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파이널 미솔로지 1권(4화)
2 데드워커(2)
“……좋아! 됐어! 이딴 광대놀음 따위에 더 어울릴 시간 따윈 없다고!”
쇼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한 사내가 갑자기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크아?”
그것들은 먹이가 자신들이 들어갈 수 없는 안이 아니라 밖에도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리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일제히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 아아악!”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사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고 그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쩌면 처음 이 폐교를 찾았을 때처럼 죽음을 원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반대로 살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너무 강한 충격과 공포에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것인지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처음 원했던 것처럼 죽음을 맞이했고,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의 죽음이 교실 안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의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젠장!”
“뭐, 뭐야?! 이게 대체 뭐야!”
사람들의 입에서는 불안감을 감추려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설명해! 설명해 보라고!”
깐깐해 보이는 여인이 진강의 멱살을 잡은 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울먹거리고 있었다.
“…….”
진강은 잠시 그녀가 흔드는 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정하세요.”
진강은 여전히 자신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떼어 놓았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그래! 어서 말해 보라고! 이 빌어먹을 상황은 대체……!”
교실 안의 시선은 이제 진강에게 향했다. 그들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짝!
진강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사람들의 어지러운 말소리를 지웠고, 그 뜬금없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덕분에 교실에는 잠깐의 침묵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진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너무나 담담한 그 목소리. 무신경하게까지 들리는 그 목소리에 사람들은 순간 분노가 치솟는 걸 느꼈지만, 그들은 모두 조용히 진강의 말에 집중했다.
“당신들…… 여전히 죽고 싶으십니까?”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구겨졌다.
“뭐, 뭐?!”
“지금 한다는 소리가 그딴……!”
짝!
또다시 박수 소리가 교실 안에 울렸다.
“왜? 어차피 죽으려고 다들 온 거 아니야? 거기다 삶과 죽음 말고 지금 중요한 게 대체 뭐가 있는데?!”
진강의 말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날카로워져 있었다. 거기다 지금 그는 문 쪽을 향해 왼손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치 당장이라도 저것들을 풀어 놓겠다는 위협처럼 보였다.
“후우.”
그러나 진강은 곧 고개를 흔들고는 올렸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한층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그 중간에서 고민하고 계신 게 아니라면 굳이 들으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
“…….”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불안하게 떨리는 시선으로 진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강은 그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군요. 하긴 어차피 당신들은 그런 사람들이지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것에조차 조그마한 신념도 가지지 못해서 타인을 찾는 그런 사람들. 여러분은 내가 당신들에게 한 방금 전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있겠죠.”
진강은 문밖에 있는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죽어 버린 사내를 뜯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탁!
진강이 손을 튕기자 그것들은 마치 실이 끊긴 꼭두각시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따라오시지요.”
진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진강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지금은 괜찮지만 저들은 곧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하나둘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들은 진강을 따라 교실을 나왔다. 복도는 피로 흥건했다. 소름 끼치는 피 냄새와 끔찍한 광경. 사람들은 움츠러들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삐그덕, 삐그덕.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내는 소리임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마치 발작처럼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보기를 반복했다.
“빨리 내려오십시오.”
진강은 중앙 입구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오신 겁니까?”
진강은 정장의 사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아 예. 다, 다 오신 것 같습니다.”
사내들은 별 다른 확인도 않은 채 그렇게 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 따윈 상관없이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듯 보였다.
“의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죽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강은 씁쓸한 눈으로 다시 그들을 둘러보고는 이내 폐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시지요. 우선은 버스를 타야 됩니다.”
진강은 손짓으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가까이로 불렀다.
“버스에 기름은 어느 정도 있지요?”
“가득 차 있지는 않을 테지만 돌아가는 데는 충분…….”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야겠군요. 뭐 하긴 어차피 필요한 일이니까요.”
진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 걸어 나갔다.
폐교에서 버스가 주차된 곳까지는 꽤 거리가 멀었기에 사람들은 진강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그를 쫓았다. 특히 가장 뒤쪽에 선 이들은 어느 정도 이상 진강과 거리가 멀어졌다 싶으면 온 힘을 다해 그 거리를 줄였다.
“…….”
그런데 갑자기 진강이 발걸음을 멈췄다.
“왜, 왜 그러십니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넷, 아니, 셋인가?”
진강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노란색 종이에 붉은색 문장들이 그려진 부적이었다.
“하지만 뭐, 아직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진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진강을 따라 사람들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세상이 끝났다곤 했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태양은 밝았다. 작은 먹구름이 보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했다. 그러나 잠시 후 사람들은 그게 단순한 먹구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몇몇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것은 먹구름이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은 바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 바람을 휘감은 어떤 것들이었다.
마치 대지를 휩쓰는 메뚜기 떼처럼.
그것은 불경하고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그것들이 지나가는 하늘 길에는 감히 다른 구름들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두렵게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검은 바람에 휘감기고 거리도 거리였기에 그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정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단순한 점보다 훨씬 커 보인다. 또한 저 불규칙한 움직임 그리고 그것이 내뿜고 있는 불길함. 그것은 결코 어떤 기계장치가 아니었다. 바로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저, 저건 대체……?”
깐깐한 여자와의 말싸움 때 그녀를 몰아붙였던 매력적인 여인이 진강의 곁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이들에게 밀려온 거였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하스터(Hastur). 형용하기 어려운 자. 비승풍(碑乘風). 멸망시키는 자.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겠지만 중요한 건 안 좋은 것들이란 거죠.”
진강은 그것들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그제야 진강은 부적을 집어넣고는 다시 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가시죠.”
몇 분 더 걸음을 옮기자 저 멀리 버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히 빨라졌다.
“꺄악!”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있는 힘껏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후우.”
오직 진강만이 몸을 돌려 그 비명의 원인을 마주할 뿐이었다.
“크아아!”
“크악!”
그것은 폐교에서 넘어뜨렸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어느새 바로 뒤까지 쫓아와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거리가 있었지만 속도를 보아 뒤쳐진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완전히 도망치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직은 힘 조절이 미흡한가 보군요.”
진강은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들은 마치 무언가에 붙잡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그 사실이 불쾌한 듯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뭐 상관없겠죠.”
그가 뻗었던 손을 살짝 뒤틀자 그것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망가졌다. 목과 허리가 한꺼번에 뒤틀렸으며 팔다리의 뼈들은 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딱히 효과적인 것도 그렇다고 내 스타일도 아니군요.”
그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그것들의 입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게 뿜어져 나왔고 이내 허공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단순한 시체로 변했다.
“이건 내 스타일이군요. 조금 더 힘이 들지만 확실히 효과적이고요.”
진강은 만족스런 얼굴로 다시 몸을 돌렸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에 거의 다 도착해 있었다.
“어서! 어서 열어요!”
차문을 열고 있는 정장의 사내들을 향해 사람들이 외쳐 댔다. 물론 그들이 재촉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버벅대지 않고 이미 문을 열었을 테지만 말이다.
“어, 어서 들어가!”
마침내 버스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곤 최대한 문에서 멀어지기 위한 맨 뒷자리로 향했다.
“어서 출발해요!”
사람들은 운전석에 앉은 정장의 사내를 향해 외쳐 댔다. 그리고 그 성화에 사내는 문을 닫고 시동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정장의 사내가 그런 그의 손을 잡았다.
“아직 이진강 씨가 오시지 않았어.”
“그딴 사람이 뭐가 필요해요!”
깐깐해 보이는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했고 몇몇 사람들은 그것에 동조했다.
“그래요! 그냥 놔두고 빨리 출발해요!”
“빨리요!”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에게는 진강이 필요했다. 그가 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진강이 버스에 타고서야 그는 잡고 있던 동료의 손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