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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6화)
3 에딤무(Edimmu)(2)
“설명을 원하십니까?”
“그래!”
진강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무심한 듯했지만 누군가 자세히 봤다면 그 안에서 깊은 슬픔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좋습니다. 설명해 드리죠. 대신 일단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이건 모두의 일이니까요.”
진강의 손짓에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좌석 손잡이에 그대로 앉았다.
좌석에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흥분을 다 가라앉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강은 그를 향해 다시 손짓을 했다.
“제대로 된 자리에 앉으시지요.”
“니가 뭔데? 빌어먹을 수학여행 선생이라도 되는 거야, 앙? 제자리에 안 앉으면 반성문이라도 쓰게 할 건가?”
휙!
진강의 손짓에 살짝 감정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보다 훨씬 작은 움직임에 힘도 얼마 안 들어가 있었지만 그 손짓 한 번에 손잡이에 앉아 있던 사내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제가 말했을 텐데요. 저한테 화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크, 크윽!”
사내는 원래 있던 곳보다 몇 좌석 뒤쪽 통로에서 신음성을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앉으십시오. 그쯤에는 짐이 안 실려 있으니 앉을 수 있겠지요. 뒤쪽에 계신 분들 중 가까이 오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오셔도 됩니다.”
사내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고, 뒷좌석에 있는 자들 중 반 정도가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 저는……?”
사내를 말리기 위해 서 있던 정장의 사내가 그렇게 물었다.
“앉고 싶으신 곳에 앉으시지요. 아! 그보다 교실에서 이미 했어야 하는 일을 지금 하도록 하죠. 바로 통성명이죠.”
진강은 그렇게 말하면서 까다로워 보이는 여인을 한 번 쳐다보았다.
“저는 이진강이라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진강은 정장의 사내를 향해 말했다.
“저, 저는 김성진입니다.”
“당신께서 이 모임을 만드셨습니까?”
진강의 물음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저와 제 동생인 김성은이 만들었습니다.”
성진은 운전석에 앉은 또 다른 정장의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사람들은 저마다 이름을 말했다.
보기에는 아무 의미 없고, 거기다 그저 한 번 말해지고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진강의 말을 거부했던 천영진이란 남성조차 말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이름이 불린 뒤에야 진강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뭐가 궁금하시죠?”
“빌어먹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욕설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만.”
진강의 낮은 그 목소리에 영진은 두려운 듯 입을 다물었다.
“말했다시피 세상이 끝난 겁니다.”
“그러니까……!”
영진은 소리를 높이려다가 진강의 눈빛에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영화처럼 바이러스라도 퍼진 겁니까?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 겁니까? 대체 종말이 어떻게 왔냐고요!”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진강은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얻게 될 답이란 바닥을 구르거나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신 듯하군요.”
“……?”
“이건 종말이 아닙니다.”
“……?!”
“무슨 헛소리를……!”
“이건 종말이 가져온 결과일 뿐입니다. 지금부터 시작되거나 진행 중인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소리를 들었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세상은 끝난 겁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잔재 위로 이것들이 파고들어 온 거지요.”
진강은 창문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워커들이 버스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서는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것들은 좀비 같은 게 아닙니다. 애초에 좀비란 건 저런 게 아니니까요. 물론 바이러스 같은 거에 걸린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세상이 죽은 바로 그 순간 저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지금 저 몸을 차지한 것들은 그저 이 거대한 시체를 찾아 기어든 더러운 구더기들이죠. 하지만 뭐…….”
진강은 워커라는 단어를 처음 썼던 그 매력적인 여인을 잠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 한소연이라 이름을 밝힌 그녀를 말이다.
“워커라는 표현은 확실히 어울리는군요. 비록 저것들 본래의 천박함보다 훨씬 고상한 느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가 그녀에게 최소한의 호감 정도는 표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차렸다.
“물론 기어들어 온 게 단순한 구더기만은 아니겠죠. 하늘에서 보셨던…….”
“자, 잠깐만요!”
작은 몸집의 김현숙이라는 중년 여성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그러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우리가 전부라는 뜻인가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자세히 보니 소매 사이로 드러난 맨살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가정 폭력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택했으리라.
저 표정. 그녀는 부모, 친구, 자녀들 그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에 깊이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지독한 폭력의 근원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대부분 죽었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도 꽤 될 겁니다. 그래 봤자 전체 인구에 비한다면 극소수겠지만 말이죠.”
“그러면……!”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 스쳤다. 하지만 진강은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을 마음 따위는 없어 보였다.
“여러분들의 가족 분들 중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묻고 싶었던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 가족의 생사.
“…….”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고, 그 깊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 이상 궁금하신 게 없다면 이만…….”
“넌 뭔데?”
진강이 몸을 돌려 앞 좌석으로 가려는데 영진이 물었다.
“제 이름은 이미 알려드렸습니다만?”
영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놈은 뭔데 이런 걸 아는 건데? 거기다 그 빌어먹을 짓거리는 뭐고 그 초능력인지 마술인지도 어떻게 쓰는 건데? 네놈 정체는 대체 뭐야!”
“…….”
진강은 자리에서 일어서 있는 영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가 누군지 궁금하십니까?”
그의 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슬픔 위에 두려움과 기대가 한 방울씩 섞인 그러한 눈으로 진강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런데 갑자기 진강의 눈빛이 달라졌다.
“모든 게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가는군요.”
진강은 몸을 돌려 앞쪽으로 향했다.
“어이! 대답 않고 어디 가는 거야!”
“모두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십시오!”
진강은 성은에게 문을 열게 했다. 그리곤 서둘러 버스 밖으로 나왔다.
그는 워커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저 멀리 자동차들이 늘어서지 않은 교차로 너머 한 빌딩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빌딩 유리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 빌딩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 빌딩은 마치 혼자만 밤인 듯 칠흑 속에 있었다.
“……에딤무(Edimmu). 들어 올려진 자. 역병의 사도. 지옥의 졸개.”
그것은 빌딩 벽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검은 것들 때문이었다.
“킥!”
진강의 부름에 답하기라도 한 듯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빌딩의 한 곳에서 아주 작은 보랏빛 한 쌍이 나타났다. 그것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킥킥킥키!”
“킥킥!”
“키키키!”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더 많아져 갔다. 그와 함께 보랏빛도 늘어났다. 마침내 밤중에 있는 것 같던 검은 빌딩은 이제 완전히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너희의 여주인. 에레슈키갈이 보냈더냐?”
“켈켈켈케!”
“케케케!”
마치 박쥐 떼가 날아오르듯 빌딩 벽면을 완전히 뒤덮고 있던 그것들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칠흑 같은 빌딩은 보통의 주변 다른 빌딩들처럼 변했고 하늘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크악!”
“커, 커억!”
주변을 메워 가던 워커들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진강은 방금 전 워커들이 서 있던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최대한 버스에서 멀어지더니 주머니 속에서 또다시 유리병들을 꺼내 들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유리병들을 입가로 가져와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는 위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검은 그림자들은 이제 그의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주인에게 돌아가서 전해라. 그대들의 시간은 끝났다고.”
“케케케케!”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그 보랏빛 안광을 빛내며 진강을 덮쳤다. 그리고 진강은 그 그림자들을 향해 유리병들을 던져 올렸다.
탁!
진강이 손가락을 튕기자 병들은 허공에서 깨졌고 허공에는 가루들이 만들어 낸 붉은 안개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붉은 안개를 향해 에딤무들은 그대로 날아들었다.
“…….”
진강은 몸을 돌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에딤무들은 붉은 가루를 통과하기도 전에 녹아 사라져 갔다. 활강 속도. 각도. 타이밍. 그 모든 것은 완벽했다. 에딤무들은 모조리 녹아 버릴 거였다.
“켈켈!”
“……!”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진강은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온 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에 얼굴 가득 떠오르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케케케!”
“이, 이건 뭐야?!”
소리는 버스 쪽에서 들려왔다. 거기에는 버스 밖으로 나와 있는 영진이 서 있었고 십여 마리의 에딤무들이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당장 버스 안으로 들어가!”
진강은 급히 손을 뻗으며 외쳤다. 그의 손짓에 몇 마리의 에딤무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수가 영진을 노리고 있었다.
“켈케켁!”
에딤무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영진을 덮쳤다. 진강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지만 고작해야 몇 마리의 에딤무를 더 떨어뜨리고, 애꿎은 차와 워커들을 짓뭉갰을 뿐이었다.
“으, 으아악!”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에딤무들은 그 날카로운 이빨을 영진의 몸 곳곳에 박아 넣었다. 영진의 피부는 곳 보라색으로 물들어 갔고 고작 몇 초도 되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켈켈켈켈!”
그것들은 이제 보랏빛 미라로 변해 버린 영진에게서 떨어져서는 만족스런 웃음소리를 내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제기랄!”
진강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에딤무 몇 마리가 더 추락했지만 나머지는 저 멀리로 사라져 갔다.
“제기랄!”
진강이 다시 손을 휘두르자 조금 떨어져 있던 차들이 도로 밖으로 내팽개쳐 졌다. 그의 얼굴은 치밀어 오른 화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버스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물론 그 중간 중간 그의 앞에 머리를 들이민 워커들은 완전히 짓뭉개져 버렸다.
“…….”
그는 완전히 말라 버린 보랏빛 영진의 시체 앞에 멈춰 섰다. 그것은 더 이상 영진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 색깔부터 모양까지 그것은 그저 우스꽝스런 할로윈 소품처럼 보였다.
“멍청하기는!”
그는 그 시체를 발로 차 버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슬픔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