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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15화)
Chapter 5 새로운 부하들을 얻다(2)
알론소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초대 황제폐하의 유지는 대대로 이어지는 황제에게 도달되도록 저희를 통해 조치가 되었습니다.”
자신 있는 표정으로 알론소가 말했다.
“하긴 그렇겠군. 말로 이어지는 것인지라 언젠가는 유실될 수 있는 법. 너희가 황위를 계승하는 자만 읽을 수 있는 전대 황제의 기록에 그런 것들을 남겨 둔다면 혹시라도 빼먹는 일은 없겠지.”
카이젠의 말에 이퀼라스는 자신이 카이젠을 깨우기 위한 비밀을 알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승하. 그 이후 황위 계승자만이 읽을 수 있는 전 황제의 기록을 읽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내용 또한 지금 앞에 있는 알론소란 노인이 기록한 것일 수도 있었다.
“너희가 정보도 수집하나? 아니면 오직 황실과 나와 관계된 일만 하였나?”
카이젠의 질문에 알론소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황실과 대군주폐하와 관련되어 있는 범위 내까지만 조사를 합니다. 그 이상은 제국의 황실이 유지되는 한 알 필요도, 알 이유도 없지요.”
너무나 딱딱한 말이었지만 카이젠은 상관없는 듯했다. 이들은 봉인되어 있는 자신을 대대손손 기다리며 지켜 온 자들이었다. 오직 그것만을 행하기 위해 선발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황태자를 암살하려는 음모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파악했지? 혹 황위에 변동이 생기면 복잡하고 곤란해지니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번뜩.
이퀼라스의 눈이 돌아갔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 나오니 정신이 바짝 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퀼라스의 표정 변화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알론소는 천천히 대답했다.
“대공이 모종의 지원을 받아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까지는 파악했습니다.”
“그 외에는?”
이퀼라스가 다급하게 물어보았다. 잘하면 적들을 일망타진할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알론소는 이퀼라스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퀼라스의 얼굴이 빨개졌다. 자신이 무시당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괜찮아. 말해 봐. 듣고 싶군. 그리고 너희의 입장을 확실히 황태자에게 말해 줘.”
카이젠이 물어보자 그제야 알론소의 입이 열렸다.
“어떤 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닙니다.”
알론소가 확실히 선을 그었다. 누가 황제가 되더라도 자신들은 초대 다이제스 황제의 유지만 이어진다면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이이…….”
너무나 당당한 그의 대답에 이퀼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알론소는 당당했다.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다이제스 황가의 피가 완전히 끊어지면 곤란했기에 과연 어떤 자들이 대공을 부추기는지는 조사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흔적도 전혀 남기지 않고 오로지 일방적으로 대공을 지원했는지 저희로서도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입니다.”
“오호, 그래? 누구지? 누가 이득도 안 나는 일에 그리 열성적으로 대공을 지원한 거야? 타국의 지원인가?”
대공을 지원했다면 그가 황제에 오른 다음에 이권을 받을 수 있기 위해 자신을 많이 드러내거나 하다못해 지원한 사실을 증거로 남겨야 했다. 하지만 일방적 지원은 조금 이상했다.
“의외로 녀석들의 행동도 꽤 은밀하여 최근에야 조금이나마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놈들이 아무것도 지원받지 않은 채 그냥 일방적으로 주다 보니 조사를 해 나갈 실타래를 찾기 어려웠지요.”
“그래도 제법이군. 그림자에서 활동하는 너희의 이목도 숨길 정도라니. 하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퍼 주고 사라지는 놈들이 가장 찾아내기 어렵긴 하지. 그리고 너희 또한 너희의 흔적을 드러낼 수 없으니 곤란했겠군.”
카이젠의 말에 알론소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군주폐하. 우리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해 봐. 누구지?”
카이젠이 고개를 돌려 이퀼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가련한 황태자를 밀어내고 제국을 꿀꺽 먹으려 한 거야? 아마 대공은 그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 음모를 꾸민 녀석에게 황태자를 시해한 나쁜 놈으로 몰려 쫓겨나겠지.”
“그런!”
이퀼라스는 눈을 껌벅거렸다. 갑작스러운 카이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황태자가 죽게 되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지. 그 상황에서 조금만 튕겨 주면 대공에 대한 적대심을 키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야.”
당장 눈앞의 이권을 대공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면,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공을 밀어내는 방법이었다.
연약한 황태자를 죽인 대공은 충분히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되면 억울하게 시해당한 황태자를 위해 들고 일어난 자들은 제국의 충성스러운 자들이라는 칭호도 받을 수 있겠지. 역사서의 한편을 기록하면서.”
카이젠의 말에 알론소가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씀대로입니다, 대군주폐하. 진짜 적은 7인의 기사단입니다.”
7인의 기사단이란 말에 이퀼라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처음 듣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것도 너희와 같은 비밀결사냐?”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고?”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체를 대충 짐작하기는 하나 자세히는 알 수 없는 곳이라 해야 하나요.”
그때 이퀼라스가 소리쳤다.
“설마 오대 공작가와 이대 화족가?”
제국을 이끌어 가는 핵심 세력이었다. 현재 황실의 힘이 계속 줄어들었기에 사실상 그들 가문이 제국을 이끌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알론소는 이퀼라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퀼라스의 얼굴이 다시 벌게졌으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허튼짓은 하지 않았다.
“사실상 제국의 파워엘리트인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권력을 다투며 경쟁하는 사이입니다. 각자가 서로를 경계하기에 쉽게 뭉치기 어렵고 그런 그들 간의 세력 다툼을 황제가 잘 조정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요.”
“알려져 있다는 말은 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군.”
카이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서로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각 가문 간 협력회의를 일백 년 전에 창설했지요.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은 은밀히 서로서로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황권에 대항하기 위해서군. 아니 황권을 뛰어넘기 위해서인가?”
카이젠의 말에 이퀼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로서로 경쟁하기에 힘이 나뉘어 있는 그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로 힘을 합친다면 황제라 할지라도 그들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언제부터 그들이 본격적으로 제국을 털어 먹기로 결심한 것이지? 비록 지금 상황에서는 황제를 인정해 주면서 각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텐데?”
황제란 자리가 탐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공작 가문이나 화족 가문을 배제하고 자신이 먹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나 컸다. 한 명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일곱 가문의 협력체계는 와해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론소가 카이젠과 이퀼라스를 한 번씩 훑어본 후 대답했다.
“그들은 전 황제의 승하를 계기로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각자 제국을 나눠 가지기로 암묵적 합의가 된 것이죠.”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말에 이퀼라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갈라지고 갈라져서 예전 영토의 반의반도 안 되는 다이제스 제국이었다. 그런데 일곱 지역의 파벌이 새롭게 제국을 나눠 가지겠다는 말에 기겁한 것이다.
“하하. 재밌군. 황제라는 직위는 가지기 어렵고 그렇다고 공작이나 화족이란 직위는 이제 지루하니 적어도 왕이 되고 싶은 모양이군. 하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그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이퀼라스가 사납게 카이젠을 바라보았으나 카이젠은 이퀼라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저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탁!
카이젠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그리고 알론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제국의 정통성을 없애는 것. 사람들이 황가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또한 황가의 핏줄이 끊어진다면 제국은 사분오열되겠지. 그리고 각 군벌은 각자의 왕국을 만들어 왕으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고.”
카이젠의 설명에 알론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황가를 중심으로 하는 다이제스 제국은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이쪽 근방 지역을 다스리는 왕국 정도로 규모가 줄어들겠지만. 제국이란 이름은 단지 영토만 크다고 얻는 것이 아니니까요. 황도를 밀어 버리고 누가 점령하기에는 각자 부담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지요.”
“괜히 그러다가 체하니까. 차라리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나눠서 서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좋겠지.”
카이젠이 잠시 중얼거리더니 알론소에게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도대체 놈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지? 아마도 제국을 이끌어 가는 파워 엘리트 집단일 텐데.”
“우선 황성에 거주하며 각 가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자들을 본다면.”
잠시 이퀼라스를 바라본 알론소는 이내 카이젠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무미건조한 음성. 제3자의 관점에서 철저히 바라보는 태도였다.
“북방기사단 단장 알프레드 공작, 남방기사단 단장 쿠쉬도란 공작, 동방기사단 단장 아뮤렛 공작, 서방기사단 단장 슈멜리아 공작, 중앙기사단 단장 메큐란 공작, 그리고 화족에 속한 제국 행정재무관 파뮤란. 제국 국방서기관 에스튜아입니다. 그리고 각각 그들이 거느리는 파벌이 제국 수뇌부의 80퍼센트라 보면 됩니다.”
“하아. 80퍼센트? 그럼 대충 나머지 20퍼센트는 황제의 직속에 속한 자들인가?”
“대충 황가의 편을 들면서 눈치를 보거나 스파이 짓을 하는 자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물론 황실에서는 자신들의 편이 80퍼센트라 생각하고 있지만 잘못된 정보이지요.”
대공이 포섭했다고 생각한 자들 상당수가 사실은 이미 각 공작가와 화족가에 소속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통해 이미 대공의 행동에 대한 정보가 넘어간 상태.
애초에 그들의 손아귀 안에서 움직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이가 없군. 제국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나라가 이렇게 엉망이라니.”
카이젠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황제가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을 유지했던 카이젠으로서는 무슨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날 법한 일이었다.
“근데 화족이란 게 뭐지?”
대화 도중에 자신이 몰랐던 작위가 있었던 것이다. 공후백자남의 작위만 알고 있었던 카이젠에게 있어서 생소한 작위였다.
카이젠의 질문에 알론소가 대답했다.
“화족은 준공작 가문입니다. 공작가가 제국 건국과 더불어 성장한 무가라면 화족 가문은 제국이 안정화되면서 생성된 문가입니다. 사실 상업을 바탕으로 하는 자금력이 그들의 핵심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돈이면 못할 일이 없으니. 설사 무력이 밀려도 돈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니까.”
“그들 화족 가문이 이끄는 두 개의 상단이 제국 경제의 상당량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화족은 준공작의 지위를 가지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백작 이상의 가문 중 재력을 겸비하여 공작에 버금가는 작위를 얻게 된 자들이었다.
공작가가 제국의 군부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들 화족은 제국의 경제와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좀 더 세밀한 작업을 통해 알아낸 그들 세력의 행정 관료들은 내무부 국장 피첼카르. 외무부 국장 메르타니. 시종장 뉴라오…….”
알론소가 제국 행정부 각 요직의 인물들을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퀼라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오히려 제국의 수뇌부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황제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다짐하던 자들이 실상은 각 파벌의 공작 가문이나 화족 가문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그들은 대공을 가지고 논 것이었다. 직접 나서서 피를 묻히는 일을 대공에게 맡기고 그 뒤처리를 자신들이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알론소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마무리 정리했다.
“현재 각 공작가와 화족가들은 지난 100년 동안 확실하게 제국의 핵심 계층, 파워 엘리트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각자의 왕국을 세우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오랜 평화시대를 거치면서 정보부의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한 황실의 잘못이 큽니다.”
알론소의 말에 이퀼라스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바로 코앞에서 황실을 가지고 놀려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알론소가 조금은 이퀼라스가 위안을 얻을 만한 말을 했다.
“뭐. 사실은 그들의 세력이 이미 너무나 강성해졌기에 제대로 된 정보부를 만들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지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카이젠은 그 말을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지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지금 이야기를 들으니 황실에 이퀼라스의 편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시종장, 시녀장만 하더라도 7인의 기사단에 포섭되어 있는 상태였다.
황실에서 어떤 일을 벌이든지 간에 그들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