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몬타나의 경비병 1(25화)
8장 기회를 잡았을 때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3)
어두운 밀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중앙에 보이는 푸른 구슬과 그 옆에 조용히 서 있는 검은 인영이 전부다. 검은 인영은 푸른 구슬을 통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성을 바라보고 있다.
“큭큭큭. 멍청한 놈. 니놈 행동이야 불 보듯 뻔하지. 지하 50층이나 되는 곳까지 알아서 기어 들어와 주는구나. 내가 할 일이 없어 좋은 곳 놔두고 마왕성을 주위가 끝없는 지옥의 나락지라 불리는 그곳 위에 지었겠느냐.”
떨어지는 끝을 알 수 없다는 절벽인 지옥의 나락지, 그 길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절벽 길과 수 킬로미터를 가야만 볼 수 있는 넓은 절벽의 공터에 지어진 거대한 마왕성.
그 절벽 길을 제외하고는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마왕성의 후방으로도 지옥의 나락지가 수십 킬로 이상이었다.
그나마 지옥의 나락지에서 인위적인 때가 묻어 있는 이 거대한 마왕성은 물론이고 구불구불한 절벽 길마저도 지금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영웅이 침투한 곳은 마왕성의 50층 정도 깊이의 지하, 마왕은 그를 잡기 위해 철저한 함정을 준비했던 것이다.
“나도 시험해 보다 죽을 뻔한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지옥의 나락지를 네놈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케케케.”
마왕 자신도 시험을 해 본다는 명목에 20층 정도의 아래로 날아 내린 적이 있다가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정말 죽을 뻔한 것을 겨우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니 혹시나 싶어 지하 50층 깊이까지 절벽 공터의 아래를 판 것이다.
이미 마왕성은 물론이고 절벽 길 모두가 무너져 내렸다. 설령 그랜드 마스터 할애비라고 할지라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마왕은 잘 알고 있었다.
“잘 가라, 멍청아. 이제 네놈 마누라들은 다 내 꺼다. 쿠헤헤헤.”
그렇게 광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는 마왕, 어둠에 점차 눈이 익숙해지는 것일까? 그의 모습이 시야에 희마하게나마 들어온다.
“다스 베이더 제국 만세, 하렘 제국 만세다. 크하하하.”
―조장님?
“크하하하.”
―조장님?
그가 광소를 짓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주변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울리더니 몸은 물론이고 밀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림으로 인해 머리까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옆을 바라보니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뭐야? 이 생기다 만 이상한 개새끼는?”
그가 재수 없다는 듯 사람 얼굴을 한 개를 차 버리려는 순간 갑자기 몸이 기우뚱한다.
“어?”
“조장님.”
급기야 어두웠던 밀실이 갑자기 환해지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눈앞에는 꿈에서 본 개새끼와 똑같이 생긴 한 놈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아가씨가 왔습니다.”
그가 깼다는 것을 확인한 듯 그 남자는 할 말을 남긴 채 사라진다.
아직도 현실이 오락가락한 것일까?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던 다스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슈발. 나의 하렘 제국이 개 새끼 한 마리 때문에.”
그래 개꿈이다.
세실리아는 다스의 옷매무새를 정돈해 준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다정한 연인까지는 아니고 사이좋은 남매 같기는 하다.
“너는 그냥 단답형 대답만 하며 웃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긴 답변이 필요한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런 걱정은 잡아 두셔. 이 몸이 이렇게 보여도 아침 드라마 광이니깐. 머릿속에는 수많은 연인들과 복잡한 관계에서 부모를 만났을 때의 공식이 가득 첨부된 아침드라마의 설정이 꼭꼭 저장되어 있어.”
그냥 별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다스의 말에 드라마가 뭔지 모르는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별거 아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는 보통 불륜과 삼각관계를 다루는 아줌마를 주 타깃으로 한 막장 드라마가 아니었나?
“이번만은 정말 좀 부탁할게. 그놈 얼마나 변태인지 넌 모르지? 설마 내가 그런 변태 놈에게 시집을 가서 괴상한 짓을 당하는 것이 너도 좋지는 않지?”
정작 세실리아의 입장을 알 리가 없는 그는 무심결에 아니 별루, 라고 입 밖까지 나왔다가 억지로 집어 삼킨다. 어차피 이미 선불로 200골드까지 받고 이렇게 옷까지 한 벌 근사하게 얻어 입었지 아니한가.
계약파기를 의미하는 들킨다는 상황은 애초에 생각지 않았다. 몇 시간만 조용히 버티면 되는 거다.
정말 오늘은 럭키한 날이다. 럭키한 날에는 럭키한 기분으로 어떠한 더러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름 럭키를 떠올리며 즐겁게 보내면 되는 거다.
“난 그 변태 같은 놈이 죽어도 싫어. 그놈과 결혼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솔직히 그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가만히 세실리아가 한 말을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보니 썩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후우.”
세실리아는 잠시 숨을 고르며 작게 심호흡해 본다.
“자, 그럼 우리만의 전장으로 이동해 보자.”
전장을 향해 나가는 장수인 마냥 그녀의 얼굴이 너무 비장해 보이자 다스까지 바짝 긴장이 된다.
‘왜 이렇게 비장해? 이건 마치 전투 전에 전의를 다지는 것 같잖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실리아는 그의 팔을 잡고 몬타나 시티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의 입구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 선 다스는 떨리는 시선을 세실리아에게로 향한다.
“여…… 여기가 너희 집이냐?”
“응. 우리 집.”
다스는 무척이나 황당했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이게 집이라고?’
이건 집이 아니다. 궁궐이라고 해도 믿겠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집안이기에 이런 엄청난 대저택에서 산단 말인가. 도대체 몇 평인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대규모 저택이다.
이쪽 동네가 상당히 부자 동네인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올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 저택은 그 부자 동네의 저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빛나고 있지 않은가.
“너 진짜 부자구나.”
다스는 이 복 받은 아가씨를 바라보며 부러움 가득한 시선만 보낼 뿐이다. 아마 다스가 수백 년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은다고 해도 이런 집은 꿈도 꾸지 못 할 것이다.
“자자.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지 말고 안에서 일이나 생각해. 그럼 들어가 보자.”
세실리아의 재촉에 마차 두 대도 지나갈 만한 거대한 문을 지난다.
문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보아하니 중앙기사단 소속이 아닌 사설 기사들이다. 중앙기사단의 엘리트 기사들이 아무리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런 문지기를 할 일은 없다.
저들을 고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비싼 비용인데 사설 기사들을 문지기로 쓰고 있는 모습에 그는 다시 한 번 입을 떡하니 벌린다. 똑같은 경비 신세라고는 하지만 보수는 자신과 수백 배가 차이 나지 않겠는가.
괜히 자격지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돈이 좋긴 좋구나. 저런 우량 경비 직업도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
왜인지 모르게 서글프다.
그렇게 사설 기사가 경비를 맡고 있는 거대한 문을 지나 둘은 안으로 들어섰다.
웅성웅성.
이미 저택 내에 소문이 쫙 퍼졌는지 입구에는 많은 하녀와 하인 등,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이 슬금슬금 나와서 둘이 들어오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 또한 궁금했을 것이고 이해는 되지만 막상 다스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묘한 기분이었다.
‘저기 저 남자야?’
‘응. 오늘이라고 어제 들었거든. 아마 맞을 거야.’
‘저 남자가 아가씨가 인정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하다며? 그런데 생긴 건 영 아닌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능력만 있다면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건 능력이지. 아마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엄청난 능력이 있을 걸?’
능력이라는 말에 주변 하녀들의 눈이 번뜩인다. 능력은 곧 재력이 아니겠는가.
‘그렇겠지? 능력과 재력만 있다면 생긴 게 무슨 소용이야. 나도 저렇게 평범하게 생겨도 재력만 있다면 온몸을 다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데. 호호호.’
‘어머! 그런 남자는 내가 먼저야.’
여기저기서 내가 먼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래서 가진 놈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너 남자 친구 있잖아.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더니.’
‘능력 있는 남자를 잡을 기회가 왔는데 너 같으면 그런 하찮은 잡부일이나 하는 남자를 선택하겠어? 너 사랑 하나 믿고 온갖 고생하면서 살래. 아니면 좀 별로지만 그래도 있는 돈 펑펑 쓰면서 폼 나게 살래?’
정말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채 즉답이 나온다.
‘당연히…… 후자지. 호호호.’
가슴 아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래도 전부 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내면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들이 필시 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여자는 일부일 뿐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남자는 돈만 잘 가져다주면 되는 거야. 난 그 돈으로 잘생긴 애인도 만들면서 멋진 인생을 살면 되는 거구. 안 그래?’
‘틀린 말도 아니지. 호호호.’
아가들아, 다 들린단다. 실룩거리는 다스의 얼굴을 보라. 그리고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이렇게 생기고 능력 없어 미안하다. 그런데 그거 아냐? 능력 있는 놈들은 너희들을 거들떠도 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그래 다스의 말도 맞다. 과연 능력 있는 이들이 이런 여자들을 거들떠나 볼까?
평범한 여자가 재벌 아들에게.
[당신 그렇게 돈이 많아? 돈이면 단 줄 알아?]
라고 하며 뺨 때린다. 그런 여자를 보며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는 여자 처음이야 라고 콩깍지가 쓰이는 드라마들, 그런 막장 드라마들이 여자들의 사랑 관점을 다 버려 놓는다.
현실에서 그랬다가는 진짜 돈이면 다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러운 인생살이로다.’
반면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세실리아는 당당하기만 하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간간이 인사를 걸어오는 이들에게 화사한 미소를 보여 주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준다. 일하는 하인, 하녀들에게 친절한 그녀의 모습은 조금 의외이긴 하다.
그들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게 저택 내에서 세실리아의 평소 모습인 듯했다.
다스는 그 모습에 당연히 한마디 조용히 던져 준다.
‘쳇. 가식 떨기는.’
동물원 동물마냥 그들의 시선을 지나쳐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자 반겨 주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다스가 아는 얼굴도 한 명 있었다. 우선 세실리아가 앞서 그를 먼저 소개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말씀드린 그 남자예요. 이름은 다스 베이더라고 해요.”
의외로 너무 평범한 모습에 그를 가만히 살펴보는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하지만 그녀의 언니인 이리아는 놀란 눈으로 그와 세실리아를 번갈아 본다.
‘그 경비병 아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스는 세실리아에게 배운 그대로 부모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탐탁히 여기지 않는 눈치다. 그에 자상하고 아름다운 중년 부인의 모습인 어머니가 앞서 그를 안내한다.
“일단 식사 준비가 끝나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요. 들어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세실리아, 손님이 한 분 와 계시니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거라.”
손님이라는 말에 세실리아는 무슨 소린가 싶었다.
“손님요?”
그러자 어머니는 살포시 웃는다.
“들어가 보면 안단다. 식사가 식겠다. 어서 들어가 보자꾸나.”
못마땅한 아버지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어머니가 그 뒤를 따르자 세실리아는 이리아에게 살짝 다가간다.
“언니, 손님이라니? 난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는데?”
“손님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저 사람이니?”
세실리아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다.
“응. 저 사람 맞는데.”
“너 제정신이야?”
다스도 듣고는 있지만 그는 세실리아가 시킨 대로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리아가 살짝 바라보자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주변을 구경하는 듯 딴청을 피우며 눈치껏 살짝 물러서 준다.
“왜? 안 될 이유라도 있어?”
“하지만 저 사람은 기사가 아닌 경비병이잖아.”
“경비병이 뭐 어때서? 경비병도 제국의 정당한 직업이야. 전혀 부끄러울 게 없다구.”
이런 말을 할 거면 왜 부모님께 기사라고 거짓말을 하였냐고 질책을 하고 싶었지만 평소답지 않게 필요 이상으로 대드는 모습을 보니 차마 입 밖에 내뱉지는 못한다.
이리아도 이해할 수 없는 세실리아의 행동에 오죽 답답했을까? 결국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휴우. 그래 네가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언니는 항상 네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도무지 이리아는 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경비병을 데리고 온 이상 상황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굳은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 듯 강렬한 눈빛으로, 라기는 좀 그렇고 조금 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저 멀리서 눈치껏 주변을 구경하는 다스를 돌아본다.
“들어가자.”
그러자 다스는 얼른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둘이 나름 다정하게 식사가 차려진 곳으로 들어가자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리아의 심정을 상당히 복잡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손님이 누군지 알면…… 에이, 나도 모르겠다.’
<『몬타나의 경비병』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