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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17화)
Chapter 6 황궁의 암투(2)


쿠웅.
시종장이 사라지자 문 밖을 지키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태산과 같은 자세로 서 있기 시작했다.
“제길.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
나지막한 음성이 가면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이곳으로 따라 들어오게 된 카투였다. 그는 투덜거리며 황태자의 집무실 문 앞을 지키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오건만. 쳇.”
카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곳은 황제의 집무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누가 함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쨌든 카투를 귀찮게 하는 자들이 나온다면 그것은 이퀼라스를 암살하기 위해 덤벼든 자들이 될 터였다.

* * *

끼익.
문이 닫히자 이퀼라스는 그제야 집무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피곤해.”
눈을 깜박거렸다. 이제 곧 해가 뜰 터였다. 밤새도록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금 눈을 감고 잘 수는 없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것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잘 수가 없었다.
“후훗. 시종장 녀석.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군.”
어둠 속에서 카이젠이 등장했다. 그리고 방 안을 둘러보며 이퀼라스에게 말했다.
“이야기했던 것 잊지 마. 그대로 하면 문제없을 거다.”
카이젠과 이퀼라스는 몇 시간 전 이곳에 도착하여 앞으로의 대응을 논의했다. 이퀼라스도 매우 피곤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
사방이 적이었다. 사실상 황궁의 모든 사람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그냥 모른 채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 어차피 대응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응할 방법이 있었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 상황에서 이퀼라스에게는 유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적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뇌격 기사단이 암흑 속에서 튀어나오게 되어 밑천을 보이게 된 것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나 사실은 그들의 능력은 아직 하나도 보여지지 않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적들에게 악몽을. 죽음과 같은 고통이 그들을 감싸게 될 것이다.”
카이젠이 나직이 읊조렸다. 그리고 이제야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듯 이퀼라스의 등을 쳤다.
탁!
“눈 좀 붙여. 회의 준비가 된 것을 알리러 시종장이 오면 깨워 주겠다.”
“으음. 그럼.”
집무실 한 편에 수면의자가 있었다. 이퀼라스는 그곳에 몸을 눕혔고 순식간에 수마에 빠져 들었다. 두어 시간이지만 단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퀼라스가 잠이 들자 알론소가 카이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후예들은 언제쯤 만나실 예정이신지요? 대군주폐하.”
알론소와 같은 자들이 더 있었다. 그들은 황실 직속 관리인이란 명칭을 지닌 채 황실과 황실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차근차근 보면 되겠지. 우선은 당장 이퀼라스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해 둔 다음에 만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카이젠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카이젠이 그들을 만나고 싶다면 그들은 카이젠에게 나설 수 있었다.
알론소의 생각에 카이젠은 매우 느긋한 것 같았다.
자신이라면 빠르게 세상의 전면에 나서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퀼라스의 주변 그림자로 머물면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자가 지배하는 법.”
“예?”
“드러나는 힘보다 보이지 않는 힘이 더 큰 법. 나는 어둠의 왕으로 다시 거듭날 것이다.”
카이젠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태양 아래에서의 지배자 역할은 질리도록 해 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세상을 조율하는 지배자가 되고 싶었다.
‘자칭 자신들이 제국을 어둠 속에서 지배하는 자들이라 생각하는 놈들부터 가지를 쳐 내야지. 진정한 조율자 앞에 그들은 사정없이 휩쓸려 나갈 것이다.”
카이젠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이퀼라스는 카이젠의 단호한 선언이 있을 때 저절로 몸이 움찔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국이 흔들거리니 하나씩 처리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어느덧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밤이 지나간 것이다.
오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제국 황제의 자리를 꿈꾸었던 대공은 영원히 태양을 못 보게 되었다.
카이젠은 알론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 조사를 명했던 것이다.
“대공의 나머지 수하들은?”
브레도 대공은 제거되었지만 그에게 포섭된 자들은 아직 황실에 많이 남아 있었다. 원래 이퀼라스를 제거한 후 그들이 움직일 예정이었으나 아마 지금쯤 지휘체계가 잘려 나간 관계로 혼란에 빠져 있을 터였다.
“현재 비밀 아지트에 모여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위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없고 대공의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지금 매우 난처할 것입니다.”
“그놈들을 어떻게 이용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죽여 버리는 것은 손해였다. 최대한 그들의 활용가치를 생각해 보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대공이 제거되었다고 한다면 비상조치를 더 이상 유지할 거리가 없겠지?”
카이젠이 웃으며 말했다.
대공이 도피한 것으로 처리되어야 계속해서 비상사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7인의 기사단이란 제국의 파워 엘리트 집단이지만 그들이 당분간은 그 사실을 모르게 해 두는 게 좋겠지.”
오대 공작가와 이대 화족 가문의 연합체인 7인의 기사단들 또한 아직 대공의 생사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카이젠으로서는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알론소, 지금 대공의 나머지 잔당들과 이어지는 선이 있나?”
“그렇습니다. 이전의 조사과정에서 은밀히 접촉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공의 서명 정도는 위조해서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
어려운 일이었다. 대공의 서명을 위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금방 들통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알론소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위조와 도용, 사기는 제 전문입니다. 더구나 이곳은 황제의 집무실. 못 만들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 뻔뻔할 것 같은 말을 알론소는 거침없이 하였다. 역시 늙은 생각이 맵다는 것을 보여 주며 알론소는 재빨리 위조문서를 만들었다. 대공의 문서를 위조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황가의 직인과 인장, 관련 서류를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이곳에는 그것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무단으로 황가의 서류와 도장을 사용하며 알론소는 카이젠에게 어떤 서류를 만들지 문의하였다.
잠시 고민하던 카이젠은 알론소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며칠간만 조용히 있도록 해 둬. 그들로서는 대공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그들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스르륵.
알론소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카이젠은 적막 한가운데 다시 남겨졌다. 아니 적막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지켜 줘야 하는 소년이 있었던 것이다.
“일주일이다. 일주일 내에 불필요한 가지치기를 해 주지. 가지치기를 다 한 나무가 고목으로 성장할지는 너에게 달려 있다.”
카이젠이 이퀼라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웅성웅성.
제국을 이끌어 가는 고위 귀족들이 아침부터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긴급 어전회의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침에 받은 급보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오대 공작가와 이대 화족 가문의 대표자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긴급 어전회의가 열린 회의장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그들끼리의 선 회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대공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잖소.”
“으음. 대공이 섭정으로는 만족을 못했군요.”
그들이 서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은연중 본다면 그들도 일곱 개의 파벌로 나뉘어 서로서로 자신의 파벌들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실상 그들 상당수는 자신이 속해 있는 파벌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각 수뇌부의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대공을 은밀히 조정하고 일곱 가문이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는 것은 각 파벌의 수뇌부 정도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했기에 그들은 대공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사실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물론 혹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는 했지만 그것이 바로 어젯밤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회의장 안이 점차 시끄러워질 때 오히려 점점 더 조용해지는 곳이 있었다. 바로 회의장 바로 옆의 작은 방.
제국의 7대 가문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모두 다섯. 아직 두 가문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동방 기사단 단장 아뮤렛 공작. 서방 기사단 단장 슈멜리아 공작. 중앙 기사단 단장 메큐란 공작.
그들 다섯 가문은 제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자들이었다.
쓰윽.
그들의 화법은 대화라기보다는 필기에 가까웠다. 사안이 사안이었는지라 누가 들으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했기에 그들의 대화는 종이에 그들만의 암호문을 적어 앞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번 사용해서 능숙했기에 그들은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대공이 드디어 움직였군요.
―그렇다면 그가 속한 슈발트 영지의 동향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겠소? 혹시라도 불똥이 튈 수 있으니.
―이미 서방군이 출병 준비를 모두 마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대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황태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천둥벌거숭이나 마찬가지인데 우리의 지원까지 받은 대공이 이렇게 깨지다니.
―그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차려놓은 식사도 못 먹다니.

인상을 쓰며 빠르게 종이쪽지가 이동했다.

―근데 대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바보 녀석. 오늘이면 자신이 이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큰소리 텅텅 치더니.
―그 돼지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거야 지금 당장 상관할 바는 아닌데. 뇌격 기사단이란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소.
―그렇다면 황태자는 무사한 것이군. 이 자리에 아직 참여 안 한 두 가문에서는 알고 있으려나?

현재 모든 이야기는 대공에 맞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오셨군요.”
그때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제국 행정재무관 파뮤란. 제국 국방서기관 에스튜아였다. 그들이 서류를 결재하지 않으면 제국의 모든 행정 업무가 마비될 터였다.
다섯 공작가 가문이 제국의 군권을 관리한다면 이들은 제국의 모든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보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이들이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섯 공작은 그들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뇌격의 기사단이란 놈들이 나타났는데.
―흐음.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진 것이지. 전대 황제가 만든 것?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훈련을 하고 선발을 한 것이지? 분명 그런 조직을 만들었다면 우리의 눈을 피할 수 없었을 텐데.
―그것은 일주일이면 조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몰랐다면 모를까 일단 알게 된 이상 그들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인원은 몇 명이고 어느 가문의 기사가 참여하고 있는지도 확인되어야 할 것이오.

뇌격의 기사단이 소재거리가 되자 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황실을 지키는 그림자 기사단이란 놈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퀼라스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전혀 알지 못하던 사실이 드러나자 7인의 기사단의 수뇌부는 사라진 대공을 찾는 것보다 이들에 대한 정체 파악을 더욱 시급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시종장의 말로는 황실을 수호하는 그림자 기사단이라 하더군.
―일단 시종들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현재 황태자는 황제의 집무실을 사용 중이며 그 앞을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실력은?
―그거야 알 수가 없지요. 아마도 다른 자들은 현재 보이지 않으니 가장 실력 좋은 자를 그곳에 배치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를 도발한다면 어느 정도 그들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태자의 호위를 맡고 있는 자를 무슨 수로 도발한단 말인가?
―그건 맡겨 주시지요.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정말 대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