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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3화)
1 세상의 끝(3)
교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살 신청자들 사이에는 망설임과 불안, 공포가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고 결국 교실 안에 남기로 한 정장의 두 사내는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향한 거겠지만, 사실 그들의 존재 자체는 지금 여기 있는 이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밧줄을 목에 걸었다가 빼기를 반복했고, 몇몇 이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채 뭔가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넋이 나간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그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든 그들이 당장 죽음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침묵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5분. 10분. 15분.
마침내 진강이 말했던 그 20분이 다가왔고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12를 가리킨 그 순간.
콰과과광!
천둥소리? 아니, 조금 전 그 어디에도 벼락 같은 것은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애초에 천둥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굉음은 천둥의 그것과 분명 닮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처절한 절규와 영혼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은 결코 단순한 천둥소리라고 할 수 없었다.
또한 무엇보다 분명 밝은 대낮임에도 불과하고 방금 그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비록 찰나였지만 마치 칠흑 속에서조차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을 그런 절대적인 암흑이 사방을 뒤덮었었다. 그런 것이 단순한 천둥일 리는 없었다.
“……?!”
“뭐, 뭐였죠?!”
사람들 또한 방금 전 들려온 괴음에 두려워했다.
“지, 진정하십시오. 저희가 확인해……!”
정장의 사내 중 하나가 동요를 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라고 해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가만히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던 진강이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세상의 끝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는 비통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 중 누군가가 얼이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진강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온 그 강렬한 비통함.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사람들이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들 전부를 집어삼켰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파도가 지나간 뒤 그 강렬한 격류에 그대로 집어삼켜졌던 그들은 이제 그 머리를 들어 올리며 참았던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거대한 감정의 격류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그것에 담겨 있던 말들 뿐. 사람들은 그제야 진강의 말을, 자신들이 들은 그 말들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세상의…… 끝……?!”
“예. 그렇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필요 이상으로 담담해져 있는 진강의 목소리.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끝이라니? 뭐가?”
그 순간 일제히 사람들은 정신을 차린 듯 저마다 입을 떼었다.
이미 조금 전 그들을 집어삼켰던 여운은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너무나 달라진 그 목소리가 조금 전 일을 그저 단순한 꿈처럼 느끼게 한 듯싶었다.
그저 꿈에서 깬 뒤 잊어버리면 되는 그 정도 것으로 말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조금 전 지금까지의 세상은 죽었습니다.”
진강의 말에 저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대로 말을 해 보세요!”
그리고 더러 그 시선을 검은 정장의 사내들에게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거 설마 무슨 이벤트입니까? 자살하려는 사람들 모아 놓고 삶의 교훈이라도 주겠다는 거예요?”
교실 안은 다시 소란스러워졌고 사람들은 불안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저 단순히 이상한 인간이 멋대로 내뱉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일상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심심찮게 듣고 있지 않은가. 지옥이 도래한다느니, 믿음 없는 자에게 신벌이 내린다느니 하는 거 말이다. 하물며 죽겠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 명 정도 방금 전 같은 상황 뒤에 어떤 소리를 지껄인다 한들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 진정하십시오 여러분! 방금 전 일들은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진정하게 생겼어요?! 당신들이 약속했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설사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혹은 인정할 수 없다 해도, 분명 지금까지와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 그 천둥소리 같은 그것.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진강의 말 또한 그저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정장의 사내에게 따지고 있는 자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죽고 싶으시다면 걱정 마십시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이제는 살고 싶어도 그러기 쉽지 않으니까요.”
“이진강 씨!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분들께서……!”
드르륵!
갑자기 복도 끝에서 들려온 문소리에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특히나 정장의 사내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당혹감을 넘어서서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은 이 교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직접 몇 번이나 확인했던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뚜벅, 삐그덕. 뚜벅, 삐그덕.
발자국 소리를 따라 거슬리는 나무판자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누군가 한 명 정도는 당장 교실문을 열고 그 정체를 확인할 만했지만 그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얼어붙은 채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귀를 세울 뿐이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그리고 또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는 많아졌고 하나는 바로 옆교실에서 들려왔다.
“제,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정장 사내 중 한 명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을 한 채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뇨.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그런 그를 진강이 막았다. 진강은 정장의 사내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적어도 당신들은 여기에 죽으려고 온 게 아니니까요.”
드르르륵!
진강은 힘껏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삐그덕, 삐그덕.
발자국 소리는 더 빨라졌고 나무판자가 내는 소음도 점점 더 커져 갔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이 누구든 이제 곧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후우…… 후우……!”
사람들은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은, 흡사 짐승의 것과 닮아 있긴 했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짐승의 것과도 달랐다.
사람들은 그 기괴한 숨소리에 몸을 떨었고 마침내 그 소리의 주인공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크오오오!”
붉은 눈의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십 수 명의 사람들을 보고는 기분 나쁜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것은 위협성 같은 게 아니었다. 귀를 찢고 영혼을 물어뜯는 것처럼 불쾌한 소리였지만, 그것은 환희였다. 스스로 결코 참을 수 없는 환희. 그래서 자기도 터뜨려 버린 환희.
“꺄아아악!”
“꺄악!”
한 발 늦은 비명이 교실 곳곳에 울려 퍼졌다. 아마도 너무나 충격적이라 상황을 이해하는 게 늦었으리라.
거기 있는 것은 온몸에 피가 흥건한 한 사내였다. 눈은 붉게 변해 있었고 그 손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함께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왔던 사내였다.
다만 문제는 그가 1시간 전 과다출혈로 확실히 죽었다는 점이다.
2 데드워커(1)
“크와아!”
“그만.”
당장이라도 교실 안으로 뛰어들어 오려는 사내를 향해 진강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마치 뭔가에 가로막힌 듯 허공에 그대로 멈춰 섰다.
“…….”
그리곤 진강은 허공에 뭔가를 그리는 듯하더니 주머니 속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붉은 가루가 들어 있었는데 진강은 그것을 그대로 문 앞에 쏟아부었다. 붉은 가루가 허공에 흩날렸고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사라졌다.
“…….”
진강은 뻗었던 손을 내렸고 사내는 여전히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크아! 크아아아!”
사내는 화가 난 듯 사납게 손을 휘저었지만 그 손조차 마치 투명한 유리벽에 막힌 것처럼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이제 제가 한 말을 어느 정도 아시겠습니까?”
진강은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사내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는 두려움 따윈 없어 보였다.
“최후의 심판. 라그나로크. 아마겟돈. 아포칼립스. 부르고 싶은 어떤 이름으로 부르셔도 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알던 세상은 조금 전 끝났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진강의 그러한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나 문밖 저 사내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던 정장의 두 사내는 그 누구보다 더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이나 그의 몸에서 생명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었다. 그것에 실수란 있을 수 없었다.
“크아아아!”
눈앞의 이 상황은 그들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고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아아!”
문밖에 다른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먼저 문 안으로 들어오려 서로를 떠밀었지만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
“…….”
교실 안에는 다시 침묵이 깔렸다. 여전히 눈앞에 이 상황을, 또 진강의 그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태초부터 내려온 본능으로 지금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알아챘을 뿐이다.
“……우, 웃기지 말라 그래!”
그러나 언제나 그 본능이 조금 옅은 사람은 있는 법이었다.
“대, 대체 무슨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거야? 엉? 저, 저게 무슨 좀비라도 된다는 거야? 조잡한 분장이나 해서는……!”
아까의 그 깐깐해 보이는 여자가 문 쪽으로 다가왔다. 그 눈에는 한 가득 공포를 머금고 문밖의 것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 어깨가 움찔움찔 하면서도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고집스런 얼굴로 진강의 앞에 섰다.
“……비켜요.”
진강은 그녀의 눈에서 분노를 보았다. 눈동자 전체를 공포가 뒤덮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빛이 그 안에 있었다. 다만 그것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도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도 미약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실 같은 거였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눈의 초점을 흐리고 있었다. 그건 마치 검은 그림자 속에서 사람을 조종한다는 악마가 늘어뜨린 실과 같았다.
“…….”
진강은 말없이 길을 터 줬다.
“크아아!”
문밖의 그것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울음소리에 겁먹은 듯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진강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들어올 수는 없지만 당신의 어느 부분이라도 잡으면 분명히 놓지 않을 테고, 결국 당신을 끌어낼 겁니다.”
“허, 헛소리 하지마!”
그녀는 진강의 말에 반발하듯 문밖 그것들을 향해 다가갔다.
“크악!”
“히익!”
하지만 그래 봐야 고작 몇 발자국뿐. 그녀는 차마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