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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제11장. 블레이스 성(3)
현재 바로크의 모든 감각은 어제와 다르게 모든 것이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엿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데, 발렌과 크론이 있는 방에 무언가 마법이 걸려 있는 것인지, 바로크의 초감각 청각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크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세 개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터벅터벅.
“누군가 온다. 발걸음이 상당히 거칠고, 난폭해.”
“뭐?”
바로크의 말에 일론과 에르웬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바로크가 시선을 향한 곳으로 그들의 시선도 향했으며 곧, 계단을 모두 올라온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이 이곳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는 젠더라는 아까의 그 사내도 보였다.
터벅터벅.
“크크큭.”
“후후후.”
“호호호.”
일행의 앞에 선 그들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에 일행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희 지금 장난하니?”
“무슨 말이냐.”
그들 중 여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일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너희도 우리와 같이 남자 둘, 여자 한 명인데? 우리를 따라하는 것 아니겠어?”
“헛소리.”
여성의 말에 일론이 짧게 말했다.
헛소리였다. 고작 남자 둘, 여자 한 명이라는 것에 이런 식으로 딴짓을 걸어오다니, 필히 시비를 걸기 위함이 분명하였다.
“호호, 터프한데?”
“크크큭.”
“후후후.”
여성이 옆의 남자들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며 말하자, 남자들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용건이 뭐냐?”
“그냥 너희들이 조금 건방진 것 같아서.”
“무엇이 말이지?”
“글쎄… 그냥 우리를 따라한 게 건방진 것 같아서 말이야, 너 마법사지?”
“그런데? 무슨 문제 있어?”
여성이 에르웬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에 에르웬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봐봐 따라한 거 맞잖아, 나도 마법사야. 여자가 마법사. 남자 둘이 기사. 크큭, 이건 뭐 완전 따라했네. 참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일… 론이라고 했던가?”
일론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여성으로 인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여성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기억나. 일론, 너희 아버지도 여기에 있었다지? 어머∼ 근데 어쩌나, 1년도 못 버티고 도망갔다지?”
“크크큭.”
“후후후.”
여성의 말에 남자들이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듯 웃어 보였다.
일론이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빨도 뿌드득 갈렸다.
하지만 참아 냈다.
괜히 이런 일로 에르웬과 바로크가 피해를 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할 가치도 없군. 가자.”
일론이 거칠게 몸을 돌렸다.
에르웬과 바로크도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또다시 여성의 비수가 이번에는 에르웬에게 꽂혔다.
“그리고 거기 계집. 너희 아버지는 자살했다며? 불쌍하기도 하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뒤돌아선 에르웬의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였다. 주먹도 불끈 쥐어졌다.
자신의 아버지는 좋은 분이었다. 분명 인자하고, 제국의 후배 마법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의 아버지가 앞의 한 여성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제길…….’
에르웬이 혀를 질끈 깨물었다. 참아야 했다. 그래야만 하였다.
에르웬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려 했다.
“가자… 애…….”
“그 입 좀 닥치면 안 되나?”
바로크가 도리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일론도 앞으로 나섰다.
“미안하지만 나에 관계된 욕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 동료가 상처받을 말을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일론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주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일론과 바로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셋을 옭아매기 시작하였다.
“호, 호호. 생각보다 상당한대?”
“…….”
여성이 꽤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예상보다 상당하였다.
거기에 젠더라는 사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아까 전 자신과 눈이 마주쳐 일론이 당황했을 때는 조무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운을 표출하니 예상 밖이었다.
“바로크, 에르웬. 한 가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말해 주지.”
일론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바로크와 에르웬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 아레스는 말했지만 힘에 의해 서열이 갈린다. 아무리 블랙이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그들에게도 서열이 존재한다. 크론 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같이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분명 이 같은 더러운 놈들이 붙을 거라고 하였다. 아마도 자신들의 밑에 두기 위함이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크론 님은 만약 너희 같은 녀석들이 올 시에 밟아 버리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과 싸워도 되는 거군.”
“그런 셈이다.”
“후후후.”
바로크가 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싸늘한 눈빛이 한 명 한 명 흠칫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일론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검이 변형하였다.
“……!”
검이 변하는 순간. 일론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힘의 기운이 증폭되자 그들이 더욱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로크도 어느새 가볍게 선 자세로 단전호흡을 자연스럽게 펼치며 그들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해볼 건가?”
일론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일론의 생각으로 앞에 있는 이들은, 아마도 ‘블랙’ 중 최하위의 이들로 보였다.
아마도 그런 그들이었기에 자신들보다 밑에 둘 이들이 필요해 자신들에게 접근했던 것일 게다.
하지만 지금 힘을 표출하니, 그들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확실히 힘이 아레스의 권력이고, 권능인 듯싶었다.
“제길…….”
“가, 가자.”
“두고 보자.”
바로크 측이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자,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에 제압당한 그들이 하는 수 없다는 듯 꼬리를 말고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 그들은 본전도 찾지 못한 것이다.
“둘 모두 고마워.”
에르웬이 바로크와 일론을 보고는 말했다.
그에 둘 모두 피식 웃었다.
“나는 리더로서 할 일을 한 거다.”
“그렇다면 나는 동료로서 할 일을 한 거군.”
“헤헤.”
바로크와 일론의 말에 에르웬이 혀를 내밀어 웃으며 둘 모두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보다 크론 님은 언제 나오시는 거야∼”
팔짱을 낀 에르웬이 방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끼이익.
쿵.
“너희들 무슨 일 있었나?”
그리고 곧 크론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며, 그들을 발견하고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 에르웬이 혀를 내밀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요∼”
“흠…….”
크론이 그에 턱에 손을 짚고는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가자. 너희들이 묵을 곳으로 안내해 주마.”
“예.”
곧 그들이 크론을 뒤따라 몸을 움직였다.
“이곳에 대충 짐을 풀고 함께 생활하면 될 것이다. 뭐 풀 것이라고야 얼마 없겠지만.”
크론이 안내한 방은 상당히 넓고 호화스러운 곳이었다. 이곳만 그런 건지, 아니면 모두가 이러한 방에서 생활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머물기 편안한 곳이었다.
한데, 그중 유난히 에르웬만 입이 뾰로통하고 나와 있었다.
“무슨 문제 있나?”
“숙녀인 제 방은 따로 없어요?”
“너희들은 팀이다. 그러니 따로 각방은 안 쓰는 게 나을 거다.”
“칫…….”
에르웬이 다시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에 일론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뭘 볼 것도 없으면서 왜 그러나, 에르웬.”
“헤헤, 네가 잠자다가 아이스 마법에 얼어 죽어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일론?”
흠칫.
에르웬의 차가운 목소리와 진심이 담긴 말에 일론이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하였다.
“흠흠!”
“뭐 그래도 침대는 총 세 개가 존재하니 별 무리는 없을 거다.”
크론이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에르웬이 가장 호화스럽고, 크기가 넓은 침대로 몸을 던졌다.
“이건 내꺼!”
“그건 좀 아닌 것 같군.”
에르웬이 가장 널찍한 침대에 올라가며 말하자, 바로크가 고개를 저었다.
체형 상 바로크나 일론이 널찍한 침대를 써야 맞았다. 에르웬이 저 침대에 누운다면 아마도 상당히 공간이 많이 남을 거다.
“시끄러! 너는 자다가 화염 마법에 타 죽어 볼래?”
“…….”
“크큭, 이곳의 분위기 담당은 에르웬인 것 같군. 심심하지는 않겠어.”
바로크가 그에 입을 다물자, 그 모습에 피식하고 웃어 버린 크론이 말했다.
그의 말에 에르웬이 혀를 내밀며 웃어 보였다.
“그보다 너희 셋 모두 앉아 봐라.”
크론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에 모두가 곧 그의 앞에 앉았다.
“사실 블레이스 성에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 아레스의 일원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너희들이 들어왔으니, 신입을 맞는 그런 비슷한 것을 하게 될 거다.”
“그게 뭐죠?”
어느새 진지한 분위기가 된 상황에서 크론의 말에 일론이 물었다.
“아마 너희 셋의 힘을 대강 파악하려 할 거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블레이스에 현재 있는 모든 이들이 올 것이다. 나나, 발렌 님까지 말이다. 참, 그리고 내가 아레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아주 가관인 녀석을 시험 대상으로 데려왔었지.”
“……?”
크론이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살이 떨린다는 듯 말하자, 모두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크론이 말했다.
“바로 헤츨링이었다.”
“헤, 헤츨링이요?”
헤츨링이라는 말에 에르웬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헤츨링이란 존재가 무엇이던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드래곤이었다. 그러한 헤츨링을 단지 시험 대상으로 썼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난 너희가 화이트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처럼, 블랙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실버로 들어왔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헤츨링을 시험 대상으로 넣었겠지. 하지만 너희도 알 거다. 아무리 헤츨링이 어린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그 강함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벅찬 존재인지를. 그때 죽을 뻔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군.”
크론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크론 님이 계신다는 것은 결국 크론 님이 헤츨링을 죽였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크론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에 반면, 에르웬이나 일론은 크론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아무리 어린 드래곤이라지만, 헤츨링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아레스 전기에는 아레스가 다 큰 실버 드래곤을 죽인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책이 아니라 실제로 헤츨링을 죽인 장본인이 앞에 있으니, 무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어떤 녀석을 상대할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벅찬 녀석일 것이다. 너희가 5년 전쯤에 셋이서 상대했던 오우거와는 격이 다를 거다. 너희도 그때보다는 훨씬 강해지기는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몬스터를 끌고 오니, 나도 가끔 놀라고는 한다. 아마도 너희 세 명이서 상대하게 될 테니, 적어도 어느 힘 좀 쓴다는 몬스터 계열의 우두머리 급 정도를 데려올 테지.”
‘우두머리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군.’
바로크가 크론의 말에 라벨혼 산맥에서 잡았던 우두머리 설인을 생각했다.
녀석은 단 한 번에 자신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물론 크론이나 다른 이들은 이러한 점을 알지 못하였다.
솔직하게 말해, 바로크 본인은 아직도 상당히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일론에게 보여 줬던 것도 있었지만 극히 일부분일 뿐. 바로크가 모든 힘을 사용한다면 어쩌면 크론과 맞붙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바로크는 성장한 것이다.
“아무튼 너희 셋이 잘해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내 체면이 살 것 같거든. 사실 너희들을 발카스 던전이나, 거울의 방으로 보낸 사실은 브록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5년간 너희들을 붙잡고 있었으니, 그만큼의 힘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뭐, 다른 블랙들이 놀랄 만한 힘을 보여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블랙’ 중 너희들의 서열을 정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
“서열…….”
서열이라는 말에 모두가 그것을 곱씹었다.
이번 시험으로 자신들이 밑에서 시작할지, 아니면 블랙에서 시작하여도 굳세게 시작할지가 정해지는 것과 같았다.
“건투를 비마. 아마 세 시간 뒤 관계자가 올 거다. 너희는 그를 따라오면 된다.”
크론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섰다.
그가 사라지고 모두의 눈동자가 맹렬하게 빛났다.
‘우리는 최강이 돼야 한다.’
모두의 눈이 하나같이 이렇듯 말하였다.
최강의 길을 향해, 그들은 곧 한 발자국 내딛게 될 것이다.
<『바로크』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