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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2화)
1 세상의 끝(2)


2층 한 교실 안, 새하얀 천이 깔려 있는 기다란 식탁과 그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에 앉아 묵묵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것에 삶을 이어 가기 위함은 없었다. 그저 비참함에 또 다른 양념을 더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후의 만찬 치고는 좀 부족한 것 같군요.”
이 폐교에 들어온 뒤 정장의 두 명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들린 다른 이의 목소리에 교실에 있던 이들은 모두 한 곳으로 시선을 모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조금 전 마지막까지 1층 교실에 남아 있었던 그 왜소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후, 또 다른 이들이 입을 열었다.
“뭐 어쩌겠어요. 이런 산골까지 제대로 된 음식을 가지고 오는 건 힘들 테니까요. 거기다 솔직히 우리가 낸 돈으로 이 정도면 만족해야죠.”
“……맞는 말이에요. 또, 잘 먹고 힘내서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요.”
건장한 청년과 다 낡은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 그들의 목소리에는 억지스런 쾌활함이 묻어 있었다.
특히나 첫 번째 청년의 경우는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고 있었지만 그 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긴,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서로 소개라도 하는 게 어떨까요? 저는 이진강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잠깐만요.”
청년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식탁 맨 끝에 앉은 까다로워 보이는 아가씨 한 명이 말을 잘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나워 보이는 이 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곧바로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린 여기 친분 쌓으러 온 게 아니지 않나요? 괜히 귀찮은 일은 안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사람을 깔보는 어투. 그곳에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어 보였다. 거기다 그 눈은 마치 더러운 뭔가를 보듯 그와 다른 이들을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강압적인 그녀의 태도에 진강은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그의 입가에는 씁쓸하지만 어딘가 어두운 미소가 한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것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 웃음은 뭐지요?”
“네?”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뭐냐고요! 날 비웃는 거예요?”
“아니, 아니에요. 그냥 버릇이니 크게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걸 지금……!”
쾅!
그녀의 언성이 커져 갈 때 다른 누군가가 식탁을 내려쳤다. 그는 족히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그의 앞에는 다 비운 접시가 벌써 3개나 쌓여 있었다.
“그만하시죠. 여기 와서까지 언성을 높일 이유 같은 건 없잖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그의 외형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맑고 고왔다.
“흥! 무식하게 힘부터 쓰는 건가요? 이래서 남자들이란…….”
그녀는 이제 타겟을 돌려 교실 안 모든 남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행동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교실 안 다른 여자들이 입을 뗐다.
“저기요!”
그녀만큼 젊지만, 그녀와는 달리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한 여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같은 여자 망신시키는 건 그 정도로 하지 그래요?”
“뭐, 뭐……?!”
“같은 여자 망신 좀 그만하라고요. 대체 그 태도는 뭐예요? 무슨 피해망상이라도 있어요?”
“피, 피해망상?!”
“그래요 피해망상. 애초부터 말하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되지 괜히 나서서 분위기 험악하게 만든 거잖아요. 대체 문제가 뭐예요?”
“하! 지금 니가 감히 날 가르치겠다는 거야? 이런 데나 찾아오는 너 같은 게?”
그리고 바로 그녀의 그 말에 교실 안 모든 이들이 격분했다.
“허어 잠깐. 그건 좀 심한 말 같은데?”
“그러는 당신도 똑같은 거 아니야?”
삽시간에 교실 안 분위기는 험악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여인에 대한 다수의 비난이었지만 곧바로 서로를 향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조금씩 쌓아 온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곳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외부의 모든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사람들은 저마다 이 기회를 핑계 삼아 그 모든 것을 뿜어내고 있었다.
“…….”
진강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상황에 그가 어떻게 할 방법 같은 건 애초에 없어 보였지만, 사실 그는 뭔가 하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마치 누구 장난감이 더 멋진지 싸우는 어린아이들 앞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걱정하는 어른처럼 말이다.
“……!”
그리곤 이따금 뭔가 떠오른 듯 급히 시계를 내려다보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소리를 들은 것인지 정장의 사내 중 하나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모두 진정하십시오. 이런 행동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세레머니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몇 번 더 고함 소리가 나고 그제야 교실 안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아 갔다.
“……잠시 안정을 찾으며 차례를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몇 분 남았지만 곧 여러분 차례가 될 겁니다.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
“…….”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이들이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서 사내는 이 교실을 나가 다른 교실로 들어갔다.
이 교실에 없는 이들은 정장의 두 사내를 제외하고는 대여섯 명. 대체 몇 명이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발자국 소리가 바로 옆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
“…….”
사람들은 이미 식어 버린 음식에는 더 이상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으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고통스런 비명 소리에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콰당!
“아아아아…….”
그러는 와중에 조금 전 입을 열었던 육중한 체격의 남성이 중심을 잡지 못해 의자째로 뒤로 넘어졌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으아! 으아아아!”
오직 옆방에서 아직도 들려오고 있는 끔찍한 비명 소리와 교실 여기저기를 내려치는 소리에 보일 리 없는 옆 교실 쪽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뭔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장 사내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독약을 선택하신 회원께서 너무 심하게 고통스러워 하셔서 사전에 부탁받은 대로 저희가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교실 안 사람들의 눈에는 불안과 공포라는 이름의 불길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독약을 선택한 그는 뭔가 조용히 자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독약을 꿈꿨을 것이다. 칼에 찔리거나, 손목을 베거나, 목을 매는 그 어떤 방법보다 더 쉬울 거라 생각하며 선택했을 터였다.
하지만 무슨 의사나 약사, 화학자도 아니고 일반인이 별다른 의심이나 절차 없이 구할 수 있는 독극물이 뭐가 있겠는가? 아마도 농약 종류일 터였다. 그리고 그러한 농약을 마셨다면 그 고통이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일 터.
그 비명 소리. 그 발광. 그것을 들은 이상 쉽게 진정될 리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창밖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동요를 숨기지 못했고 망설임은 그들을 집어삼켰다.
생명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행복한 순간? 연인과의 한때? 생명을 가장 강렬하게 실감하는 순간은 바로 죽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숨을 내뱉는 바로 그 순간. 혹은 지금까지 웃고 떠들던 이의 몸에서 천천히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바로 그때 그곳에서 사람은 진정으로 생명을 느낀다.
죽음은 자칫 너무도 익숙해 잊어버린 생명이란 존재를 일깨우고 바로 그러한 생명은 죽음이 가진 무게와 색채를 더한다.
아무리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수십, 수백 번 떠올렸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계산이고 생각일 뿐 결코 강렬한 현실감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바로 옆방에서 그것도 이토록 처절한 비명 속에 이뤄진 죽음이란 실제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강렬한 현실감을 주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방금 전 그들 자신이 초대했던 죽음이 낸 노크 소리를 들은 거였다.
부스럭. 부스럭.
“…….”
옆방에서 다시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자연히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뭔가를 바닥에 끄는 소리가 나더니 뭔가 물 같은 걸 쏟아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뭔가 비닐 같은 것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다시 문소리가 나며 발자국이 가까워져 왔다.
드르르륵!
벌써 몇 번이나 열렸던 문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에 순간 움찔했다. 이제 그들의 차례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조금 전 소음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그것은 그분의 희망대로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옷자락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비닐옷 같은 걸 입고 있어서 몸에 튄 피는 막았지만, 손에 묻은 피가 흘러들어 간 모양이었다.
그들은 교실 뒤쪽으로 걸어가 종이 상자를 열더니 이내 새하얀 밧줄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밧줄을 나눠드리겠습니다. 매듭은 이미 매어 놓았으니 목에 걸고 있는 힘껏 당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자르지 않는 한 풀 수 없으니 도중에 그만두실 수는 없습니다. 팁을 드리자면 한 번에 확하고 당기시는 게 좋습니다. 괜한 고통의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도 있고 조금씩 천천히 하다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비극이니까요.”
두 사내는 사람들에게 밧줄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물론 스스로 밧줄을 당기시기 힘드신 분들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시면 자리를 옮겨서 저희가 천장에 밧줄을 매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수는 있습니다.”
“…….”
“…….”
그러나 밧줄을 다 나눠 받았음에도, 사람들은 그저 멀뚱히 손에 놓인 밧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몇 명 밧줄을 목에 거는 이들도 있긴 있었지만 쉽사리 당기는 이는 없었다.
“하아…….”
정장의 사내들 중 한 명의 입에서 신음성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괜히 불안감을 드린 것 같군요.”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진행하는 것은 무리 같군요. 조금 더 시간을 드릴 테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마음이 변하셔서 그만두시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주저 없이 언제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여러분을 도우려는 것이지 살인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두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 문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굳이 나가서 기다리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가만히 시계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진강이 그들을 붙잡았다.
“의자도 남는 것 같고 솔직히 딱히 밖에서 기다릴 데도 이제 없지 않습니까.”
진강의 그 말에 두 사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정돈해 놓은 깨끗한 교실들은 이미 시체들이 놓여 있다. 이제 와 새삼 시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한 공간에 있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었다.
“……어차피 이제 20분 정도밖에 안 남았고.”
“……?”
속삭이듯 중얼거린 진강의 마지막 말을 제대로 들은 이는 없었다. 다만 아무것도 아닌 듯 다시 시계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에 굳이 묻지 않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