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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카이젠 1(18화)
Chapter 6 황궁의 암투(3)
대공이 성공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공 이상으로 철저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대공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경우는 들어 있지 않았다. 대공이 부리는 상당수의 수하가 결국 그들의 입김이 들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7인의 기사단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대공은 귀신도 모르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대공은 카이젠의 손에 죽었고 그 시체는 지하의 비밀공간에 내팽개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공을 찾으려 하니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라면 대공이 죽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해 볼 법했지만 설마 대공이 죽었을 것이란 부분까지는 그들의 생각이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칼을 든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다. 아이의 주먹이 아무리 맵다고 해도 어른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뇌격 기사단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지만 대공이 이끌고 있는 기사단. 특히 쉴트와 그의 부하들의 실력은 상당했다. 제아무리 실력 좋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그들의 생각에 만약 이퀼라스가 뇌격 기사단을 통해 대공을 제거했다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실을 밝혔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들로서는 이퀼라스가 이미 그들의 계략을 파악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생각한 결론은 대공이 어딘가에 완벽히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
거북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찾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틀 정도면 흔적이 서서히 드러날 터였다.
스륵.
스르륵.
그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지키고 있던 부하가 재빠르게 걸어와 회의장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 준 것이다.
* * *
긴급 어전회의의 회의장이 순간 조용해졌다. 제국의 무력을 좌지우지하는 다섯 공작가. 그리고 제국의 문신을 대표하는 두 화족 가문이 입장을 한 것이다.
어전회의에 참석하는 대신은 모두 스물다섯. 하지만 사실상 저들 일곱이 이곳 회의를 이끌어 가는 주체였다. 나머지 대신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가문의 파벌을 따라 움직일 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일곱 가문의 대표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회의장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입을 굳게 닫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다른 대신들은 다시금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이번 회의를 주재할 자가 등장했다.
“황태자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을 지키고 있던 시종의 낭랑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7대 가문의 귀족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황실에 대한 반역을 뜻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황태자의 뒤를 따라오는 기사를 향해 쏠렸다.
‘저자가 뇌격 기사단 단원인가?’
‘황태자전하의 직속 호위인가 보군.’
검은 갑옷으로 몸을 감고 있는 남자. 그가 황태자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가슴에는 번개 모양을 형상화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얼굴에는 흉측한 괴물 문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제대로 된 기사단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가면이었다.
키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다.
갑옷을 착용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근육질의 거대한 몸집이라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자세에는 절도가 있었다. 무언가 표현하기 어려운 위엄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산처럼 거대한 자라고 하지 않았나?”
황태자의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카투를 말하며 사람들이 속삭였다. 하지만 곧 다른 이가 대답했다.
“그자와 다른 자 같네요. 다른 기사 같습니다. 아마도 덩치 큰 자는 문 밖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살짝 중얼거리는 사이 황태자는 제일 상석에 앉아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앉으세요. 긴급 어전회의를 시작합니다.”
이퀼라스가 낭랑한 목소리로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스륵.
드르륵.
침묵이 감돌며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지금까지 유약한 소년으로 여겼던 황태자의 몸에서 강인한 위엄이 흘러내렸던 것이다. 흡사 예전의 황제를 보는 느낌.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서 강해진 것인가? 그렇게 단숨에 사람이 변하긴 어려운데.’
행정재무관 화족 파뮤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자들을 바라보았다.
공작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뇌격 기사단이란 놈들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급하니까. 근데 정말 대공 이 녀석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대로 있으면 반역자로 죽을 일밖에 남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에 일처리를 이따위로 하다니.’
어젯밤 갑자기 그의 심복 쉴트와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황태자를 제압하려다가 뇌격 기사단에 의해 실패하고 지금 황성 밖으로 밀려나 자신의 본 영지로 귀향하고 있다는 가설이었다.
‘여하튼 간에 황태자가 입을 열겠지.’
일단 황태자가 지난 밤 있었던 일을 말해 주면 그것에 맞춰 대응을 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공 녀석이 날뛰어 준 덕분에 그림자 기사단이 드러났으니까.’
드러나지 않았다면 위험했지만 이렇게 드러난 이상 그들은 7인의 기사단에게 있어서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천천히 회유하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은밀히 제거하면 될 터였다. 이미 제국의 모든 영역은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유약한 소년 이퀼라스는 그들에게 충성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선은 넘기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그들은 만인지상의 왕위라는 달콤한 영역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국의 2인자라는 타이틀보다는 왕국의 1인자인 왕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숙부 브레도 대공이 어젯밤 저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으음.”
“음.”
이미 어느 정도 급하게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이긴 하나 이퀼라스의 입에서 직접 듣게 되니 대부분의 귀족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브레도 대공으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은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브레도 대공과의 관계를 끊어 내 버리고 지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다행이 저를 은밀히 지키던 그림자 기사단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숙부는 패퇴하여 황궁을 다급히 빠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공작들의 시선이 제국 국방서기관 에스튜아에게 쏠렸다. 황궁의 모든 입출입에 대한 정보는 그가 관리하고 있었다.
쓰윽 슥.
그는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황궁 주변의 모든 정찰기록 그리고 입출입 기록에 브레도 대공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하들을 추궁하여 혹시라도 뇌물을 받거나 해서 거짓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확인해 보았지만 일단은 아니란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아마도 황궁과 밖을 잇는 비밀통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레도 대공은 지난 몇 년간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치밀한 준비를 하였다는 말에 공작들과 화족들의 눈동자가 살짝 변했다. 물론 그들의 지원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가슴을 졸인 것이다.
그때 이퀼라스가 단아한 음성으로 말했다.
“뇌격 기사단이 브레도 대공의 음모를 얼마 전에 확인하였고 다행히 타이밍을 맞춰 숙부의 음모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혹 숙부를 지원한 무리가 있을까 조사해 봤지만 그런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 확인하였다는 말에 은밀히 브레도 대공을 지원했던 자들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로는 자신들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곧 오늘 저녁이면 황궁에 몇 명의 실종자가 나올 것이다. 그들과 브레도 대공을 이어 주었던 비선을 모두 잘라 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사 지금부터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이퀼라스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뇌격 기사단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기에 차라리 이제 이들을 숨겨진 그림자에서 꺼내어 정식으로 제 호위 기사로 삼으려 합니다.”
자신의 호위 기사로 삼는다는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중앙 기사단 단장 메큐란 공작이 조심스럽게 발언의 기회를 얻은 다음 말을 꺼냈다.
“황태자전하, 혹시 그럼 반역자 중에 이전 호위 기사단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얼추 정보는 파악이 되었다. 쉴트 이하 기사단원들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끄덕.
이퀼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역자 무리가 나의 호위 기사단에 들어온 것은 참으로 화가 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황태자전하. 모든 것이 제 불찰입니다.”
황실의 기사단은 중앙 기사단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결국 최종 책임자는 메큐란 공작이었던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브레도 대공이 밀어 넣은 기사들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책임을 물어 들어가면 메큐란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 뇌격 기사단이 저를 호위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퀼라스는 같이 들어온 기사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뇌격 기사단 단장 카이젠입니다.”
짧은 인사. 어느 가문의 누구인지. 그리고 여타의 미사여구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살짝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예를 취하는 것 외에는 일체의 군더더기 동작이 없었다. 자신을 소개한 다음에는 즉각 이퀼라스의 뒤로 다시 이동한 것이다.
그 모습에 상당수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퀼라스의 말에 그들은 그러한 생각을 접어야 했다.
“뇌격 기사단은 앞으로 저의 직속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기간은 무제한. 위험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임무를 해제시키도록 하겠으며 기사단장 카이젠은 황태자인 저의 보호를 위해 모든 일에 있어서 황태자의 이름을 부여받아 활동하게 됩니다.”
“……!”
황태자의 이름을 부여받는다는 말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유례가 없던 일인 것이다. 비록 한시적이기는 하나 뇌격 기사단 단장 카이젠의 행위는 황태자의 행위와 마찬가지가 되고 그의 권한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소음이 발생하며 즉각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이퀼라스가 다시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뇌격 기사단은 황태자의 이름으로 이번 사건의 해결을 맡게 될 것입니다.”
단호한 결심이 이퀼라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쿠웅.
그 말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번 해 본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결국 공작가와 화족가의 대표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서로 빠르게 의견을 취합하는 것이다. 서로 생각하는 것은 비슷했기에 대충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생각이 비슷하게 모이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뇌격 기사단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승인해 주는 자리가 되고 있었다. 각 귀족가의 대표들도 참석한 자리니 나중에 몰랐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황태자의 이름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해당 건에 한해서는 자신들을 넘어서는 무한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 황태자전하.”
“모든 이의는 불허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슈발트 영지를 향해 군대를 파병하도록 하세요. 준비는 이미 되었겠지요?”
이퀼라스가 서방 기사단 단장 슈멜리아 공작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이퀼라스의 날카로운 눈빛에 그는 약간 놀라며 재빨리 대답했다.
“현재 모든 기사단과 병력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하명만 하시면 모두 출병할 것입니다.”
군대는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퀼라스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반역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퀼라스와 숙부 브레도 대공의 가문은 매우 절친했었다. 이퀼라스로서는 달리 기댈 곳도 없었기에 여름이면 슈발트 영지에서 휴양을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 병력을 출병시켜야 했다.
사람들은 과연 이퀼라스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퀼라스가 명령하는 것에 따라 그의 그릇이 정해질 터였다.
“후우.”
잠시 눈을 감은 이퀼라스. 그리고 이내 눈을 뜨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슈발트 영지로 서방 기사단의 모든 병력을 진격시키십시오. 그리고 그곳을 완전히 장악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역자의 직계 가족은 모조리 압송하여 황성으로 끌고 오기 바랍니다. 나는 그들이 살아서 이곳에 오기 바라며 도착 즉시 심문을 위해 지하 감옥에 넣어 두세요.”
그 말에 슈멜리아 공작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순순히 항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역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순순히 잡혀 오지는 않을 터였다.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물어보는 슈멜리아의 질문에 이퀼라스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슈발트 영지를 장악하고 반역자의 직계 가족들을 압송하여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당신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 말에 슈멜리아 공작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이퀼라스는 자신이 내린 명령을 그보고 알아서 잘 완수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방법은 슈멜리아 공작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했다.
이퀼라스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와 더불어 앞으로 한 달간 한시적으로 제국 황성 및 군부에 대하여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모든 군사행동은 저에게 보고되어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제국에 대한 반역으로 선포합니다.”
대공에 대한 조치치고는 너무나 강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눈을 껌벅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