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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미솔로지 1권(8화)
4 정착(2)
“…….”
“…….”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런 진강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디에선가 굵은 나뭇가지나 돌을 구해 들고 있었다.
스스스스.
“……!”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소리에도 놀라 고개를 돌렸고 몇 명은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돌을 던졌다.
“걱정 마십시오. 최소한 가까이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자, 잠깐만요! 아까 당신이 그 사람들에게 나눠 준 그 붉은 가루들. 왜 우리한테는 안 주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입을 연 그녀는 성주선이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불안한 표정으로 진강을 바라보았다.
“양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강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화를 참는 듯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게 있으면 주변에 저것들이 못 오는 거잖아요? 뒷사람에게 하나라도 나눠 주면 더 안전해지는 거 아닌가요?”
“…….”
진강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갑작스런 진강의 그런 행동에 다른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하아.”
진강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서는 성주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사람들은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주선 또한 태연함과 당당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진강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손발은 점점 더 떨려 오고 있었다.
“……!”
성주선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진강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진강은 그런 그녀를 그대로 지나쳐서는 맨 뒤에 서 있던 박창걸이라는 사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받으시지요.”
“가, 감사합니다.”
창걸은 잠시 멍하니 진강의 얼굴을 바라만 보다가 겨우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어차피 제 주변에 있을 땐 필요 없겠지만 일단 가지고 계십시오. 하지만 혹여 그 가루만 믿고 쓸데없는 행동을 하시지는 마십시오.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니까요.”
진강은 다시 몸을 돌려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고 성주선 또한 떨리는 손발을 진정시켰다.
“가시지요.”
진강과 사람들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논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벼들을 짓밟고 있는 워커들이 보였다.
“저, 저기!”
“저런 건 무시하십시오. 어차피 저기서 여기까지 올 때쯤이면 우린 도착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워커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후 몇 마리 정도는 그들 앞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진강의 손짓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그 건물 앞에 섰다.
마트라기 보다는 평범한 5층짜리 건물이었지만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서 그런지 외관은 지나치게 깨끗했으며 쓸데없는 외관 장식들도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문 앞에 놓여 있는 십여 대의 카트가 없었다면 무슨 문화 회관쯤으로 보였을 터였다.
“돈을 얼마나 쏟아부은 건지 모르겠군요.”
진강은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지요. 위층들에 워커들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곧 밖에서 몰려들 것들 보다는 적으니까요.”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다 들어오자 진강은 문 옆 버튼을 눌러 셔터를 내렸다.
“성진 씨. 주변에서 자물쇠를 찾아서 좀 채워 주시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진강 씨께서는……?”
“저는 위층에 있는 워커들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진강은 사람들을 놔두고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셔터처럼 엘리베이터 또한 작동할 테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크오오!”
“우습지도 않군.”
계단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워커를 향해 진강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이 주먹을 쥐었을 때 워커는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둘, 셋…… 여섯인가.”
진강이 손을 튕기자 워커의 몸에 푸른 불길이 일었다. 푸른 불길은 연기도 없이, 벽이나 바닥에 작은 그을음도 남기지 않고 시체를 재로 만들었다.
진강은 천천히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워커들을 처리했다. 워커들은 검은 연기를 뿜어낸 뒤 단순한 시체로 돌아갔고 그것들은 여지없이 푸른 불길에 휩싸여 재로 돌아갔다.
“마지막이군.”
5층. 주민 부흥 발전회라고 새겨져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현판을 내건 사무실에서 마지막 워커 두 마리를 처리한 진강은 사무실 소파에 몸을 눕혔다.
“후우…….”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버스 안에서와는 달리 그는 완전히 잠에 든 듯했고 그 상태로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꿈을 꾸듯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훈구루이 무구루우나후 크툴후 르 리에 우가후나구루 후타군. 훈구루이…….”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중얼거림은 어딘가 음산하기만 했다.
***
“왜 이리 안 오는 거죠?”
진강이 올라간 지 벌써 한 시간. 소식도 없는 진강의 모습에 사람들 사이에는 점차 불안이 싹트고 있었다.
“설마 당하기라도 한 건…….”
“그럴 리가요.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들을 생각한다면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럼 대체 왜 안 오는 거죠?”
그들은 진강이 가기 전 말한 워커들의 존재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거나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크오오!”
하지만 동시에 문밖에서도 몇 마리의 워커들이 셔터에 가로막힌 채 사납게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리 한다고 해도 들어올 수야 없겠지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크오!”
“아아, 정말……!”
신경질적으로 외친 성주선은 방금 전 유리병을 받았던 박창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슨……?”
갑작스런 그녀의 그런 행동을 창걸은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렸다.
“내놔요. 그 유리병.”
“예?!”
“그 유리병 달라고요. 난 여기 더 이상 못 있겠어요.”
“…….”
주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빼앗겠다는 눈빛. 그녀의 그 눈빛이 얼마나 강했던지 창걸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싫습니다.”
그는 주머니 속에 든 유리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사람이 내게 준 겁니다.”
“그건 그냥 당신이 맨 뒤에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어쨌든 당신한테는 못 줘요. 애초에 그 사람이 우리 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당장 내놔요!”
그녀는 창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그만해요!”
“내놓으란 말이야!”
그녀는 유리병이 들어 있는 창걸의 주머니를 잡고 늘어졌다.
“제발 그만해요! 깨, 깨지겠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내놓으라고요!”
점점 심각해져 가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급히 그녀를 잡으며 창걸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다.
“이거 놔! 어딜 잡는 거야! 이거 놓으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손이 닿자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마치 덫에 걸린 야생동물처럼 필사적으로 휘두르는 그녀의 두 팔과 버둥대는 두 다리에 그녀를 말리던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걷어차이고, 맞고 또한 상처를 입었다. 특히나 정진의 경우 그녀를 떼어 놓으려다 턱과 흉곽, 옆구리를 심하게 얻어맞았다.
“좀 그만 좀 해요!”
다시 한 번 그녀의 팔이 그의 왼쪽 가슴을 강타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정진은 그녀를 땅으로 내던져 버렸다.
“아앗!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무식해서……!”
“좀 작작 좀 하라고!”
특유의 그 고운 목소리 때문에 다른 이들 같은 박력은 없었지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려 주기는 충분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좀 조용히 있어 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뭐? 그럼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사람만 기다리고 여기서 입도 뻥긋 않고 있을까? 응? 이미 당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하다못해 찾으러 가 보겠다는 게 뭐가 문제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악을 쓰며 외쳤다.
“…….”
정진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또한 넘어지며 다리를 삐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일그러지는 그녀의 표정은 그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찾으러 가겠다고요? 아뇨, 그런 게 아니겠죠.”
바로 그때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찾으러 가겠다면 유리병을 누가 들고 있던 상관없죠. 같이 가면 되니까요. 당신은 그저 유리병이 갖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사람들을 밀치고 앞쪽으로 걸어 나와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 그는 김인수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살짝 마른 듯한 체격에 검은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주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그녀에 대한 경멸이 숨김이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하는 그 경멸의 시선에 주선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정말 우습지도 않군요. 거기다 당신은 사실 알고 있죠. 그 사람이 당할 리가 없다는 걸요. 당신의 말은 전부 유리병을 얻기 위한 핑계에 불과해요.”
“무슨……!”
뭐라고 반박을 하려는 그녀의 얼굴 앞으로 인수는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니라고요? 오, 제발! 멍청한 소리는 하지 마세요. 당신이 유리병에 집착하는 게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 당했을 거라 믿지 않는 증거니까요.”
그는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마치 더러운 뭐라도 되듯 말이다.
“애초에 그 사람은 유리병을 몇 개씩이나 들고 있어요. 그런 사람이 당했다면 고작 유리병 한 개 정도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소리죠.”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인수는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자, 그럼 다시 묻도록 하죠. 그가 당했을지도 모르니 찾으러 가야 한다는 당신이 왜 아무 쓸모없는 유리병에 이토록 집착하는 겁니까? 이미 우리가 보았듯 유리병의 효과를 믿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 유리병을 몇 개나 가진 그가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저 눈을 아래로 깔고 발목을 매만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