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운틴 로드 1권(25화)
-외전
레전드(Legend), 아르도스(5)


정전 하루 전날.
폭풍같이 아르도스 백작령으로 몰아친 오딘 왕국 정예기사 오천을 맞이한 것은 텅 빈 마을과 성읍뿐이었다.
분노한 오딘의 연합기사단은 사방으로 추적대를 보내고 도주 중인 아르도스 주민의 흔적을 발견한다.
아르도스 백작의 뒤를 따르지는 못했지만, 살길을 찾으라는 백작의 말을 전해 들은 주민들이 머뭇거리다 미처 영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오딘은 분풀이라도 해야 했다.
전쟁의 광기는 여기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더욱이 제국의 지상명령과 같은 요청을 기억하는 연합기사단의 헤링거 후작은 더욱 집요하게 주민들을 추적했다.
그때 그들의 발길을 막은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일백칠 명의 에크베이트 기사단.
오딘의 헤링거 후작과 연합기사단은 환호했다.
하지만 스물한 명씩 나뉘어 유격전을 벌이며 측면만 치고 도주하는 에크베이트 기사단을 단기간에 처리하기에는 오천이나 되는 연합기사단도 불가능했다.
오히려 움직임이 둔한 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머물 수 없던 연합기사단은 동료의 시신만을 남겨 둔 채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없이 달라붙는 에크베이트 기사단.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공격하면서도, 도주할 때는 번개가 무색했다.
포위할라 치면 도주하고, 다시 이동하려면 달라붙는 사태가 컬킨디펜스를 넘어 그레이너리 평야에 들어서도 계속 되었다.
백작령을 공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죽은 기사의 수만 육백을 넘겼고, 다치거나 뒤처진 기사의 수는 무려 천을 넘어서는 이 치욕스러운 사태에 헤링거 후작은 차라리 자결하고 싶었다.
결국 헤링거 후작은 죽을 각오로 연합기사단 앞으로 나섰고, 이를 본 에크베이트 남작은 일행을 물리고 단신으로 헤링거 후작에게 향했다.
(상대를 알아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깨끗한 승부를 약속했다.
서로의 원한은 이 대결로 마무리 짓는 것으로 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에크베이트 기사단도 귀환할 것을 약속했다.
드디어 두 마스터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며 격돌이 이루어졌고, 산천이 울리는 격돌은 한 시간을 넘어섰다.
흩어져 있던 에크베이트 기사단도 차츰 모여들었고, 두 소드마스터의 대결을 관전했다.
한 시간에 이르는 오러 블레이드는 그들의 중후한 마나 보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일개 백작 영지의 가신 정도에게 이런 마나력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제국에서도 백작 정도의 작위는 능히 받을 실력이었다. 그런데도 일개 백작령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헤링거 후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승부가 마지막에 이르렀을 무렵, 이미 이긴 전투를 서로의 검의 장단을 나누기 위해 검을 휘두르던 에크베이트 남작이 적 기사단의 이상 징후를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헤링거 후작과 검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위치가 달라졌을 때, 멀리 에크베이트 기사단의 퇴로를 점하고 있는 오딘의 기사단이 보였던 것이다.
크게 분노하며 검을 휘둘러 헤링거 후작을 떼어 낸 에크베이트 남작은 큰소리로 기사단에게 탈출을 지시한다.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헤링거 후작은 단숨에 달려가 자신의 부관을 베어 버렸지만, 이 일은 뒤늦게 승부를 알고 마법사와 함께 찾아온 오트 대공의 지시였다.
멈추라는 헤링거 후작의 절규에도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크베이트 기사단은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오른팔이 잘리면 왼팔로, 왼팔마저 잘리면 몸통이나 발로, 발마저 잘리면 이빨로 물어뜯으며 끝까지 저항했다.
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인원의 차와 화살과 마법 공격은 결국 에크베이트 기사단의 전멸로 끝이 났다.
에크베이트 기사단 한 명, 한 명의 사지가 하나라도 붙어 있는 자가 없을 정도의 혈투였다.
비로소 오트 대공은 떨며 후회했다.
자신들은 에크베이트 기사단이나 아르도스라는 이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결단코 카스틴을 이길 수 없을 것이고, 재침하지도 못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살아남은 기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귀환했고, 헤링거 후작은 스스로 검을 꺾고 은거하다 결국 자결했다.
오트 대공 역시 죽기 전까지 그 전투를 후회하며, 마지막에는 정신을 놓고 자신의 영지 한구석에서 죽었다고 한다.

―아틀란 역사서, 아르도스 편, ‘전설’ 중에서 발췌


-외전
레무니아 그 성스러운 기록(1)


레무니아에는 세 개의 대륙이 있다.
아틀란, 뮤란 그리고 오델란.
성스러운 기록은 이 세 대륙이 원래는 하나였다는 것이다.

아득한 시절,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아들들을 낳았다.
아들들은 즐거이 신을 경배했고, 우주는 그 질서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피조물은 불완전한가?
왜 항상 무질서로만 나가는 것일까?
신의 자녀들 속에 배역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신이 되고자 했다.
신의 자리에 자신들이 앉기를 원했다.
그래서 높임을 받고 경배를 받고자 했다.
힘에 의한 상하 관계를 구했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죄였다.

죄는 불화와 다툼을 가져왔다.
신의 자녀들 사이에 분열이 나타났다.
아름다웠던 우주가 혼돈 가득한 시대가 된 것이다.

신은 혼돈으로 파괴되어 버린 우주를 보며 탄식했다.
그리고 죄를 범한 자녀들을 일정한 공간으로 추방했다.

쫓겨난 자녀들은 배역의 죄는 잊고 반항한다.
하지만 신의 영역은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영역.
맡겨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배역이 다시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육신의 일부분을 취했고 스스로 신적 존재가 되어 자신들을 닮은 존재들을 만들었다.
생명, 그 자체인 피를 갈구하는 존재들.
이성도 없이 피와 육체를 먹고 사는 존재들.
그들에게 생명은 그저 갈증을 해소하는 수분에 불과했고, 나 아닌 다른 상대는 배를 불리는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파괴와 약탈, 배덕과 악의만이 넘쳐 나는 그곳,
혼돈의 시대가 그곳에 도래했다.

신은 아파했다.
그 아픔을 사랑으로 이겨 내신 신은 그곳에 만상을 만들고 아름다움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곳에 다시 신을 닮은 존재를 창조했다.

신은 지어진 세계와 인간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사랑으로 바라보시며 비로소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에 창조된 존재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신이 만든 낙원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그 행복은 영원하지 못했다.
미움과 증오, 불만과 악으로 가득한 마계의 자녀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된 인간들을 유혹했다.
자신들과 같은 계급을 가질 수 있다고 유혹했고, 신과 같은 능력을 얻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마법의 달콤한 비밀을 속삭였다.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비밀들…….
그리고 신과 같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인간은 그 유혹에 넘어가 타락했다.
그 모습은 죄를 숨기려는 추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신은 아파했다.
이후, 인간은 낙원의 행복을 잃어버렸고 고통과 사망, 가시가 돋아나는 이곳 중간계에 그 거처를 삼게 되었다.
그리고 쫓겨난 자녀들은 음습한 세계에서 제한을 받게 되니 그곳을 한정하여 마계라 불렀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신을 따르는 천족이 아니었다.
신은 인간들이 신을 찾고 의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로 창조한 것이다.
그 의도대로 인간은 신께 경배하고 그 은혜를 구하며 신을 의지하고 살았다.

그러나…….
마계로 쫓겨난 존재들은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갈구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모든 방법을 통해 인간이 신에게 나아가는 것을 방해했고 신을 섬기는 것을 훼방했고 신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의 자리에 자신들을 내세웠다.
그래서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생겨났다.
스스로 인간임을 거부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신을 더욱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쫓겨난 존재들에게 인간은 부정한 족속이었다.
그들은 인간들을 미워했고 그 존재를 부정했고 질시했다.
결국 그 질시는 중간계를 말살시키려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이 신마대전이다.
모두 2차에 걸쳐 진행된 피와 살육의 전쟁.

제1차 신마대전.
마계의 쫓겨난 존재들이 자신들의 피조물을 이끌고 중간계를 넘어 인간들을 말살시키려 하자 천족들이 나서면서 겨우 이겨낸 최초의 신마대전이다.
인간들은 그들을 마족이라 불렀고, 마족의 창조물들을 이름하여 마물이라 했으며 그 피에 물든 존재들을 몬스터라 했다.
그들의 힘은 중간계가 이겨 낼 종류의 힘이 아니었다.
삽시간에 중간계는 말살 직전에 이르러야 했다.
이때, 신의 의지를 이어받은 천족들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거룩한 기록에 보면 이 기간은 여러 세대를 거쳤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들은 역경을 이겨 내는 끈질김으로 마족을 공격했고, 마왕이 상처를 입어 마계로 돌아가면서 지루했던 1차 신마대전은 끝이 났다.

제2차 신마대전.
1차 신마대전 당시, 마족들에게 넘어간 인간들이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영화와 욕심을 따라 신을 버리고 마족을 신으로 인정하고 따랐다.
문제는 개중에 천족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욕심과 마족의 방탕함에 젖어든 몇몇 천족들이 스스로의 고귀함을 버리고 어둠에 물들어 버렸다.
1차 신마대전이 길어지면서 결국 신은 중간계를 독립시키고 천족들과 마족들이 중간계와 교통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존재들을 세워 천족과 마족이 빠져나간 중간계와 자연을 운영하고 돕게 하니 곧 정령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1차 신마대전 당시 마계에 물들었던 배역한 존재들이 결국 신의 뜻을 거역하여 중간계에 마계의 문을 여니 제 2차 신마대전의 발발이었다.
1차 신마대전이 끝났을 때, 멸망의 나락에서 건짐받은 인간들은 절치부심 노력했고, 마도 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그 빛나던 마도 문명도 마족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고 천족들마저 관여할 수 없었던 중간계는 아비규환 그 자체로 화하고 말았다.
더욱이 1차 신마대전 당시에 리치가 되어 수많은 세월을 준비하고 준비한 배역의 무리들이 마족들과 함께 중간계를 말살시켜 나갔다.
천지에 빛이 없는 암흑의 시대가 도래했다.
빛은 없고 멸망의 노래만이 신음처럼 울려 퍼졌다.
최후의 순간만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마계에서 다툼이 생겨난 것이다.
중간계가 멸망으로 치달으면서 천족을 떠나 마계로 간 존재들과 리치로 변해 마계의 문을 열었던 배역한 존재들이 마족들과 함께 서로 지배자의 자리를 놓고 다툰 것이다.
공전절후의 전쟁이 다시 중간계에서 벌어졌다.
레무니아가 세 개의 대륙으로 나누어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나뉜 대륙에서 각각의 세력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의 능력도 일거에 대양을 넘어 상대를 멸하기에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겨우 숨을 돌린 중간계는 그저 연장된 멸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이기든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의 자비를 구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의 응답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각기 세력을 불리던 마계의 다툼에서 먼저 리치들이 거의 전멸하여 패퇴하면서 타락한 천족들과 마족들과의 전쟁이 이어지게 된다.
승리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을까?
수에서 부족한 타락한 천족들은 위기에 몰리게 되면서 정령들을 통해 인간들과 동맹을 요구해 왔다.
정령과 함께하던 중간계의 모든 존재들과 그 대표들은 타락한 천족들과 힘을 합해 아틀란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것은 피조물 자체가 사라질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때, 신께서 직접 중간계에 관여하셨다.
신은 진노함으로 모든 전쟁을 파기시킨다.
마족들은 마계로 쫓겨나 어둠 가운데 이를 갈게 되고 리치들에 의해 열렸던 마계의 문은 강제로 폐쇄되었다.
정령들은 중간계를 떠나 새로이 만들어진 정령계에서 머무르며 자연과 동화되어 신의 뜻을 운용하게 되었고 소환할 때만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또한 모든 존재는 소환당했을 때, 자신의 영역을 떠나서는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억제되었다.
타락한 천족들은 중간계에서 머무르는 대신에 그 생명력이 정해지게 되니 곧 일만 년을 기간으로 징계를 받는다.
스스로 천족의 고귀한 자리를 벗어난 존재들, 인간의 욕심과 마족의 방탕함, 심지어 마물들의 피에 심취했던 그들, 그리고 스스로의 아집에 사로잡힌 존재들. 마족과 같이 육신을 취한 그들이 바로 지상 최강의 몬스터인 드래곤이었다.

이후 레무니아는 네 계의 교차점이 된다.
남은 자녀들이 거하는 신계, 그들을 천족이라 부른다.
방관한 자녀들이 거하는 정령계, 그들을 정령이라 부른다.
인간들이 거하는 중간계, 그곳에는 인간들과 이종족, 남은 마물과 몬스터들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마족들의 마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