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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7화)
3 에딤무(Edimmu)(3)


어쩌면 영진은 죽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분노하는 것을 택했고 그 분노로 슬픔과 절망을 스스로 숨겼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버스 밖으로 나올 이유가 있었겠는가. 설사 아무리 흥분으로 눈이 뒤집혔다고 해도 말이다.
의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그랬을 터였다.
그것은 자기방어 본능이었으며, 그것은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하찮은 생명이 아닌 그 영혼을 지키는 수단이었을 터였다.
“제기랄!”
진강의 손짓에 영진의 시체 위로 푸른 불길이 일었다. 그것은 곧 영진의 시체 전체를 집어삼켰고 몇 초 후 영진은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단순한 회색 재로 변해 버렸다.
“이래서 그때 물었던 거였는데!”
몇 번의 심호흡. 그리고 또 다른 워커 하나를 짓뭉갠 뒤 진강은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은 창문에 붙어 있던 몸을 떼고는 서둘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아.”
진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뒷좌석 사람들과 자신의 좌석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앞 좌석에 그대로 쓰러졌다.
“저……?”
성은은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대답은커녕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잠꼬대를 하듯 입을 열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무겁고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워커들이 점점 버스 주위로 몰려오고는 있었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침묵. 침묵. 침묵.
실제로는 그리 오래되지 않을 터였지만 그것은 마치 영원처럼 이어져 갔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예요?!”
깐깐해 보이는 여성. 성주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혼란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한 막대한 스트레스가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저 사람이 대체 뭔데요? 저 사람이 대체 뭔데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 건데요?!”
그것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왔으리라. 애초에 그들이 폐교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진강 덕분이었고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자도 그뿐이었다. 굳이 그의 그 가공할 능력들을 말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말이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정하도록 하지요.”
“기다리긴! 지금 상황에서 기다리자는 소리가 나와요?! 조금 전의 그 남자 죽는 꼴 못 봤어요?!”
“천영진 씨의 경우는 안타까운 경우지만 애초에 진강 씨의 경고를 무시하고 버스를 나섰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당신 대체 뭐예요? 저 남자 부하나 숭배자라도 된 거예요?”
무의미한 말싸움, 아니,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그것은 또 다른 자기방어 본능이었으며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결국 결과는 같을 터였다.
“그럼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잠꼬대를 하듯 몽롱한 진강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꿰뚫었다.
“아직도 집에 가고 싶으신 겁니까? 저들을 뚫고 저 자동차 사이를 지나?”
“어디든지요!”
그녀가 외쳤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든지 좋아요! 저것들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요!”
“…….”
진강은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단순한 침묵이나 다시 잠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알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물음이었다. 진강은 그 침묵으로서 다른 이들에게도 방금 전 그녀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던지고 있었다.
“저는 가겠어요.”
“저도요.”
이창호, 정다희라는 이름의 중년의 남성과 어린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진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은에게 문을 열게 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마주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진강은 왼쪽 손바닥을 펼치며 문을 가리켰다.
“그대들 영혼에 축복이 있으라.”
그는 그들에게 품 안에서 유리병 두 개를 꺼내 건넸다.
그들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작은 물 한 병도 챙기지 않은 채 버스를 나섰다.
워커들은 감히 그들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워커들은 두려움에 떨며 그들에게서 도망쳤다. 그들은 천천히 워커들 사이를 걸었고 도심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진강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갈 때까지 그 모습만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다시 자리에 몸을 눕혔다.
“그럼 가도록 하죠.”
“어, 어디로 말입니까?”
진강은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손잡이에 올려놓았고 성진이 그것을 들어 펼쳐 보고는 다시 성은에게 건넸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주소였다.
“거기로 가도록 하십시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은 침묵했고 시끄러운 엔진 소음에도 불구하고 정적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7화)4 정착(1)


버스 안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버스 뒤쪽은 그들이 친 커튼으로 컴컴하기만 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들은 창밖의 풍경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심 이 버스가 영원히 멈춰 서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은 조금 전 자진해서 버스를 내린 두 명처럼 어떤 선택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희망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이 상황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다. 현실을 잊은 채 어떤 선택을 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 있는 이 순간이 말이다.
“그쪽이 아닙니다.”
가끔 성은이 방향을 찾지 못할 때마다 진강이 잠꼬대처럼 입을 열기도 했지만 그가 말을 마치면 곧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무거운 침묵 속에서 또다시 한참을 달렸을 때 갑자기 버스 안에 어떤 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방향을 바꿔 또다시 들려왔다.
꼬르륵.
그 순간 버스 안의 분위기가 조금은 변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고개는 바닥만을 향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과 같은 무거움은 사라져 있었다.
“에잇! 정말!”
누군가 비교적 쾌활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스스로 창피함을 덜기 위함일 터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는 박정진. 교실에서 탁자를 내려쳤었던 덩치에 맞지 않는 미성을 지닌 사내였다.
그는 앞쪽으로 그 육중한 몸을 옮기더니 음식물 박스들 중 하나를 열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먹읍시다. 참아 봤자 뭐 좋은 게 있겠어요?”
그는 땅콩과 육포, 스낵 몇 개를 들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입안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실제로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작은 소리로 먹었다. 단지 너무나 조용한 버스 안이었기에 유난히 크게 들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정진이 했던 것처럼 앞쪽으로 걸어가 먹을 걸 집어 들었다.
순간 자고 있는 것 같던 진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본래 식욕은 의욕과 상통한다. 그들이 식욕을 느낀다면 의욕 또한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잠시 후 버스는 점점 속도를 줄여 가더니 어느덧 멈춰 섰다.
“여, 여긴가요?”
“예. 도착했습니다.”
진강의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한적한 시골 도로였다. 고작해야 차 한 대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도로. 주변에는 워커도 없었고,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건물이라곤 저 멀리 띄엄띄엄 서 있는 몇 채의 집들이 전부였으며 논과 숲을 가득 채운 푸른 초목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모두 내리시지요. 짐은 나중에 옮기면 되니 적어도 지금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성은 씨. 버스 문은 잘 잠가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진강이 먼저 버스에서 내리고 사람들은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은 아직 마을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기서 버스가 멈췄는지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버스 앞쪽에 단단한 쇠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저 기둥 덕분에 이 마을에는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들의 이주를 막기 위해 박아 넣었지요. 고작 나라에서 내려오는 보조금 몇 푼 나눠 갖기 싫어서 한 거겠지만 우리에겐 잘된 일이지요.”
“어째서지요?”
한소연의 물음에 진강은 고개를 돌렸다. 별다른 의미는 없어 보였지만 그 모습에 소연은 놀란 듯 서둘러 덧붙였다.
“그, 그러니까 그게 왜 좋은 일인지 궁금해서요. 어차피 워커들은 차를 타지 않잖아요.”
다급하게 덧붙이는 그녀의 모습에 진강은 잠시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먼저 마을 사람들 수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워커들의 수도 적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라면 다른 시골 마을들에 비해 별다를 건 아무것도 없겠죠. 중요한 건 이 마을이 상당한 부자 마을이라는 겁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북쪽과 서쪽을 한 번씩 가리켰다.
“근처에는 쓰레기 소각장과 하수처리 시설이 들어서 있죠. 아마 한 가구당 보상금만 1년에 5천만 원씩은 내려올 겁니다. 그리고 소득은 대체로 그만큼의 소비를 낳지요. 그런 마을 입구에 쇠말뚝입니다. 신속 배달이 불가능하다면 물건을 미리 많이 쌓아두는 수밖에 없지요. 충분하다 못해 넘쳐 날 정도로 말입니다.”
진강은 마을 중심에 서 있는 지나치게 말끔하고 멋을 낸 5층 건물을 가리켰다.
“이 마을 전용 대형 마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크기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마을 주민들 취향에 맞추다 보니 종류도 제한되어 있지만 양만큼은 충분합니다. 거기다 건물 전체를 건물 내부에 설치된 자가발전기로 돌릴 수도 있으니 완벽하지요.”
공사가 커지면 그로 인해 떨어지는 콩고물도 커진다.
무슨 예술가의 작품처럼 파격적이진 않았지만,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건물 외형부터 자가발전기. 어차피 누군가가 공사비를 더 떼먹기 위한 추가 요소였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준비가 철저하시군요.”
“가시죠.”
진강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작고 고립된 마을이라고는 해도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분명 어디엔가 워커들이 있을 터였으니 안심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