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운틴 로드 1권(24화)
-외전
레전드(Legend), 아르도스(4)


나중엔 진지를 갖춘 부대의 보급 천막마저 불사르고, 준비하던 요리마저 엎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여기에 굶주리고 피곤한 오딘군에게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들이닥치는 아르도스 백작과 에크베이트 기사단은 지옥 그 자체였다.
결국 공격군인 오딘군이 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어만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딘군의 사기가 바닥을 칠 때, 드디어 오딘군의 마스터 세 명이 포함된 기사단이 아르도스 백작을 따라잡았다.
오딘의 마스터들을 자존심이나 체면마저 버리고 아르도스 백작을 잡으려 전면으로 나섰다.
결국 아르도스 백작은 에크베이트 남작과 함께 오딘의 세 마스터와 격돌했다.
도저히 이 대 삼의 대결이라고 볼 수 없었던 이 전투는 하늘을 울리고, 수목마저 떨게 만들며 대지를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 결론은 너무도 빨리 났다.
오딘의 멜랑 백작이 아르도스 백작의 검에 왼팔이 잘렸고, 이를 지켜보던 오트 대공이 군사들을 몰아 전장으로 나서면서 아르도스 백작이 물러선 것이다.
아깝지만 물러날 때를 아는 아르도스 백작은 미련 없이 물러섰다.
이후, 오트 대공은 아르도스 백작과 에크베이트 기사단에 대해 일만 미만의 군세는 격돌하지 말라는 공식 명령을 내린다. 이는 결국 도주하라는 명령과 동일했다.
공격은커녕 방어조차 포기한 군대.
구 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레이너리 평야에서는 구할 수 있는 식량마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영지민들의 탈출이 심화되면서, 약탈할 식량마저 끊긴 오딘군은 심하게 굶주렸고, 전투의 의지조차 없이 물러서더니 어느 순간부터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주하는 군사의 수가 많아지면서, 자고 나면 텅 빈 요새들이 속출했다.
결국에는 오트 대공마저 그레이너리에서 철수를 명했다.
대공의 철수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오딘군은 오합지졸보다 못한 모습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르도스는 도주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오딘군이 회군한 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돌아오면 막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군대. 겨우 팔천여의 병사에 불과한 군세에 근 십칠 만에 해당하는 군사가 쫓기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오트 대공은 이를 보고 피를 토해야 했다. 이제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더 밀리면 결국 수도마저 내주어야 할 지경으로 군대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아예, 방어할 의사조차 없는 군대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레이너리 평야를 다시 다 빼앗기게 되었을 때, 오트 대공은 오딘의 수도 카진으로 돌아가 국왕을 설득하고 결국 로튼 제국과 밀약을 체결한다.
유스 왕국 남부 지역에 위치한 영지 여섯 개를 로튼 제국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카스틴 공략을 용인해 주고 유스 왕국과 잉거 왕국에 압력을 넣기로 한 것이다.
이는 카스틴의 해밀 공작이 재차 로튼 제국의 황도에 방문해 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밀약이었다.
이 사실을 인지한 해밀 공작은 신속하게 돌아와 귀족파를 회유하고 군사를 준비시킨다.
삼 년 정도의 시간 속에 귀족들은 최대한 군세를 키웠고, 이는 해밀 공작의 힘이 되어 주면서 에식스 대공을 밀어낼 기회를 얻게 된다.
해밀 공작에 의해 군대가 모이자 에식스 대공은 스스로 물러나 대공령으로 돌아갔다. 그의 마음은 아르도스 백작에게 가 있었지만, 자칫 해밀 공작과 불화를 염려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귀족파의 수장인 해밀 공작과 척을 지는 결과는 나라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밀 공작은 결코 전장으로 가지 않았다. 또한 오딘 남부군 국경수비대의 진군도 아르도스 백작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내려가지 말고 기다리란 명령만 내린다. 그리고 오딘 왕국에 평화협상단을 보낸다.
그 대표가 바로 가느롱 후작, 이미 왕국에선 그를 공작으로 내정해 둔 상태였다.
가느롱 후작의 평화협상단과 오딘 왕국의 오트 대공은 밀고 밀리는 설전을 벌인다.
오트 대공은 협상하는 동안 군사들을 북부로 이동시켰다.
전장은 소강 상태였지만 오딘의 군세는 점차 늘어만 갔다.
오딘의 군세가 삼십만이 넘어서자 오트 대공은 협상 자체를 무기한 연장시켜 버린다. 그리고 무려 십만의 군사를 보급 부대로 개편해 버린다. 보급 부대를 위한 보급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트 대공은 묵묵히 후방에서부터 창고를 건설한다. 오딘군이 머문 자리마다 건설된 이 창고는 보급 부대들이 옮긴 식량과 보급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창고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그 지역 영주의 창고를 비워서라도 우선적으로 채워 넣었다.
왕국의 운명을 건 승부수로 오트 대공은 머뭇거림 없이 모든 일들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격.
이십만 대군이 밀려들었고, 그 뒤를 보급 부대가 뒤따랐다.
해밀 공작이 땅을 치고 통탄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오딘의 북부 세 개 영지를 겨우 팔천의 군세로 점령하고 있던 아르도스 백작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십만이 넘는 대군 앞에 무슨 수로 버티겠는가? 증병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격은커녕 지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아르도스 백작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보급 부대만 십만, 거기에 최단 거리로부터 보급해 왔다.
공격할 틈조차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참모들은 거듭하여 숙의를 했다.
결국 백작은 다시 게릴라전밖에 없음을 확인한다.
이후, 해밀 공작에게 컬킨디펜스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백작은 철저한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오개 조의 게릴라.
아르도스의 전설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게릴라전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오딘의 왕도 바로 앞에서까지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철저하게 오딘 백성으로 변장한 그들은 보통 서너 명씩 흩어져 다녔고, 어떤 때는 개인 행동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이미 오딘 중부에는 북부 피난민으로 상당수 채워져서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고, 피난민이 들이닥친 지역들은 치안의 어려움을 격고 있었기에 효과적인 대응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남부가 아니면 말투마저 비슷했기에 이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기는 그만큼 어려웠다.
사실 이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게릴라도 잡지 못한 오딘이었다.
그런 만큼 더욱 대담하게 움직인 각 조는 보급 창고뿐만 아니라 영지의 창고나 영주의 비상고까지 털었다.
때론 그냥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준비로 굶주린 영지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면서 오히려 의적으로 추앙받는 사태마저 나타났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누구나 다 힘들었다.
하지만 로튼 제국으로 인해 시간의 제약에 걸려 있고, 게릴라전에 당하기만 한 오딘군의 피로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한편, 해밀 공작이 오 년 전에 오딘의 마스터 헤링거 후작에게 당한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그 아들 마크 드 해밀 후작이 공작 위를 물려받는다.
이즈음, 황손을 출산한 여동생 폴라나와 제국의 위세를 등에 업은 가느롱 후작도 해밀 공작의 그림자에서 나와 권력을 양분한다.
때마침 아라곤 제국의 황제가 붕어하고, 황태자였던 알폰소 반트 아라곤이 삼십이대 황제 위에 오른다.
이것은 십년전쟁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당시 오트 대공과 오딘 국왕은 심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미 남부 영토 여섯 개 영지를 바치고 필사의 각오로 치른 전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진척이 없었다.
심지어 오트 대공은 그레이너리 평야에 군사를 보내지도 못했다. 어차피 들어갔다가는 게릴라전에 희생만 늘어날 뿐이었기에 오트 대공은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도스 백작이 건재하는 한 기회란 없었다.
그에 비례해 오딘 귀족들의 불만과 원성은 높아만 갔고, 국왕은 늘 그 원성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중북부 귀족들의 불만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오트 대공 역시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수많은 군사를 잃은 지금 그들을 누를 수 있는 힘조차 부족했고, 눌러서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게다가 아르도스의 게릴라들이 중북부 주민들에게 의적으로 추앙받게 되자, 종종 게릴라를 흉내 낸 약탈마저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영주들이 대놓고 피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폭동의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들을 선동하며 약간의 무기까지 공급해 주었던 아르도스의 게릴라들이 있었다.
결국 오딘 국왕은 엄청난 재물과 함께 왕세자 페라곤을 사신으로 하여 아라곤 황제에게 보내 전쟁의 중재 요청을 하게 된다.
십년전쟁이 마지막 종점에 이른 것이다.
질 수밖에 없던 전쟁이 승리로 굳어지기 직전이었다.
오딘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영지 몇 곳을 잃더라도 전쟁 보상까지만 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스틴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오딘 군대가 진군하지 않는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이백도 안 되는 아르도스의 기사들이나 팔천에 불과한 군세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믿지도 않았고 기대도 안 했다.
그 이면에는 아르도스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정보가 한 사람에 의해 차단당하고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이때, 전쟁을 중재한다며 아라곤 황제가 나섰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공은 가느롱 후작에게로 돌아갔다. 졸지에 가느롱 후작은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제국의 수도에서 벌어진 정전을 위한 삼자협상에 가느롱 후작은 대표로 참석했다.
회의 전날 밤, 가느롱 후작은 황제로부터 전말을 듣는다. 그리고 황제의 한 가지 지시를 받아들였다.
일차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배후에선 더러운 거래가 이루어졌다.
귀국한 가느롱은 국왕과 독대했고 국왕은 불가를 외쳤다.
이차 협상도 아라곤 황도 아라고니아에서 열렸다.
다시 귀국한 가느롱은 다시 국왕과 독대한다.
국왕은 직접 아르도스 백작을 호출하여 독대한다.
국왕은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서 가려졌던 진실.
이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이었던 것이다.
국왕은 분노하여 가느롱을 불러 질책했다.
이 자리에서 가느롱은 당위성을 역설했다.
국왕에 앞서 아르도스 백작이 검을 뽑아 가느롱의 목에 대었다.
가느롱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품에서 꺼낸 아라곤 황제의 친서를 전달한다.
이에 백작은 검을 던져 버렸고, 국왕은 그 검을 돌려보낸다.
그 검의 이름은 ‘소드 오브 카스틸로’였다.
삼차 협상은 오딘의 수도 카진에서, 사차는 왕도 카스티느에서, 그리고 마지막 최종 협상은 컬킨디펜스에서 이루어졌다.
이 회의를 마친 후, 한 달 동안 전투를 벌여 차지한 영토를 최종적인 국경으로 삼기로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협상 내용.
이미 밀약을 통해 그레이너리 평야를 넘기기로 한 가느롱 후작은 작전 회의에서 아무리 카스틴에서 군사를 모아도 단기전에 오딘의 삼십만 대군을 이길 방도가 없음을 주지시키고 전투를 불허했다.
물론, 아르도스 백작이 회의에 참석했다면 불가를 외쳤을 테지만, 처음부터 가느롱은 백작을 부르기는커녕 백작령으로 귀환을 명령한다. 자칫 양국의 화친을 해친다는 미명 아래…….
하지만 이 명령에 굴복할 아르도스가 아니었다.
아르도스 백작은 그대로 전장에 나섰고, 거의 육천에 가까운 오딘의 군사들을 도륙해 버렸다. 이어 도주하는 군단장을 끝까지 추격했다.
그때, 정전 협상의 준수를 핑계로 파견된 제국의 기사단이 나타나 아르도스의 추격을 막아선다.
이 추격으로 영지 하나를 회복할 수 있었는데, 훼방을 받자 아르도스는 분노했다.
하지만 제국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일.
더욱이 그 기사단은 아라곤 제국 제이의 기사단이자, 아라곤의 검이라 일컬어지는 블랙 칸타로스 기사단 삼백 명이었다.
고성이 오갔지만 추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르도스 젊은 기사들이 갑자기 우회하여 말을 달렸고, 다시 그 앞을 세 명의 블랙 칸타로스 기사가 막아섰다.
일촉즉발의 순간, 앞으로 나섰던 아르도스의 기사 한 명이 막아선 세 명의 기사를 순식간에 꺾어 버렸다. 그중 한 명이 블랙 칸타로스의 부기사단장이었다.
(이후, 실지로 어떤 사건이 더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양측이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함구했기 때문이다. 다만 수치스런 패배 앞에 블랙 칸타로스는 길을 열었고, 뒤늦은 추적은 결국 아무런 결실 없이 돌아선 것으로만 알려졌다. 이미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에 들어간 이후였던 것이다.)
자칫 기사들이 위험할 수 있기에 백작은 귀환을 결정한다.
제국의 기사까지 나선 의도적인 훼방에 아르도스 백작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아르도스를 찾아온 젊은 기사가 있었다.
블랙 칸타로스 기사단의 이 기사는 크레인 남작과 만나 매우 은밀한 거래와 한 가지 비밀을 전해 주었다.
이후, 아르도스의 귀환은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정전 이틀 전.
첫 번째 달 리브가 그믐밤으로 변해 칠흑같이 어두운 컬킨디펜스의 동부 지역에 수많은 기마들이 지나갔다.
오천에 달하는 기마들이 지나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시체뿐일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땅의 울림은 전해졌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오딘의 연합기사단이라 했으나, 제국의 기사단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일개 왕국의 기사단의 수치고는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쟁 말기에 어디서 그런 인원이 모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