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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제11장. 블레이스 성(2)


성을 본 일론과 에르웬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후후, 그렇다. 이곳은 블레이스 성이다. 어렸을 때 너희들이라면 한 번쯤은 그림을 통해서 보았을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러는 거지?”
바로크는 여전히 에르웬과 일론의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 블레이스 성이라는 곳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마녀나 혹은 악마를 주 매체로 삼은 이야기에서 언제나 나오는 곳이 이 블레이스 성이다. 레스토 영지에 이 블레이스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레스토 영지가 없어지면서 블레이스 성 또한 사라진 걸로 알고 있는데…….”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 이곳은 우리들의 본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크론이 일론의 말에 설명하듯 말하였다.
“자, 이제 그만 다 놀랐으면 들어가지. 그리고 한 가지 경고 하나만 하마. 안에서 절대로 다른 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마라.”
“어째서죠?”
“크크큭, 설명하고 싶지 않군.”
일론의 물음에 크론은 짙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곧 크론이 거대한 블레이스 성의 앞으로 걸어갔으며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끼이익.
크론이 문 앞에 서는 순간, 문이 저절로 거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일행의 심장은 더욱 뛰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아레스라는 곳은 상당히 베일에 감싸여진 것만 같았다.
터벅터벅.
“환영한다, 블레이스로 온 것을.”
문이 모두 열리자 안으로 들어선 크론은 몸을 돌려 양팔을 벌리며 짙은 웃음을 머금고는 말했다.
그에 곧 그를 무시하듯 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끼이익.
모두가 안으로 들어오자 문은 또다시 저절로 천천히 닫히기 시작하였다.
쿵.
문이 모두 닫히고, 크론을 제외한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 바빴다.
주위에는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모두 한 명 한 명이…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품고 있어…….’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
‘신비스럽군.’
주위를 둘러보는 그들은 상당히 이 블레이스 안의 내부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일론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상당히 기분 나쁘면서도 무언가 위압감이 있다고 느꼈다.
또한, 에르웬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까지도 들었다.
그중 그나마 가장 여유로운 이는 바로크였다.
무언가 쏟아져 오는 시선들도 그렇고, 느껴지는 분위기도 그렇고 상당히 신비하다고 느껴졌다.
흠칫.
그러던 중, 주위를 둘러보던 일론이 한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부릅.
사내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괴기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노려보았다. 일론은 그에 무언가 가슴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런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크큭. 너도 그만해라, 젠더.”
“크크큭, 신입생 인사 한 번 했습니다. 크론 님.”
크론은 일론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 같아 그를 힐끗 보았다.
그와 젠더라는 사내의 시선이 마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크론은 미간을 찌푸리며 일론의 눈을 손으로 가린 후 젠더라는 사내를 싸늘하게 바라봤다.
그에 젠더라는 사내가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크론 님에게 저런 표정을 짓다니…….’
그 모습을 보고 에르웬은 젠더라는 사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당연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크론은 대륙의 천재 검사였다.
어디를 가도 알아주는 검사. 한데, 그런 크론에게 저런 식으로 장난기를 머금고 말하다니 놀라웠다.
“가자.”
크론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고, 일행이 곧 그 뒤를 따랐다.
크론이 걸어가는 내내 그에게 인사를 하는 이는 없었다. 본래 다른 곳이었다면 굽실거리며 그를 맞이할 터.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블레이스 성에 있는 이들은 최소 ‘블랙’이다. 말했듯이 인재 양성 기관에서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이들은 대부분 ‘화이트’이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블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브록 님과 호각을 겨룬다는 말입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브록보다 강한 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만큼 이 아레스라는 단체는 생각보다 대단하거든.”
일론의 물음에 크론이 답해 주었다.
“브록 님보다 강한 이들이 대다수… 대단하군요. 아레스라는 곳.”
“말하지 않았나, 아레스는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라고.”
일론의 말에 크론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그들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각자 수많은 생각을 하였으며, 이내 크론이 계단을 벗어나 복도를 걷더니, 한 문 앞에 섰다.
“모두들 이 안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좋을 거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일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젠더라는 사내에게 그런 일을 당해서 그런지 꽤 말을 잘 들었다.
그에 피식 웃은 크론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일행이 따랐다.
끼이익.
쿵.
“오랜만입니다.”
“왔는가, 크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40대 중반 정도의 사내가 크론을 반겨 주었다. 사내는 상당히 귀품이 흐르는 사내였다.
아마도 어느 이름을 날리는 상당한 귀족 가문의 사람인 듯싶었다.
“저들이 자네가 공을 들였다는 그들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론은 앞의 사내에게 상당히 예의를 차려 보였다. 그에 일행이 속으로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론이 저 정도로 예의를 차려 보이다니, 필히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흐으음.”
자리에서 일어나 크론과 한 번 악수를 하였던 사내가 턱에 손을 짚은 채 일행을 둘러보았다.
날카로운 눈. 그 눈의 움직임만으로도 일행은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앞의 사내는 포근한 인상을 지녔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흐르는 사내였다.
“그래, 그렇군. 상당히 괜찮은 녀석들인 것 같군.”
“후후, 그렇습니까. 발렌 님께서 그 정도 말씀을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바, 발렌!’
발렌이라는 사내의 말에 크론이 미소를 지었고, 그에 일론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발렌.
아스란트 제국의 강자로서 최정상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검으로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자신이 알기로 자신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일론이 발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보다 눈에 익은 이가 한 명 보이는군, 일렌의 아이인가?”
“예,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 일론입니다.”
크론이 일론 대신 대답해 주었다. 발렌은 그 말에 흥미롭다는 눈으로 일론을 유심히 바라봤다.
“겁쟁이 아버지보다는 낫군.”
“……!”
겁쟁이라는 말에 일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아버지는 대륙에서는 아니었지만, 제국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기사였다.
그런 그에게 겁쟁이라니. 일론의 눈이 부릅떠질 수밖에 없었다.
“눈빛을 거둬라, 일론.”
크론이 그의 반응에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어서!”
하지만 쉽게 그가 꼬리를 내리지 않자, 그가 성을 내며 기운을 퍼뜨렸다.
“하아하아.”
“그만하지, 그러다 귀하신 커라테스 후작가의 차기 가주님을 잡겠군. 후후후.”
일론에게서 거친 숨소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발렌이 크론의 어깨에 손을 올려 말했다.
그리고 곧 일론을 옭아매던 기운이 사라졌다.
터벅터벅.
“그 눈빛. 아주 좋군, 자네의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아.”
“아버지를 욕하지 마십시오.”
‘빌어먹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건만.’
발렌은 일론의 앞으로 다가와 말하자, 일론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힘들게 열었다.
그에 크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후후후, 크크큭, 하하하하!”
일론의 말에 발렌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어젖히던 그의 얼굴에서 곧 웃음이 사라졌다.
웃음이 사라진 발렌이라는 사내의 얼굴 곳곳에 굵은 핏줄이 솟아올랐으며, 눈은 붉어졌다. 심히 곱상함에서 흉측스러움이 묻어났다.
“네 아비에 대해 내가 말해 주마, 네 아비는 사실 나와 같이 아레스라는 단체에 들어왔었다. 크크큭, 하지만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지. 이 아레스라는 단체에 아마도 일렌이 너를 인재 양성 기관에 보낸 것은 자신을 대신해서 무언가를 보여 주기를 원했나 보군. 크크크큭.”
“……!”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일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이곳에 들어왔었다니, 더군다나 1년도 채 버티지 못하다니.
일론의 머릿속 자신의 아버지는 상당히 강경하고 곧은 사람이었으며 강인한 사람이었다.
한데, 그런 사람이 1년 만에 이곳에서 도망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도 사실이다. 크크큭.”
발렌이 조소를 한껏 머금고는 이내 시선을 에르웬에게 돌렸다.
“상당히 예쁘장하게 생겼군, 거기에 영특하고, 간사하기까지 해 보여. 웬만한 남자들은 다 가지고 놀겠군. 크큭.”
발렌이 에르웬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계집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
에르웬은 이를 악물었다. 크론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붉게 물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발렌을 묵묵히 바라봤다.
“후후, 재밌군.”
그에 재밌다는 표정을 지은 발렌이 다시 한 발 움직여 이번에는 바로크의 앞에 섰다.
“이 사내인가?”
“예.”
발렌의 행동이 일론이나 에르웬을 대했던 때와는 달라졌다. 상당히 심사숙고해 보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쁨도, 고통도, 분노도, 대체 이 녀석은 무엇이냐.’
발렌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일론에게서 거대한 야망을 보았다. 에르웬에게서는 눈빛에서 숨겨진 알 수 없는 분노감을 보았다.
하지만 바로크에게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는 것이라면 작게 빛나는 하나의 소망이었다.
사람이 소망 하나만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바로크는 발렌에게 상당히 의문의 존재였다.
“재밌군.”
툭툭.
바로크를 유심히 바라보던 발렌이 피식하고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곧 손을 저었다.
“크론만 남고 모두 나가게.”
꾸벅.
발렌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크론을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나서고, 발렌의 눈이 날카롭게 크론을 보았다.
“자네가 기대했던 것처럼 상당히 흥미롭게 볼 이들 같기는 하군, 하지만 자네의 말에 조금은 과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무엇이 말씀이시죠?”
발렌의 말에 크론이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물었다.
“‘골드’에 가까운 이들이라는 말을 자네는 나에게 하지 않았나, ‘골드’는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알겠지만 자네도 ‘실버’중에서는 서열 17위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 또한 서열 6위밖에 되지 않네. 그만큼 우리 아레스는 막강하다는 말이지. 그런데 저들 중 ‘골드’가 나올 거라는 것은 조금은 현실감이 없다고 생각 안 하나?”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저들을 믿습니다.”
“후후후, 자네의 입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말이 나오다니, 좋네. 나도 저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한 사람이 되어 주지. 과연 정말 ‘골드’가 될 이들인지, 아니면 단지 이 아레스에 남았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게 될 이들인지는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발렌이 피식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임무라는 말에 크론이 반응을 보였다.
“저들에게 주어질 첫 번째 임무가 있는 겁니까?”
“안타깝지만 아직은 없네. 아무리 강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새내기 ‘블랙’이지 않나, 차차 내가 저들에게 맞는 일이 생긴다면 투입시킬 생각이네.”
“그렇군요.”
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크론과 발렌 사이에서 이야기는 꽤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문을 나선 바로크와 일론, 에르웬은 방의 근처에 서서 각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단 말이지…….”
일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