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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블레이드 1권(4화)
Chapter2 계속되는 다이어트(2)


휘이이이잉.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두터운 옷깃을 뚫고 들어왔다.
작은 바위의 위.
베스렐은 그 바위 위에 올라서서는 산 아래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끝으로는 강이 하나 보였고 그 주위에는 눈 쌓인 숲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커다란 백작 성이 보였고 그 안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흐음…….”
베스렐의 시선이 다시 옮겨져 이번엔 동녘 하늘로 향했다.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붉은 태양.
태양을 보면 언제나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의 힘들었던 고통을 몰아내고 다시 기운찬 하루의 시작을 알려 주는 태양.
‘매일같이 반복되는 힘든 수련, 그리고 마법공부. 그 모든 건 참을 수 있어. 그래,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아. 하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참기 힘든 건 배고픔이야.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배불리 먹을 수 없다는…….’
꼬르륵.
그때 때마침 녀석의 배에서 나직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그건 배고픔에 지쳐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이제 그만 밥을 달라고 하는 소리였다.
베스렐이 새벽훈련에 나서기 전에 입에 가져다 댄 건 물 세 잔과 땅콩 일곱 알이 전부였다. 당연히 배가 고파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베스렐은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보자 자신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곧바로 가슴에서 차오르는 답답함을 밖으로 터트렸다.
“으아아아악! 이 개자식 카스트리온! 언제고 네 녀석을 반드시 찢어 죽이리라! 그때를 기다려라. 으아아아악……!”
바위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베로와 그월더.
“흐엑, 깜짝이야!”
“헉!”
그 두 사람은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고함 소리가 마치 천둥이 터지는 소리와 같지 않은가.
“으아아악! 개자식 카스트리온! 죽인다, 반드시 죽여―!”
마치 미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베스렐은 몇 번을 더 그렇게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고함으로 풀어냈고 베로와 그월더는 그런 소영주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다.
“어휴, 깜짝 놀랐네. 한데 카스트리온이 누구지? 누군데 소영주님께서 저렇게 원한에 찬 말씀을 하시는 걸까?”
베로 페튜스는 팔짱을 낀 채 생각해 보았다.
카스트리온이란 이름.
하지만 생각해 본다고 처음 들어 보는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은 아니고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때 옆에서 같이 쉬고 있던 그월더가 말을 꺼냈다.
“에에, 카스트리온이라면 혹시 그거 아니야?”
“그거라니?”
베로의 말에 그월더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말했다.
“에이. 그거 몰라? 드래곤 있잖아. 드래곤! 나이가 오천 살 가까이 되는 그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
“아아, 맞아, 그랬지. 그 고룡의 이름이 카스트리온이었군. 그럼 지금 소영주님이 터트리는 고함은 녀석에게 향한 것이겠군.”
베로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월드는 바위 위에 서 있는 소영주의 커다란 뒷모습을 바라보며 측은한 눈빛을 내보였다.
“에휴, 소영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한다고 해서 어찌 인간인 우리가 이곳 중간계의 절대자에게 대적할 수 있겠어.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해야지.”
“으음, 그건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
천재마법사 가문이라 불리는 갈루안스 백작가.
이 마법사 가문은 130여 년 전에 고룡인 카스트리온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 살이 계속적으로 찌게 되어 결국은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베로와 그월더는 자신들이 모시는 백작가의 그 저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혹자는 말한다.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해서 빼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그것은 인력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갈루안스가 사람들은 남들보다 적게 먹는다.
하루에 먹는 칼로리의 양이 초저열량이라고 할 수 있는 600칼로리 이하이니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적게 먹고도 살이 찐다는 것이었다. 그건 운동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빠지는 것 없이 계속적으로 찌는 것.
그것이 바로 에이션트 드래곤이 내린 갈루안스가의 저주였다.
그때였다.
“응?”
“저건?”
무얼 보게 됐는지 베로와 그월더 두 사람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곳 오그란 산 정상에서 북으로 연결된 산길.
지금 그곳에서 낯선 것들이 이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게 두 사람의 눈에 포착되었다.
“으르르르릉.”
“크르릉.”
회색빛깔의 털을 지닌 7마리의 커다란 늑대.
놈들은 두 눈은 붉은 기운을 흘리고 입가에는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다.
오랫동안 굶은 듯한 모습.
녀석들은 바람에 섞여져 오는 사람 냄새를 맡았다. 당연히 근처 어딘가에 사람이 있음을 알고는 이렇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걸? 저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갈루안스 성이 있는 이곳 근처로는 맹수들이 나타날 수가 없는데 말이야.”
베로의 말에 그월더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한데 저 녀석들은 아무래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인데? 원래 회색 늑대들은 50여 마리 이상씩 함께 몰려다니잖아. 헤헤, 어쨌든 잘됐다. 저놈들을 잡아서 점심식사로 삼으면 되겠군.”
스르릉.
그월드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숏 소드를 빼 들었다. 베로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검을 들어 천천히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회색 늑대를 향해 내밀었다.
두 사람은 모두 수련기사다.
그리고 수련기사는 소드 익스퍼트의 바로 밑자락에 있는 소드 스컬러의 최상급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한다.
비록 능력의 한계로 인해 소드 오러(검기)를 발할 수는 없다지만 검에 실리는 오러의 양은 충분하니, 그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회색빛 늑대 7마리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사실 저 정도의 녀석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들은 자신들의 검술 실력을 밖으로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만! 저 녀석들은 내가 때려죽인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휘이익.
베스렐은 4미르(m) 높이의 바위 위에서 신형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섰다. 백사십이 넘는 몸무게가 그 어떠한 소음도 없이 안전히 착지한 걸로 봐서 그의 검술 실력은 아무래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모양이었다.
“이거나 받아!”
베스렐은 자신의 양털로 만들어진 두터운 외투를 벗어 곁에 있는 그월더에게 건네주었다.
“에이, 소영주님도 참. 저 정도의 녀석들은 저희들만으로도 충분한데…….”
“됐어. 나 기분이 좋지 않아. 좋지 않은 기분 너희 둘에게 풀기 싫으니까 잔소리 마.”
베스렐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그월더였다.
“으헥! 그 무슨 끔찍한 소리를? 저희 둘을 죽일 일 있으십니까?”
“그러니까 닥치고 조용히 하라고.”
한데 지금 보니 베스렐의 몸이 조금 이상했다.
외투를 벗고 나니 그의 상반신에 이상한 것들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튼튼한 가죽주머니 같은 게 가슴과 등에 매달려 있었고 그것은 허리와 양팔에도 마찬가지였다.
무거워 보이는 가죽주머니들.
베스렐은 그 가죽주머니들을 하나씩 풀어서 눈이 조금 쌓인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간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쿠웅!
이제 보니 그 가죽주머니 속에는 상당한 무게의 쇳덩이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베스렐은 상반신에 채워져 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는 이번엔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발목에 차여져 있는 가죽주머니도 모두 떼어 냈다.
“휴우우, 정말 대단해. 저게 무게가 아마 180크롬(kg)정도 되겠지?”
“으음, 그럴 거다. 열흘 전에 5크롬을 더 늘린다고 했으니 그사이에 더 늘리지 않았으면 네 말대로 180크롬 정도 되겠지.”
“정말, 놀라운 일이야. 확실히 소영주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니까. 완전 괴물이야, 괴물…….”
그월더는 마지막 말은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베로와 그월더 두 사람은 항상 보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놀랍다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사람이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것을 들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닌 뛰어다니면서 훈련을 쌓고 있지 않은가.
베스렐은 신체에 매달려 있던 가죽주머니를 모두 내려놓고는 마음을 서서히 다잡았다.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답답한 마음속에 피어나는 한 줄기의 살기. 상대하는 적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살기.
녀석의 미간에 자리한 불꽃 모양의 주름이 점점 짙은 색깔로 바뀌어 갔다.
“으르르릉.”
“크르릉.”
지척에까지 다다른 7마리의 회색 늑대들은 그런 베스렐의 살기에 낮게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녀석들은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무리에서 쫓겨나면서 삼 일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마 이대로 하루 이틀 정도 더 굶으면 어쩌면 녀석들은 서로에게 이빨을 들이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사냥감이 나타나지 않으면 말이다.
“좋다, 이 늑대 새끼들아! 덤벼라―!”
“조심하십시오, 소영주님!”
휘이익.
베스렐은 자신의 둥그런 얼굴을 흉악하게 만들며 7마리의 회색 늑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필요 없었다.
주먹 하나면 족했다.
“크아아아앙!”
“크어엉!”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덤비는 인간인지 멧돼지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다같이 달려들었다.
“죽어랏! 카스트리온―!”
베스렐은 고룡의 이름을 외치며 먼저 자신의 정면으로 다가오는 늑대를 향해 오른 주먹을 날렸다.
콰직!
붉은 피가 분수를 이루며 사방으로 치솟았다.
녀석은 비명 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머리가 뭉개져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앙!”
그때 또 1마리의 늑대가 곧바로 덤벼들었다.
주먹을 거둬들여 다시 사용하기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왼 주먹을 사용해도 되겠지만 자세가 조금은 불안했다.
베스렐은 어쩔 수 없는지 두 눈을 매섭게 빛내며 자신의 머리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빠각!
순간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두개골이 깨진 상대는 당연히 제대로 된 방비를 하지 못한 늑대였다.
털썩.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눈밭에 쓰러졌다.
피범벅이 된 늑대의 머리. 하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다만 머리가 깨진 충격으로 어지러워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져 있는 것뿐이었다.
“흐흐흐…….”
베스렐은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그런 녀석의 머리를 자신의 발로 있는 힘껏 차 주었다.
“죽어랏! 카스트리온!”
콰직!
붉은 피는 또 한 번 허공을 수놓았다.

베로와 그월더.
그 두 수련기사는 소영주가 늑대들을 다루는 모습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늑대들이 불쌍하다는 그런 눈빛일지도 몰랐다.
“살을 뺀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시군.”
베로의 말에 그월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우……. 그래, 맞아. 가문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고룡의 이름을 외치며 저렇게 늑대들을 묵사발로 만들고 있으니.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도를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
“그렇지. 먹을 걸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같이 힘든 검술수련에 그 어렵다는 마법을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시니, 어찌 보면 너무 안됐어. 사는 낙이란 게 없으니 말이야.”
두 사람은 소영주가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휴우우…….”
그들은 그렇게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면서 계속해서 소영주의 신형을 쫓았다.
“크아아앙!”
“죽어랏, 카스트리온―!”
퍼억!
“깨갱, 깨갱……!”
오그란 산의 정상.
이곳에선 잠시 동안 광기에 찬 인간 하나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늑대들을 때려잡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 그것을 베스렐은 몸소 보여 주고 있었다.
“죽어 버렷―!”
“깨갱!”
잠시 후, 7마리의 늑대는 잘 다져진 고기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