더욱 심하다.
남들보다 적게 먹어도 살이 찌고, 남들보다 열심히 운동을 해도 살은 찐다.
세상에 이런 열 받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남들보다 노력해도 살이 찔 수밖에 없다니…….
무얼 해도 계속해서 살이 찐다니…….

나는 다짐한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안겨 준 그 녀석을 찾아가 반드시 죽여 없애 버릴 것임을. 감히 나의 가문에 무한비만증이라는 빌어먹을 저주를 걸어 이런 열 받는 고통에 빠지게 한 그 녀석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것임을.
마지막으로 지금 한 나의 다짐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킬 것임을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작은 메모지에 쓰인 다짐의 말


Chapter1 시작되는 다이어트(1)


올해 세 살이 된 아기.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 아기가 정말 세 살이 맞기는 한 걸까? 아기는 세 살이라는 나이치고는 너무도 컸다. 족히 육칠 세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는 다름 아닌 아웬 백작의 하나뿐인 아들인 베스렐 갈루안스였다.
“우웅…….”
뾰로통한 표정의 베스렐.
녀석은 이미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살 때 이미 대륙 공용문자를 깨우치고 마법에 꼭 필요한 룬어를 비롯한 기초수리를 깨우친 천재가 바로 녀석이지 않은가. 당연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베스렐이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작은 식탁에 놓여진 몇 가지의 음식, 아니 이건 음식이라기보다는 계집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의 그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베스렐의 시선이 식탁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시녀장인 케이시 옆에 있는 한 사내.
그는 백작가의 요리장인 페리스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소영주님?”
“우웅. 이게 정말 오늘 아침부터 내가 하게 될 식사인 거야, 페리스?”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베스렐은 세 살 난 아기였다.
한데 녀석은 지금 말을 하는 데 있어 그 어떠한 장애도 보이지 않고 또박또박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예에, 그렇습니다, 소영주님. 그게 앞으로 일주일 중 첫 번째 날의 아침식사로 소영주님께서 드실 음식들입니다.”
“우웅, 그런데 이거 양이 너무 적지 않아? 나도 내가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말이야.”
페리스 요리장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아닙니다, 소영주님. 그건 절대로 심한 게 아닙니다. 지금 소영주님이 하시려는 식사는 절식요법이라고 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 정도로만 식사를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소영주님은 일반적인 비만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체질을 타고나시지 않았습니까.”
절식요법.
이것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해 보는 것들 중 하나다.
먹는 양을 줄이거나 며칠간 끊어 버리는 일.
절식요법은 몇 가지로 구분 지어 나눌 수가 있는데 이제부터 소영주인 베스렐이 하게 될 절식요법은 초저열량 식이요법으로 하루에 600칼로리 이하의 열량만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성인 남자가 하루에 최소한으로 섭취해야 할 열량이 1,200칼로리에서 1,500칼로리 정도라고 하니 600칼로리 이하란 것은 상당히 무리를 해 가면서 하는 다이어트다. 그리고 베스렐의 경우는 나이가 어려서 600칼로리보다 훨씬 적게 먹어야만 했다. 당연히 녀석의 앞날은 배고픔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릴 것은 소영주님께서는 앞으로 보름에 한 번씩 완전단식에 들어가시게 될 것입니다.”
“완전단식?”
“예, 그렇습니다, 완전단식. 하루 동안 먹는 것을 일절 금한 채 오로지 생수만 드실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두 번씩 있을 예정입니다.”
순간 베스렐의 통통한 얼굴에 자리한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버렸다.
“뭐라고, 페리스? 내가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을 굶어야 한다고?”
“예, 소영주님.”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페리스 요리장.
그는 소영주에게 미리부터 모든 걸 알려 주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당일 겪게 될 충격을 미리부터 조금씩 흡수시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페리스 요리장 옆에 서 있는 케이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페리스 요리장의 말이 사실이냐고.
진정 그러한 것이냐고. 그리고 결과는 녀석이 원치 않은 대답으로 나왔다.
“그건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소영주님. 완전단식 건은 이미 영지 내 마탑에 계시는 영주님께서 그리 하라고 허락이 떨어진 상황이니 말이에요.”
케이시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세 살이 된 어린 아기가, 비록 덩치는 육칠 세의 아이와 비슷했지만 어쨌든 그런 아기가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완전단식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영주님, 힘들겠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가문에 내려진 저주가 생각보다 더욱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소영주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3년 전의 그날.
어마어마했다. 모두가 놀랐다. 역대 백작가의 누구보다 우람한 몸으로 태어나신 소영주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베스렐은 당시 9.3크롬(kg)의 몸무게로 태어났다. 보통의 우량아가 아닌 초우량아로 태어난 것이다.
“우웅…… 밥을 굶는다는 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나는 그냥 식사량만 조금 줄이는 걸로 알았단 말이야.”
베스렐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 같은 일을 허락했다고 하니 실망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아버지 선에서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 하는데. 때를 써 봤자 되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스윽, 척.
베스렐은 식탁에 놓여져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곤 자신이 오늘부터 먹게 될 음식들을 왼쪽부터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요건 땅콩 일곱 알, 옆에 있는 건 체리 두 알, 그리고 녹색의 뭔지 알 수 없는 풀뿌리 하나와 붉은 사과 한 조각. 거기다 요거는 호밀 빵처럼 보이는데 크기가 겨우 내 엄지손가락만 하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이다.
이걸 아침식사 한 끼라며 내놓다니.
고기 음식은 하나도 없이 전부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식사거리들이지 않은가. 그것도 대부분이 가공되어지지 않은, 그 어떠한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은 그런 것들.
페리스 요리장은 생각했다.
‘짜게 먹게 되면 체지방률이 높아진다고 했으니 웬만하면 앞으로도 싱거운 음식들을 올려야 해. 나트륨을 적게 넣어서 말이야. 맛은 정말 없겠지만 그래도 과일이 한 조각 있으니 텁텁한 맛을 약간이라도 희석시켜 주기는 할 거야.’
앞으로 베스렐이 먹게 될 음식은 조미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채식 위주가 될 것이다. 물론 어쩌다 가끔씩은 등 푸른 생선요리가 올려지겠지만 그것도 양념은 거의 쓰지 않을 것이니 맛을 기대하기는 힘들 터였다.
“휴우우. 정말 이게 다야, 페리스?”
세 살 아이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예에, 그게 답니다, 소영주님. 아아, 생각해 보니 그거 말고도 하나가 더 있군요.”
“어어, 정말?”
금세 밝은 표정을 짓는 베스렐.
하지만 다음에 이어서 나오는 페리스의 말이 녀석을 절망케 만들어 주었다.
“저번부터 가끔 드시던 ‘루안차’를 앞으로는 하루 세 번씩 끼니때마다 드실 겁니다.”
“에엑! 그 맛없는 루안차를?”
“예, 그렇습니다, 소영주님.”
베스렐은 둥글둥글한 자신의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구겨질 일이었다.
루안차!
이것은 ‘루안’이라는 이름의 버섯을 차로 달여 마시는 것인데 그 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썼다.
세상의 쓰다는 음식이나 차 음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지독히 쓴맛을 내는 게 그 루안차인 것이다.
하지만 입에 쓴 게 몸에는 좋다는 말이 있듯이 이 루안차를 장복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만병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그 쓴 것을 꼭 마셔야 하는 거야? 안 마시면 안 되는 거야?”
“예. 안 됩니다, 소영주님.”
페리스 요리장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모든 일이 술술 풀어지는 것이다.
“소영주님의 몸을 생각해서 그리하는 것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계속될 절식요법을 생각해 보면 그 ‘루안차’는 앞으로 소영주님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휴우우…….”
세 살 난 아기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치고는 정말 처량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시기는 정말 싫은 일이었지만 베스렐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다는데 어쩌겠는가.
녀석은 곧 시무룩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소영주님! 음식을 드실 때에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른 번 이상씩 꼭꼭 씹어 드셔야 합니다. 그건 물을 드실 때도 마찬가지이니 잊지 마세요.”
“알고 있어, 케이시.”
시녀장인 케이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소영주의 식사를 챙겼다.
음식은 되도록이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못해도 삼십 분 이상으로 천천히 먹어야지만 배에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소영주인 베스렐이 먹을 하루 식사량은 지극히 적을 것이니 한 끼를 먹더라도 더욱 천천히 꼭꼭 씹어서 배고픔을 잊을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잠시 후.
베스렐은 식탁에 올려진 음식을 모두 들고는 이제 한 가지 차 음료만을 남겨 놓게 되었다.
유리로 만들어진 찻잔에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고 있는 루안차.
“우웅, 이 맛없는 걸 앞으로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한다니. 휴우우, 그냥 하루에 한 번으로 줄이면 안 되는 걸까?”
베스렐의 시선이 요리장과 시녀장에게로 향했다.
불쌍한 표정. 하지만 그건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고개는 똑같이 가로저어졌다.
“소영주님, 얼른 드시고 이제 이를 닦으러 가셔야지요. 알고 계시겠지만 소영주님은 오늘부터 무척이나 바쁘십니다. 오전부터 오후 세 시까지는 기사수련을 받으셔야 하고 그 후로는 메드레스 마도사님으로부터 마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셔야 해요.”
그랬다. 오늘부터 베스렐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기사수업과 마법수업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세 살 된 아이에게 너무하다 싶은 그런 조기교육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어서 드세요, 소영주님.”
“우웅, 알았어. 지금 마시려고 하잖아.”
베스렐은 심통 난 표정을 짓더니 곧 눈앞에 있는 루안차를 한 번에 들이켜 마셨다. 지독히 쓴맛을 내니 단번에 들이켜 입 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후르릅, 우와, 뜨거워!”
“조, 조심히 드세요, 소영주님. 차는 그렇게 급하게 드시는 게 아닙니다.”
“에이, 그럼 쓴 걸 어떡해? 케이시도 한번 마셔 봐! 이렇게 단번에라도 마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혀가 아프단 말이야.”
베스렐은 계속 심통이 난 표정을 짓고는 되도록이면 빠르게 루안차를 마시기 위해 노력했다.
“후르릅, 후르릅, 아우, 써!”
뜨거우니 입으로 ‘호호’ 불며 결국 두세 번 만에 모두 다 마신 베스렐.
스윽.
녀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살이란 어린 나이지만 베스렐은 일고여덟 살의 아이들처럼 잘 걷고 잘 뛰어다닐 수 있는 그런 아기였다.
“자아, 다 마셨으니 이제 이 닦으러 가. 그리고 오늘부터 하게 되는 기사수련이란 게 어떤 건지 빨리 보러 가자구.”
베스렐은 기사수련이 궁금했다.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들이 들고 있던 커다란 검.
그 검을 가지고 놀고 싶은 베스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