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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 1권(25화)
Chapter 11 다시 킬리만 산으로!(2)
사실 진작부터 그레듀에이터의 경지를 이룩한 삼인방에게 몬스터 사냥은 그리 특별한 감흥을 주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규모의 몬스터 토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마을의 안전이 조금 불안하기도 하지만 차니처럼 고위 마법사와 함께 하는 파티에 참여할 기회는 정말 흔치 않았다.
그런 기회를 생각 없는 앤드가 날려 버릴 뻔한 것이다.
그런 삼인방의 대화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식량을 마음껏 사 창고에 넣어둔 것은 그것을 지켜 줄 든든한 용병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정규군이 도착하면 이제 몬스터에 시달리는 지긋지긋한 일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오가는 말을 들어보니 정규군은 오는지 마는지 아예 말도 안 나오고 있고 그나마 있던 용병단까지 데리고 떠나겠다는 것이다.
말로는 킬리만 산의 몬스터를 토벌하러 간다고 하지만 4백 년 넘게 킬리만 산에 자리 잡고 있는 몬스터를 어떻게 5명이서 토벌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마을 주민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그런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제니스를 향해 말했다.
“나으리, 저희들끼리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제니스가 느긋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을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제니스의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으리. 그럴 수 있었다면 몬스터들에게 이렇게 시달리며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괜히 몬스터에 맞서다 죽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세요. 다른 데 가시지 마세요.”
불평과 불안함이 가시지 않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제이가 차니에게 넌지시 눈짓을 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이가 생각이 있으려니 싶어진 차니는 촌장에게 제이를 소개했다.
“촌장님, 이쪽은 제 친구인데 꽤 쓸 만한 마법사입니다.”
차니의 소개를 받은 제이가 얼른 한 발 나서며 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제이입니다.”
척 봐도 귀한 집 자식처럼 보이는 제이가 먼저 고개를 숙여 오자 촌장이 황급히 마주 인사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이가 마법사라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다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검사도 굉장하지만 마법사는 정말 굉장한 존재였다. 허무맹랑한 소문도 많았지만 마법의 힘은 실로 무궁무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법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마법사가 두 명이나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수가 생길 것도 같다는 희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 부응하기라도 하려는 듯 제이가 말을 꺼냈다.
“오는 길에 보니 마을 입구는 한 군데밖에 안 보이더군요. 맞습니까?”
제이의 물음에 촌장이 대답했다.
“예, 나으리. 그런데, 킬리만 산으로 나 있는 샛길도 하나 있긴 합니다.”
“그럼, 마을로 출입할 수 있는 길이 2개뿐입니까? 더 있지 않을까요?”
제이가 샛길의 존재를 다시 물어오자 촌장은 한참을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처음 몬스터들이 마을을 침략했을 때 하도 고생을 해서 마을 주변은 높은 담을 둘렀고 길은 그 두 개만 남겨두었습니다.”
촌장의 말에 제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 담은 믿을 만할까요?”
“물론입니다. 그 담을 쌓을 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장정도 많았고 몬스터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었읍죠.”
제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어 차니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마을 주변의 담과 입구에 강력한 마법 결계를 쳐두면 안전하지 않을까?”
마법으로 방어진을 만들면 된다는 제이의 말에 주민들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파운드 제국에 마법 방어진이 구축된 곳은 수도가 유일했고 일반 사람들에게 그것은 개념조차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사람이 칼이나 창을 들고 지키는 것만 보아 왔지 마법으로 사람도 없이 방어를 한다는 게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차니가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제이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 쪽에는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마법으로 늪을 만들고 담 주변에는 전기 마법을 걸어 담에 닿기만 하면 감전되어 타 버리게 만들자는 말이지?”
차니의 말에 제이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비록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제이의 말에 차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자네가 같이 해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제이가 차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마법 결계를 만들어 보자고.”
제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관 안팎에 모인 구경꾼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와∼∼”
“드디어 몬스터들에서 해방이다.”
킬리만 산의 몬스터를 토벌하려는 목적은 인근 마을의 안전을 보장해 주민들이 마음껏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면 도무지 이뤄질 수 없는 목적이었다. 그들이 의욕적으로 활동을 해야 마을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날 테니까.
다음 날부터 제이와 차니는 마을 주변을 일일이 점검하며 담과 주요 지역에 마법 결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들의 수준이라면 반나절도 안 걸릴 일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간을 일주일이나 끌었다. 그 기간 동안 마을 사람들이 극진한 고마움을 나타냈음은 물론이다.
환호와 눈물, 감사로 가득한 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제이와 차니, 카스티유 삼인방은 킬리만 산으로 향했다.
“이봐, 지미.”
“네, 제니스님.”
“자네 저번에 지나쳐 왔던 트롤 마을이 어디였는지 기억하나?”
“물론입니다. 그쪽으로 가시겠습니까?”
“가까이 있는 데부터 가 보자고. 앞장서.”
“넵.”
잘 봐줘야 비슷한 연배고 정확히 말하자면 제이와 제니스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카스티유 삼인방이었지만 어느새 자연스레 상하관계가 정착된 모습이었다. 마을에서 마법진을 구축하는 동안 카스티유 삼인방이 목격한 차니와 제이의 능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제이와 차니에게 높임말을 꼬박꼬박 써댔고 처음엔 말리던 제이와 차니도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다. ‘지들이 편해지면 알아서 그만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제니스님, 저기 앞에 보이는 곳입니다.”
앞장서 길을 안내하던 지미가 말하자 제이가 놀랍다는 듯 반응했다.
“트롤이 저런 규모의 마을을 만들고 산다고?”
이해한다는 듯 차니가 대답했다.
“개체 수가 하도 많아서 나도 처음엔 당연히 영지민들이 사는 마을인 줄 알았어.”
제이가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대체 영지 경계에 저 정도 규모의 몬스터 소굴이 생길 때까지 영주 놈은 뭐한 거래?”
차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일로 바빴다잖아. 그러게 왜 더 때리게 놔두지 말리고 그랬어?”
차니와 제이의 대화를 듣던 카스티유 삼인방이 뜨악해지는 순간이었다.
영주인 크로아 백작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때렸다는 소리가 들리니 그럴 수밖에.
그들이 보기에 제이와 차니는 귀족한테까지 해코지를 하는 막나가는 마법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다시 뜨악하게 만드는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근데 저놈들 다른 데로 가서 살라고 일단 타일러 볼 거야?”
“제이, 넌 다 좋은데 그 우유부단한 게 문제야. 바빠 죽겠는데 무슨.”
“하긴. 그럼 난 왼쪽 편을 맡을게.”
“그래. 그럼 난 오른쪽.”
말을 마친 둘이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나는 듯 뛰어오르기 시작하자 삼인방도 허겁지겁 뒤를 따랐다.
차니와 제이의 입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아이스 레인.”
“파이어 스톰.”
순식간에 트롤 마을은 무시무시한 속도의 얼음 비와 불 폭풍으로 쑥대밭이 되어 갔다. 영문도 모른 채 마법 폭탄을 맞은 트롤들이 살길을 찾아 여기저기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빠져나갈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킬리만 산행에서 차니가 보여줬던 얼음송곳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오크들의 몸통을 쉽게 관통했듯이 트롤들의 온몸에도 구멍을 숭덩숭덩 내고 있었다.
“꾸∼엑.”
“끼∼∼익.”
얼음송곳에 관통당한 트롤들의 비명이 산 전체에 진동하는 잔인한 장면이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나마 차니 쪽에 있는 트롤들의 경우는 덜한 편이었다. 제이 쪽에 있는 트롤들은 정말 죽음을 피해 가는 방법을 못 찾고 있었다. 주위를 온통 화염 폭풍이 덮고 있으니 앉으나 서나, 뛰나 걸으나 그 죽음의 열기를 피할 수가 없었고 마법에 휩쓸린 트롤들은 종이가 불에 타 버리듯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퍼붓던 마법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제이와 제니스가 쏜살처럼 트롤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입을 쩍 벌리며 멍하게 서 있던 삼인방은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도 봤냐?”
지미의 말에 앤드와 케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난 몬스터한테 동정심 생기긴 처음인 것 같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저놈들은 천 명이 살던 마을을 습격해 마을 사람을 3백 명으로 줄여 버린 나쁜 놈들이라고!”
지미의 호통에 제정신이 든 앤드와 케이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차리고 얼른 따라가 보자.”
겨우 멘탈 붕괴(?)를 수습한 삼인방이 서둘러 트롤 마을 입구로 내려왔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제이와 제니스는 유유히 마을 입구를 지나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악귀 같은 둘의 모습에 작아진 자신을 느끼며 앤드가 말을 건넸다.
“벌써 끝나신 겁니까?”
제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충은.”
“전멸인가요?”
“땅으로 도망간 녀석들이랑 산속으로 도망간 놈들은 굳이 쫓지 않았어. 어차피 며칠 안 가 다시 만날 테니까.”
“땅으로요?”
“저놈들, 트롤 주제에 땅굴로 도주로를 파뒀더라고.”
차니의 말에 삼인방이 기가 차다는 듯 반응했다.
“트롤이 땅굴을요?”
옆에 있던 제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저놈들 갑옷도 입고 다니던데 뭘.”
상식을 깨는 차니와 제이의 발언에 어질어질해지는 삼인방이었다.
<『무신』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