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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3화)
1장 파락호 오대수(3)
오싹!
“어……?”
새카만 눈동자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오대수는 뒷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쭉― 끼치는가 싶더니, 등골을 타고 자르르 올라온 진동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 이 느낌!!’
분명하다.
몰매를 얻어맞기 직전에 다리 위에서 느꼈던 그것과 똑같은 감각이다.
빠져나간다.
분명히 뭔가가 빠져나가고 있다!
“우, 으헛?”
양팔에 오톨도톨하게 일어난 닭살을 매만지던 오대수는 문득 본능적으로 객잔 밖을 쳐다봤다.
우연일까?
새카만 바지에 소매가 없는 검은색 배자를 입고, 오른쪽 손목에는 검은색 천으로 매듭을 묶어 놓은 자들이 마침 객잔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흐, 흑선파!”
오대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십 년을 몸 담았던 곳이다.
그 특이한 복색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확신을 하고 나니 의문이 일어났다.
흑선파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여기에 있다가 들키면 적룡보에게 묵사발이 날 텐데.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절대로 흑선파는 낙양에 올 수가 없거늘!
“서, 설마?”
오대수는 조금 전과는 달리, 목숨을 위협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던 흑선파의 행동대장 몇 명이 멍하니 탁자 앞에 서 있던 오대수를 발견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비릿한 미소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저들은 자신을 잡으러 왔다.
넓고 넓은 낙양땅에서.
하필!
그가 소면을 먹고 있던 바로 이 객잔으로!
“허허…….”
오대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은 딱 한 마디뿐이었다.
“씨불, 재수 옴 붙었네.”
오대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저씨.”
“어, 어?”
“아저씨, 왜 그래요?”
소년은 오대수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쳐다봤다.
“혹시 누구한테 쫓기고 있어요?”
“그, 그게…….”
오대수는 대답도 제대로 못한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흑선파의 파락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가장 앞에 있는 행동대장은 전표(奠豹)라는 놈인데, 자기가 때려눕힌 사람의 귀를 잘라 모은다는 소문이 나서 이귀(耳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주 잔인하고 변태 같은 놈이었다.
지붕을 펄쩍펄쩍 넘어다닐 만큼 몸이 날래고, 특히 비도(飛刀) 솜씨는 십 장 밖의 솔방울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정확하다.
‘빌어먹을, 저놈이 총사한테 붙었구나.’
오대수는 명년 오늘이 자신의 제삿날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멀쩡해도 상대할까 말까인데, 이런 성치 않은 몸으로 전표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전표의 뒤에는 덩치 좋은 놈이 세 놈이나 더 붙어 있지 않은가.
‘우라질, 빌어먹을, 씨불!’
순순히 죽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전표는 발목에 숨겨 둔 비수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아저씨?”
“어이, 꼬마야. 잘 들어라. 네가 나한테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제 장난은 끝이야. 여긴 위험해질 테니 얼른 뒷문으로 나가.”
오대수는 오른쪽 손바닥 아래에 비수를 감추며 왼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가라고요? 왜?”
“위험해진다니까.”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예요?”
소년이 오묘한 눈빛으로 오대수를 바라봤다.
“걱정은 무슨. 너 같은 밉살스런 놈을 내가 왜.”
“그럼 왜 나가라 그래요?”
“이런 씨불,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나가라면 나가면 되지! 건방진 애새끼, 칼에 배때기가 찔려 봐야 말을 들을래? 앙?”
파락호 시절의 말투를 쓰면서 위협을 했는데도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쪽이 기가 질릴 만큼 깊은 눈빛으로 오대수를 응시한다.
‘무슨 애새끼가 이렇게 겁대가리가 없어?’
오대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꼬맹이는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아저씨, 좋은 사람이네?”
“뭐?”
“마음이 바뀌었어요. 따라와요.”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뒷문을 향해 통통 튀듯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 야, 인마. 너 혼자 가라니까. 따라가긴 어딜…….”
오대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갑자기 객잔 앞이 소란스러워진 것이다.
길 건너에서 객잔을 향해 다가오던 흑선파 파락호들도 중간에 멈춰 서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붉은색 바지를 입고 머리엔 흰색 두건을 쓴 장한들이 속속들이 몰려와 객잔 앞에 진을 친다.
하나같이 흉터를 몇 개나 새기고 있는 험악한 얼굴에 목 뒤엔 용의 비늘 같은 문신을 새기고 있었는데, 세 명이 다섯 명이 되고, 다섯 명이 열 명이 되자 순식간에 거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적룡보(赤龍堡)!”
오대수는 넋이 나가 버렸다.
낙양의 뒷골목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흑도의 대방파, 적룡보.
느닷없이 그들이 나타나 흑선파를 가로막은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갑자기 죽을 위기에 처하는가 싶더니, 절박한 순간에 짠! 하고 누가 나타나서 그걸 막아 준다고?
“아저씨!”
“어, 어?”
“빨리 와요. 늦으면 안 돼요!”
소년이 뒷문 쪽에서 얼굴을 빠끔히 내민 채 손을 몇 번 흔들더니 다시 사라져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오대수는 냉큼 뒷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근육통이 가시질 않아서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였지만, 그래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린 보람이 있는지 뒷문까지 가는 건 금방이었다.
뒷문은 경첩에 녹이 슬었는지 삐걱거리며 열렸다.
그런데 그 순간,
“잠깐!”
툭.
“흐어억?!”
어깨를 붙잡는 손길에 오대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반쯤 주저앉고 말았다.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흑선파인가?
어느새 객잔 안으로 뛰어들어서 자신을 붙잡은 것인가?!
“뭐, 뭐냐!”
감춰 뒀던 비수를 꽉 움켜쥐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커다란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한 육체를 지닌 사내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툼한 손이 어깨를 갈퀴처럼 파고든다.
척 하니 내민 손바닥이 오대수의 코앞에 다가왔다.
“돈.”
“……어?”
“돈 내고 가셔야지, 손님.”
혼란은 잠시.
오대수는 격앙하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씨불!”
“뭐요?”
“지가 내기로 해 놓고!”
닫혀 있는 뒷문을 열고 소리치려 했지만 어깨를 움켜쥔 두툼한 손바닥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돈.”
“젠장! 그깟 소면, 얼만데 그래!”
“뭐라? 지금 감히 우리 객잔의 소면을 우습게 보는 거요?”
숙수인지 객잔 주인인지 모를 사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쓴다.
우람한 이두박근이 상의를 터뜨릴 듯 꿈틀거렸다.
전직이 차력사라도 되는 건지, 새끼손가락만으로 호두를 까부술 것 같은 이두박근이다.
“씨, 씨불.”
오대수는 대번에 기가 죽어 버렸다.
‘내가 몸만 멀쩡했어도!’
오대수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호기를 부렸다.
“그, 그래서, 얼마냐고!”
“세 그릇이니까 동전 서른세 문.”
“낸다, 내! 그깟 돈, 낸다!”
오대수는 투덜거리며 전낭을 열었다.
절대로 이두박근 때문에 내는 게 아니다.
반평생을 지켜 온 올곧은 양심 때문이다!
짤랑― 짤랑―
전낭은 제법 묵직했다.
마침 좀 전의 의도치 않았던 구걸(?) 덕분에 동전은 많았다.
“하나, 둘, 셋, 넷…… 어?”
오대수는 전낭 안에 대충 쑤셔 넣어 놨던 동전들을 세면서 점점 눈이 커다래졌다.
“어, 어어……?”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른셋.
“……말도 안 돼!”
오대수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사이, 큰 바위 같은 얼굴을 지닌 사내는 동전을 꼼꼼히 다시 셌다.
“서른셋.”
짤랑―
돈을 챙긴 사내가 어깨를 놓아주며 뒤로 물러섰다.
“계산했소. 조심해서 가시오.”
삐걱거리면서 움직인 문이 쾅! 하고 닫힌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뒷골목에 발을 디딘 오대수는 멍하니 굳어져 있었다.
“서른셋…… 서른셋…… 서른셋…….”
그는 마치 자신이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말똥을 밟고, 몰매를 맞고, 구걸을 하고, 소면을 먹고, 흑선파에 쫓기고, 적룡보가 구해 주고.
참으로 다양하다.
오늘 하루 일진이 대체 왜 이런 걸까.
아니, 어쩌면 흑선파에서 도망치듯이 나와 낙양 땅을 밟았을 때부터 뭔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소면 세 그릇의 가격이 서른셋, 다리에서 주운 동전도 서른셋?”
그토록 많았던 동전이 이젠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오늘 주운 동전과 쓴 동전.
두 개의 숫자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어떤 운명의 장난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가.
하늘의 악의(惡意)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느냔 말이다.
“……어이, 우연이지? 그렇지?”
오대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어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푸르딩딩한 꼬맹이가 손을 흔들 뿐이다.
“아저씨, 빨리 오라니까요!”
오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씨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