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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2화)
1장 강호소사전담반의 실세거든요(2)


술은 약이자 마물이다.
적당히 마시면 세상 어떤 진통제보다도 나은 효과를 주는 약이지만, 과하면 술을 마시는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이 된다.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 것이다.
“빌어먹을!”
최종길은 안주로 나온 돼지고기 볶음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쉬지도 않고 연거푸 화주만 들이켰다.
홍도수가 적당히 마시라며 만류했지만, 그 손을 힘껏 뿌리치고 독하디독한 화주를 빈속에 계속 퍼부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최종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이란 마물에게 먹혔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홍도수의 얼굴이 세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화주를 들이켜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얼마나 화주를 들이켰을까.
어느 순간,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적당히 좀 마시라니까.”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어두컴컴한 뒷골목의 구석이었다.
돌담에 몸을 기댄 채 뱃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던 최종길의 귓가에 홍도수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잠시 되살아났던 기억은 금세 사라졌다.
다시 기억이 사라진 탓에 토사물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등을 두드려 주던 홍도수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홍도수가 보이지 않았다.
최종길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사위에 내려앉은 짙은 어둠.
아무도 없는 어두운 장소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두려움이 찾아왔다.
‘여긴 어디지?’
초가을이지만 밤공기는 서늘했다.
구겨진 옷깃 사이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그 한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잔뜩 신형을 움츠리던 최종길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낮은 돌담 너머 보이는 아담한 한 채의 집.
그 집의 전경이 낯익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데 기를 쓰고 찾아온 곳이 하필 여기라니!”
최종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커먼 밤공기 속으로 하얀 입김이 쏟아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힌 그 집을 차마 더 바라보지 못하고 최종길은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렇지만 고작 두 눈을 감는 것만으로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허리까지 땋은 긴 머리카락, 시골 아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얗고 고운 피부와 갸름한 얼굴, 허름한 남색 치마를 꽉 부여잡고 있는 작은 두 손까지.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넓은 치마의 주름을 양손으로 꽉 움켜쥔 아내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리는 눈동자로 마치 대역죄를 지은 죄인마냥 몇 번씩이나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 혹시 누군가 따라붙은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했다.
그렇게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거기서…… 제발 거기서 멈춰!”
최종길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아내는 그 외침을 듣지 못했다.
대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아내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피고 황급히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형체를 띤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갈등하는 것처럼 아내는 그 방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내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방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리고 최종길은 보고 말았다.
그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아내를 보며 음흉하게 웃는 모습을.
밤은 점점 깊어졌다.
환하게 켜져 있던 방의 불이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끝내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최종길이 감았던 눈을 떴다.
“후우, 후우.”
그런 그의 숨소리는 어느새 거칠게 변해 있었다.
하긴 이런 상황에 어느 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둠 속에 완전히 잠긴 집을 노려보던 최종길이 예전 기억을 더듬었다.

‘아내를 처음 본 그날, 꼭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짜릿했지.’
잔뜩 일그러졌던 최종길의 입가가 펴지며 희미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열아홉이란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선뜻 다가가지는 못했다.
최종길이 가진 것은 손바닥만 한 밭이 전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처지였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내의 모습은 마치 인이 박힌 것처럼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욕심이 생겼다.
돈에 대한 욕심도, 배움에 대한 욕심도,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던 최종길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게 바로 아내였다.
하지만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진심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아내는 현명한 여자였다.
말끔하고 세련된 학자풍이 아니라 볕에 그을리고 잘생기지도 않은 자신의 외모에 편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가진 것이 없다는 자신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담긴 진심과 성실함을 꿰뚫어 봐주었다.

“비단옷을 사 주고, 보석으로 치장하게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굶기진 않을 거야.”

최종길은 진심이 담긴 고백을 했다.
아내는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마침내 아름다운데다가 착하기까지 한 아내를 얻게 된 순간,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꼭 닮은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가 찾아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이 가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난 대체 뭘 위해 살았던 거지?”
너무나 소중했던, 자신의 전부라 여겼던 가정이다.
그래서 상실감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씁쓸하게 혼잣말을 읊조리던 최종길이 허리를 구부렸다.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에는 갓난아이 머리통만 한 시커먼 돌덩이가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개새끼!”
최종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당장에라도 대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가서 이 돌로 놈의 머리통을 수십 번 후려쳐 죽이고 싶었다.
아니, 그걸로 충분치 않았다.
죽어 버린 놈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놓아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었다.
커다란 돌을 움켜쥐고 있는 최종길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방이라도 사단을 낼 기세였던 최종길은 석상처럼 굳어진 채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두려워서?’
그 개새끼가 무공을 익힌 강호인이라서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각오는 했으니까.
그런데도 최종길은 두려웠다.
저 개새끼에게 맞아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최종길이 진짜 두려운 것은 지금 저 개새끼를 향해 달려가면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도.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처럼 소중한 아들도.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던 가정은 깨진 동경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예전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었다.
“이 개새끼!”
그래서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어둠에 잠긴 집을 노려보던 최종길이 헛숨을 들이켤 때, 분명히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울하죠?”

예고도 없이 하나의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누구요?”
누군가 다가온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최종길은 귀신을 만난 것처럼 혼비백산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에, 귀신은 아니니까 너무 놀라진 마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던 최종길의 눈에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젊은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누구냐고…… 물었소.”
너무 놀란 탓일까.
술이 확 깼다.
마침 오른손에 들려 있던 시커먼 돌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며 재차 물었지만, 젊은 사내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 불쑥 물었다.
“겁나죠?”
“…….”
“그러니까 일단 그 돌부터 내려놓으세요.”
젊은 사내가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을 마주한 순간, 최종길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요?”
최종길은 세 번째로 묻고 나서야 이 젊은 사내의 정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제 이름은 담서인, 강소전반에 속해 있죠. 아, 강소전반이라고 줄여서 말하면 알아듣기 힘드시겠네요. 길게 풀어서 설명하면 강호소사전담반이랍니다.”
“강호소사전담반?”
“처음 들어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거든요.”
담서인이 씨익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강호소사전담반은 말 그대로 강호의 소사! 즉 강호와 연관된 사소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는 곳이랍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사소한 오해로 강호의 인물들과 원한이 생겼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가진 힘이 없어서 해결할 수 없을 때, 저희에게 의뢰하면 말끔히 해결해 드리는 거죠.”
강호소사전담반이라니.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지라 최종길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닌 듯 담서인은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살수는 무섭죠. 아주 무섭고 지랄 맞은 놈들이에요. 그 무서운 놈들하고 한 번 얽혔다가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뒷간에 가서 큰일을 보고 있을 때도 똥통에서 길쭉한 쇠꼬챙이가 불쑥 튀어나와 구멍을 찔러 버릴 것 같은 불안한 느낌. 아마 불편하고 찝찝해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걸요. 그래서 살수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낭인들인데, 사실 낭인들에게 기대는 것도 좀 그래요. 잘 아시겠지만, 별로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몸값은 더럽게 비싸죠. 쉽게 말해 몸값에 거품이 잔뜩 끼어서 낭인 하나 고용하려면 집안이 거덜 날 정도죠. 그런 이유로 살수와 낭인들을 모두 제해 버리고 나면 남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직접 무공을 익혀서 해결하는 거죠.”
담서인이 도중에 말을 멈추었을 때, 최종길은 이미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고 있던 돌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마치 최종길의 속에 들어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담서인은 속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말이 쉬워 직접 무공을 익히지, 그게 어디 쉽나요? 재능도 있어야 하고 좋은 스승도 만나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쉽게 된다면 세상천지에 고수 아닌 사람이 없겠죠. 안 그래요?”
“그야 그렇지.”
담서인이 설명하던 도중 불쑥 질문을 던졌고,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청하고 있던 최종길은 엉겁결에 맞장구까지 쳤다.
구구절절 옳은 말들!
게다가 담서인의 이야기에는 노련한 매화자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까지 존재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제가 몸담고 있는 강호소사전담반이랍니다. 힘없고 돈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과 울분을 아주 말끔하게 해결해 드리거든요.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지만 마시고 저희에게 맡기는 것이 어떠세요?”
“그게…….”
“아직 망설이시는 것 같아서 좀 더 설명드리자면, 저희 강호소사전담반은 의뢰비가 아주 싼 편이랍니다. 저만 믿고 의뢰해 주세요. 이래 봬도 제가 강호소사전담반의 실세 중의 실세거든요.”
담서인이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