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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공자 1권(24화)
8장 발각(發覺)(1)


“저는…….”
건소길이 대답하려는 순간, 뒤에 있던 장일봉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 운수가 나쁜 걸 감히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는 거냐! 나참, 팽가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기가 손해 볼 것 같으니까 핑계를 대는 거야, 뭐야?”
“뭣……!”
“속 좁구나, 팽씨 집안 공자님! 소인배야, 소인배. 자기가 잘못한 게 있으면 시원스럽게 인정하고 남자답게 털어 버릴 것이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적거리는 꼴이라니!”
“……!!”
순간, 팽소뢰의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핑계를 댔단 말이냐!”
“그럼 그게 핑계가 아닌가? 뭐? 도련님을 만나고 나서 운이 나빠졌다고? 에잇! 길 가는 사람 백 명을 붙잡고 물어봐라!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긴지!”
“끄응…….”
팽소뢰는 신음을 흘렸다.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실제로 건씨세가 근처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그럴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을.
게다가 천벌사신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암묵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으니 더더욱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집이 하북에 있는 팽소뢰는 그 사실을 몰랐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일봉의 달변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라고. 내가 마음먹고 도망쳤으면 그 신패조차 찾지 못할 수도 있지 않았나? 혹시 아직도 천리추종향(千里追從香)을 믿고 있다면 오산이라고 말해 주지. 난 이미 그 냄새를 지워 놨어.”
“끄응.”
팽소뢰는 다시 한 번 신음을 흘렸다.
실제로 그는 오호신패에 묻혀 놓았던 천리추종향을 쫓아가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낙양 동북쪽 숲 속에서 종적은 끊겨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건씨세가로 돌아왔던 것이다.
“사람이 양심이 좀 있어야지. 내가 신패를 왜 돌려줬는데? 다 도련님 때문에 돌려준 거야! 도련님이 안 계셨으면 난 계속 발뺌했을걸? 그럼 그 오호신패를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장일봉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고, 팽소뢰는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이 되어 갔다.
장일봉이 괘씸하긴 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도둑질을 한 게 잘했다는 거요?”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다만 그걸로 죽이려는 건 좀 과하잖아!”
“당신은 하북팽가의 신물을 훔쳤소!!”
“돌려줬잖아!”
“도둑질을 해 놓고 다시 돌려주면 끝난 거요? 무슨 그런 법이 다 있소!”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갑자기 퍽! 하고 굉음이 들렸다.
“어?”
“으응?”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뒤로 돌아간다.
반쯤 박살 난, 대죽으로 만들어진 울타리.
그리고 그 사이로 삐죽하게 솟아 있는 새카만 뿔.
“헉!!”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 중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장일봉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번개와 같은 속도로 근처의 대나무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양옆의 대나무를 교대로 박차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람 키의 세 배나 되는 높은 대나무 위로 올라선 것이다.
건소길은 난감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고, 팽소뢰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이보시오, 건 공자. 이게 무슨…….”
우지지직―!
“흐억?!”
쾅!
그 순간, 대나무 울타리가 무너지고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새카맣고 거대한 동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매일같이 단련을 거르지 않은 팽소뢰조차 간신히 칼을 뽑아 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쩡!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칼날을 후려쳤고, 미처 자세를 똑바로 잡지 못한 팽소뢰는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쿨럭!!”
흡사 절정고수의 장공을 맞은 것처럼 오장육부가 울렁거렸다.
텅!
대나무에 등을 부딪친 팽소뢰는 똑바로 서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다리가 풀린 건지 자꾸만 허우적거릴 뿐, 좀체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크윽!”
팽소뢰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허리를 쭉 펴면서 그가 익힌 철혈패왕공을 극성까지 끌어 올렸다.
울렁거리던 가슴이 뻥 뚫리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누구냐!!”
다시 한 번 달려드는 새카만 그림자.
그리고 그에 반격하기 위해 팽소뢰가 대도를 높이 치켜드는 순간,
우르르릉―!
콰과광!!
“……!!”
팽소뢰는 온몸이 새카맣게 타 버린 채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

“대길아!!”
옆으로 쓰러지는 팽소뢰의 앞에는 숨을 씨근거리며 발을 쿵쿵, 굴리고 있는 커다란 흑돼지가 있었다.
몸길이가 일 장(一丈:3미터), 신장은 오 척 반(165센티가량).
피부는 온통 검어서 희한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거기에 전신이 바위 같은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는, 괴물 같은 돼지였다.
멧돼지를 본 적이 있는가?
야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야생에서 살아가는 멧돼지는 농가에서 키우는 돼지와는 체형부터가 완전히 다른 생물이다.
출렁이는 뱃살이 없으며, 전체적으로 근육질이라 둔해 보이지도 않는다.
순간적인 속도는 말을 따라잡을 만큼 빠르며, 육중한 체중으로 엄니를 세워 들이받으면 아름드리나무가 부러진다.
단단한 근육은 호랑이의 발톱조차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대나무 울타리에 갇혀 있던 대길이는 바로 그런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길이가 한 척이나 되는 뾰족한 뿔이 정수리 위에 돋아나 있었는데, 흥분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그 앞에 있는 팽소뢰의 몸이 꿰뚫릴 것만 같았다.
뀌이이익―!
대길이는 뒷발을 쿵쿵, 구르며 짧은 꼬리를 자기의 엉덩이에 탁탁 두드렸다.
건소길은 황급히 대길이에게 다가가 벌름거리는 콧등을 후려쳤다.
“그만해!”
꾸이익!
대길이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건소길은 허리를 쭉 펴며 엄한 눈빛으로 대길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함부로 뇌기(雷氣)를 쓰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꾸이익! 꾸이익!
“변명하지 마! 게다가 사람을 감전까지 시키면 어떻게 해!”
대길이는 뒤로 물러나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코를 땅에다 갖다 박았다.
어린 시절부터 보여 주는 ‘반성’의 태도였다.
건소길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어릴 때는 안 이랬는데, 왜 이렇게 사나워졌어?”
꾸이익……!
“뇌기를 넣어 준 뒤로 점점 몸이 커지는가 싶더니, 작년부터는 번개까지 뿜어내고. 너 자꾸 이러면 정말로 쇠창살에 가둬야 돼.”
꾸이이익!
대길이는 놀랍게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 쇠창살이라는 말에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건소길은 대길이의 콧등을 한 대 더 때려 준 뒤 새카맣게 그을린 채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팽소뢰를 바라보았다.
“휴우, 이걸 어쩐다.”
어째 일이 점점 꼬이는 기분이다.
건소길은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

“의외네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창호문 안쪽엔 천을 늘어뜨려서 햇빛까지 막아 놓았다.
오칠은 밀폐된 공간 특유의 텁텁한 공기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다.
창호문을 찢고, 나무 격자를 부순 뒤 탈출하고 싶었다.
옆에서 호랑이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방만수 포두만 없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오칠은 혹시나 초조한 마음이 겉으로 드러날까 봐 주의하며 뜨거운 숨을 삼켰다.
“저는 좀 더…… 뭐랄까, 영리한 인상의 사람을 생각했는데요.”
“…….”
“생각보다 강직한 인상이라 놀랐어요.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신념도 있을 것 같은 인상인데…….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그런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오칠은 그의 답답함을 점점 더 가중시키고 있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비단 궁장.
아무런 장식도 없어서 얼핏 수수한듯 보이지만 재질이 워낙 고가인 탓에 저절로 빛이 나는 듯 고급스런 옷차림이다.
게다가 얼굴은 또 어떤가.
매끈하다 못해 광이 나는 듯한 새하얀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명장의 조각상 같다.
월궁항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사내가 백이면 백이 모두 뒤돌아볼 법한 미모의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속을 꿰뚫어 보는 듯 의미심장한 말만 지껄이고 있으니, 오칠은 영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