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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
코크마스터 1(1화)
프롤로그 - 콜라대마왕!(1)
21세기 대한민국.
어느새 20세기는 잊혀진 과거가 되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옛 예언자의 예언처럼, 사람들은 점차 빨리 움직이게 될 것이란 말을 실현하듯 현대인들은 빠르고 정신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꿋꿋이 자신의 본분을 지켜 온 자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비웃듯 하루를 늘어지게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수천 년 인간의 역사에 항상 등장하였던 자들.
따지고 보면 역사를 변혁시킨 인물들은 바로 이런 부류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모든 것에 초월한 자.
백수.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백수들은 언제나 굳건히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사람들은 야외 나들이를 갈 시간이지만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한 고시원 방은 여전히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지러운 방 한쪽. 한 남자가 페트병에 담긴 콜라를 숨도 쉬지 않고 들이부어 마시고 있었다.
꿀꺽꿀꺽.
“캬아. 살 것 같다.”
이제 막 일어난 듯 머리는 부스스했고 반쯤 잠긴 눈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였다.
휘익.
콩!
데굴데굴.
감미로운 천상의 음료를 마셨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 페트병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방구석에 아무렇게 쌓여 있는 수십 개의 빈 페트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더듬더듬.
이번에는 손을 뻗어 책상 위를 더듬었다. 그러자 프XX스 칩 통이 손에 잡혔다.
퐁.
우적우적.
뚜껑을 열고 반 정도 남아 있는 감자칩을 마저 먹어 치운 후, 마지못해 일어나 좌측에 놓여 있는 미니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덜컹.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오며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자 그 안에는 1.5ℓ 콜라가 겹겹이 쌓여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벌컥벌컥.
방 안의 남자는 흡사 맥주병을 꺼내듯 그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 순식간에 입 안에 들이부었다.
“후으. 입가심을 해야지.”
이번에는 냉장고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초콜릿을 꺼냈다.
헤이즐넛 400g. 대용량 초콜릿이었다.
우적우적.
후루룩.
콜라와 함께 초콜릿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남자는 이제야 좀 배가 부른 듯 초콜릿 껍질을 대충 둘둘 말아 페트병이 쌓여 있는 곳에 집어던졌다.
탁.
데구르르.
방구석에는 그런 쓰레기, 그리고 빈 페트병, 박스 뭉치로 정신이 없었다.
흡사 방 한쪽에 쓰레기 하치장을 만든 것 같았다.
“하암…… 몇 시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 시간을 보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두르르르르.
두르르르르.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자 그 남자는 느긋하게 폰의 액정을 통해 수신자를 확인했다.
“엇, 병진이네?”
익숙한 친구의 번호란 것을 확인하자 재빨리 전화를 연결했다. 그러자 자신에게 익숙한 몇 안 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강지환.”
“왜? 병진아.”
강지환이라 불린 남자는 전화기에서 나온 음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너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이제 일어난 거지?”
해가 중천에 떴다는 말에 지환은 그제야 고시원 방 한쪽에 있는 창가를 한번 흘깃 보고, 건너편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조그만 전자시계를 바라보았다.
고시원 방의 창문만으로는 해가 떴는지 안 떴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직 3시밖에 안 됐네. 하루의 삶은 저녁 식사 이후부터라고.”
능글능글한 태도로 지환이 말하자 반대편의 병진은 답답한 듯 말했다.
“아이구, 매일 밤새고 오전 내내 자니 연락도 안 되지.”
“아, 자고 있어서 연락 못 받았나 보네. 미안.”
“어쨌든 너 일전에 취직 추천서 알아봐 달라고 했잖아. 그거 가지고 갈 테니 기다려. 네 고시원 방 바로 근처야.”
“오케이, 오케이. 고마워.”
이제야 콜라 속에 듬뿍 담긴 카페인이 머릿속을 적시면서 뇌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환은 일전에 친구 병진이에게 다니는 회사 추천서 하나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부탁한 것이 한 달 전이었는데 이제야 어떻게 하나 마련된 모양이었다.
“어이쿠. 이거 방 정리가 하나도 안 되었는데.”
그제야 지환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금 방 안은 검은 봉지, 널브러진 옷가지, 빈 캔, 빈 페트병이 산더미처럼 쌓여 너저분한 상태.
그래도 친구가 온다니 대충대충 옷가지는 한쪽으로, 빈 캔하고 페트병은 나중에 한 번에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기 위해 모아 두려고 했으나…….
“에이 귀찮아.”
데굴데굴.
데굴데굴.
일반 빈 페트병은 나중에 포인트 점수 입력해야 했기에 지금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만 따로 방구석에 밀어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짐들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덜컹.
방 한쪽에 있는 옷장을 열었다. 하단 공간이 비어 있기에 그곳에 방 안의 물건들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나중에 치워야지.”
물론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름대로 밀어 넣었으나 막상 그렇게 해 버리니 문제가 생겼다.
“이불은 어디에 넣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요와 이불을 치울 곳이 막막해진 것이다.
벌떡.
지환은 이불을 들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건너편 복도로 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건조대가 있었다.
“날씨도 좋고, 태양광으로 건조나…….”
갑자기 어둑어둑해지면서 구름이 끼고 있었지만 지환은 흥얼거리며 건조대에 요와 이불을 걸었다.
탈탈탈.
몇 번 손으로 치니 먼지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보통 그 정도라면 세탁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지환은 결코 그런 귀찮은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건조대에 걸어 놓고 방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대충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한쪽으로 모아 놓았다.
그렇게 해서 나름 정리가 마무리되려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똑똑.
“누구?”
“나다.”
밖에서 친구 병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환은 재빠르게 방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웰컴.”
“웰컴은 무슨…… 왓. 이게 다 뭐야?”
마침 페트병 하나가 굴러 와 막 들어오던 병진의 발에 부딪쳤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콜라 페트병으로 향했다.
“저, 저게……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분량이냐?”
흡사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듯 높이 쌓여 있는 콜라 페트병을 바라보며 병진은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콜라를 물처럼 마시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지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저거? 반은 버리고 나머지는 아직 포인트 입력을 못해서 못 버린 건데.”
“콜라마왕이 따로 없네. 넌 콜라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더 낫겠다. 바로 특채다, 특채.”
병진이 들고 온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차피 쓰잘대기 없는 말 할 것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 서류.”
병진이 A4 용지보다 조금 큰 크기의 서류 봉투를 지환에게 건넸다. 그러자 지환은 그것을 받아 조심스럽게 그 안에 담긴 것을 꺼냈다.
“자기소개서 복사한 거랑 추천인에 적을 아이디.”
그렇게 말하며 목이 칼칼한 듯 병진이 자신의 넥타이를 조금 풀자 지환이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뭐 마실래? P콜라, C콜라 모두 다 있다. 아무래도 진한 맛은 C콜라지. 그렇지만 종종 P콜라도 마시는 게…….”
지환의 말에 병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물은 없냐?”
“그런 건 없는데.”
“됐다. 그냥 괜찮고, 설명부터 들어 봐.”
포기했다는 듯 병진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일단 추천인 아이디는 내 아이디 적어 놨으니 그걸로 적고, 작년에 제일 높은 점수 받은 사람의 자기소개서 복사해 왔다. 이것 최대한 베껴서 올려라.”
복사용지 아래에 네임펜으로 병진의 회사 아이디로 생각되는 것이 적혀 있었다. 그러자 지환은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래. 고맙다, 친구여.”
지환이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손을 벌려 병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병진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넌 정말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왜 이렇게 방구석 폐인이 된 거야?”
방을 둘러보며 말하는 병진에게 지환이 머쓱한 듯 대꾸했다.
“하하. 이게 바로 자유롭고 낙천적인 보헤미안의…….”
말을 싹 돌려 버리며 지환이 웃음을 짓자, 병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러 일을 만들어 잠깐 나온 것이라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 나 다시 들어가야 하니까. 그럼 원서 접수는…….”
자신의 핸드폰 시계를 한 번 체크한 후 병진이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후 6시 마감이니까. 시간 늦지 마.”
오후 6시 마감이란 말에 지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자 병진은 천천히 이유를 설명했다.
“최고 점수를 얻은 자기소개서 빼 오느라고 늦은 거야. 원래 외부 유출 금지라고. 그리고 네가 아침부터 연락이 안 돼서 이제야 가져온 것이고.”
그렇게 말하며 병진은 자신의 아이디가 기재된 부분을 가리켰다. 이것만 있으면 문제없다는 태도.
“그리고 인사 담당자 형한테 내 아이디로 추천서 온 것은 무조건 서류 전형 통과해 달라고 했으니 걱정 말고, 임원 면접용 자기소개서나 잘 써서 올려. 너 글 잘 쓰잖아.”
병진의 말에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난리를 피우며 병진이 원룸까지 뛰어왔는지 이유를 안 것이다.
원서 마감이 곧 몇 시간 후. 그런데 아침부터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하기도 했을 터였다.
그래도 시간 맞춰서 가져왔으니 지환으로서는 이제 추천인 아이디와 함께 관련 기재 사항과 자기소개서만 그럴듯하게 작성하면 될 터였다.
“땡큐, 땡큐. 친구여.”
“알았어. 꼭 늦지 않게 접수해. 시간 넉넉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지금 바로 접수.”
“당근이지.”
고맙다는 지환의 말을 들으며 병진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지환은 방 밖으로 나가 입구에서 그를 배웅하며 소리쳤다.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밥 한번 사마.”
“그래.”
짧게 인사를 받으며 병진이 서둘러 움직였다.
딸각.
부르르릉.
병진은 잠시 주차시켜 두었던 자신의 차 시동을 켜서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지환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서류 뭉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초특급 X파일이라 이거지. 그리고 병진이의 추천이라면 만사 OK지.”
지환은 알고 있었다. 병진이 다니는 00실업이 실은 병진의 큰아버지네 회사란 것을.
말은 저렇게 해도 일단 병진의 추천이라면 서류는 무조건 통과.
그리고 임원 면접도 이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번지르르하게 쓰면 될 터였다. 사실 이후에도 병진이 인사과에 말만 잘해 주면 통과할 수 있을 터였다.
“후흐흐. 역시 오래 묵을수록 좋은 건 술과 친구라니까.”
병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어찌어찌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까지 나온 죽마고우였다.
물론 대학 졸업 이후 병진은 바로 00실업에 취직했고, 지환은 이곳저곳에 원서를 내다가 결국 공무원 시험 준비 몇 년에 시간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워낙 높은 경쟁률에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 버렸고, 결국 친구 병진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소개를 시켜 주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