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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2화)
Chapter1 시작되는 다이어트(2)


“예, 그럼 저의 손을 잡으세요.”
케이시가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됐어. 내가 아기야? 나도 이제 다 컸단 말이야.”
“호호호. 예에,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뭐야? 왜 그렇게 웃는 거야?”
“호호. 아닙니다, 아니에요.”
케이시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곧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영주를 데리고 세면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흐음…….”
페리스 요리장은 밑에 있는 젊은 요리사 2명을 불러서 식탁을 치우게 하고는 시선을 돌려 세면실로 향하는 소영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걱정 어린 그의 눈빛.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삼 일 전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삼 일 전 그날, 영주님의 부름으로 오전부터 옷을 잘 빼입고 집무실로 향했던 페리스 요리장. 그날은 소영주의 운명이 결정된 날이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이걸 받게.”
아웬 백작은 오전 일찍부터 페리스 요리장을 불러서는 그에게 두툼한 책자 한 권을 전해 주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는 어마어마했다.
사람인지 돼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웬 백작은 엄청나게 살이 쪄 있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못해도 250크롬(kg)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은 혹시 저번에 주신 책과…….”
“그래. 그것과 연관이 있네. 바로 식재료들의 영양분석과 칼로리를 기술하고 있는 책자인 것이지. 사실 그게 우리 가문사람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네는 그걸로 초저열량의 음식을 만들어 베스렐의 식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게.”
그가 방금 전해 준 책자는 마법사들이 심심풀이로 연구해 놓은 것으로 음식들의 열량을 품목별로 적어 놓은 것이었다.
일반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 책자이지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한 비만인들에게는 한번씩 봐 두면 크게 도움이 되는 그런 책자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으음, 드디어 시작이 되는구나.’
페리스는 속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얘기한 그것을 이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걱정이군. 아무리 저주가 무섭다고 해도 이제 세 살 난 소영주님께 벌써부터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니 말이야.’
아웬 백작은 말했다.
“잘해 보게. 식사 문제는 살을 빼는 것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양은 비록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맛있게 요리를 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지, 아니지. 그게 아니지.”
아웬 백작이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네는 뭘 잘못 이해하고 있군. 요리를 맛있게 해 주면 어떻게 하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페리스 요리장의 두 눈에 의문이 차올랐다.
요리사의 생명은 맛있는 요리를 해서 그걸 식탁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한데 지금 영주가 하는 말은 그와 반대로 음식을 맛없게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나 이런 참. 생각을 해 보게, 페리스 요리장! 음식을 맛있게 해서 그걸 베스렐이 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오겠는가?”
“그야 당연히 맛있으니 더 드시려…… 아아, 그렇구나. 그럼 안 되는 일이구나.”
페리스 요리장은 영주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지금부터 죽음의 다이어트를 시작하려는 소영주에게 맛있는 음식을 올린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괴롭히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식탁의 앞에 있는 그 맛있는 음식을 더 이상 들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는 정말 고문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영주님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흐음, 알아들었다니 다행이군. 영양은 있지만 최대한 맛없게, 먹는다는 거 자체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란 것을 각인시켜 주게. 그리고 그런 음식은 성내의 다른 모든 식당 주인들에게 알려 주어서 만일 베스렐이 음식을 주문하면 맛없게 요리를 하라고 일러두게, 알아들었는가?”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래. 이건 전쟁이야, 전쟁. 바로 살과의 전쟁! 전쟁에서 패배한 자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네. 그러니 소영주가 불쌍하다고 음식을 더 내주거나 그러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아웬 백작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원래 유순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들을 위하고 가문을 위한 것이니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영주님이 명하신 일, 큰 사명을 갖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좋네. 내 자네만 믿겠어.”
아웬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 눈엔 신뢰의 빛이 담겨 있었다. 페리스 요리장은 영주가 전해 준 책자를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 품속에 꼭 넣어 두고는 인사를 한 뒤, 바로 집무실을 나왔다.

“흐음…….”
페리스 요리장은 감겨 있던 두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려 식당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세면실로 향하는 작디작은 소영주.
이제는 힘든 길을 걸으셔야 한다.
어쩌면 도중에 쓰러지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영주가 한 달 전에 백작가의 가신들을 모두 모아 놓고 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그중 하나는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바로 기사수련에 관련된 이야기. 그것은 가신들 모두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절식요법도 모자라 기사수련이라니. 정말 영주님도 너무하시지. 잘은 모르지만 기사수련이라는 게 무척이나 혹독하다고 하는데…….”
기사가 되기 위한 수련은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져 있는 자들만이 하는 걸로 페리스 요리장은 알고 있었다.
한데 소영주는 이제 세 살이 된 어린 아기지 않은가. 비록 덩치는 나이를 초월했다지만 말이다.
“탈이 나지 않을까 모르겠어. 아무리 기사수련이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말이야.”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소영주의 신형을 따랐다. 정말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여섯 살 난 아들이 하나 있지 않은가. 자신의 아들과 소영주의 모습을 겹쳐 보고 나니 지금의 소영주가 너무도 불쌍한 그였다.
“에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영주님이나 기사님들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나야 소영주님의 식사만 알아서 잘 챙겨 드리면 되는 일이니까.”
그는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고는 곧 소영주의 전용 식당을 벗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페리스 그는 백작가의 요리장으로서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 이제 점심시간부터는 그가 아닌 아랫사람들이 소영주의 식사를 책임지리라. 물론 소영주의 음식을 만드는 일은 요리장인 그의 몫이다. 그가 만든 음식을 다른 요리사들이 이곳으로 가지고 와 소영주의 식사를 챙기는 것이었다.

***

무더운 여름이다.
13개로 나누어진 달 중 가장 덥다는 팔월 말. 그중에서도 가장 더운 때인 오후 두 시 경이다.
보통 이 시간이면 사람들 대부분이 휴식을 취한다.
되도록이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그늘진 곳을 찾아 들어가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 이곳 기사들의 연무장을 보면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수련을 쌓고 있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 연무장에는 아이가 하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고여덟 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세 살이라는 아기의 나이를 가진 베스렐. 녀석은 지금 그 넓은 연무장의 외곽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후읍, 후읍, 후읍…….”
깊은 호흡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베스렐의 짧은 반팔 튜닉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연무장의 한 바퀴는 400미르(m).
그리고 지금 베스렐은 그 연무장을 다섯 바퀴를 넘어 여섯 바퀴째를 돌고 있는 것이니 진정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늘 목표로 한 게 일곱 바퀴니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되는 베스렐이었다.
사실 세 살 난 아이가 하는 것치고는 너무하다 싶은 훈련이었다. 아니, 너무하다 싶은 훈련이라기보다는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상 어느 누가 세 살 난 아이에게 3페르(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뛰게 할 수 있겠는가.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단번에 나가떨어질 일이었다.
“후읍, 후읍, 조금 힘들긴 하지만 이제 복식호흡은 의식하지 않아도 잘돼 가는구나.”
그래도 조금은 익숙해진 것일까?
녀석은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처음엔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 만하다 생각했다. 연무장을 한 바퀴 뛰는 것도 처음엔 너무 힘들어 중간에서 멈추어 주저앉곤 하지 않았던가.
처음이던 5개월 전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이제는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복식호흡 때문인 걸 거야.’
베스렐은 생각했다.
‘가슴으로 하는 흉식호흡보다 이렇게 좀 더 안정되게 뛸 수 있는 걸로 봐서는 틀림없어. 블레스 경이 살을 빼는 데에는 복식호흡이 좋은 거라고 앞으로는 숨을 쉴 때에는 무조건 그걸로 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이렇게 배로 하는 호흡을 5개월 전부터 의식하지 않아도 할 수 있게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여러모로 몸에 좋은 거 같아. 앞으로도 이 복식호흡을 더욱 갈고닦아 잠을 자면서도 할 수 있게 연습해야겠어.’
복식호흡.
이것은 가슴이 아닌 배 부근, 다시 말해 복근운동에 의해 횡경막을 상하로 열심히 움직여 주는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복식호흡을 하게 되면 복압이 커지게 되고 그것은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 주게 되는 것이다. 소화흡수를 돕고 배설작용을 원활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칼로리의 소모량을 따지자면 가슴으로 하는 흉식호흡보다 복식호흡이 두 배 이상 높다고 하니 다이어트에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게 복식호흡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사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만히 앉아서 1시간 복식호흡을 하는 게 25분간 걷는 것과 같은 양의 칼로리를 소모한다고 하니 복식호흡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면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흡, 후흡. 이제 조금씩 힘이 드네. 이제 한 바퀴, 한 바퀴만이 남았으니 빨리 돌고 잠시만 쉬는 거야. 그리고 목이 많이 마르니 물을 한 모금만 마시자.”
점점 힘이 부침을 느끼지만 참고 견뎠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베스렐이다.
녀석은 고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복식호흡과 함께 계속해서 힘을 내달렸다.
탁탁탁.

“흐음, 정말 대단하군.”
“그러게요, 단장님. 놀라운 일이에요, 놀라운 일. 저는 정말 소영주님을 다시 봤습니다. 저렇게 어리신 분이 연무장을 다섯 바퀴를 넘게 돌고 있다니. 그것도 걷는 게 아닌 뛰는 거잖습니까.”
라이언 기사단의 단장인 블레스 라신과 부단장으로 있는 로가드 저윈.
그 두 사내는 연무장을 돌고 있는 베스렐을 감탄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연무장의 한 편에 있는 막사에 서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베스렐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 처음엔 힘들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던 분이신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저주받은 육체를 생각하면 영주님 말씀대로 지금부터라도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야지.”
로가드는 처음 소영주의 훈련을 맡게 된 5개월 전의 일을 떠올리고 갑자기 입가에 미소를 담으며 말했다.
“후후, 어찌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웃긴 일이에요. 살을 빼기 위해 기사들이 하는 수련을 한다니 말이에요. 그렇죠, 단장님? 단장님도 그리 생각하시죠?”
“웃기긴. 지금 보니 영주님 말씀대로 소영주님을 이렇게 처음부터 기사수련을 시키는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확실히 효과는 있잖은가. 짧은 5개월간의 훈련으로 비록 여전히 뚱뚱한 체형이지만 물렁한 지방덩어리들은 보이지 않잖은가.”
“헤헤. 뭐,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스윽, 척.
두 사람은 목이 마른지 옆의 탁자 위에 있는 물병을 들고 한 모금씩 마셨다.
“벌컥벌컥……!”
그리곤 다시 연무장을 돌고 있는 소영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베스렐은 여섯 바퀴를 돌고 마지막 일곱 바퀴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로가드는 소영주의 모습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으음, 마법사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저렇게 신체적인 능력도 좋으니……. 후후후. 제 바람이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소영주님이 마법사의 길이 아닌 기사의 길을 가셨으면 하네요, 단장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명색이 갈루안스가의 차대 영주님이 되실 분인데 당연히 마법사의 길을 걸으셔야지.”
블레스 기사단장의 말에 로가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에이. 꼭 그렇게만 생각하실 게 아니지요, 단장님. 재능이 기사 쪽으로 더 뛰어나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쯧쯧쯧…….”
“아니, 왜 혀를 차고 그러십니까, 기분 나쁘게. 제가 하는 말이 뭐 틀린 거라도 있는 겁니까, 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