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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
몬타나의 경비병 1(1화)
-어느 경비병의 독백-
남들은 운명이니 기연이니 하며 지들끼리 영웅이며 대마법사며 다 해 먹는다.
하지만 나는 재수가 더럽게 없어 일개 경비병일 뿐이다.
남들은 능력이 좋고 아는 게 많아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고 신문물을 전파한다.
하지만 나는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일개 경비병일 뿐이다.
남들은 게임하듯 영지를 경영하고 때론 영지를 시작으로 대제국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영지, 제국은 개뿔이고 집 하나 없는 박봉에 시달리는 일개 경비병일 뿐이다.
남들은 그렇게 열심히 이계에서 깽판을 치더라.
하지만 나는 깽판이나 안 당하면 다행인 일개 경비병일 뿐이다.
한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할 때도 있었다.
스스로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세상을 뒤엎어 보겠다고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난 일개 경비병일 뿐이더라.
나는 가진 것도 없고, 가진 힘도 없고, 능력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경비를 서며 쏠쏠한 뒷주머니를 슬그머니 바라본다.
그래, 일개 경비병일 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해 먹을 만은 하다.
깽판을 바라는 용자들이여. 미안하다.
난 단지 일개 경비병일 뿐이다.
독백을 듣고 있는 용자들이여 걱정은 하지 마라.
당신들이 바라는 깽판을 경비병이라고 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
다만…… 깽판을 당하는 날이 더 많다는 슬픈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난 단지 일개 경비병일 뿐이니깐.
1장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라(1)
찌는 듯한 여름이 되면 경비병은 매우 괴롭다.
얇은 철판을 덧 된 경비병용 소형 갑옷은 상당히 가볍다고 할지라도 오랜 시간 계속 차고 있다면 그 무게도 천근만근 무거워질뿐더러 뜨거운 햇빛을 한껏 머금어 열기는 미칠 듯이 피어오른다.
만지기만 해도 뜨끈뜨끈한 갑옷에 흡수된 열기는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신체로 접촉이 된다. 땀으로 흠뻑 젖는 것도 순식간이다.
“후, 덥다.”
“그러게 말입니다. 올해는 유독 더운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지금 땀을 훔치고 있는 두 명의 성문 경비병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임 경비병은 창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연신 얼굴의 땀을 훔치며 이미 열기로 인해 데워진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아침부터 완전 사람 잡네.”
지금은 사람들의 유동이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간 러쉬가 시작되는 시간이면 정말 이런 더위에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야! 한스. 아니지, 신삥 너 몇 살이냐?”
“17살입니다.”
2년의 의무복역제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젊은 남성들은 17살을 기준으로 보통 군에 입대를 한다. 17살이면 결혼도 가능한 나이이기에 충분히 한 명의 병사 몫을 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이 정설인지라 입대 연령은 17살로 정해져 있다.
“17살이라. 대충 고2 정도구나. 학도병도 아니고 진짜 더러운 국방의 의무로다.”
“네?”
선임 경비병의 작은 중얼거림을 한스는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아냐. 신경 쓸 거 없어. 그런데 말이야. 너 혹시?”
아직 어리다면 어린 한스는 갑자기 히죽거리는 선임 경비병의 모습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동…… 아니다. 누나 있냐?”
17살 나이에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거리낌이 있었는지라 얼른 누나로만 정정을 한 선임 경비병은 기대 가득한 눈길로 한스를 바라본다.
“저…… 저기.”
“그래. 어서 말해 봐.”
“누나가 한 명 있습니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한스가 대답하자 선임 경비병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 몇 살인데?”
“19살입니다.”
“오옷! 성인 인증도 무리 없는 가장 풋풋한 나이에 딱이로소이다. 어디에 사냐? 너랑 같이 살고 있겠지?”
한스는 아직도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앞으로 2년간 원활한 군 생활을 위해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갓 들어온 신병에다가 어린 한스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남편이랑 조카랑 몬타나 21섹터에 살고 있습니다.”
남편? 조카? 후임이면 입에서 봉인해야 할 이 두 단어에 환해졌던 선임 경비병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순간이다.
“이런 떠그럴, 그럼 유부녀란 말이야?”
“네. 2년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나름 선임 경비병의 질문에 잘 대답을 한다고 재기발랄하게 답변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필살 욕설난무뿐이다.
“아놔. 이 새끼가 누가 그런 거 처물어봤어? 너 지금 일부러 나 약 올리는 거지.”
갑자기 선임 경비병이 화내는 이유를 알지 못해 한스는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뭐 이 새끼야? 여기가 밖이지 안이냐? 이 새끼 선임 약 올리는 것도 모자라 헛소리까지 지껄이네.”
일명 말꼬투리 잡기, 이미 철 지난 군대 개그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임이 틀림이 없다.
“아닙니다.”
“아! 이 새끼야, 여기는 안이 아니라 밖이라는 것을 몇 번을 말해야 처알아먹겠어? 이거 완전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던져 놓고 왔구만.”
한스가 안드로메다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지만 관계없다. 어차피 본뜻은 어딜 가나 통하는 법이니깐.
“아니임…….”
계속되는 말꼬리 잡기에 한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 역시 선임 경비병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됨은 분명했다.
“이 새끼가 이제는 선임 말을 씹네. 너 오늘부터 군 생활 꼬였다고 생각해라. 네가 이 경비대를 나가는 그날까지 넌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다.”
선임 경비병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 한스의 모습을 속으로 낄낄거리며 즐겼다.
‘눈치 없는 새끼.’
조용히 째려보고 있는 선임의 모습에 어떻게 이 난관을 타개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한스의 시야 속에 때마침 한 무리의 행렬이 잡혔다.
“행…… 행렬이 보입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한스가 갑자기 창을 굳게 잡으며 자세를 다잡자 선임 경비병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쭈? 이 새끼가 이 순간을 모면하려고 대갈빡을 굴려?’
바로 조져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행렬이 가까워지고 있는지라 잠시 내심을 묻어 둔 채 성문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상당히 긴 마차 행렬과 주변 용병들이 흉흉한 눈길을 빛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인들이 분명했다. 한스는 별 생각 없이 신병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검문검색을 위해 앞으로 나선다.
다만 선임 경비병은 상인 대열을 슬그머니 살펴보다 누군가를 확인하고는 게슴츠레한 눈을 뜬다.
“잠깐 멈추십시오.”
그들이 성문에 다다르자 한스는 손을 뻗어 행렬을 제지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상인 일행은 그의 제지에 잠시 행렬을 멈추어 선다.
“여기 계신 분 모두 통행증을 제출하시고 물건에서 잠시 떨어지십시오.”
한스가 규칙대로 검문을 하기 위해 마차를 끌고 온 일행들에게 다가가자 대열의 총괄 관리인 듯한 뚱뚱한 40대 중반의 상인이 앞으로 나선다.
“아이고. 더운데 수고들 많으시네.”
“여기 있는 분 모두의 통행증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상인은 한스의 말을 싹 무시하며 매우 익숙한 걸음으로 선임 경비병 쪽으로 다가갔다.
“이봐요.”
한스가 제지를 하려 했지만 이미 상인은 선임 경비병의 바로 앞에 다다라 있었다.
“이봐, 다스. 더운데 고생이 많지?”
“씁, 말시키지 마십쇼. 안 그래도 오늘 더워서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래. 그래. 내 이 더운 날씨에 다스, 자네가 수고하는 거 잘 알고 있지.”
선임 경비병 이름이 다스인 듯하다.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상당히 친분이 있는 사이인 듯했지만 신병인 한스는 눈치가 없었다.
“이보세요. 지금 제 말이 말 같지 않습니까? 당신 이러면 검문 불이행으로 제국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모르십니까?”
상인은 제국법까지 운운하는 한스를 슬쩍 바라보더니 그대로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다시금 다스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다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스를 바라본다.
“야! 제국법이고 나발이고 간에 헛소릴랑 하지 말고 넌 저기 물건들이나 검색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선임이 뭐라고 반박을 하려는 한스를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물건을 검문하기 위해 마차로 뛰어갔다.
“아오! 내가 저 고문관 때문에 빡친다.”
“이제 갓 들어온 신병 같은데 뭘 그러나. 처음엔 다 그런 거지. 하하하. 그건 그렇고. 자, 오늘도 잘 좀 부탁함세.”
상인은 한스가 사라지자 다스라 불린 선임 경비병에게 다가가더니 빠른 속도로 그의 주머니 속에 무언가를 찔러 넣어 주려 했다. 행동을 보아하니 무엇인지 심히 짐작이 갔다.
“그리고 이런 더운 날에는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해야 제 맛 아니겠나? 이건 내 성의니 나중에 근무교대하고 맥주나 한잔하러 가게나.”
하지만 다스는 어쩐 일인지 인상을 쓰며 상인을 살짝 밀어낸다.
“아아! 자꾸 이러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요즘 검문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가 내려온 터라.”
눈칫밥만 수십 년을 먹고 살아 온 상인은 바보가 아니다. 그가 하는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도 남음이었기에 씨익 웃어 보이며 작은 주머니를 살짝 들어 보이며 짤랑짤랑 흔들었다.
“이봐.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리고 내 오늘은 특별히 더운 날씨에 수고한다고 평시보다 조금 더 준비를 했다네.”
그러고 보니 주머니가 평소보다 조금 더 두툼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스의 입가에 그제야 웃음기가 번져 나온다. 그러고는 얼른 그것을 낚아채고 헛기침을 했다.
“험험.”
“그럼 잘 부탁함세.”
“이번 딱 한 번뿐입니다. 다음엔 절대 안 됩니다.”
상인은 다음이라는 말에 힘주어 말하는 다스의 어깨를 껄껄 웃으며 두어 번 툭툭 쳤다.
“암, 그렇고말고. 이번 한 번뿐이지. 다음엔 절대 안 되지. 하하하.”
그렇다. 이번 한 번뿐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다음에도 이번 한 번이고 그다음에도 이번 한 번이 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무언가가 든 주머니를 얼른 품속으로 집어넣은 다스는 고개를 돌려 물품을 확인하고 있는 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신삥, 통과시켜.”
그러자 아직 전입 온 지 얼마 안 되는 한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해 의문부호를 내보였다.
“아직 검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병이었기에 아직 이 세계의 암묵적인 룰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더운 날씨에 그런 신병의 모습이 짜증스럽게만 다가온다.
“아아! 됐으니깐 그냥 통과시켜.”
“하지만.”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한스가 계속 말꼬리를 잡자 다스는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이 새끼야, 너 오늘 근무 끝나고 한 따까리 하고 싶어? 통과시키라면 그냥 통과시켜.”
그제야 찔끔한 한스는 꼼꼼히 검문하던 손길을 멈추고 뒤로 물러선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상인들의 마차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스 역시 뒤로 물러섰다.
“그럼 더운데 수고하시게나.”
다스와 대화를 나누던 상인이 제일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하며 통과를 했고 행렬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미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다른 상인 일행들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성문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