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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24화)
제11장 싸이클롭의 똥배짱-카라스와의 담판(2)


헉스와 티르, 그리고 2조 대원들 외에는 카라스와 싸이클롭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기에 브록 조장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저 싸이클롭의 정신이 잠시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할 뿐이지 경비대라면 가슴부터 벌렁거린다는 생각은 조금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후후. 정 걱정되면 옆에 있던가.”
“알겠습니다. 만일 영주님께 무례를 범한다면 제 목숨을 걸고 지켜드리겠습니다.”
브록 조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만일 싸이클롭이 카라스를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 들면 목숨을 걸고 지키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고맙군. 가서 애꾸나 오라고 해.”
“예, 영주님.”
브록 조장은 굳은 얼굴로 싸이클롭을 데리러 나갔다.
잠시후 싸이클롭을 데려온 브록 조장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영주님. 키클롭스 파의 싸이클롭 두목을 데려왔습니다. 미리 경고하는데 영주님께 무례할 생각하지 말아라. 아니면 내 기필코…….”
브록 조장은 싸이클롭을 향해 최대한 험상궂은 눈빛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경고를 했다. 아니, 하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싸이클롭의 행동에 브록 조장은 입을 쩌억 벌린 채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아이고! 위,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영주 나리님을 뵙습니다요. 그간 안위무탈 하옵시고 무병장수 하옵시고… 에 또… 일확천금을 얻으시길 바라옵니다요.”
싸이클롭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카라스를 향해 넙죽 절을 하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좋은 단어들은 죄다 동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는 게 일천한 싸이클롭이 알고 있는 단어라야 몇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싸이클롭의 마음만큼은 구구절절하게 전해졌다.
“…….”
브록 조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싸이클롭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래. 일단 앉아라.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들어나 보자. 뭐 너도 엄연한 헤론 영지의 주민이니 애로 사항이나 건의 사항이 있다면 들어보고 참고하마.”
카라스는 싸이클롭의 과장된 인사에도 너무도 당연하고 태연스러웠다.
브록 조장은 잠시 자신이 바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둘의 분위기는 브록 조장에게는 넘사벽이었다.
“어찌 제가 감히 영주 나리님 앞에서 앉을 수가 있겠습니까요?”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
싸이클롭은 한사코 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며 꼿꼿하게 서 있었지만 카라스의 짜증 섞인 한마디에 얼른 자리를 주섬주섬 찾아갔다.
“명이시라면야… 커험. 앉겠습니다요.”
싸이클롭은 의자에 앉으면서도 과연 이대로 앉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무척이나 갈등하고 있었다.
“브록 조장! 계속 있을 텐가? 나가 봐도 될 것 같은데? 가서 체력단이나 마저 하지?”
“아, 예. 영주님.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크흠.”
브록 조장은 더 이상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나오면서도 브록 조장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래. 왜 왔냐? 안 보니까 슬슬 기어오르고 싶어졌나?”
“아이고! 영주 나리님.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대역무도한 생각을 품어 보기라도 하겠습니까요?”
카라스의 농담에 싸이클롭은 정색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하늘이 두쪽이 난다 해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싸이클롭의 마음 속에는 카라스의 존재가 너무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터라 본능적으로 카라스 앞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싸이클롭의 인생에 있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라면 아마 카라스와 처음 대면했던 그때이리라.
“그럼 왜?”
“사실 긴히 드릴 말씀이…….”
싸이클롭은 무척이나 조심스레 카라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얘기해 봐.”
뭔가 부탁이 있는 것 같자 카라스도 조금은 호기심이 생겼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배짱으로 자신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번에 말입죠 새로운 용병 하나를 또다시 받았습니다요.”
싸이클롭은 샤프에 대해 보고를 했다.
“용병을? 그때 그놈 같은?”
“예. 그놈 말로는 예전의 크락슨과 아는 사인데 자신의 일검도 받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요.”
싸이클롭은 자신의 새로운 수하에 대해서는 미리 상세하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자세하고도 꼼꼼하게 샤프에 대해서 이것저것 죄다 불어 버렸다. 물론 과장인지 아닌지 모를 크락슨과의 비교까지도.
“흐음. 제법이군. 한데 애꾸 네놈은 재주도 좋구나. 어째 한가락하는 놈들만 휘하에 두는지 수완도 좋단 말야. 그러다 네놈 자리 뺏기지 않겠냐?”
카라스는 신기한 듯 한동안 싸이클롭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뭔가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단순무식하기만 한 것 같은데 거느리는 수하들은 제법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목을 떨군 크락슨만 해도 절대로 싸이클롭의 밑에 있을 자가 아니었다. 한데도 그런 자를 거느리고 시장통을 접수하고 있었으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카라스는 한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과거 크락슨보다 뛰어난 자라면 맘먹기에 따라서 싸이클롭을 제거하고 두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주 나리님. 거 무슨 섭한 말씀을. 그 정도 아이들이야 제 선에서 다 해결할 수 있습죠. 저는 단지 두목으로서 자제하며 지켜보는 중입니다요. 어디 크락슨 같은 풋내기를 저와 비교하십니까요?”
싸이클롭은 순간 자존심이 상했는지 가슴을 탕탕 치며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기 시작했다.
말인즉슨 크락슨이든 샤프든 마음만 먹으면 모두 바닥에 패대기 칠 수도 있지만 두목으로서 그저 점잖게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봐도 상대를 알기는커녕 제자신에 대해서조차 하나도 모르는 싸이클롭이었다.
“후후.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시장통에서 또 말썽 피우려고 알리러 왔냐?”
카라스는 길길이 뛰는 싸이클롭의 오버에 그저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새로 얻은 수하를 앞세워 또다시 시장통을 접수할 생각인 모양인데 뒤를 좀 봐달라고 부탁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괭이 파와의 일 때문에 카라스가 자신을 특별히 맘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게 말입죠 이 바닥이 원래 가만히 있고자 해도 그냥 두질 않는 곳입니다요. 거 있잖습니까?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는데 그 뭐시기… 그것이… 암튼 잡것들이 막 흔들어대는 그런 거 말입니다요. 일전에 괭이 파 놈들도 그렇고 말입니다요. 해서 제가 싹 접수해 버리면 말썽도 없고 좋지 않겠습니까요?”
싸이클롭은 자신의 기구한 처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부터 죄다 꺼내와 어떻게든 현재의 상황을 카라스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이었다. 결론은 다른 놈들이 접수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자신이 적임자가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니가 시장통을 접수할 테니 눈 감아 달라?”
카라스의 눈초리가 살짝 가늘어졌다.
“제가 시장통을 접수하면 절대로 말썽 못 피우도록 확실하게 단속하겠습니다요. 그리고 경비대 어르신들께도 깍듯하게 할 테니 그때까지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요?”
싸이클롭은 주눅이 들어 카라스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할 말은 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장통 접수에 대한 집념만큼은 대단한 듯했다.
“흐음. 생각 좀 해 보자. 네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누군가는 시장통을 장악하려 들 테고… 기왕이면 말 잘 듣는 놈이 시장통을 장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카라스도 싸이클롭의 이야기에 흥미가 일었다.
싸이클롭을 못하게 한다면 분명 다른 조직에서 똑같은 짓을 할 것은 뻔했다. 그것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전력의 낭비인지도 몰랐다.
누가 장악하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싸이클롭이 시장의 주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이다. 언제든 필요한 일을 시킬 수도 있었고 지나친 말썽은 스스로 자제할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말썽거리 하나를 줄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역시 영명하신 영주 나리님이십니다요. 저만큼 영주 나리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시요. 내 당장 그놈의 손모가지를 그냥.”
싸이클롭은 카라스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울었다는 눈치를 채자 또다시 벌떡 일어나서는 오버하기 시작했다. 마치 카라스의 영원한 충복이라도 된 양 싸이클롭은 당당하게 외쳤다.
“자신은 있냐?”
카라스의 마음은 거의 싸이클롭에게로 기울었다. 하지만 왠지 미덥지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과연 시장통 전체를 장악할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키클롭스 파가 있는 남부 외에 다른 지역을 장악한 조직들은 상당한 세력이라는 걸 이미 보고받았기 때문이다.
“영주 나리님께서만 눈감아 주신다면야 당장에라도 시장통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요. 제가 그동안 두목으로서 자중해서 그렇지 저도 이 바닥에서는 한가락 합니다요.”
싸이클롭은 가슴을 탕탕치며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싸이클롭에게 시장통에서의 적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싸이클롭은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싸이클롭은 시장통을 접수하기 위해 태어난 하나뿐인 인물인 것이다. 그러한 자부심이 지금의 키클롭스 파를 만들고 싸이클롭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래? 저번처럼 니 수하만 앞세울 거 아니야? 그 뒈지려고 발악하다 모가지 떨어진 놈 말이야. 한 놈만으로 전체를 장악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카라스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자를 얻었다 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카라스는 무리일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살 저었다.
“헉! 모, 모가지…… 아, 감히 영주 나리님을 몰라 뵙고 싸가지 없게 굴다가 뒈진 놈이라면 잘 알고 있습죠. 이번에 얻은 아이가 그놈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잘될 것입니다요.”
모가지라는 말에 싸이클롭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의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키지 않는가.
싸이클롭은 카라스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식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지금은 카라스를 설득해야 할 시간, 싸이클롭은 카라스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뭐 나야 상관없으니 그렇게 하도록. 경비대에는 애꾸 파는 건들지 말도록 말해 두지.”
카라스는 더 이상 자신이 뭔가 도움을 줄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그러라고 허락했다.
어차피 조직들간에 치고받는 것이니 상인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굳이 막을 생각도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요. 영주 나리님. 역시 영주 나리님과 저는 뭔가 통할 줄 알았습니다요. 푸헤헤헤헤.”
카라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싸이클롭은 넙죽 절을 하며 해맑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에 한쪽 눈마저 애꾸인 싸이클롭이었지만 지금의 웃음만큼은 아이처럼 환한 웃음이었다.
카라스도 이 어울리지 않는 웃음 앞에서는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새로 왔다는 그놈 말이야. 진짜 그 정도냐? 무슨 시장통 폭력배 놈들이 검술 고수처럼 굴어? 사실 크락슨 그놈도 네놈 밑에 있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더구만.”
카라스는 어차피 싸이클롭에게 맡겼으니 신경을 끌 생각이었지만 왠지 싸이클롭이 거둔 용병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렸다. 클락슨도 그렇고 샤프도 그렇고 왜 싸이클롭의 밑에 있는 것인지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워낙 인망이 좋아 여기저기서 수하를 대 주겠다고 난리입니다요. 이놈의 인기가 끝이 없어 나서리…….”
싸이클롭은 입이 귀에까지 걸려서는 자기 자랑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주제 파악 못할 위인이 있다면 아마 싸이클롭이 그 첫 번째가 될 것이 유력했다.
“음? 수하를 대 주다니? 그럼 네놈이 직접 고용한 게 아니라 누군가 네게 수하를 대 줬다는 말이냐?”
카라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지금껏 아무 생각없이 들었는데 싸이클롭의 자랑 속에는 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카라스가 가졌던 궁금증들이 조금은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 예. 일전에 크락슨도 그렇고 이번의 놈도 웬 영감탱이가 가져다 쓰라고 해서 받아 왔습죠.”
싸이클롭은 크락슨이나 샤프를 대준 노인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흐음. 그런 수하들을 거느릴 정도면 굳이 네 도움을 빌릴 필요가 없을 텐데. 이상하군.”
카라스의 눈은 더욱 빛났다. 왜 싸이클롭 밑에 그런 대단한 수하들이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조금은 풀린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수수께끼의 노인에게로 옮겨 갔다. 싸이클롭의 말을 들어 보니 굳이 싸이클롭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싸이클롭을 앞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제가 워낙 신망이 두텁고 앞길이 창창하다 보니 미리미리 점수를 따 놓겠다는 계산이 아니겠습니까요?”
싸이클롭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닥치고 그 노인네에 대해 읊어 봐.”
카라스는 마음이 급했다. 생각할수록 노인의 정체와 목적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 노인네 말입니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짜증나고 재수없는 노인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요.”
싸이클롭은 노인의 대한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