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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5화)
2 데드워커(3)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어디긴 어디에요! 집으로 보내줘요!”
그는 진강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하는 것은 진강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벗어나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에 삶의 소중함이나 선택에 대한 후회 같은 건 없었다. 그것은 그저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
정장의 사내들은 진강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도록 하세요. 다만 가장 가까운 주유소에 먼저 들르는 걸 잊지 말고요.”
진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일 앞 좌석에 몸을 앉혔다. 그리곤 품 안에서 또 다른 유리병을 꺼내 들더니 똑같이 내용물을 쏟아부었다.
시동이 걸리고 버스는 출발했다. 사람들 얼굴에는 안도감이 스쳤다. 그들은 믿는 듯했다. 이곳만 떠나면 자신들이 이곳에서 본 것들까지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믿음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졌다. 그들이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드문드문 서 있는 차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차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붉은 눈의 인간 아닌 자들도 보았다.
“…….”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설사 떠올리기 싫어하는 자라해도 그들 친구, 그들 집, 그들 가족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 저…….”
운전사는 복잡한 얼굴로 진강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멈춰 선 차는 많지 않았지만 걸어다니고 있는 것들이 문제였다.
“괜찮습니다.”
진강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앞 유리에 던졌다.
척!
그것은 부적이었다. 노란 종이에 붉은빛으로 특이한 도형들이 가득 그려져 있는 부적은 운전석 앞 창문에 그대로 붙었다.
“알아서 피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진강은 그대로 몸을 의자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진강의 말처럼 부적을 붙이자마자 붉은 눈의 그것들은 마치 살아생전처럼 버스를 피해 길가로 도망쳤다.
“물론 다른 것들에겐 통하지 않겠지만…….”
잠꼬대처럼 중얼거린 진강의 그 말에 두 사내는 등줄기가 서늘했지만 차마 그 다른 것들이 무엇인지 묻지는 못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고 마침내 주유소에 도착했다.
“…….”
정장의 사내들은 진강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저 이진강 씨……?”
“알고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그렇게 조금 더 누워 있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진강의 요청에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버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자, 잠깐만요!”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사람들은 앞으로 달려왔다.
“도, 돌아갈 기름은 충분하다면서요!”
“마, 맞아요! 저것들이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대체 여긴 왜……!”
사람들의 아우성에 진강은 짜증스런 얼굴로 대꾸했다.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데?! 애초에 당신 대체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달려나온 사내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퍽!
남자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저 눈만 껌벅일 뿐 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분을 치료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확실히 말해 두지만 저한테 화내 봤자 좋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강은 운전석의 사내를 향해 문을 열라는 듯 손짓을 했다.
“예, 예!”
버스 문이 열리고 진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주변을 몇 번 둘러보더니
“좋습니다. 나와서 주유 시작하십시오.”
“예?”
“안전하니 나와서 기름 넣으라고요, 가득.”
“아, 아니 그게…….”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향한 지시가 아니다 보니 그것이 더 심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빨리 주유를 끝내야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저, 저기…….”
진강의 재촉에 사람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냈다.
“괜찮으시다면 지, 직접 하시는 게…… 어떻지……?”
뭐 진강이 원했던 종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유할 줄 모릅니다.”
당당한 그 말에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그 상황이 이어지자, 운전석 옆에 서 있던 정장의 사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남은 사람들은 홀가분한 얼굴로 뒷좌석으로 돌아가려 했다. 진강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그럼 다른 분들은 편의점에 가서 음식을 나르도록 하죠.”
“우, 우리가 왜요!”
깐깐해 보이는 여인이 다시 그 목소리를 높였다.
“우, 우리는 집에 갈 거예요! 집에 갈……!”
쾅!
진강은 이번만은 더 이상 그녀가 입을 놀리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진강이 주먹으로 친 곳은 버스 옆면으로 비교적 얇은 부분이다 보니 울리는 소리가 더 컸다. 그 소리와 진동은 버스 전체를 덮어갔고 그것에 반항은 불가능해 보였다.
“저기 저 붉은 눈의 저것들. 저것들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좀비. 망자. 시체. 물론 그 이름 중 어떤 것도 저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저것들의 특성과 행동을 설명하는 데는 그걸로 충분할 테니까요.”
진강이 손을 내젓자 저편에서 뛰어오던 붉은 눈들 중 하나가 도로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모두들 관련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접해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겠지요. 그러니 닥치고 당장 내려서 짐부터 나르십시오.”
그의 거친 손짓에 남은 붉은 눈들은 완전히 짓뭉개졌고 검은 연기들은 허공으로 터져 나와 흩어졌다.
“…….”
“…….”
사람들은 하나둘 버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깐깐해 보이는 여자 또한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버스 문을 나섰다.
“좋습니다. 알아서 먹을 거나 기타 필요하다 싶으신 것들을 챙겨 오시도록 하십시오. 아시겠지만 상온에서 쉽게 상하는 것들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저, 저기!”
“왜 그러시죠?”
“저, 저 안에 그것들이 있으면 어쩌죠? 그러니까…… 워커요. 데드워커들이요.”
진강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균적인 키에, 긴 생머리, 매력적인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조금 피곤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윤이 나는 새하얀 피부와 앵두 같은 입술. 그로서는 그녀가 어째서 죽음을 택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미약하게나마 반짝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여기 있는 그 어떤 이보다 밝았다.
“워커…… 워커라. 확실히 어울리는 단어군요.”
진강은 잠시 편의점 쪽을 바라보았다.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도로를 따라오는 것들만 조심하면 됩니다. 그리고 도로는 제가 지키고 있을 거고요.”
“아, 알겠어요.”
그녀를 선두로 사람들은 도로 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진강의 눈은 어째선지 깊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처음 사람들은 편의점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손에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곧 그다지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계산대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들었다. 몇몇 머리 좋은 이들은 창고 문을 열고 아직 박스에 담겨 있는 것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버스 짐칸과 좌석들에는 물, 음료수, 통조림, 건어물, 스낵류 같은 것들과 휴지, 상비약, 칫솔과 스타킹 같은 생활용품들이 들어차 갔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요.”
진강은 사람들을 다시 버스에 태웠다.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앞에는 어느새 몇 명이나 되는 워커들이 쓰러져 있었다. 물론 다른 쪽에는 훨씬 더 많은 워커들이 쓰러져 있었지만 말이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정장의 사내들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집으로 가는 거죠!”
“처음부터 그러기로……!”
진강은 뒷좌석에서 목만 빼 들고 말하는 자들을 가볍게 돌아보았다.
“…….”
그리고 그들은 곧 입을 다물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
진강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가자는 대로 가죠.”
진강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잠을 청하듯 고개를 돌렸다.
정장의 두 사내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고, 운전석 옆에 서 있는 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 소리가 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버스는 고속도로를 나와 도심가로 향했다.
3 에딤무(Edimmu)(1)
버스는 도심가로 들어섰다. 하지만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고작 도로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줄을 잇고 있는 자동차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좁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차가 있는지 실감하게 만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내는 진강을 돌아보았다.
“…….”
진강은 말이 없었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는 잠을 자고 있었다.
“뭐, 뭐예요? 왜…….”
갑자기 멈춰 선 버스에 뒷좌석에 숨어 있던 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길!”
그들은 꽉 막힌 도로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겨우겨우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과 마주해야 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진강의 말처럼 그들의 세계는 죽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 또한 끝나 버렸다.
“이봐.”
한 남자가 초점을 잃은 채 진강을 향해 걸어왔다.
“이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강을 불렀다. 다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이봐.”
“…….”
그러나 진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고 의도적인 무시일지도 몰랐다.
“이봐!”
사내는 진강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 하지만 진강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장의 사내가 재빨리 그를 막았다.
“멍청한 짓 하지 마십시오!”
정장의 사내는 그를 뒤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의 눈은 진강에게 향해 있었고 당장이라도 그를 두들겨 깨울 기세였다.
“이봐! 이봐! 당장 안 일어나?! 설명하란 말이야!”
번쩍!
그 처절한 외침에 진강은 눈을 떴다. 그리곤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몸을 일으켜서는 여전히 통로에서 격렬한 몸싸움 중인 사내들 앞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