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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23화)
제10장 신참 길들이기-샤프의 절규(2)


샤프는 다급하게 위스커를 붙잡았다.
“이놈 봐라! 어딜 잡고 지랄이야? 안 놔?”
위스커의 안색이 돌변하며 샤프의 손을 그대로 뿌리쳤다.
샤프는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 샤프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기, 기다려 주시오.”
샤프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노인에게 쫓겨간다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니놈이 내 애인이라도 된다냐?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내게 원하는 게 뭐요?”
샤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싸이클롭과 위스커에게로 넘어갔다.
“일없다. 넌 해고라니까. 내 노인네 찾아가서 한바탕 할 참이니까 너도 따라와라.”
아직은 분이 덜 풀렸는지 싸이클롭은 무거운 거구를 이끌고 몸소 행차할 기세였다.
“자, 잘못했소. 그러니 다시 생각해 주시오.”
샤프는 기겁을 하며 싸이클롭에게 빌어야 했다. 아니꼽고 자존심 상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뭘 잘못했는지는 아냐?”
싸이클롭은 삐딱한 시선으로 샤프를 힐끔 보았다.
“그게…….”
샤프는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됐다. 노인네한테 가자.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놈이랑은 일 못하겠다. 냉큼 가자니까.”
싸이클롭은 것 보라는 듯 다시금 무거운 거구를 이끈 채 샤프의 손을 잡고는 노인에게로 가려 했다.
“말해 주면… 고치겠소!”
샤프는 다급하게 외쳤다. 자신의 잘못이 뭔지는 몰라도 고치라면 다 고칠 각오였다.
“야, 부두목! 이놈 이거 어째야 쓰겄냐?”
“낸들 아우? 뭐 맘 같아서야 한딱가리 하고 쫓아 버리고 싶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그렇수? 이놈도 그 노인네한테 이대로 가면 왕창 깨질 모양인데 한 번 봐 줍시다.”
싸이클롭의 물음에 위스커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샤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전에 샤프의 자존심을 죄다 뭉개버리면서.
“한 번 봐 주라고? 이놈이 봐 준다고 들어 먹을까?”
싸이클롭은 자신없는 눈빛으로 샤프를 힐끗 바라보았다.
“잘할 자신 있소.”
샤프는 기회다 싶었는지 얼른 대답부터 했다.
“그래? 그럼 니놈 말투부터 고쳐야지. 어디 두목한테 이보시오가 뭐야? 호로자슥도 아니고.”
싸이클롭은 그제야 샤프의 말투를 걸고 넘어가며 한바탕 욕지거릴 내뱉었다.
결국 싸이클롭이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자신을 두목이라 부르지 않고 이보시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단순무식한 싸이클롭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두, 두목이라고 부르란 거요?”
“아니. 두목님이라고 불러야지. 싫으면 말고.”
“알았소. 두, 두목… 님.”
샤프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지만 너무도 하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냥 눈 딱 감고 불러 주었다.
“그리고 두목님께는 언제나 공손하고 존경심이 무럭무럭 넘치게 말할 수 있도록 한다. 알아듣것냐?”
“알겠소.”
샤프는 싸이클롭이 뭐라 하든 무조건 수그러들었다. 이제 상하 관계가 명확히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뭐? 알겠소?”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목… 님.”
샤프는 배알이 꼴리고 머리에서 김이 나는 듯했지만 참고 또 참고 한 번 더 참았다.
“그런데 네놈 실력은 좀 되냐?”
이제야 고분고분한게 제법 수하 같은 생각이 들자 싸이클롭은 넌지시 샤프의 실력에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자를 노인이 붙여 준 것인지도 궁금했다. 만일 그저그런 실력이라면 당장 가서 물릴 생각이었다.
“믿고 맡겨 보시오… 십시오.”
“크락슨 그놈하고 비교하면?”
“그자는 내 일검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샤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크락슨이라면 자신보다 아래 등급이었고 자신의 눈조차 바로 보지 못하는 완전 하급이 아닌가. 사실 크락슨과 비교되는 자체가 샤프에게는 굴욕인 셈이었다.
“그게… 정말이냐?”
하지만 싸이클롭의 입장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말이었다.
크락슨 때문에 별볼일 없던 키클롭스 파가 몇 개의 조직을 접수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아주 손쉽게. 그런 크락슨조차 일검을 받지 못한다면 샤프의 실력은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 습니다.”
“그래도 제법 하는구만. 부두목!”
“예, 두목.”
“앞으로 니가 데리고 다니면서 잘 좀 가르쳐 봐!”
싸이클롭은 샤프의 실력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아닌 척했다. 자고로 두목이란 권위가 있어야 했고 그러자면 자신이 샤프보다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 줘야 했기 때문이다.
싸이클롭은 아직 길이 덜 들여진 샤프를 완전하게 굴복시키기 위해 그리고 키클롭스 파의 어울리는 똘마니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예, 두목.”
“시장통 접수하러 가는 게 아니고 일을 배우다니요?”
샤프는 싸이클롭의 이야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실력을 물어보길래 드디어 어딘가 접수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야 이놈아! 다 단계란 게 있는 법이니라. 어디 갓 들어온 놈이 시장통을 접수하네마네 지랄이야? 너는 당분간 수금이나 해 와!”
싸이클롭은 도끼눈을 뜨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주제를 몰라도 분수가 있지 않은가. 이제 들어온 신참내기가 벌써부터 머리에 거품이 들면 결코 훌륭한 조직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수, 수금 말입니까?”
수금이라는 말에 샤프의 뒷골이 살짝 당겼다.
“하는 거 봐서 제대로 한다 싶으면 그때 생각해 보지.”
“알겠습니다.”
샤프는 더 이상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깨닫고는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찌릿.
“두목… 님.”
싸이클롭의 날카로운 눈빛에 샤프는 힘겹게 두목님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 그런데 말이야… 물어볼 게 있는데…….”
수금하러 가려는 샤프에게 싸이클롭은 또다시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에는 말하기 껄끄러운지 싸이클롭도 다소 조심스러웠다.
“말씀하십시오.”
“만일 크락슨 정도의 놈이 죽자고 덤볐는데 검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바로 목이 떨어질 정도면… 네놈과 비교했을 때 어떠냐?”
싸이클롭은 크락슨이 죽을 당시를 떠올렸다.
검을 들고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떠들더니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목이 떨이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과연 크락슨의 목을 떨군 신임 영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예사 솜씨가 아닐 것입니다. 저와 비교하면 글쎄요… 호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샤프는 대략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보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크락슨을 기준으로 한다면 자신도 일검에 해치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각이라면… 막상막하라는 말이냐?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먼저 공격하는 쪽이 유리하겠지요.”
“그래? 흐음… 그 정도란 말이지.”
싸이클롭은 신임 영주가 절대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이렇게 샤프를 무시하고 있지만 샤프가 눈이 뒤집혀 덤빈다면 자신과 위스커는 바로 죽은 목숨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혹 아는 인물이라도……?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단의 호위 무사들 중에서도 특급일 것입니다.”
“아니다. 그냥 한 번 물어본 것이다. 네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지.”
싸이클롭은 당황하며 얼버무려 버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신임 영주의 실력을 떠본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끔찍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싸이클롭은 알고 있었다.
절대로 그러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내 실력만큼은 걱정하지 마시오.”
“알았다. 가 봐라.”
“가자! 괭이 파 구역까지 접수했으니 좀 멀다.”
“갑시다.”
샤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위스커를 따라나섰다. 아니, 따라나서려고 했다.
따아아악!
순간 뒤통수에서 번개가 치며 아찔한 통증이 밀려왔다.
“크으윽! 무, 무슨 짓이냐?”
샤프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위스커를 쏘아보았다.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는데 웬 폭력이란 말인가.
“이 싸가지 없는 자식 보소. 내가 누구냐? 니 부두목 아냐? 어따 대고 반말짓거리를 씨부리는 거여? 콱!”
위스커는 자신의 직함을 강조하며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조직의 생명은 위계질서다. 니놈이 인정받으려면 그것부터 잘해야 할 것이야.”
싸이클롭은 두목다운 위엄과 목소리로 샤프를 위해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크흠. 아,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부두목님.”
샤프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위스커에게 바짝 굽혔다. 이제 샤프한 자신의 이미지는 오늘부로 쫑 났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오냐. 두목, 금방 올 테니 점심 먼저 먹지 마슈!”
“알았다, 이놈아.”
위스커와 샤프가 나가고 나자 싸이클롭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호각이라… 에라이 주둥이만 산 놈 같으니. 싸워 보지도 않고 호각이라고 말할 정도면 벌써 쫄았구만 뭐. 역시 귀신같은 영주한테는 안 되는 모양이네. 쩝.”
한참을 생각하던 싸이클롭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 걸렸다.
보지는 않았지만 샤프 역시 신임 영주에게는 안 될 것 같았다. 신임 영주는 아무 거칠 것도 없고 겁도 없어 보였는데 샤프는 이미 신임 영주에게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해 보지도 않고 꼬리를 말 정도면 둘이 붙여 봐야 답은 뻔한 것이다.


제11장 싸이클롭의 똥배짱-카라스와의 담판(1)


헤론 본부가 완성되고 경비대는 활력에 넘쳤다. 이전의 경비 사무소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의 으리으리한 건물. 각종 편의 시설은 물론 쾌적한 환경에서 하루하루 근무하다 보니 왠지 경비대에 대한 자부심은 더욱 높아만 갔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카라스의 명에 따라 경비대는 오전 시간에는 무조건 체력 단련과 진압 훈련 및 검술 수련으로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시장통에서의 폭력 조직들의 패싸움이 예전에 비해 잦아진 만큼 진압 훈련은 필수 코스였고 개중에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폭력 조직의 간부들도 간혹 있었기에 검술 수련 또한 열심이었다.
카라스도 러셀 총관 덕에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는데 일단은 영주로서 알아야 할 업무들을 파악하는 데에만 한 달 가까이 흘러갔다.
이제 대략적으로 영주로서의 업무와 해야 할 일들을 파악하고 나자 이번에는 앞으로 헤론 영지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또다시 끙끙대고 있었다.
카라스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일 뿐 아니라 대충 영주 자리만 꿰차려다가 된통 혼이나고 있는 셈이었다.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상단에 가기 전 한 번씩 들러서 싱글벙글하는 아버지 하노스 때문에 입 밖에는 절대로 낼 수 없었다.
똑똑.
“영주님, 들어가겠습니다.”
카라스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브록 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록 조장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지? 지금 체력 단련을 한창하고 있을 때 같은데?”
카라스의 눈초리가 살짝 가늘어졌다. 체력 단련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라는 엄명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급한 일 때문에…….”
브록 조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되었다.
“무슨 급한 일?”
“애꾸 파의 두목이 영주님을 뵙겠다며 찾아왔습니다.”
브록 조장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위기감이었다.
“나를? 오라고 해.”
싸이클롭의 뜬금없는 방문에 카라스도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싸이클롭이라면 자신을 피해 다니면 피해 다녔지 일부러 만나러 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됩니다. 영주님.”
브록 조장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안 돼? 왜?”
카라스는 브록 조장의 난데없는 반응에도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라스에게는 싸이클롭의 방문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인 것이다.
“위험합니다. 애꾸 파의 두목은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자입니다. 시장통에서도 그 세력을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지요. 요즘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영주님께 무슨 무례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브록 조장은 싸이클롭을 상당히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만일 카라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
영주가 일개 폭력 조직 두목을 만날 필요도 없거니와 싸이클롭처럼 포악한 인물과 단둘만 남겨 두기에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괜찮아. 그럴 놈 아니야.”
하지만 카라스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카라스는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애꾸 파에서 요즘 경비대에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도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