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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
강호소사전담반 1(1화)
1장 강호소사전담반의 실세거든요(1)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반동객점은 인파로 붐볐다.
일찌감치 술자리를 시작한 탓에 어느새 불쾌하게 취한 장한들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장사치들도 섞여 있었다.
“여기 안주 시킨 지가 언젠데 아직 안 나오는 거야?”
“백아홍은 대체 언제 가져올 거야? 혹시 주인장이 술 빚으러 갔어?”
술은 마물이다.
평소에는 점잖은 사람들도 술을 마시다 보면 이성이 마비되어 종종 폭주한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장한들은 마물에 취해 인내심을 상실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고함을 질렀고, 이마에 수건을 두른 채 바삐 뛰어다니던 점소이도 그에 지지 않고 같이 고함을 질렀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린 돼지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죽기 싫다고 너무 심하게 반항을 하는 바람에 주방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명망 높은 강호의 고수들 못지않게 용감하신 주방장님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돼지의 뒤통수를 식칼의 손잡이로 때려서 제압하신 것이 불과 반 각 전!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을 정도로 똑똑했던 어린 돼지의 살이 통통하게 오른 뒷다리 부위의 살코기를 두툼하게 잘라서 만든 돼지고기 볶음은 지금부터 약 반 각 후에 완성된다는 전갈이 막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백아홍은 지금 다시 빚고 있습니다! 거친데다가 머리가 명석하기까지 했던 어린 돼지를 잡느라 심력을 소모하신 주방장님이 갈증을 느끼고 주인 어르신 몰래 홀짝홀짝 드시다가 백아홍이 들어 있던 술통을 아예 바닥내 버리셨거든요!”
아직 나이는 어렸지만 점소이는 노련했다.
손님들의 술주정과 짜증을 능글맞게 받아넘기며 주방으로 달려갔다가 손님들로 붐비는 탁자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예끼, 이놈!”
“아직 어린 놈이 입심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 정도 입심이면 앞으로 여자들 치마끈 적잖이 풀어헤치겠는데. 클클.”
술은 분명히 마물이지만 때론 약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니까.
몇 잔의 술을 걸치면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사람도 그 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시답잖은 농에도 웃음이 헤퍼진다.
술에 취한 장한들이 터트린 웃음소리가 객잔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흥이 잔뜩 오른 객잔 안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 최종길은 화주를 거푸 들이켠 후 입을 뗐다.
“어찌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어렵게 꺼낸 말.
그렇지만 마주 앉아 있던 오랜 친우인 홍도수는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을 꺼냈다.
“죽여야지.”
“죽이라고?”
“그럼 죽여야지.”
“…….”
“그것도 쉽게 죽여서는 안 돼. 고통에 겨워서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네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지.”
화주를 벌컥 들이켠 홍도수가 열변을 토해 냈다.
그러나 최종길은 영 내키지 않는 듯 가지런한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 모습을 답답하게 바라보던 홍도수가 침을 튀기며 덧붙였다.
“대체 뭘 망설이는 건가? 마누라가 자네 몰래 서방질을 했으면 쳐 죽이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벌써 함께 살 비비면서 산 세월이 무려 십 년이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긴 하지만 그동안 든 정도 있고, 고작 한 번의 실수에 불과한데 그것 때문에 죽이는 것은 너무 과한 것 같기도 하고.”
변명을 꺼내다가 목이 탄 듯 애꿎은 화주만 벌컥벌컥 들이켜는 최종길을 향해 혀를 끌끌 차고 있던 홍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한심한 새끼야!”
“내가 한심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자네까지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네.”
“변변찮은 새끼. 누가 제수씨를 죽이라고 했어?”
“응?”
“내가 죽이라고 한 건 제수씨가 아니라 순진한 제수씨를 꼬드겨서 붙어먹은 그 빌어먹을 놈이라고.”
홍도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종길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붙어먹었다는 표현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왜? 듣기 거북해?”
“아니. 뭐, 그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그도 잠시, 최종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안 죽일 거야?”
홍도수의 재촉을 듣던 최종길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야 나도 쳐 죽이고 싶지.”
“사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긴 한데…….”
마누라와 바람이 난 놈을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쳐 죽일 기세였던 최종길은 금세 그 기세를 잃어버렸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말끝을 흐리던 최종길이 덧붙였다.
“……그놈이 강호인이야.”
“그 빌어먹을 놈이 강호인이라고?”
“그래. 내가 밭을 갈 때 쓰는 곡괭이를 들고 달려가서 쳐 죽일 수 있는 놈이 아니란 말이지.”
“이거, 문제가 심각해지네.”
최종길의 마누라와 붙어먹은 놈이 강호인이란 사실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홍도수가 흠칫했다.
강호인은 무공을 익혔다.
최종길의 말처럼 밭을 가는 데 사용하던 날이 무딘 곡괭이를 들고 달려가서 쳐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겁 없이 강호인에게 달려들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강호인과는 얽히지 않는 편이 좋다.
괜히 얽혀 봐야 손해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강호인과 얽히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강호인도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랬다.
혼인 후에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고 살던 착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제수씨가 강호인과 붙어먹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거참, 곤란하게 됐군.”
홍도수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최종길은 다시 화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딱하게 바라보던 홍도수가 혀를 내밀어 말라 버린 입술을 축였다.
비록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게 흠이긴 하지만, 이 착한 친구를 위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강호인과 일반인이 얽히는 경우는 지금까지 분명히 존재했다.
최종길처럼 힘없는 일반인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강호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네, 혹시 살막이라고 들어 보았나?”
“살막?”
비를 흠뻑 맞은 파계승처럼 처량한 표정을 지은 채 홀로 술잔을 채우던 최종길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며 되물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홍도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하긴 평생 땅을 일구며 농사만 짓고 살아온 이 착한 친구가 살막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체를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살막은 살수들의 단체일세.”
“살수라고?”
“어허, 목소리를 좀 낮추게.”
“알았네. 미안허이.”
“살수들의 단체라고 해서 꼭 나쁜 놈들이 모인 곳이라 여기는 건 선입견일세.”
“하지만…….”
“살막의 살수들은 돈만 내면 누구라도 죽여 주지. 설령 강호인이라고 해도. 그러니까 자네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원한을 갚아 주는 거지.”
홍도수가 차분하게 설명을 마치자 최종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망설이던 최종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살수라는 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나도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어. 근데 말이야, 아무래도 살수를 돈으로 사는 것은 좀 그래.”
“왜?”
“그렇게 무시무시한 자들과 얽히는 것이…… 뭐랄까, 볼일을 보고 나서 뒤를 닦지 않은 것처럼 좀 찝찝해서 말이지.”
최종길이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입을 뗐다.
그 소심한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더 탓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홍도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살수들과 어떤 식으로든 얽힌다고 생각하면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으니까.
그래서 홍도수가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흑점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나?”
“흑점은 또 뭔가?”
“흑점은 낭인들의 집결소네. 낭인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겠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최종길은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짤막하게 한숨을 내쉰 홍도수가 결국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낭인들도 강호인이라고 할 수 있지. 다만 낭인들은 어느 문파에 들어가 스승을 모시고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실전을 통해 무공을 배운 자들이야.”
“그런데?”
“낭인들 중에서도 강한 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어. 흑점으로 찾아가서 실력이 뛰어난 낭인을 돈을 주고 사서 그놈을 죽이라고 사주하는 거야.”
홍도수가 제시한 대안을 듣자 최종길도 흥미를 느끼는 듯 두 눈을 빛냈다.
“그럼 흑점이란 곳으로 찾아가서 부탁하면 되나?”
“돈은 지불해야겠지. 낭인이란 돈을 받아야만 움직이니까.”
“얼마나 내면 되지?”
“그야 어떤 낭인을 사느냐에 따라 다르지. 모르긴 해도 실력이 뛰어난 낭인일수록 비쌀 거야.”
고민의 흔적처럼 보이는 거뭇한 수염이 자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던 최종길이 결심한 듯 다시 물었다.
“꽤 강한 낭인을 사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글쎄, 확실하진 않지만 한 서른 냥 정도면 되지 않을까?”
홍도수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최종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홍도수는 그 이유를 금세 파악했다.
몇 년째 이어진 흉년으로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팍팍한 세상이었다.
평생 농사만 지어 온 최종길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방구석에 놓여 있는 장 아래 들어가 있을 동전까지 긁어 모아 봐야 고작 은자 열 냥도 모을 수 없을 터였다.
“내가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아니군.”
예상대로 힘없이 대답하는 최종길을 바라보던 홍도수가 결국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화주를 들이켰다.
“혹시 다른 방법은 없나?”
“남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그게 뭔가?”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는 최종길을 바라보던 홍도수가 탁자 위에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직접 무공이란 걸 배워서 자네 마누라와 붙어먹은 그 빌어먹을 강호인을 직접 쳐 죽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