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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25화)
8장 발각(發覺)(2)
“잠깐,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불려 온 것을 강 포두님은 아십니까?”
소녀를 향한 질문이 아니다.
소녀의 옆에 호위무장마냥 버티고 서 있는 호방한 인상의 방만수 포두를 향한 질문이었다.
“크흠. 아니, 강 포두님은 모르고 계시네.”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겠군요. 돌아가겠습니다.”
오칠은 실제로 몸을 돌렸다.
“잠깐!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방만수 포두가 다가와 오칠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락부락한 인상 위로 새카만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내가 직접 불렀는데 먼저 등을 돌리다니. 자네, 이건 예의가 아니야!”
“예의가 아닌 행동을 한 건 방 포두님이 먼저십니다.”
“뭐야!”
“저는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할 문서만도 열 건이 넘습니다. 그런 상황에 이런 곳에서 어린 소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을뿐더러, 그게 강 포두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른 포두 밑에 있는 포졸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데려다가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오칠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또한 타당한 이유를 들고 있었다.
방만수는 자신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칠의 말이 이치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되자 벌레를 씹은 것마냥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막무가내로 못하겠다고 나온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대답할 말이 궁색해지는 것이다.
“크흠! 크흠!”
그는 진몽화를 힐끗 쳐다본 뒤 방법을 바꿨다.
“크흠. 이봐, 오칠. 물론 자네 사정이야 알지만, 이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난 그동안 꽤나 정의롭게 살아온 사람이야. 내가 포두 노릇을 하면서 억울한 일을 해결한 사건만 해도 수백 건이 넘는다고! 그리고 내가 언제 이런 식으로 자네를 부른 적이 있었나?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렇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오칠은 얼떨떨하니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해 주게. 나도 별거 아닌 일이었으면 자네를 부르지도 않았어!”
“……”
“자, 이제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생겼나?”
오칠은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방 포두 역시 정의감이 투철한, 몇 안 되는 포두 중 한 사람이다.
게다가 권위적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좋게 부탁하는데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좋아, 좋아! 그럼 일단 이리 와서 앉게.”
방만수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오칠을 안쪽으로 데리고 와서 앉혔다.
“그리고 저분은 해검진가의 따님이신 몽화 아가씨일세. 와룡봉추(臥龍鳳雛) 못지않게 식견이 대단한 분이시니 한마디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네.”
“해검진가의 아가씨라구요?”
오칠은 깜짝 놀라 아름다운 소녀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진씨세가의 따님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칠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웬만한 책은 일각 만에 다 읽어 버리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한 글자도 빠짐없이 외워 버린다는 소위 ‘천재’였다.
무재를 타고나서 무림맹에서 제법 명성을 떨치고 있는 대공자조차 그녀에 비하면 빛이 바래 버린다는 진짜배기 천재.
그런 소녀가 눈앞에 있다니.
오칠은 좀처럼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흐응.”
소녀가 씩 웃는다.
활발한 기운이 감도는 씩씩한 웃음이었다.
“제가 다시 보이나요?”
“……죄송합니다.”
“뭐가요? 저를 무시하고 가려고 했던 게요, 아니면 어린 여인이라고 해서 우습게 봤던 게요?”
“…….”
혹시나 했는데 역시 미움을 샀던 건가.
오칠은 무안해져서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농담이에요. 제가 인사도 하기 전에 성급하게 말한 점도 있으니 그쪽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먼저 확인할 게 몇 가지 있어요.”
촤르륵.
진몽화는 두루마리 죽편을 길게 펼쳤다.
“약관의 나이. 포관으로 들어온 지 삼 년째고, 타고난 눈썰미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강석 포두님의 직속으로 배속됨. 부모는 없고, 천애고아로 성장. 다리 밑에서 성장했다는 정보가 있으며, 지금도 종종 음식을 사서 방문 중. 어린 시절에 벌어진 사건을 계기로 포관이 된 것으로 짐작됨. 좌수검(左手劍)을 쓰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신법을 사용함. 스스로 공부해서 무관시험을 통과한 자수성가형 인재…… 어때요? 다 맞나요?”
“맞…… 습니다.”
오칠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놀랐나요? 제가 이런 걸 알고 있어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가문의 인맥을 동원한 거예요. 세상엔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밥줄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진몽화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어쨌거나, 저에 대해 조사하셨다는 뜻이군요.”
“맞아요.”
“왜입니까?”
오칠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마냥 날카로운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왜일까요?”
“예?”
“제가 왜 그쪽에 대해 조사를 했을까요? 짐작가는 점이 있으세요?”
움찔 몸을 떠는 오칠.
진몽화는 그런 오칠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오칠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시험이다! 질문을 던져 놓고 내 마음을 읽으려는 거야!’
오칠은 머릿속으로 잔잔한 표면의 호수를 상상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가라앉자 얼굴 표정도 차분해진다.
그는 감정을 일절 드러내지 않은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흐응―”
“말씀해 주십시오. 어째서 관의 일을 하는 포졸의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오칠은 자신이 잘 대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들 중에 흠잡을 부분은 없다.
딱히 튀는 부분도 없다.
평범하게 대답하면서 강직한 포졸답게 잘못된 점을 지적까지 했다.
그런데 담담하게 되묻는 순간, 오칠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글거리며 듣고 있던 진몽화가 이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며 명백하게 의심스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그거 알아요? 머리가 좋은 범인들이 자주하는 실수라는 게 있어요.”
“머리가 좋은 범인의…… 실수?”
“도둑질을 한 사람은 자기가 도둑질을 안 한 것처럼 보이려 노력하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노력을 해요. 대부분 자신은 범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꾸미려 한다는 뜻이에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거기서 바로 함정이 생겨요.”
“예?”
“다들 범죄가 저지른 시간에 자기가 범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찾기 위해 다른 약속처를 만들어 놓죠. 예를 들면 황하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굳이 진강에 도와주러 가기도 해요. 심지어는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지도 못하는 척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
오칠은 순간적으로 지금 공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그 말씀은 설마…….”
“그래요. 당신,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거죠? 내가 왜 그쪽을 조사했겠냐고 물었을 때, 만약 정말로 억울한 사내 같았으면 화를 내거나 억울해했을 상황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희한할 정도로 차분했죠. 마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가장 이득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요.”
“아…….”
“그러니 이걸 다시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진몽화는 씩 웃으며 깍지를 끼고 그 위에 자신의 앙증맞은 얼굴을 올려놓았다.
귀여운 얼굴.
예쁜 외모.
하지만 오칠에겐 그녀가 지옥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보였다.
“당신, 혹시 건소길이라는 사람을 알아요?”
쿵!
오칠은 자신의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