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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마스터 1(2화)
프롤로그 - 콜라대마왕!(2)


“자자. 그럼 어디 보자.”
키잉.
지환은 방 한쪽에 놓여 있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며 중얼거렸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30분. 원서 마감까지 2시간 30분 남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아직 느긋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빨리 접수를.”
막판에 사람이 몰려서 서버가 다운 되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어차피 병진도 빨리 접수하라고 했고 사실 서버다운 같은 것이 설마 일어나랴 했지만,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지환은 간만에 부지런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탁탁탁.
키보드를 두들기며 재빠르게 00실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곳의 채용 공고란에 접속했다. 그리고 초기 화면에 자신의 주민번호와 비밀번호를 생성시키고 하나씩 원서 접수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환의 불평이 튀어나왔다.
“제기랄. 뭐가 이렇게 많아.”
하나씩 적기 귀찮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투덜거리며 지환은 항목별로 필요한 사항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페이지는 단순했지만 회사의 입사 지원서란 것이 부모님 성함, 나이부터 시작해서 주민등록상 주소,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입학년도, 월, 일 등 하나하나 적을 게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겹다, 지겨워. 이거 다 적어 봤자 보려나?”
툴툴거리며 지환이 빈칸을 빼곡히 다 채웠다. 어쩔 수 없이 일단 필요한 절차는 거쳐야 했다.
탁탁.
탁탁탁.
어느새 방 안에는 지환의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숫자 키를 눌러 적당히 기재한 지환은 이제 신상명세와 관련된 내용을 끝내고 자기소개, 입사 후 포부 등을 적는 난으로 진입하였다.
‘자. 이제 X파일을 써먹을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환은 작년 최고 득점을 받은 자기소개서 내용을 참조, 자신에게 맞게 변형시키며 적당히 적기 시작했다.
“햐. 대단하네. 이렇게 소개서를 쓰는구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적혀 있는 자기소개서를 옮겨 적으며 지환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일 잘 쓴 자기소개서로 올라간 것은 정말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오케이. 그럼 완료.”
약 30여 분에 걸쳐 작업을 마친 후 지환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추천인란에 병진이의 아이디를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하하. 이제 백수 생활도 끝인가? 병진, 고맙다. 역시 친구가 좋아.”
그렇게 웃으며 마우스 클릭을 한 순간.
“어어. 왜 이래!”
지환이 상체를 숙이며 외쳤다.
갑자기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 변화가 없는 페이지 화면. 그 순간 지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제길슨. 하필 지금 끊기냐!’
이곳 고시원은 각 방마다 인터넷 선이 하나의 회선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주인집의 피시 공유기를 통해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인터넷 공유기 한 대를 설치하여 여러 방이 나눠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근데 이것의 가장 큰 문제.
주인집의 인터넷 공유기 자체도 엄청난 싸구려이고 인터넷 전용선도 동네에서 제일 싼 것으로 대충 연결한 것이었다.
간혹 가다가 며칠에 한 번 정도의 비율로 인터넷 연결이 이유 없이 끊어질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경우 언제 복구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제길, X됐다!”
자신도 모르게 지환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하필이면 지금 인터넷 연결이 먹통된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나타나는 무서운 화면 표시.

[DNS를 찾을 수…….]

“썅! 다 날아가 버렸잖아!”
지금까지 30여 분간 고생해서 친 것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이다.
중간 중간에 저장 메뉴라도 있으면 좋았는데 이 입사 페이지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 대신 중간 저장 기능도 없었던 것이다.
“아우우…… 내가 기필코 취업해서 돈 생기면 이 방 빼고 만다!”
값이 저렴해서 들어왔건만 다른 건 몰라도 인터넷 때문에 명이 줄어들 것 같았다. 이 초고속 세상에 수시로 끊어지는 인터넷이라니.
띠리이잉.
지환은 즉각 주인집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전통적인 기계음 벨소리가 몇 번 들린 후 주인집 할아버지의 음성이 반대편에서 들렸다.
“여보세요.”
“예, 저…… 207호 사람인데요.”
“아, 207호. 무슨 일인데?”
할아버지의 말에 지환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억누른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인터넷이 끊겼거든요.”
인터넷이 안 된다는 말에 할아버지의 말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들려왔다.
“에휴. 사람들이 워낙 많이 써 대니. 알았어. 내가 지금 밖인데 1시간쯤 후에 들어가서 공유기 껐다 다시 켤게.”
물론 딱히 사용자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지환은 ‘좀 비싸고 성능 좋은 공유기, 아니 하다못해 회선이라도 좀 좋은 회사 것을 쓰든지 해야지 고시원 방값을 그렇게 받아먹는데 종종 끊어지는 인터넷 연결이 뭐냐!’라고 한마디 하려다 꾹 참았다.
“알겠습니다.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기필코 다음 달에는 방을 빼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하며 지환은 전화를 끊었다.
‘1시간 후? 그럼 빨라야 2시간 후에나 가능하겠네.’
이미 몇 번 겪은 적이 있었기에 지환은 밖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서둘러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1시간이지 어쩌면 서너 시간 더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그거 기다리며 속 태우느니 차라리 근처 PC방에 가는 게 나을 터.
“제길, 진짜 방 빼고 만다.”
툴툴거리며 지환은 근처 PC방으로 냅다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시원 근처에 새로 생긴 PC방을 한 번 흘깃 보더니 잠시 고민을 한 후 조금 더 멀리 뛰어갔다.
“헉헉. 그래도 반값이 좋지.”
조금 전 본 새로 생긴 PC방은 1시간당 1,000원. 지환에게 있어서는 아까운 비용이었다.
방에서 인터넷 되는데 PC방을 왜 가냐는 것이 지환의 신조. 그리고 1,000원이면 거기 300원만 더 보태 1.5ℓ 콜라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물 대신 콜라를 마시며 사는 지환에게 있어 콜라는 언제나 냉장고 가득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언제나 다른 비용을 아껴서 콜라는 냉장고에 가득 채워 두어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옵션으로 초콜릿과 감자칩이 주식으로 포함되었다.
한참을 뛰어가니 ‘인터넷 PC방’이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이름을 지닌 지하 PC방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떡하니 붙어 있는 가격표.

이번 달 특별 이벤트 기간. 시간당 500원.

그것을 바라보며 지환이 미소를 지었다.
“특별 이벤트는 무슨……. 6개월 전부터 500원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지환이 좁은 지하 계단을 쿵쿵거리며 내려갔다. 칙칙한 냄새가 나고 전기 설비도 엉성하게 꾸며진 PC방이었지만 가격이 저렴했기에 평소 눈여겨보던 곳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한두 번 왔던 적도 있었다.
물론 고시원에서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그래도 가격의 힘은 다리의 불편함을 감내할 만했던 것이다.
티잉.
다시 자리 잡고 PC를 켜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흘깃.
PC 화면 우측 하단에 있는 시계를 보니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15분. 아직 1시간 30분 이상 남은 상태.
방에서 30여 분간 원서 쓰다가 날리고, 이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 15분이 걸린 것이다.
“하,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네. 우선 한 잔 때리고.”
지환은 맞은편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콜라를 꺼냈다. 그리고 달려오면서 흘린 땀을 식히면서 콜라의 맛을 음미했다.
“어, 시원하다. 역시 땀 흘리고 나서 마시는 콜라 한 잔의 맛.”
운치 있게 말하며 지환은 잠시 여유롭게 뉴스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광고 창이 번거로웠으나 하나씩 지우는 사이 흥미 있을 만한 기삿거리가 눈에 보였다.
“어? 김XX랑 박XX랑 이혼했어?”
사람의 호기심은 무한대. 특히 연예인들 관련 기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법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말처럼 강지환은 뉴스 기사를 클릭하며 내용을 쭉 훑어 나갔다.
성격 차이니 뭐니 하는 기삿거리를 빨리 읽어 나간 후 기사의 백미(白眉), 밑에 달려 있는 코멘들을 보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기사들은 본 내용보다 달려 있는 코멘들이 더 진실에 가깝거나 또는 더 재밌곤 했다.
“별놈들 다 있네.”
코멘들을 읽어 보던 지환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미 수천 개의 코멘이 달려 있었고 어느새 편이 갈려 김XX를 옹호하는 쪽, 박XX를 옹호하는 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주로 남자는 남자 편, 여자는 여자 편을 들고 있었다.
자칭 진실을 말한다는 몇몇 글들을 대충 읽어 본 후 지환은 그것들 대부분이 가십성 추측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남은 콜라를 쭉 들이켠 후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휴. 에너지를 보충했으니 이제 슬슬…….”
시계를 바라보니 현재 시간은 4시 30분. 기사 읽느라고 15분을 쓴 것이다. 이제 입사 원서 마감까지 1시간 30분 남은 상태.
“하하, 좋아. 이제 빨리 원서 접수…….”
그렇게 중얼거리며 00실업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순간 지환은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씨바. 아, 그게 왜 생각 안 났지.”
고개를 처박고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환이 중얼거렸다. 방이 아니라 PC방이라서 차마 큰소리는 치지 못하지만 스스로한테 화가 난 것이다.
“제길. 병진이가 준 서류 안 가져왔잖아.”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병진이 준 서류를 놓고 온 것이다.
대충 옷 입으면서 방 한쪽에 서류를 던져뒀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나와 버린 것.
자기소개서나 다른 부분은 어찌어찌 기억을 되살려 쓴다고 해도, 병진의 아이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우, 다시 가야 하나.”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지환. 정말 다른 일이었다면 ‘몰라!’ 하고 외치며 그냥 푹 주저앉아 게임이나 했겠지만, 자신의 취직이 담긴 문제에서는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벌떡.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환이 거칠게 의자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잠깐 정지 좀 할게요.”
왕복으로 뛰어갔다 와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이제 시작한 지 15분밖에 안 지났기에 PC방 알바가 처리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려오는 답은 차가왔다.
“어, 여기는 정지 안 되는데요.”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PC방 알바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알바비가 엄청 짜서 그런지 몰라도 PC방 알바의 불친절함은 익히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지가 안 된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설마 너무 싼 곳이라 정지가 안 되나?’
생각해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시간당 500원짜리 PC방에서 정지까지 해 주진 않을 것 같았다.
지환의 추측을 뒷받침하듯 PC방 알바가 가격표를 가리키며 살짝 말을 흐렸다.
“여기 가격이 가격인지라…….”
“크흠…….”
알바도 지환이 살짝 인상을 쓰며 헛기침을 하자 조금 자세를 바로잡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건너편 메뉴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신 이번에 선불 제도 생겼거든요. 원래는 처음 끊을 때 말하셔야 하는데 제가 지금 해 드릴게요.”
다시 목에 힘을 주며 PC방의 거만한 알바가 가리키는 곳에는 ‘선불 제도 안내’가 붙어 있었다.
학생 전용이라 되어 있는 곳에는 1시간, 2시간, 5시간, 10시간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지환이 빤히 그것을 보자 알바가 재빠르게 말했다. 원칙적으로 백수 지환은 해당 안 되는 내용이었다.
“1시간 선불은 500원이고요, 시간 딱 정해 놓고 하는 중고생들한테만 해 주는 건데 아저씨한테도 해 드릴게요. 선불 끊어 놓으시고 30분 내로만 오시면 시간 정지해 놓을게요.”
이런 사람들 많이 상대해 봤다는 태도로 알바가 말했다. 그냥 1시간 비용 500원 다 내고 가든지, 아니면 선불로 바꾸란 이야기.
순간 지환은 500원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15분밖에 안 했는데 1시간 비용 다 내긴 아까웠다.
자기 할 말 다 했다는 투로 다시 흥얼거리며 귀에 이어폰을 꽂는 알바를 보며 지환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500원 날린 셈치고 그냥 나와 버려?’
지환은 알바의 거만한 태도를 보니 차라리 500원을 저놈 면상에 던지고 그냥 나갈까 생각했지만, 여기서 돈 쓰고 또다시 다른 PC방 가서 돈 쓰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500원 날린 것에 추가로 PC방 값 1,000원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PC방 알바가 500원에 뭐 그리 고민을 하냐고 투덜거리며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지환은 꾹 참고 그냥 선불로 변경했다.