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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3화)
Chapter1 시작되는 다이어트(3)
블레스 단장은 로가드가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잊고 있으면 깨닫게 해 주면 되지만 설명해 주는 게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이보게, 로가드 저윈!”
“예, 말씀해 보십시오.”
“생각을 한번 해 보게. 소영주님의 재능이 기사 쪽으로 더 뛰어나겠는가, 아니면 마법사이겠는가?”
로가드는 단장의 말에 바로 바로 대답해 주었다.
“그야 당연히 마법사겠죠. 지금까지 갈루안스가는 언제나 7써클의 대마도…… 아아, 그렇구나.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당연히 소영주님의 재능이 전대 영주님들처럼 7써클의 대마도사에 이를 정도로 뛰어날 텐데 말이야.”
로가드는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했다.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그는 뭐든 잘 받아들이고 또한 자신의 잘못된 점은 순순히 인정하는 사내였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생각이 드는 로가드였다.
‘으음, 그래, 맞아. 이거, 이거 잘만 하면 소영주님께서 찾아보기 극히 힘들다는 마검사가 될 수도 있겠는걸.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소영주님이 가지고 계신 기사의 재능도 심상치 않아 보이니까 말이야. 후후, 마검사라……. 이거 앞으로가 정말 기대가 되는걸…….’
로가드는 지금의 이 생각은 블레스 단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삼키며 소영주의 미래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
‘후후, 정말 그리 됐으면 좋겠군.’
즐거운 상상을 하는 로가드. 그런 그와는 다르게 블레스 기사단장의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흐음…….”
연무장을 다 돌고는 이제 자신들 두 사람이 있는 막사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영주를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다음부터는, 아니 내일부터라도 당장 다른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소영주님의 체력이 어느 정도 돼 가는 것 같으니 이제는 슬슬 마나 소드를 가르쳐 봐야겠군. 거기다 내일부터는 몸에 작은 모래주머니도 하나 이고 뛰게 해야겠어. 저주받은 육체를 극복하려면 계속해서 한계 이상으로 수련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의 눈에는 소영주가 하는 달리기가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전에 비해 몸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나 얼굴 표정들이 한결 편해 보였던 것이다.
그의 예리한 두 눈에 걸려든 소영주.
안타깝게도 진정한 다이어트의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었다.
“우물우물…….”
베스렐은 탁자 위에 놓인 물통을 입에 가져다 대서는 음식을 씹듯이 꼭꼭 씹어서 천천히 마셨다. 그리곤 어느 정도 목의 갈증이 해소가 된 것 같자 물통을 내려놓고는 시선을 돌려 막사 안의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기사단장과 베스렐 자신처럼 갈색머리를 하고 있는 작은 눈의 로가드 저윈.
그들 중 기사단장인 블레스 라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삼 일 내로 소영주님이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셨던 ‘마나 소드’를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베스렐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그랗게 치켜떠졌다.
“정말?”
“예, 정말입니다, 소영주님.”
“우와아, 좋았어.”
베스렐은 기사단장의 말에 기쁜 듯 자신의 두 주먹을 꼭 쥐고는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베스렐 자신도 본격적으로 기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나 소드!
이것은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비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기사가 발휘하는 오러의 힘은 그냥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나와 마찬가지로 기사들도 공간 속에 스며 있는 마나를 흡수해 몸에 쌓아야만 오러가 생겼는데 그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바로 마나 소드란 것이었다.
특이한 검의 형식, 그리고 그에 맞는 특이한 호흡법.
검의 춤이라고 할 수 있는 검무에 맞춰 호흡법을 행하면 주위의 마나는 시전자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는 기사의 원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오러로 바뀌는 것이었다.
“하하. 소영주님, 아주 기쁘신가 봅니다.”
로가드 부단장의 말에 베스렐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기쁜 일이지. 정말 잘됐어. 무려 5개월 동안을 빨리 걷기나 오래달리기같이 재미없는 것만 해서 무척이나 지루했었는데. 헤헤, 정말, 정말 잘됐어.”
베스렐은 자신도 이제는 마나 소드를 배울 수가 있다고 하니 문득 궁금증 하나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은 곧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블레스 경! 근데 어떤 걸 가르쳐 줄 거지? 마나 소드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잖아.”
블레스 단장은 소영주의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이안 마나 소드입니다.”
“이안 마나 소드?”
“예, 이안 마나 소드. 이것은 기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으로 기본 마나 소드라고도 합니다.”
“으응, 그렇구나.”
베스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자신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배운다고 하는데도 전혀 실망의 모습이나 기분 나쁘다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베스렐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마법을 가르쳐 주는 6써클의 메드레스 마도사는 베스렐에게 마법을 비롯한 모든 학문은 다 기본이 중요한 것이라고 수시로 가르침을 내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 소영주님께서는 좀 더 강한 훈련에 들어가실 겁니다. 그건…….”
블레스 기사단장은 소영주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제 좀 있으면 소영주는 마법을 배우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가 봐야 했기에 필요한 말만 빠르게 전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좀 더 강도 높은 훈련에 대한 이야기.
분명 오늘보다 힘들 터였다.
살을 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기사수련이지만 어쨌든 본격적으로 하게 될 혹독한 기사수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베스렐은 기사단장의 그 같은 말에도 별달리 어두운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지금 녀석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나 소드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지루한 달리기가 아닌 연무장의 다른 기사들처럼 검을 들고 하는 그런 수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지친 몸이지만 저도 모르게 힘이 나는 베스렐이었다.
잠시 후.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소영주님.”
“응, 잠깐만 기다려 봐.”
베스렐은 어느새 자신을 데리러 온 저택의 하인에게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게 했다.
그리곤 기사단장과 로가드 부단장에게 간단한 인사의 말을 전했다.
“그럼 나 이제 돌아갈게. 내일 봐.”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로가드 부단장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하. 마법공부 열심히 하십시오, 소영주님.”
“응, 열심히 할게.”
베스렐은 곧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 하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제 막사 안에는 블레스 기사단장과 로가드 부단장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후후, 마나 소드를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정말 기쁘긴 기쁜가 보군요. 내일부터는 좀 더 강한 훈련이 될 거라고 하는데도 저리 기쁜 얼굴로 저택으로 돌아가시다니 말이에요.”
“으음, 맞아. 하지만 내일 와서 훈련을 받게 되면 얼굴빛이 금방 사색으로 바뀌겠지.”
“하하, 그렇군요. 이거 웃으면 안 되는 일인데 웃음이 절로 나오는군요.”
이제 시작이었다.
기사가 하는 혹독한 훈련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지금까지 베스렐이 해 온 속보나 오래달리기는 필요한 체력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요즈음 보니 먹는 것도 상당히 부실한 것 같던데 말입니다. 정말 어떻게 그것만 먹고 하루를 버티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갑자기 걱정이 드는 로가드 부단장이었다.
“뭐, 그건 영주님이나 요리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봐도 그건 아니다 싶지만 말일세.”
“한데 정말 신기하긴 해요.”
“뭐가 말인가?”
“먹는 건 정말 쥐꼬리만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매일같이 훈련을 받으시고. 그런데도 살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찌고 계시니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그게 뭐가 신기한가? 그건 자네도 알고 있는 일이지 않은가.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저주로 인해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었다는 걸 말일세.”
“후후.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하네요, 단장님.”
두 사람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는 대체적으로 소영주의 훈련 방향을 어떠한 식으로 이끌어 가는 게 좋을지가 대부분이었다.
혹독한 수련. 정말 지옥의 수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Chapter2 계속되는 다이어트(1)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인 어떤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성.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천성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이었다.
정말 지독하다 싶은 수련에, 배불리 먹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가슴에 남겨진 어떤 응어리. 그런 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다 보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조금씩은 성격이 바뀌게 될 것이다.
약간은 모난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런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터였다.
여기 마델즈 왕국의 서남쪽 변경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갈루안스 백작가의 영지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성이 변화를 일으켜 약간은 신경질적이고 조금은 거친 성격을 지닌 사내아이 1명이 지금 거친 산을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푹푹푹.
어제 늦은 밤부터 내린 눈. 그것은 발목 아래를 덮을 만큼 쌓여 있었다. 당연히 지금 같은 때에 산을 오른다는 건 평소보다 더 힘들고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소진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의 끝자락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동녘 하늘에서 햇살이 떠오를 것이다.
“훅훅훅훅…….”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묵직한 호흡 소리.
베스렐 갈루안스는 호흡을 규칙적으로 내뱉으며 산을 올랐다. 작지 않은 체구다.
키 179다르(cm)에 몸무게 141크롬(kg).
이 정도면 주위의 누구나가 뚱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체격 조건이었다.
이제 열네 살인, 이 겨울이 지나면 곧 열다섯이 되는 소년치고는 정말 커다란 체구를 지닌 베스렐이었다. 또한 녀석의 얼굴을 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양 미간 사이.
그 부위는 어찌 된 일인지 불꽃 모양으로 네 가닥의 굵은 주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녀석의 그동안의 삶이 상당히 힘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은, 그리고 세월은 아이를 그렇게 소년으로 만든 것이다.
그때 한참 산을 오르고 있던 베스렐의 귀로 두 가닥의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소영주님! 같이 올라가요.”
“좀 쉬었다 오르는 게 어떻습니까, 소영주님!”
“에이……!”
베스렐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더니 곧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100미르(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올라오고 있는 두 사람에게 한 소리를 했다.
“그러게 나 혼자 산 탄다고 했잖아? 왜 따라와서 그렇게 지랄들이야, 지랄들은?”
녀석은 백작가의 소영주치고는 상당히 거친 언행을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그 같은 언행을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베스렐은 다시 신형을 돌려세워 이번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뽀드득, 뽀드득.
하얗게 눈 덮인 대지가 그의 걸음걸이마다 작은 소리를 내 주었다.
“헉헉헉. 잠시만요, 잠시만요, 소영주님.”
“우와, 죽겠네, 죽겠어.”
잠시 후에 두 사람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도 악착같이 산을 올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영주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휴우, 휴우, 휴우우…….”
“헉헉헉, 정말 너무하시네요, 소영주님.”
갈색머리에 올해 열여덟 살인 그월더 저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베스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영지의 하나뿐인 기사단인 라이언 기사단 부단장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길게 호흡을 내쉬고 있는 사내는 올해 스무 살로 역시나 같은 기사단의 부단장인 에돈 페튜스의 아들로 이름은 베로 페튜스였다.
그리고 녀석은 특이하게도 이곳 알트라스 동대륙 사람들에게서는 드물게 보이는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뭐가 너무해, 이 자식아? 처음부터 따라오지 않았으면 될 거 아냐?”
“헉헉. 에이, 소영주님도. 휴우, 휴우. 그래도 명색이 우리가 나중에 소영주님의 친위대가 될 인재들인데, 너무 야박하게 대하시네요.”
“후으읍, 휴우우. 그건 그월더의 말이 맞습니다, 소영주님. 그리고 친위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소영주님이 하시는 훈련에 동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스렐은 걸음을 다시 빠르게 옮기며 말했다.
“훈련에 동참을 해? 머리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지금 너희 둘이 하는 짓거리는 나의 새벽훈련을 방해하고 있는 거란 걸 모르는 거야?”
푹푹푹.
“어어, 소영주님, 같이 가요, 같이 가!”
“이런 또 달리시는군.”
눈앞에 고지가 있었다.
백작이 머무는 성의 뒤편에 있는 오그란 산의 정상.
베스렐은 산의 정상이 눈앞에 보이자 수련기사의 신분인 두 녀석을 따돌리고 성큼 그 산의 정상으로 올라섰다.
“같이 가요, 소영주님!”
밑의 두 녀석은 다시 한 번 소영주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