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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



행운공자 1권(1화)
서(序) 세상에서 가장 불길한 날


자미비문(紫微碑文)


一. 행운과 불행은 천칭처럼 동등하다.

二. 일생에 단 한 번, 불행과 행운이 대가 없이 찾아올 것이다.

三. 인연이 있는 가까운 사람은 지난 날 죄의 대가를 받는다.

四. 단 한 명이 자미의…….


그날은 아주 특이한 날이었다.

백 년에 한 번 기이한 빛을 낸다는 자미성(紫微星)이 피처럼 붉은빛을 내뿜었고, 만삭이던 돼지가 뿔 달린 새끼를 낳았으며, 건장했던 숫소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사당에 걸려 있던 금줄이 툭 끊어졌고, 동네의 이름 있는 무당(巫堂)과 영매(靈媒)들이 하나같이 제정신을 잃고 길거리에서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인근의 영험한 사찰에선 번뇌를 떨치려는 듯 백팔 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했다.
무당들의 절규, 사찰의 종소리, 새끼를 낳는 돼지의 기이할 만큼 째지는 울음소리.
그 모든 게 뒤섞이며 동네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오늘은 온 세상의 불길함이 한데 모인 듯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은 낙양건씨세가의 장손이 태어나는 날이기도 했다.


1장 파락호 오대수(1)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의 도읍답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위수분지(渭水盆地) 한구석의 시골 마을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예전 천년고도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남 물류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절대로 작지는 않은 지방 도시.
딱 좋다.
오대수(吳大手)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浩然之氣)로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후후, 여기가 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장소로다!”
나이 서른의 파락호 오대수.
십대 때는 죽마고우들과 도당을 결성해 천둥벌거숭이처럼 활개를 치고 다녔고, 스물이 넘었을 때는 흑선파(黑旋派)라는 제법 멋진 이름의 전국구 방파에 소속되어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에게는 남에게 알릴 수 없는 꽤나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주먹질을 그다지 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흑선파에서 중요한 업무를 도맡아 했던 것은 전부 그 재능 덕분이다.
아마 일만 술술 풀렸다면 입파(入派) 십 년째에 흑선파의 지부 하나쯤 맡았을 텐데.
그런데 갑자기 흑선파에 총사(總師)랍시고 들어온 인간 하나가 그의 앞날을 떡하니 막아 버렸다.
앞으로 내부의 일은 자기가 다 관리하겠다면서 지휘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리더니, 느닷없이 오대수에게 흑선파의 비밀 장부를 덥썩 맡겨 버린 것이다.
생각없는 놈이었다면 드디어 신임을 얻었다고 좋아하면서 춤을 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대수는 아니다.
그는 장부를 받는 순간 자신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장부에는 뭔가 큰 비밀이 있다.
그걸 뒤집어쓸 것인가.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도망칠 것인가.
오대수는 후자를 택했고, 표국을 통해 장부를 되돌려 보낸 뒤 그 길로 냅다 줄행랑을 놓았다.
장소를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낙양.
인근에서 흑선파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땅은 적룡보(赤龍堡)가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낙양밖에 없던 것이다.

오대수는 품 안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시장통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소리 높여 상품을 권유하는 장사치들과 지글지글 끓는 기름에서 튀겨져 나오는 온갖 먹거리들까지.
“여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구만.”
오대수는 흡족하게 웃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돈이 많이 지나다닌다는 소리고, 그런 곳엔 어김없이 기회가 있는 법 아니던가.
오대수의 눈에는 그들이 모두 돈으로 보였다.
나이 서른.
신체 강건하고 인생 경험도 어느 정도 있으며 의지도 불타오른다.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흑선파에서 나오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았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 나왔을 것을.
오대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다리 밑에 모여 있는 한 무리의 거지 떼를 발견하고 눈빛이 변했다.
“허어?”
험난한 시기다.
게다가 올해에는 큰 가뭄이 들었기에 거지들이 생겨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거지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구걸을 다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다리 밑의 광경은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다리 밑 공터에 거지 떼가 잔뜩 모여 있는데, 대부분 십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이 아닌가.
그 아이들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뭉쳐 있었다.
“뭐야, 저놈은?”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다.
군계일학도 이런 군계일학이 없다.
새카맣게 때가 탄 누더기들 속에서 푸른색 비단옷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주변의 거지 아이들과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 보이는 소년이었다.
얼굴도 깨끗하고 생기기도 꽤나 잘생긴 소년이다.
나이는 열서너 살쯤 되었을까.
처음엔 거지 아이들이 몰매를 놓고 돈을 뺏으려나보다 했는데, 가만히 보니 돌아가는 분위기가 요상했다.
험하게 굴러먹었을 어린 거지들의 눈빛이 주인을 쳐다보는 강아지마냥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던 것이다.
“허어.”
오대수는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흑선파의 파락호들이 대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로 저랬다.
“요새 거지 왕초는 벌이가 저렇게 좋은가?”
오대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거지들 좀 부린다고 비단옷을 입고 살 만큼 잘 벌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온갖 사람들이 다 거지 왕초가 되려고 할 날도 머지 않았다.

하층민의 희망!
모든 사람들이 되고 싶은 선망의 직종, 거지 왕초!

“흐핫핫! 생각만으로도 웃기는구만.”
그때, 오대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거지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다리 위와 다리 밑.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으음?”
오대수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왠지 모르게 뒷골이 서늘하다.
소름이 쭈뼛 돋고 양팔의 솜털이 곤두섰다.
뭔가가 달라졌다.
그런데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오대수는 괜히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 보았다.
소매 깊숙이 숨겨 둔 전낭도 만져 보고, 발목 언저리에 묶어 둔 비도 몇 자루도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런 씨불. 뭐야, 이거?”
눈이 마주치는 동안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뚫어져라 이쪽을 응시하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거지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묘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별일이 아닌데 희한하게 마음이 찝찝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를 빼앗긴 것처럼.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미쳤나?”
오대수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려서 정신을 차렸다.
힐끗 다시 한 번 쳐다보자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등 뒤에 메고 온 봇짐에서 주먹만 한 만두를 꺼내 주변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뭐야, 결국 먹을거리를 나눠 줬을 뿐이구만.’
부잣집 도련님의 일시적인 동정이었나 보다.
아마 저 꼬마 거지들도 지금은 고마워하지만, 한 몇 년 지나면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진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부잣집 아들의 뒤통수를 쳐서라도 돈을 빼앗고 싶어질 것이다.
오대수는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바로 그랬으니까.
“카악, 퉤! 눈만 배렸네.”
그는 구시렁거리며 몸을 돌렸다.
오른발을 성큼 내딛었는데, 뭔가가 질퍽하니 달라붙었다.
“엇?”
뭔가 싶어서 보니까 둥그렇고 시커먼 게 그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
“으악! 똥?!”
척 보니 말똥이다.
관도를 지나가던 말 한 마리가 똥이라도 싼 모양.
“이런 씨불. 재수가 없으려니.”
그런데 오대수의 불행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발밑의 상태를 보려고 오른발을 들어 올렸는데, 때마침 옆에서 급하게 달려가던 어떤 여인의 발목 언저리에 발이 척 하니 닿고 말았다.
“어? 꺄, 꺄아아악―!”
꽃다운 여인네의 발목에 말똥을 발라 놨는데 어느 누가 참을 수 있을까.
“뭐야, 종 매(妹)! 무슨 일이야?!”
여인은 비명을 질렀고 동행으로 보이는 사내가 사태를 파악하고는 두 눈을 활활 불태웠다.
오대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려 했다.
“아, 아니, 잠깐. 미안하오. 이건 실수였……!”
“이런 더러운 새끼가!!”
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왼쪽 눈두덩이가 번쩍했다.
“끄악!”
오대수는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주먹이 어찌나 빠르고 매서운지 도저히 버텨 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오대수는 땅바닥에 뒤통수를 부딪치는 순간에 속으로 절규했다.
말똥을 밟은 것도 억울한데 주먹질까지 당한다고?
세상에 어찌 이런 불합리한 일이?!
하지만 오대수의 불행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첫 번째 불행은 오른쪽 발밑에 질펀할 만큼 많은 양의 말똥이 묻어 있던 것.
두 번째 불행은 주먹질을 한 사내의 힘이 오대수의 몸을 뒤집어 버릴 만큼 강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불행은…… 주변의 관도에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