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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
종말




파이널 미솔로지 1권(1화)
작가의 말


20세기 최고의 환상 문학 작가 러브크래프트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이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
그는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관, 즉, 이후 20세기 신화로 불리게 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고 모든 후진 작가들에게 개방합니다.
이는 물론 당시 러브크래프트의 동료들과 후진 작가들이 그에 대한 존경과 친분의 표시로 그의 세계관이나 등장인물, 등장한 사물 등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켜 왔고 그 자신도 그에 답하며 후진들의 창조물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던 평소 그의 활동과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동료와 후진 작가들은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담아 독자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전개해 나갔고, 본래 러브크래프트 본인은 어떤 개별적인 신화로서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편집에 따로따로 등장시켰을 뿐이다 보니 자유로운 수많은 해석과 각색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었고, 현재 그렇게 이어져 온 크툴후 신화는 세계 각국의 작가와 각종 분야의 팬들에게 계승되었고 지금에서는 영화와 소설, 만화와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장르에서 크툴후 신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비교적 유명한 크툴후 신화 등장 작품은 정식 만화와 소설로 발간된 퇴마침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미 제 첫 출판작인 [마왕성 근무기]에서 크툴후와 요그 쇼토스라는 이름을 살짝 등장시킴으로서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었지만
이번 글 [파이널 미솔로지 FINAL MYTHOLOGY] 또한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20세기 신화라 불리는 이러한 크툴후 신화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소재들 중 단지 이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내용도 많을 터라 크툴후 신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많겠으나, 애초에 크툴후 신화 자체가 어떤 확실한 뼈대나 설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제가 크툴후 신화를 등장시킨 것은 위대한 작가인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 오마쥬이자 이것이 등장하는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적인 소재이기 때문이지 충실한 재현을 위함이 아니기에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1 세상의 끝(1)


강원도에 있는 한 작은 산골.
십여 년 전 정부에서 댐을 건설하겠다며 주민들을 전부 이주시켰던 그곳에는 지금 댐, 아니, 그 비슷한 것도 없었다.
댐 공사에 측정되었던 예산은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언론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얼마 전 관련자들 중 몇 명이 처벌받기는 했지만 그 수가 턱없이 적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고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거나 그곳을 추억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 산골 폐교에는 지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그들의 얼굴은 모두 어둡고 서로에 대한 조그마한 친분도 없는 듯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 마주치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고 있거나 낡아 빠진 폐교를 둘러볼 뿐이었다.
“……그럼 모두들 들어가시지요.”
검은 정장에 왼쪽 어깨에 하얀 띠를 두른 두 사내가 폐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말투는 정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장례식에서나 들을 수 있을 그러한 어두운 정중함이었다.
이들은 사실 어떤 회원제 자살 모임이었다.
이름을 자주 바꿔 왔고 소규모로 정해진 인원만 정확히 모집해 철저한 매뉴얼을 따라왔기 때문에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세레머니임에도 작은 꼬리조차 잡힌 적이 없었다.
“…….”
사람들은 그들의 안내를 따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삐그덕 삐그덕 썩은 나무판자가 내는 소리는 사람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뒤를 따랐다.
“걸으실 때는 조심하십시오. 쓸데없는 고통을 늘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검은 정장의 두 사내는 사람들을 오른쪽 두 번째 교실로 안내했다.
이미 반을 나타내는 현판들은 떼어져 있었다. 아마도 폐교되기 전에 점점 줄어 가는 학생들로 굳이 학년이나 반을 나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깨진 유리창과 떨어져 내린 칠판, 수북하게 쌓인 먼지들. 마지막을 맞이할 곳 중 이곳만큼 안 좋은 곳이 있을까 싶었다.
“…….”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불쾌감과 실망감이 스쳤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만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사전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내는 그런 그들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걱정 마십시오. 여기는 단순한 대기실에 불과합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2층 다른 교실들은 여러분께서 희망하신 방식에 맞게 최대한 꾸며 놓았습니다. 최후의 만찬. 단절. 안식의 밤. 여러분이 희망하셨던 그대로 말입니다.”
사내들은 품 안에서 종이들을 꺼내 들더니 이내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다만 보시다시피 장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미리 공지했던 대로 희망하신 방법이 같은 분들은, 고독을 제외하시고는 같은 교실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모두들 같은 이유로 이 의식에 참여하셨으니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거라 여깁니다.”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모두들 나눠 드린 장소로 가시면 됩니다. 안전을 위해 절대 뛰지 마시고 계단은 중앙 계단만 이용하십시오.”
“순서에 따라 저희가 교실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의식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다만 같은 교실에 한 분이라도 마음이 변하시거나, 망설이신다면 의식을 진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순서를 기다리시고 그 후에 선택하시면 됩니다. 돌아가시겠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교실에서 나와 버스로 가신 뒤 나중에 저희와 함께 떠나시면 되고 의식을 하겠다 선택하신 분들만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교실을 나와 2층으로 향했다.
“…….”
그리고 잠시 후 교실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두 사내와 또 다른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가방을 맨 작은 키에 왜소해 보이는 남자였는데 다른 이들과는 어딘가 조금 달랐다. 이질감을 줄 만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의 눈은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다른 이들의 눈동자가 어두운 불안과 체념으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면, 그의 눈은 분명 뭔가 다른 불안으로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그 빛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물론 모든 자살 희망자나 혹은 범죄자 또는 그와 비슷한 이들의 눈이 흐리멍텅하거나 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눈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빛날 수도 있다. 실제로 사기꾼들에게 속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들의 말이 아닌 눈빛에 속지 않았는가.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다르다. 이곳을 선택한 이들은 모두 자살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해서 남의 도움을 청한 이들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고 특정한 신념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의지적인 면에서는 아이처럼 나약하다.
그런 이들의 눈은 백이면 백 탁하고 빛을 잃는다. 특히나 여기까지 왔다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 앞에 있는 이 사내의 눈은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진강 씨였지요?”
정장의 남자 중 하나가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그렇습니다.”
“여기 보면 희망하시는 방식이 조금 특이하시네요. 음, 가장 사람이 많은 방법……이라고 쓰셨군요.”
“네. 맞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봐!”
동료의 질문에 다른 사내가 급히 끼어들었다.
“그만해. 우리가 상관할 게 아니야. 우리는 희망하시는 바를 최대한 들어드리면 되는 거라고.”
부드럽지만 강한 그 만류에 질문을 던졌던 이는 곧바로 자신의 질문을 철회했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가장 많은 방법이…… 목을 매는 거군요. 대부분의 분들이 택하셨네요.”
그는 사내에게 작은 메모지를 건넸고, 사내는 메모지에 쓰인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