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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의 영주 1권(22화)
제9장 키클롭스 파의 숨은 후원자(3)


“흐음. 왠지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 말은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무리가 따른다는 말인가요?”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나 반색을 하자 카라스는 러셀 총관의 반응에 의아했다. 마치 잘못을 하고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것은…….”
카라스의 물음에 러셀 총관의 환했던 얼굴은 금방 굳어졌다.
“말씀하세요. 이곳은 우리 둘만 있는 곳입니다. 아까부터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제가 모르는 일이 있나요?”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주님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에요. 그저 궁금할 뿐이에요. 지난번에도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사연인가요?”
카라스는 러셀 총관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이 러셀 총관으로 하여금 이렇게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 이야기는 오직 영주님만 아셨으면 합니다. 상단주님께 너무 큰 은혜를 입었기에 꺼림직한 마음을 숨겨선 안 된다고 판단해 이렇게 온 것입니다.”
러셀 총관은 마음의 결심을 했는지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것이 하노스가 그간 자신을 거두어 준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길이라 믿고 있었다.
“말해 보세요. 무엇이 총관을 그리도 두렵게 만드는 건가요?”
“지난번 영주님께서 살해당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알지요. 그 이전에도 그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도.”
“혹시 범인에 대해서도 아시는지요?”
러셀 총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미 그 사건과 관련해서는 명백히 밝혀진 일이었기에 카라스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당시의 영주가 영지를 시찰하던 중 이곳의 폭력 조직들과 우연히 시비가 붙었고 홧김에 살해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헤론 영지가 다른 곳에 비해 폭력 조직들이 득세한다고 해도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못하지요. 또한 영주님이 살해당하실 때에 영주님을 호위하던 기사단이 몰살당했습니다.”
러셀 총관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헤론 영지에 널리 알려진 사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영주와 측근 몇이 변을 당했다고 알려졌는데 그것만이 아닌 듯했다.
“기사단이 몰살을 당해요?”
카라스도 이번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폭력 조직에서 기사단의 호위를 받고 있는 영주님과 시비가 붙을 수도 없지만 기사단을 몰살시키기에는 더욱 힘들겠지요. 더욱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흐음,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군요. 그럼 총관은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카라스도 러셀 총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진 대로 폭력 조직과 시비가 붙어서 홧김에 당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범인인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러셀 총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의심을 할 뿐 누군가를 단정 지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짚이는 데라도…….”
“이곳 헤론 영지는 나라 안의 또 다른 나라입니다. 대륙의 모든 상단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지요. 각 상단은 결국 하나의 나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폭력 조직이라 해도 상단의 눈 밖에 나는 순간 더 이상 이곳에 발을 붙일 수는 없게 되지요.”
“그럼… 상단 중 한 곳에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인가요?”
카라스는 자연스레 상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 헤론 영지에서 가장 큰 권력 집단은 다름 아닌 상단인 것이다. 현재 카라스 자신의 위치만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르노와르 상단의 힘으로 영주가 된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당시의 영주님께서 무언가를 조사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전의 영주님들 역시 무언가에 관련되었다는 것밖에는…….”
러셀 총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듯했다. 그저 막연하게 당시의 영주가 무언가와 관련되었다는 것 외에는.
“흐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나요?”
카라스는 과연 무엇과 관련되었기에 일국의 영주가 그것도 수차례나 죽임을 당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영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습니다.”
“어떤 말이지요?”
카라스는 러셀 총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눈을 빛냈다.

“총관! 정말 무서운 일이네. 헤론 이곳은 파고들면 들수록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이네. 어찌 이것이 가능한가? 자네는 믿을 수 있겠는가? 이곳 헤론에서 대륙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는 곳은 지금 카시안 제국이지만 그 카시안 제국조차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헤론이라네. 나는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네. 과연 이 엄청난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당시 영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러셀 총관은 당시를 회상하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으음. 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발견했길래…….”
카라스는 당시 영주가 했던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무엇을 발견한 것이길래 영주마저 그렇게 두려워했던가. 어떻게 왕국의 일개 영지인 이곳에서 대륙의 패자였던 카시안 제국마저 연관 짓는단 말인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카시안 제국은 붕괴될 것이라고. 그것이 헤론의 뜻이라고. 그 말씀을 하신 다음 날 영주님께서는 변을 당하신 것입니다.”
“음… 무서운 일이군요. 카시안 제국은 그 해에 내전이 발발해 지금은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뉘었지요. 하면 이 모든 것이 이곳의 누군가가 조종이라도 했다는 뜻인가요?”
이어지는 러셀 총관의 이야기에 카라스의 가슴까지도 철렁 내려앉아 버렸다.
러셀 총관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거대한 제국마저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을 좌우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영주님께서는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니 위험을 무릅쓰지 마시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러셀 총관은 왜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또다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총관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나도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괜한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군요.”
카라스는 너무도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한 이야기에 일단은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런 거대한 힘이라면 자칫 이곳이 초토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카라스로서는 절대로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험은 할 생각이 없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마음이 놓입니다.”
카라스의 이야기에 러셀 총관도 안도했다. 역시 이야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후후. 걱정하지 마시고 세금이나 기타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좀 해 주세요.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를 해야지요.”
“분부하신 대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러셀 총관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음… 제국마저 붕괴시킬 수 있는 세력이라……. 이거 조심해야겠는걸. 그저 평화롭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인가…….”
러셀 총관이 나가자 카라스는 생각에 잠겼다. 전생의 아픈 기억을 떨칠 수 있었던 평화롭고 유유자적하던 이곳이 알고 보니 태풍의 눈이 아닌가. 언제 태풍에 휘말리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카라스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내 소중한 것을 깨뜨리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조차 하기 전에 먼저 깨부숴 버리겠다는 결심이었다.


제10장 신참 길들이기-샤프의 절규(1)


키클롭스 파는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야심차게 쳐들어온 타이거 파를 괴멸시킨 이후 시장통에서는 키클롭스 파를 넘보는 조직들이 모두 숨죽인 채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아직 남부 전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키클롭스 파는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싸이클롭은 상가 번영회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는 종일 일어날 줄을 몰랐다.
“일 안 할 거요?”
싸이클롭을 도와주러 이곳에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기만 하는 싸이클롭에게 샤프는 참다참다 물어보기로 했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는 언제 임무를 끝마치고 되돌아갈지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이클롭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비스듬히 누워서는 흥얼거리기만 했다.
“이보시오. 일 안 할 거냐고 묻지 않소?”
샤프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다시 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단칼에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임무를 생각해서 꾹꾹 참는 중이었다.
“부두목! 누가 이렇게 떠드냐? 입 좀 닥치게 해 봐라.”
샤프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싸이클롭은 귀찮다는 듯이 부두목 위스커를 불러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따, 이 개념 팔아 처먹은 자식 보게. 니 지금 뭐라 씨부린 거여? 앙?”
부두목 위스커는 샤프를 향해 사나운 얼굴로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해댔다.
“뭐, 뭐라?”
샤프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위스커를 바라보았다.
“눈 안 깔아? 콱!”
위스커는 두 손가락으로 찌르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며 눈에 힘을 불끈 주었다.
“죽고 싶나?”
샤프의 손은 절로 검을 향했다.
살다 이런 덜 떨어진 깡패에게 이런 취급을 당한 일이 있었던가. 샤프는 어이가 없다 못해 하늘로 훨훨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래 죽고 싶다. 죽여 봐라! 자!”
위스커는 목을 쭉 빼고는 샤프에게 들이밀었다. 얼마든지 베어 보라는 것이었다.
샤프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 베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그놈 죽이는 건 니 맘인데 넌 오늘부로 해고다.”
샤프가 고민하는 사이 싸이클롭은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해고라니 뭔 소리요?”
샤프는 이건 또 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싸이클롭을 쳐다보았다.
자신은 도와주러 온 것이지 키클롭스 파에 정식으로 고용된 것도 아닌데 무슨 해고란 말인가.
“다시 그 노인네한테 가 보라는 말이지 뭔 소리는 무슨.”
싸이클롭은 짜증이 났는지 샤프는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젓더니 몸을 돌려 누워 버렸다.
“아직 아무 일도 안 했는데 그냥 가란 말이오?”
샤프는 기가 막힌 표정이 되어 버렸다. 아무 한 일도 없이 며칠을 빈둥거렸는데 이제는 가 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란 말인가.
“너같이 싸가지 없는 새끼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그 노인테한테도 단단히 말할 참이니까. 괜찮은 놈으로 보내 달랬더니 이건 크락슨 그 새끼보다 더 꼴통이 와 가지고는 쯧쯧.”
싸이클롭은 다시 홱 돌아 앉아서는 샤프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말인즉슨 샤프를 소개해 준 노인네한테 쓸모없는 놈이니 다시 데려가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샤프는 순간 뜨끔했다.
싸이클롭의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만일 정말 그렇게 해 버린다면 자신의 인생은 그 길로 끝장이었다. 이런 허접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쫓겨난다면 그야말로 남은 인생 황인 것이다.
“야 이 호로자슥아! 크락슨이 어떻게 뒈졌는지도 못 들었냐? 위아래 모르고 개기다가 맞아 뒈진거 아냐? 너도 뒈져 볼래?”
샤프의 얼굴 표정이 살짝 변한 것을 귀신같이 눈치챈 싸이클롭은 더욱 강하게 샤프를 몰아붙였다. 심지어는 금방이라도 때려죽일 것처럼 위협까지 하고 있었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의 일을 도와주러 온 것이오. 그만큼의 대우는 해 주길 바라오.”
샤프는 열불이 치솟았지만 그렇다고 싸이클롭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분명 노인은 싸이클롭이 시키는 일을 처리하도록 도우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샤프는 최소한의 대우를 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매듭짓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샤프의 너무도 순진무구한 바람일 뿐이었다.
“대우? 캬아, 이놈도 이거 정신 못 차리네. 부두목!”
싸이클롭은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감탄사를 터뜨리더니 곧장 위스커를 불렀다.
“예, 두목!”
위스커는 바람같이 싸이클롭의 옆에 섰다.
“노인네한테 연락 때려라! 이놈이 내 상전으로 앉으려고 해서 도저히 못 데리고 있겠다고.”
“알겠수.”
싸이클롭의 명령에 위스커는 곧장 달려갈 태세였다.
사실 노인이 어디 있는지 위스커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샤프의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자,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