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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2화)
1장 파락호 오대수(2)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
발에 찐득한 물질을 잔뜩 묻힌 채 양발을 힘차게 차올리며 뒤로 넘어져 버린 오대수.

그 결과는?
간단했다.
말똥이 하늘에서 내렸다.
마치 검은 눈처럼.

“끄아아악―!”
오대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몰매를 맞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삼십 년 인생을 통틀어서 최고로 재수없는 날이라고.
그리고, 그의 머릿속엔 왠지 모르게 푸른색 비단 옷을 입은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

석양이 지는 관도의 한가운데서 오대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이 따끔거렸다.
온몸이 욱씬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보름 이상은 움직이지 말고 정양해야 할 상처다.
“이런 씨불.”
오대수는 저려 오는 뼈마디를 꿈틀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낙양에 온 게 불과 몇 시진 전이건만, 대체 왜 이런 꼴이 된 것일까.
“우라질 말똥.”
결국 원인은 그거다.
어떤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소년을 탓하는 건 분풀이에 불과하다.
오대수는 비틀거리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짜르르 울렸다.
한 걸음을 내딛고, 온몸을 떨면서 전율하고.
한 걸음을 내딛고, 다시 온몸을 부르르 떠는 과정을 반복했다.
“크허, 내가 왜 이런 꼴을!”
다리에 끝에 이르러서 오대수는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구고 말았다.
겨우 삼 장 남짓한 다리를 건너는 데 일각이나 걸렸다.
위수분지 동쪽에선 나름대로 알아주던 흑선파의 오대수가 거지들이 사는 다리 위에서 골골대는 노파처럼 기어다니다니.
그는 밀려드는 서러움에 털썩 무릎을 꿇고 어깨를 들썩였다.
짤랑―
“엇?”
그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에게 동전을 던져 주었다.
짤랑거리며 데굴데굴 굴러온 동전이 오대수의 무릎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이건, 설마……?’
오대수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있던 인상 좋은 중년 사내가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부처님의 미소를 짓더니 척 하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으허엉!”
자신도 모르게 통곡이 흘러나왔다.
죄없이 얻어맞은 것도 억울한데, 이젠 거지 취급까지 받는 건가!
그런데 그 통곡을 들은 것인지, 주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동전을 하나씩 던져 주기 시작했다.
“쯧쯧, 젊은 사람이 안됐구만.”
“아까 보니 걸음도 불편하던데, 어디 다쳤나 보지?”
“힘내게. 힘든 세상이라도 꿋꿋이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게야.”
덕담과 함께 던져 주는 동전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스무 개 가까이 되었다.
아까 몰매를 놓던 사람들은 떠난 지 오래다.
뒤늦게 다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에 오대수는 그저 불쌍한 거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끄으으……!”
오대수는 통곡을 멈추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은 거지가 아닌데.
그럼에도 덕담들이 너무나 따뜻해서 차마 아니라는 말이 안 나온다.
“아저씨.”
툭툭.
누군가 어깨를 두드린다.
오대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푸른색 비단신을 보았다.
하늘을 닮은 푸른색 비단에 새하얀 버선.
쭉 시선을 올려보니 신발과 똑같은 푸른색 비단에 하얀색 수실로 장식된 소맷자락이 보였다.
그리고 생전 햇빛을 못 본 것처럼 새하얀 얼굴에 새카만 눈동자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너는?!”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가 곧바로 비실비실 반쯤 주저앉았다.
“끄어어…….”
무릎이 가운데로 모였고 허벅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렸다.
몰매를 맞아 전신에 성한 곳이 없는 오대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근육통이 그를 덮친 것이다.
“쯧쯧.”
“불쌍한 사람이로세.”
짤랑거리는 동전이 더욱 빨리 쌓인다.
오대수는 잠시 울상을 지었다가, 이내 다시 눈매를 험악하게 굳혔다.
“너, 너, 너 때문에……!”
눈앞에 있는 것은 거지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비단옷의 소년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이 그 소년 때문은 아니라고 이미 결론을 내렸던 오대수였으나, 막상 소년을 직접 마주하자 원망부터 튀어나왔다.
이유는 모른다.
왠지 이 모든 것이 소년의 탓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내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크윽, 너때문에 나는……!”
비틀거리다가 결국 쓰러지려는 오대수의 손을 누군가가 붙잡아 주었다.
소년이다.
유난히 눈빛이 영롱한 소년이 오대수의 손을 붙잡고 정면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어리광 피우지 말아요.”
“……뭐?”
“남 탓할 일이 아니에요. 아저씨는 예전에 나쁜 짓 많이 했죠? 오히려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예요.”
“뭐어?”
그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오대수가 실제로 파락호의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백마사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어요. 지금의 불행은 다 과거의 잘못에서 오는 거라구요.”
“허어?”
“점심시간인데 일단 같이 식사나 해요. 골목 뒤에 소면이 맛있는 객잔이 있어요.”
오대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소년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소년은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막무가내.
작은 체구지만 대장부처럼 보이는 뒷모습이 눈에 새겨진다.
‘이런 씨불. 뭐가 이렇게 당당해?’
뭔가가 잘못되었다.
왠지 억울하다.
뭐라도 얻어먹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오대수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네가 사는 거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대수는 뒤뚱거리며 따라가려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우선 서른 개가 넘게 쌓여 있는 동전들을 허둥지둥 주워 담았다.
“……버리기는 아깝잖아.”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변명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오대수는 오리처럼 엉덩이를 쭉 내민 채 삐쭉빼쭉한 걸음으로 소년의 뒤를 쫓아갔다.

***

원래 누군가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식욕을 돋우는 법이다.
싱싱한 야채를 아작아작 소리가 나도록 씹어 먹는다든지.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뜨끈한 국물을 탱탱한 면발과 함께 빨아들인다든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소년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타고난 듯했다.
겉으로 보기엔 별거 없는 평범한 소면인데, 소년이 먹는 모습을 보자 천하일미(天下一味)를 먹는 것처럼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심지어 오대수는 이미 같은 음식을 두 그릇째 먹고 있는 도중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후루룩― 후루룩―
“너는…….”
쩝, 쩝, 후루룩―
“쩝, 누구냐?”
오대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가 작아져 있었다.
입맛을 다셔야 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면을 깨끗이 다 건져 먹은 뒤, 소면의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며 되물었다.
“제 정체가 왜 중요해요?”
“중요하지! 당연히!”
“왜요? 우린 아까 다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데?”
“끄응,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된 거잖아!”
“제가 뭘 어쨌는데요?”
“…….”
오대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이 아이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뭐가 있는데…….’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오대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너 맞지?”
“뭐가요?”
“너 맞잖아!”
윽박질러 봐도 소년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그러니까 뭐가요?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끄응……!”
“그럼 아저씨는 누군데요?”
“엉? 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려면 자기부터 밝히는 게 예의죠.”
탕!
소년은 국물마저 싹 비운 그릇을 박력있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살짝 치켜든 턱 선에서 고귀한 기품이 감돈다.
“아저씬 이름이 뭐죠?”
“오, 오대수.”
“하는 일은 뭐예요?”
“…….”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구나.”
오대수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아냐, 인마.”
“아니긴. 분명히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짓 많이 했을 거야.”
“아니라니까 그러네.”
오대수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럼 하는 일이 뭔데요?”
“…….”
“거 봐요. 남들한테 피해 많이 줬을 거라니까.”
오대수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린 채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소년에게 이상한 박력만 없었다면 당장 식탁을 들어 엎었을 것이다.
흑선파 오대수.
오늘 많이 참는다.
“그럼 넌 인마!”
“네?”
“넌 이름이 뭔데?”
소년은 표정 한 번 안 바뀌고 거절했다.
“안 가르쳐 줄래요.”
“왜!!”
“내 맘이죠.”
소년은 태연하게 찻물을 들이켰다.
“이런 씹어먹을 건방진 강아지 같은 놈을 봤나. 약속해 놓고 왜 넌 안 말해?”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난 약속한 적 없어요.”
“뭣? 너, 인마. 치사하게……!”
오대수는 울화가 나서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탕!
그가 벌떡 일어나서 탁자를 내려치는데, 소년과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