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마운틴 로드 1권(23화)
-외전
레전드(Legend), 아르도스(3)


그런 그가 황제의 명에 의한 청혼도 아닌 치기와 같은 황태자의 놀음에 놀아날 리 없었다. 더욱이 그는 젊은 리믹스를 무척이나 아꼈고, 또한 이미 약혼이 이루어진 뒤였다.
에식스 대공은 황태자가 보낸 기사의 전언을 들은 뒤, 곧장 장녀를 데리고 아르도스로 향한다. 그리고 왕도도 아닌 영지에서 신관 아우구스의 주례로 리믹스와 혼인식을 올려 버린다.
장차 있을지 모를 알폰소 황태자의 카스틴 왕실에 대한 압력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하지만 이 조처로 인해 카스틴은 남부 영지를 잃어야 했고, 그가 가장 믿었고 존경했던 아르도스 백작이 영지를 잃고 오지로 쫓겨나게 되었으며, 그 사위는 꿈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그 딸의 형편은 그만큼 비참했다.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은 에식스 대공의 사후, 제국의 압력으로 대공령은 공작령으로 떨어졌고, 우여곡절 속에 영지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에식스 가문은 공작의 이름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사라져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알폰소의 복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 존재가 생겨났다.
폴린 드 가느롱 후작이었다.
황제가 방황하는 황태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마련한 황실 파티에서 가느롱 후작의 여동생 폴라나가 특유의 미색과 언변으로 알폰소의 마음을 휘어잡아 이 황태자비에 간택된 것이다.
이를 기화로 가느롱 후작은 제국 황태자비의 이름을 등에 업고 공공연히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의 내심에 자신도 끝을 모르는 야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와중에 벨레로폰 후작은 점차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거칠 것이 없는 승승장구의 시간이었다.
이에 고무된 해밀 공작은 벨레로폰의 요청으로 귀족들을 격려하고, 귀족파의 결집과 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장을 방문한다.
실로 국왕의 시찰보다 못하지 않은 위용을 보이며 전장을 시찰하던 해밀 공작은 벨레로폰이 십오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는 것을 참관하게 된다.
보이는 적은 겨우 이만 정도, 즐거운 승리를 생각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한 지옥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들의 무자비한 복수 범위 마법.
무엇보다 선두엔 섰던 세 명의 기사들과 그 뒤를 따르는 기사단들의 무위는 실로 끔찍했다.
이어 좌우에서 밀려든 오딘의 군사는 최소 십만이 넘었다.
격돌!
그리고 최악의 패퇴!
결국엔 벨레로폰 후작이 도주하면서, 해밀 공작 역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추격하는 오딘의 기사들은 집요했다.
결국 해밀 공작과 벨레로폰은 그 의문의 기사들에게 따라잡혔고, 다시 기사들 간의 혼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그중 탁월한 세 명의 기사들이 오딘의 자랑이라는 소드마스터들임을 해밀 공작은 알게 되었다.
해밀과 벨레로폰, 그리고 기사단장 베링 백작, 삼 대 삼의 대결이었다.
결론은 처절한 패배. 벨레로폰과 베링은 처절한 죽음을 당했고, 해밀 공작은 중상을 입고 겨우 마법사에 의해 탈출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돌아온 병력은 겨우 이만오천. 십이만 오천 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총사령관과 그 기사단, 그리고 중기병기사단이 전멸한 처참한 패배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죽지세로 몰아치는 오딘 왕국의 공격에 카스틴 왕국군은 허수아비처럼 무너졌고, 순식간에 점령한 영토를 내어 주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그때 겨우 사태를 파악한 아르도스에서 컬킨디펜스로 진격했을 때, 그레이너리 평야까지 포기하고 돌아온 왕국군은 겨우 오만에 불과했다.
왕도에서도 비로소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하려 했지만, 이십오만의 병력을 잃은 귀족들은 두려움에 떨며 영지에 칩거하거나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군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귀족파의 수장인 해밀 공작도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었고, 수많은 귀족파가 이십오만의 군사들과 함께 죽어 버린 후였다.
군세가 강한 귀족파가 빠져 버린 카스틴에서 이미 수많은 사병들을 우선하여 출전시킨 왕당파만의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에식스 대공이 나서려 하자 가느롱 후작이 전면에 나섰고, 국왕이 직접 움직여 쓸어 모으다시피 한 군사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다.
가느롱 후작으로서는 도박이었지만 믿는 바가 있었다. 이미 전면에 나선 아르도스 백작과 그 기사단 에크베이트였다.
하지만 가느롱의 생각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온 아르도스 백작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패배감이 병사들에게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에식스 대공이 군사들을 증원해 주었지만, 아직 전투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야말로 애송이들이었다.
자연 고참병들의 패배 의식이 그들의 마음 밑바닥을 사로잡았고, 그런 병사들을 가지고는 어떤 전투도 치를 수 없었다.
더욱이 가느롱 후작은 성과를 위해 채근하기만 했다.
이원화된 명령 체계, 바닥인 사기와 불안한 군기, 훈련 부족, 패배 의식까지 만연한 카스틴의 진영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컬킨디펜스에서 방어에 전념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가느롱 후작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에식스 대공이 오려는 것을 자원하여 나선 길이었다.
물론, 가느롱도 알고는 있었다. 아군의 군세는 십일만, 적군은 이십일만이었다. 분리해서 방어하는 것보다는 모여서 지키는 것이 합당했다.
하지만 컬킨디펜스만으로는 부족했다. 적군은 컬킨디펜스 앞 하룻길에 진을 치고 있었다.
최소한 그레이너리의 일부라도 지켜야, 그래도 지켰다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도스 백작은 요지부동이었고, 가느롱 후작은 이를 젊은 자신을 향한 질시로 이해했다.
그러던 중, 적군이 칠만 정도의 군세로 세 곳에 흩어져 영지를 정리한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십일만의 군세에 기습이면 한번 해 볼 만하다 생각했다.
가느롱 후작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황태자비 간택에 기여한 것으로 백작으로 승작한 부르터는 한 번의 기습에 대해 승리를 자신했다.
나머지는 시간의 싸움이었다.
과연 기습은 먹혀들어 적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밀면 승리는 가느롱 후작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조금의 욕심이 결국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적당한 승전에 후퇴를 간언한 부르터 백작은 가느롱 후작의 광기와 같은 욕심에 결국 동조한다.
막 대승의 역사를 이루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기사단들이 카스틴의 병사들을 유린하기 시작하면서, 카스틴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기사단들은 가느롱 후작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오딘 왕국의 세 마스터와 그 기사단을 너무도 잘 아는 가느롱은 병사들을 버려두고 홀로 도주해 버린다. 이에 귀족들과 기사들도 허겁지겁 도주하기 시작했고,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은 수수깡처럼 베어지고 넘어졌다.
밟혀 죽는 병사의 수가 검에 죽는 수보다 더 많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진 카스틴 군이 컬킨디펜스에 돌아왔을 때는 겨우 삼천 정도에 불과했다.
왕도로 돌아간 가느롱은 모든 책임을 명령 불복종의 죄를 씌워 아르도스 백작에게 전가했고, 병사들을 버리고 패주한 귀족들 역시 이에 동조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걷잡을 수 없는 아르도스 백작에 대한 질책과 원망이 난무했고, 심지어 나라를 잃기 전에 아르도스 백작을 먼저 참수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타났다.
지금까지 잃은 군사의 수가 육 년에 걸쳐 오십만이 넘었다. 이는 왕국이 낼 수 있는 최대 수를 넘어가는 병력이었다.
다행히 카스틴 왕국은 꽤 오랫동안 부를 누려 왔고, 강병을 유지한 왕국이었다.
그럼에도 카스틴 왕국에 남은 병력이라야 동원되고 남은 아라곤 국경의 국경수비대 오만, 마운틴로스 산맥 인접지에서 남은 몬스터 토벌대 일만, 각 영지군에서 남은 십만 정도, 그리고 컬킨디펜스의 남은 아르도스의 병력과 함께 팔천 정도. 최대한으로 잡아도 십칠만이 되지 못했다.
오딘 왕국의 군세는 북부만 해도 이십만이 넘었다.
그 또한 최대의 동원임에 거의 틀림이 없었지만, 카스틴 왕국은 더 이상 짜낼 힘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왕국수비대는 더 이상 빼낼 수 없었다. 아무리 아라곤이라 해도 왕국을 거저 내줄 수는 없었다.
또한 몬스터 토벌대의 남은 인원들은 부상을 당했거나 명목상으로 올려진 이름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허수였다.
거기에 영지군을 더 이상 내놓으려 하지 않는 귀족들. 더 이상 내놓았다가는 왕국이 아니라 가문이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래로 왕국은 멸망해도 귀족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어느 왕조나 나라도 귀족만큼은 웬만해서는 다 정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를 잃으면 불이익은 감수해야 했다. 영지도 작아지고,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하며, 변방으로 내쳐지는 손해와 홀대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에 더욱 가문의 힘을 아껴야 하는 것이다. 힘을 보존하면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귀족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카스틴에서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는 듯했다.
결국, 에식스 대공이 칩거를 깨고 입궁했다.

― 아틀란 역사서, 아르도스 편, ‘원한’ 중에서 발췌

***

펠룩스 반 에식스 대공.
50년을 이어 온 에식스 가의 당대 영주이며, 유약한 국왕의 외숙부이기도 하고, 왕국 제일의 소드마스터이다.
외척이 없어야 한다며 두문불출 영지에만 머무르던 그가 결국은 입궁하여 강한 카리스마로 귀족들을 움켜잡았다.
이미 죄인과 마찬가지인 해밀 공작이나 가느롱 후작까지 불러들인 대공은 그들에게 면죄의 길을 제시했다.
해밀 공작에게는 로튼 제국으로 가서 오딘을 공격하도록 로비하고, 가느롱 후작은 아라곤 제국으로 보내 지원군을 요청하게 만들었다.
또한 오딘 왕국 남부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스 왕국과 잉거 공국에도 사신을 보내 연합 세력의 결성을 촉구했다.
발 빠른 대응에 작지만 가시적인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아라곤 제국에서 조사관을 파견한다는 연락이 왔고, 유스 왕국과 잉거 공국에서도 긍정적인 검토의 답변이 왔다.
얼마 뒤, 조사관이 다녀가고 아라곤 제국의 황제로부터 유사시 병사를 파병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게 된다.
물론 이 일로 가느롱 후작은 다시 귀족들의 신임을 받고 세력을 얻는다.
또한, 유스 왕국과 잉거 공국 모두 오딘 왕국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로 맹약을 맺었다.
결국 오딘군은 섣부른 남부 전력의 움직임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북부의 이십만 군사들은 여전히 카스틴을 노렸다.
수없이 많은 컬킨디펜스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아르도스는 결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오딘군은 아르도스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였다. 이십만 대군이 팔천의 병력에 발이 묶인 것이다. 과거 미누아의 컬킨 국왕도 이루지 못한 전과였다.
전장은 그렇게 그 상태로 고착되어 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그레이너리 평야는 완전히 오딘 왕국에 귀속되는 것 같았고, 카스틴 역시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이때, 기적 같은 승전의 소식이 전해진다.
불과 팔천의 병력으로, 육만의 오딘 북부 1, 2, 3 연합 군단을 패퇴시키며 컬킨디펜스를 지켜 내더니, 대륙에 없는 새로운 작전으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신화의 시작이었다.
아르도스 백작은 마법사와 기사단만을 이용한 유격전을 통해 집요하게 오딘 군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딘 군대에서도 그들을 잡기 위해 광분했다.
하지만 겨우 백여 명에 불과한 소수의 기사단에 삼천이 넘는 군대가 전멸을 당한 이후, 오딘은 아르도스의 에크베이트 기사단의 기만 봐도 도주하기에 바빴다.
일이천 정도의 부대는 에크베이트 기사단의 밥이었기에, 오딘 왕국군의 이동 단위는 최하 일만 이상이 공식이 되었다.
그런데 후방에서도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오딘의 보급 부대는 그야말로 후식에 불과했다.
후방에 나타난 기사단은 사십여 명의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 실력은 오딘의 어떤 기사단도 따를 수 없이 출중했다.
일부 보급품을 탈취하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린 기사들은 오딘군이 들이닥쳤을 때는 이미 일반 영지민 속으로 숨어든 뒤였다.
전쟁이 발발한 지 구 년에 가까운 그레이너리 평야에는 일반 마을은 드물었고 대부분 성 단위로만 존재했다.
그럼에도 평야로 일을 나온 영지민들 틈 사이로 묻혀 버리는 데야 도리가 없었다.
주민들이 아르도스의 기사들임을 알고 더욱 숨겨 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을 보호하라는 오트 대공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영지민들을 공격하는 오딘군이 속출했다. 나중엔 오트 대공마저 이를 용인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레이너리 평야의 주민들은 더욱 아르도스 기사들을 환영했고, 나서서 그들을 돕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이후, 대륙에서는 이런 유격전을 게릴라전이라 불렀고, 기사들이나 병사를 게릴라라 불렀다.
아르도스의 게릴라들은 단체로 움직일 때도 있었지만, 보통 때는 서너 명 정도가 움직였다. 그중 젊은 세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로 이루어진 게릴라들은 그야말로 신출귀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곳마다 보급품이 불타고 약탈당하고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