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헤론의 영주 1권(25화)
제11장 싸이클롭의 똥배짱-카라스와의 담판(3)
“지가 필요할 때만 부르는데 그것도 만날 때마다 으스스한 창고 같은 데로 오라고 하고 또 뭐시냐 무슨 잘난 얼굴이라고 한 번도 보여 주지도 않고 아무튼 괴짜 영감탱이입니다요.”
싸이클롭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노인과의 만남부터 그 과정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노인에 대한 욕설도 간간히 들어 가며 헐뜯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흐음… 또 다른 건?”
싸이클롭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카라스는 더욱 큰 의문이 들고 있었다. 왠지 그 노인에 대해서 좀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아, 맞다. 그 영감탱이가 항상 달고 다니는 놈이 하나 있는뎁쇼. 그놈 성깔이 뭐시냐 아주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요. 걸핏하면 칼이나 빼 드는데 얼마나 빠른지 제목에 닿을 때까지도 칼을 뽑았는지조차 몰랐다는거 아닙니까요? 위스커 그놈 앞에서 얼마나 쪽을 팔았는지. 에잉, 재수없는 염감탱이! 지금 온 놈도 그놈과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 한가락 하는 놈 같았습니다요.”
싸이클롭은 언제나 노인을 수행하는 이름 모를 검사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떠들어댔다. 아직도 당시에 당한 굴욕이 남아 있는지 자신의 목에 칼들 들이댔던 이야기를 할 때는 말보다 욕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 정도라면 상당한 고수인데… 그런 고수들을 항상 대동하고 다니면서 네게도 그런 자들을 보내줄 정도라면 상당한 위치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군.”
카라스도 이제는 싸이클롭의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단순히 용병 몇을 소개해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하들을 싸이클롭에게 빌려 준 것이었다. 그것은 수수께끼의 노인이 뭔가 노리는 것이 있었고 비밀리에 어떤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이 단순히 시장통의 폭력 조직들과 얽힌 일인지 헤론 영지 전체에 관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 큰 세력임에 틀림없었고 헤론 영지 전체에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영감탱이 얼굴도 안 보여 주는 게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요.”
“구린 구석?”
싸이클롭이 뭔가 노인의 목적에 대해서 아는 것 같자 카라스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자신이 나서야 할지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시장통 접수하고 나면 날로 뺏어 먹으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요? 뭐 감히 이 싸이클롭에게 그러지는 못하겠지만서도. 아니면…….”
“아니면?”
역시나 싸이클롭다운 대답에 카라스는 절로 실망감이 들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혹시나 하는 기대로 물었다.
“장차 시장통의 지배자가 되실 이 몸에게 미리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죠.”
“후후. 그럴 수도 있겠군.”
카라스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왠지 싸이클롭의 입에서 엄청난 음모가 술술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카라스는 과장하기 좋아하는 싸이클롭의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튼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영주나리님께서도 이 몸을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까요? 푸헤헤헤.”
싸이클롭의 얼굴에는 또다시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이 걸렸다. 드디어 카라스가 자신을 인정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았으니 잘해 보도록.”
“그, 그럼 절 도와주시는 것입니까요?”
싸이클롭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일단은 그 노인네가 붙여 준 놈 앞세워서 시작해 봐. 남부를 다 장악할 때까지는 밀어 주지.”
카라스는 싸이클롭을 밀어 주기로 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남부라면 싸이클롭이 충분히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남부를 장악하고 나서 힘에 붙인다면 그리고 싸이클롭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수수께끼의 노인이 분명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해서는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았기에 일단은 당장의 일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고, 고맙습니다요. 영주 나리님. 사실 남부까지는 몰라도 다른 곳은 그놈만 가지고는 쪼께 힘에 붙입죠.”
싸이클롭은 카라스가 밀어 준다는 말에 화색이 되어서는 싱글벙글이었다. 남부 지역은 크락슨 정도로도 충분했는데 크락슨조차 일검에 베어 버린다는 샤프가 있으니 어려움없이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카라스가 밀어 준다면 이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싸이클롭은 이미 남부 장악을 마친 것 같았다.
“남부가 끝나면 그놈 한 번 데려와 봐. 눈치채지 않도록 입단속 잘하고. 소문나면 알지?”
카라스는 싸이클롭의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시험해 보기로 했다. 만일 샤프라는 인물의 실력이 정말 그 정도라면 분명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알고 말굽쇼. 제가 쥐도 새도 모르게 대령하겠습니다요.”
싸이클롭은 주군을 대하듯 깍듯했다.
“그래. 그럼 남부 접수하면 보지.”
“감사합니다요. 영주 나리님. 그럼 소인은 물러갑죠.”
싸이클롭은 다시 한 번 넙죽 큰절을 하고는 조신조신한 걸음으로 집무실을 벗어났다. 싸이클롭이 나가고 나자 카라스는 수수께끼 노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수수께끼의 노인네라… 초고수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시장통 폭력배들의 뒤를 봐 준다.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시장통 따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 고수들을 수하로 거느릴 정도면 보다 큰 야심이 있을 터 고작 시장통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연 싸이클롭이 허황되게 과장한 것인지 정말 뭔가 비밀이 있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똑똑.
“영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오.”
싸이클롭이 떠나자 러셀 총관은 한 보따리의 서류 뭉치를 들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말씀하신 대로 이곳의 각 상단들에 통보했습니다. 일주일 후 상단주들과의 면담이 있으니 세금 문제는 그때 논의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 읽어 보시고 참고만 하십시오.”
러셀 총관은 엄청냔 양의 서류 더미를 내려놓았다. 말이 참고만 하라는 것이지 이걸 모두 읽는 것만 해도 카라스에게는 곤역이었다.
“휴우. 잘했소. 그럼 이제 급한 일은 다 끝난 것인가요?”
카라스는 절로 한숨부터 나왔다. 카라스는 애써 서류 더미를 외면한 채 한시름 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세금 문제 외에도 영지민들의 삶을 돌보셔야지요. 이곳은 상단의 입김이 너무 강해 일반 주민들은 거의 상단의 잡부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가장 풍요로운 곳이면서도 주민들의 삶은 가장 낙후된 곳이기도 하지요.”
러셀 총관은 헤론 영지의 실상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헤론 영지는 요하네스 왕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영지였고 대륙을 통틀어도 헤론 영지만큼 수익이 많이 나는 곳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지의 주민들까지 그 혜택을 고루 누리지는 못했으니 가장 살기 좋은 곳이면서 빈부의 격차가 가장 심하게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 헤론 영지였던 것이다.
“으음. 그랬던가요?”
카라스도 그러한 사정까지는 몰랐기에 조금은 뜨끔한 얼굴이었다. 카라스 역시 가진 자에 속했고 하층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영주님께서는 일반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생소하실 것입니다. 르노와르 상단의 도련님께서 그러한 것을 아시는 게 더욱 이상한 일이지요. 괜찮습니다.”
러셀 총관은 카라스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카라스가 무안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함께 이야기했다. 상단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르노와르 상단의 외아들로 자란 만큼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 바로 카라스인지도 몰랐다.
“하긴 나도 집 근처 외에는 사실 거의 다녀 보질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오?”
“그렇습니다. 헤론 영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상단의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영주님의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르노와르 상단과 몇몇 상단들은 착취를 하지 않고 많은 선처들을 베풀고 있지만 그 외의 상단에서는 주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셀 총관은 상단과 주민들의 관계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왜 주민들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고 상단들은 어떻게 주민들을 쥐어짜고 부리는지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주민들의 생존권을 틀어쥐고 있는 상단들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더욱 쥐어짰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주민들은 알면서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구조였던 것이다.
“흐음. 어쩐다…….”
듣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카라스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영주로서 영지민들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선뜻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과연 자신이 무언가를 해도 되는지조차 카라스는 자신할 수 없었다.
“영주님께서 그들의 삶을 보살펴 주셔야지요.”
“내가?”
카라스는 왠지 망설여졌다. 과연 자신이 영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신이 서지 않은 데다 르노와르 상단의 아들이 자신이 과연 상단에 맞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도 아직은 결정이 서지 않았다.
“우선은 상단이 지나치게 주민들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시고 생활이 궁핍한 주민들에게는 어느 정도 지원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러셀 총관은 우선 카라스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직접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차례로 제안했다.
“그게 가능하겠소? 사실 경비대 운영 자금도 아버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인데…….”
카라스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영지민들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지금 경비대 운영 자금도 아버지에게 빌려 쓰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영지민들에게 베풀 자금까지 빌려 달라고 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빌리다니요? 이제부터 세금을 거둬서 사용해야지요. 물론 하노스 상단주님께 빌린 돈도 다 갚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러셀 총관은 정색을 하며 이야기했다.
영주로서 당연히 세금을 거둬 필요한 곳에 사용할 권한이 있는데 사적인 돈을 끌어다 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럼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할 텐데… 괜찮겠소? 이거 영주가 되자마자 상단들을 쥐어짜려 들면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아버지께서도 서운해 하실까 걱정도 되고…….”
카라스는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그저 영주가 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아버지의 속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영주가 되었다고 세금을 더 걷어가려고 하면 분명 서운해할 수도 있었고 다른 상단들 역시 불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라스에게 상단들은 적이라기 보다는 가족이었고 아버지 하노스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세금을 더 거둬들일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기존의 액수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상상도 못할 만큼 막대한 양입니다. 단지 그것이 제대로 분배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지요.”
러셀 총관은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도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헤론 영지에서 해마다 거둬들이는 세금은 엄청난 액수였다. 레오그란드 왕국의 재정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이미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세금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전달되는지가 불명확할 뿐이었다. 그것을 명확하게 만들어 옆으로 새는 것만 막아도 헤론 영지를 운영할 자금으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것이 분명한 것이다.
“흐음. 알겠소. 그밖에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따로 정리해 주시오. 아무래도 내가 경험이 없어서 총관에게 많이 의지해야 할 것 같소.”
카라스도 러셀 총관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일단은 러셀 총관이 그쪽으로는 전문가인 만큼 최대한 재량권을 주기로 했다. 그 후의 일은 아버지인 하노스와 상의해 한 번쯤 의견을 묻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맡겨만 주십시오. 영주님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다만…….”
러셀 총관은 자신을 믿어주는 카라스에게 감사하며 충성을 바치겠다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러셀 총관의 얼굴은 다소 어두웠다.
“어려워하지 말고 말하시오.”
“영주님의 신변을 꼭 챙기십시오. 경비대의 인원도 확충해야 합니다. 영주로서의 권위와 힘을 되찾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러셀 총관은 지난날의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카라스가 각별히 안전에 주의해 주기를 당부했다.
이제 뭔가 해 보려는 시점에서 또다시 허무하게 생을 달리한다면 러셀 총관은 더 이상 이곳 헤론 영지에 머물려는 마음조차 사라질 것만 같았다. 러셀 총관의 생각에 헤론 영지는 순수한 영주가 살아남기에는 무척이나 험난한 전쟁터였다.
“음… 생각해 보지요. 가서 일 보세요.”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러셀 총관은 기대반 걱정반의 마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헤론의 영주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